18화(5,038자)
아침놀
니체의 삶 · 네오
베네치아에서 그는 도움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3월이었다. 나움부르크의 겨울을 넘기고 그는 살아 있었고, 살아 있으니 남쪽으로 갔다. 쾨젤리츠가 베네치아에 있었다. 산 카나레조의 좁은 집 3층, 창을 열면 운하가 있고 운하 건너 벽에 햇빛이 반사되어 천장에서 물결이 흔들렸다. 그는 그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쾨젤리츠가 읽어 주었다. 쾨젤리츠가 받아 적었다. 쾨젤리츠가 아침에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 왔고 점심을 끓였고 저녁에 곤돌라를 불러 그를 바다로 데리고 나갔다.
어느 날 그는 물었다.
“자네 곡은?”
쾨젤리츠는 오페라를 쓰고 있었다. 2년째였다. 바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쓰고 있던 것이었다.
“요즘은 안 씁니다.”
“왜?”
“교수님 책이 먼저니까요.”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천장의 물결이 흔들렸다.
“누가 그러라고 했나?”
“아무도요.”
“그러면 왜?”
쾨젤리츠가 펜을 내려놓았다. 스물여섯이었고 얼굴이 아직 둥글었다.
“교수님이 혼자서는 못 쓰시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라서 그는 화가 났다. 그는 돈 이야기를 꺼냈다. 연금에서 얼마를 떼어 주겠다고. 쾨젤리츠가 거절했다. 그는 한 번 더 말했다. 쾨젤리츠가 한 번 더 거절했다. 세 번째에 쾨젤리츠가 말했다.
“교수님, 그러면 제가 하인이 됩니다.”
“지금은 뭔데?”
쾨젤리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펜을 다시 들었다. 그는 다시 누웠다.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지 못하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 대해. 돕는 사람은 도우면서 무엇을 얻는가. 도움받는 사람은 받으면서 무엇을 잃는가. 어머니가 수프를 내올 때, 동생이 수건을 갈 때, 오버베크가 사직서를 들고 갈 때, 쾨젤리츠가 생선을 살 때. 그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좋은 사람들이 그를 돕는 동안 그는 조금씩 작아졌고, 그들은 조금씩 커졌다. 그들이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동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동정하는 사람은 동정하면서 자기가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느낌이 달다. 그래서 동정을 도덕이라고 부른다.
그는 다음 날 아침 그것을 구술했다. 쾨젤리츠가 받아 적었다. 자기에 대한 글을 자기 손으로 적는 사람의 얼굴을 그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보았다. 쾨젤리츠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다 적고 나서 쾨젤리츠가 말했다.
“쉼표 하나 지우겠습니다.”
“그러게.”
그날 저녁 그는 쾨젤리츠에게 오페라를 쳐 보라고 했다. 쾨젤리츠가 쳤다. 1막 전부. 그는 들었다. 끝나고 나서 그는 칭찬했다. 많이 칭찬했다. 쾨젤리츠는 그 칭찬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도 알았고, 둘 다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겨울에 그는 제노바로 갔다.
살리타 델레 바티스티네 8번지, 꼭대기 층. 계단이 164개였다. 그는 그것을 첫날 세었다. 방은 하나였고 창이 하나였고 창에서 지붕들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4년 전에 처음 본 그 바다였다. 끝이 없는 것. 그는 아침마다 그것을 보고 밤마다 그 소리를 들었다. 집주인 여자는 그에게 작은 석유난로를 빌려 주었고, 그는 그 위에 자기가 밥을 지었다. 쌀과 달걀과 아티초크. 혼자 먹었다. 혼자 먹는 밥은 아무도 돕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좋았다. 좋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동생이 걱정하고 어머니가 울 것이었다.
그는 그 겨울을 자기 평생 가장 행복한 겨울이라고 부르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고 바다가 있는지 확인했다. 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계단 164개를 내려가 골목을 지나 바닷가로 갔는데, 골목에는 빨래가 창과 창 사이에 걸려 있었고 생선 굽는 냄새가 났고 아이들이 그의 푸른 안경을 보고 뭐라고 소리쳤다. 그는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고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었다. 바위는 아침에 차고 오후에 따뜻했으며 그는 오후의 바위를 골라 앉아 몇 시간씩 바다를 보았다. 등대 아래 길을 걸었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도시의 골목을 걸었다. 끝이 없는 것을 향해 배를 띄운 사람의 도시. 그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도 어디에 닿을지 몰랐다. 닿을 데가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믿은 데와 닿은 데가 달랐고, 그래서 세계가 넓어졌다. 그는 그것을 생각하다가 자기가 비유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멈추었다. 그리고 썼다.
밤에는 추웠다. 석유난로 하나로 다락방은 덥혀지지 않았고 그는 외투를 입은 채 썼다. 손가락이 곱으면 난로에 손을 쬐었다가 다시 썼다. 밤 열 시가 넘으면 집주인 여자가 아래층에서 덧문 닫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나면 그는 등불의 심지를 조금 낮추었다. 기름값 때문이 아니었다. 그 집에서 자기만 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좋아서였다.
쓰는 것은 도덕이었다.
소렌토에서 레에게 배운 방법으로 베네치아에서 쾨젤리츠 때문에 알게 된 것을 파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그것이 옳다고 믿는가. 옳아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관습의 도덕. 할머니가 나움부르크로 간다고 했을 때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성찬을 받으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것을 적었다. 사람이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 자기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힘의 감정. 동정도 그것이었고 복수도 그것이었고 희생도 그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575개의 문장이 되었다.
1월에 그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새벽이었고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바다 위로 새들이 날았다. 멀리. 지붕 너머, 등대 너머, 보이지 않는 데까지. 그는 그 새들을 보면서 썼다. 우리도 저렇게 날아간다고. 바다 위로, 땅이 보이지 않는 데까지. 그리고 언젠가 날개가 지쳐 바다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것을 알면서 난다고. 그는 마지막 절의 제목을 호명으로 붙였다.
「정신의 하늘을 항해하는 우리여!」[주 18-01]
그러고 나서 그는 펜을 놓고 창가에 섰다. 책이 끝났다. 끝났는데 도착한 데가 없었다. 새들이 어디 닿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날듯이. 그는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것을 쓰는 사람인지 그것을 사는 사람인지 생각했다. 둘 다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다.
원고는 베네치아로 갔다. 쾨젤리츠가 정서했다. 쉼표를 열한 개 지웠다. 그는 열 개를 받아들였다. 열한 번째는 동정에 관한 절에 있었는데, 그 쉼표를 지우면 문장이 세졌고 세지면 쾨젤리츠를 더 아프게 할 것 같아서 그는 그것을 남겼다. 쾨젤리츠는 왜 하나만 남겼느냐고 묻지 않았다.
제목은 「아침놀」이었다. 부제는 도덕적 편견에 관한 생각. 표지 안쪽에 인도의 오래된 시 한 줄을 넣기로 했다.
「아직 빛나지 않은 아침이 그렇게 많다.」[주 18-02]
3월에 어머니의 편지가 왔다. 엘리자베트가 제노바의 생활을 들었다고 했다. 다락방, 석유난로, 혼자 짓는 밥. 어머니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고 돈을 보냈다. 그는 그 돈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돌려보내면 어머니가 울 것이었다. 그는 그 돈을 서랍에 넣고 쓰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찾은 길이었다. 받고 쓰지 않는 것. 그는 그 길이 비겁한지 정직한지 생각했다. 오버베크라면 둘 다라고 할 것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에 그는 제노바를 떠났다. 더워지면 머리가 아팠다. 높은 데로 가야 했다. 2년 전 장크트모리츠가 그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그는 엥가딘으로 갔다. 이번에는 장크트모리츠가 아니라 그보다 작은 마을이었다. 질스마리아. 호수 둘 사이의 마을, 집 스무 채, 교회 하나. 그는 어느 집 2층에 방을 얻었다. 창에서 호수가 보였고 호수 건너 산이 보였다. 7월 4일이었다.
책은 그 뒤에 왔다.
소포가 질스마리아의 작은 우체국에 닿은 것은 7월 중순이었다. 우체국은 잡화점을 겸하고 있어서 그는 소포와 함께 양초 두 자루를 샀고, 주인이 소포의 발신지를 보고 켐니츠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호숫가로 갔다. 바위에 앉아 종이를 뜯었다. 「아침놀」. 노란 표지. 그는 첫 장을 넘겼다. 인도의 시가 거기 있었다. 아직 빛나지 않은 아침이 그렇게 많다.
그는 책을 무릎에 놓고 호수를 보았다. 호수는 오후의 빛을 받아 흰 쪽과 푸른 쪽이 반반이었다. 바람이 호수를 건너와 책장을 넘겼다. 그는 책장이 넘어가게 두었다. 575개의 문장이 바람에 넘어갔다. 자기가 쓴 것이 자기 손을 떠나 바람의 손에 있었다.
그는 쾨젤리츠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책이 왔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다른 말을 쓰고 싶었는데 그 말은 아직 없었다. 호수 건너 산 위로 구름이 지나갔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아직 빛나지 않은 아침이 어딘가에 많다고 했다. 그는 그 가운데 하나가 이 호수 위에 올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3주 뒤였다.
후주
[주 18-01] 니체, 『아침놀』 5권 575절. eKGWB M-V-575. 한국어 작업 번역. 책의 마지막 절로, 제목이자 호명이다. 이어지는 본문은 멀리 나는 새들과 바다에 떨어지는 날개의 비유다.
[주 18-02] 『아침놀』 표제지의 제사. 리그베다에서 가져온 구절로, 한국어 작업 번역. 「아직 밝아 오지 않은 아침놀이 그토록 많다」로도 옮긴다.
[근거 18-03] 1880년 3~6월 베네치아에서 쾨젤리츠와 지냈다. 쾨젤리츠가 읽어 주고 받아 적고 생활을 돌보았으며 그 때문에 자기 작곡을 미룬 것은 사실이다. 니체가 돈을 주려 하고 쾨젤리츠가 거절한 것, 대화의 세부는 창작이다.
[근거 18-04] 1880년 11월부터 1881년 봄까지 제노바 살리타 델레 바티스티네 8번지 꼭대기 층에서 지냈다. 혼자 밥을 지어 먹고 바닷가를 걸었으며, 이 겨울을 가장 행복한 겨울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아침놀』(부제 「도덕적 편견에 관한 생각」)은 1881년 1월 말 완성, 쾨젤리츠가 정서해 7월 초 슈마이츠너에서 출간. 관습의 도덕(9절), 힘의 감정, 동정의 심리는 이 책의 주제다.
[근거 18-05] 1881년 7월 4일 질스마리아에 처음 도착. 『아침놀』 출간본은 그 직후 그곳에서 받았다. 호숫가에서 책을 편 장면은 창작이다.
계단 164개, 어머니가 보낸 돈을 서랍에 넣은 것, 「3주 뒤」는 소설의 서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