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033자)
방랑자와 그 그림자
니체의 삶 · 네오
그해 그는 날을 세었다.
아픈 날을. 1월 1일부터 세기 시작해서 12월 31일에 세어 보니 118일이었다. 1년의 3분의 1. 침대에서, 어두운 방에서, 세숫대야를 안고, 눈 뒤에 쇠막대를 꽂은 채 보낸 날. 그는 그 숫자를 공책에 적고 한참 보았다. 나머지 247일에 그는 책을 두 권 썼고 직업을 버렸고 산에 올랐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갔다. 247일이 그렇게 많은 날인지 그는 몰랐다.
1월에 그는 쾨젤리츠에게 편지를 썼다. 또 한 번 발작이 지나간 뒤였다. 쾨젤리츠는 그의 원고를 정서하고 있었고 그는 그것이 고마웠다. 고맙다고 썼다. 그리고 통증 이야기를 썼다. 통증이 지나가고 나면 세계가 씻은 것처럼 보인다고. 아픈 사람만 아는 아침이 있다고. 그는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관찰이기를 바라면서 썼다. 쾨젤리츠는 답장에 쉼표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그는 그것이 고마웠다.
3월에 책이 나왔다. 「여러 의견과 잠언」. 지난해 책의 부록이었다. 408개의 짧은 문장. 그는 그것을 받아 들고 자기가 어떻게 썼는지를 생각했다. 어떤 날은 한 문장만 쓸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걷고 돌아와 한 문장을 쓰고 누웠다. 그 한 문장이 그날의 전부였다. 그렇게 쓴 문장들이 408개가 되었다. 한 문장이 하루였다. 책은 408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책을 쓴 것인지 날을 쓴 것인지 몰랐다.
5월 2일에 그는 사직서를 썼다.
침대에서였다. 사흘째 누워 있었고 그날 아침 거울을 보았는데 거울 속 사람의 눈이 거의 감겨 있었다. 그는 책상으로 가지 못하고 침대에서 무릎 위에 종이를 놓고 썼다. 바젤 대학 이사회 앞.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합니다. 10년이었다. 스물네 살에 와서 서른네 살에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두 숫자를 적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엘리자베트가 들어와서 종이를 보았다.
“오빠, 이게 뭐야?”
“보이는 대로.”
“그만두면 뭘로 살아?”
“연금이 나올 거야. 얼마는.”
“얼마는?”
“모르겠어.”
동생이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는 뺏지 않았다. 동생은 읽었다. 다 읽고 종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할 건데?”
“사실대로.”
“사실이 뭔데?”
그는 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서른셋이었고 4년 동안 그의 집을 지켰고 그의 셔츠를 빨고 손님을 맞고 식사 시간을 정했다. 그 집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제야 보았다. 자기 직업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프다는 것. 그게 사실이야.”
동생이 종이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나갔다. 문이 조금 세게 닫혔다.
그는 종이를 봉하기 전에 자기 책을 꺼냈다. 5년 전 책.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을 폈다. 베르귄의 등불 아래서 쓴 문장이 거기 있었다.
「세상에는 오직 너만 걸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 어디로 이어지는가? 묻지 말고 걸어라.」[주 17-01]
스물아홉이 쓴 것을 서른넷이 읽었다. 그때 그는 바젤의 교수였고 그 문장은 용기였다. 지금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문장은 다른 것이었다. 묻지 말고 걸어라.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그 말은 무엇인가. 그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사직서를 봉했다. 걷지 못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걷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바라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았다.
오버베크가 사직서를 들고 이사회에 갔다.
6월 14일에 답이 왔다. 수리. 연금 3천 프랑. 월급과 같은 액수였다. 바젤은 10년 동안 아팠던 교수에게 일하지 않아도 같은 돈을 주기로 했다. 그는 그 편지를 읽고 바젤이라는 도시를 처음으로 사랑했다. 떠나는 날에.
짐은 상자 열한 개였다. 책이 아홉 상자였고 옷이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에 공책들이 들어 있었다. 끝내지 않은 것 넷과 끝낸 것 몇과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 엘리자베트가 상자에 번호를 붙였다. 가구는 팔았다. 식탁보와 커튼은 동생이 가져갔다. 동생은 나움부르크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니에게로. 4년 전에 왔던 길을 거꾸로.
역에서 오버베크가 그를 보았다.
둘은 10년 동안 같은 집에 살았고 저녁마다 만났고 서로 동의하지 않았다. 오버베크는 그의 책을 전부 읽었고 한 권도 끝까지 믿지 않았다. 그래도 전부 읽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오버베크가 말했다.
“어디로 가나.”
“산으로. 높은 데로. 의사가 공기가 좋다고.”
“그다음은?”
“모르겠어.”
“편지해.”
“할게.”
오버베크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잡았다. 신학자의 손이었다. 믿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사람의 손. 그는 그 손을 10년 뒤에 토리노에서 다시 잡게 된다. 그날은 몰랐다. 기차가 움직였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오버베크가 서 있었다. 라인이 뒤로 흘러갔다. 좁고 빠르고 초록인 강.
장크트모리츠는 해발 1,800미터였다.
엥가딘의 높은 골짜기. 호수가 셋 있었고 그 둘레를 길이 돌았고 길 위로 산이 섰다. 공기가 얇았다. 처음 사흘은 숨이 찼다. 나흘째부터 머리가 가벼웠다. 그는 그것을 믿지 못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가벼웠다. 그는 하루에 여섯 시간을 걸었다. 여덟 시간을 걷는 날도 있었다. 10년 만에 아프지 않은 여름이었다.
그는 걸으면서 썼다. 작은 공책에 연필로. 소렌토에서 배운 것을 여기서 했는데 다른 것이 나왔다. 소렌토에서 그는 큰 것을 뜯어보았다. 형이상학, 종교, 예술, 천재. 여기서 그는 작은 것을 보았다. 아침에 무엇을 먹는가. 몇 시에 자는가. 어떤 날씨에 생각이 잘 되는가. 방은 어느 쪽으로 창이 나야 하는가. 그는 10년 동안 그런 것을 하찮게 여겼다. 철학자가 날씨 이야기를 하다니. 그런데 118일이 그에게 가르쳤다. 날씨가 생각을 만든다. 식사가 도덕을 만든다. 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멀리까지 간다. 그는 그것을 적었다. 한 문장씩.
저녁에 호숫가 길을 걸으면 해가 산 뒤로 넘어가면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누워 호수까지 닿았다. 그는 그 그림자를 보았다. 어느 날 저녁 그는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왜 늘 나보다 앞에 있나?”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혼자 웃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에 또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림자가 대답하는 것을 자기가 적었다. 두 목소리였다. 방랑자와 그림자. 방랑자가 묻고 그림자가 답했다. 그림자는 방랑자보다 조금 가볍고 조금 차갑고 조금 솔직했다. 방랑자가 하지 못하는 말을 그림자가 했다. 그는 그 대화를 책의 처음과 끝에 두었다. 가운데에 350개의 작은 문장을 넣었다. 그림자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었다. 혹은 그가 자기에게 가르친 것을 그림자의 입으로 들은 것이었다.
여름이 끝날 때 그는 공책 다섯 권을 쾨젤리츠에게 보냈다. 쾨젤리츠는 베네치아에 있었다. 답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교수님, 이 책에는 쉼표를 지울 데가 없습니다.
9월에 그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산을 내려와 나움부르크로 갔다. 어머니의 집. 피아노 위의 천. 어머니는 그를 보고 울지 않았고 안지도 않았다. 그의 외투를 받아 걸고 수프를 내왔다. 그는 그 수프를 먹었다. 어머니가 끓인 수프를 10년 만에 먹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교수님이 아니면 이제 뭐라고 부르니.”
“프리츠요.”
어머니가 웃었다. 그는 어머니가 웃는 것을 오랜만에 보았다.
겨울은 길었다. 산에서 가벼웠던 머리가 평지로 내려오자 다시 무거워졌다. 그는 다시 날을 세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세었다. 아버지는 서른다섯에 죽었다. 자기는 지금 서른다섯이었다. 그는 그 둘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아버지의 병이 머리였고 자기 병이 머리였다. 아버지가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웠고 자기가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웠다. 그는 자기가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유서를 쓰지는 않았다. 쓰면 사실이 될 것 같았다. 대신 말비다에게 편지를 썼다. 끝이 가까운 것 같다고. 그래도 할 일은 다 했다고. 쓰고 나서 그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할 일은 다 하지 않았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이 상자 하나였다.
12월에 소포가 왔다.
책이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쾨젤리츠가 정서하고 슈마이츠너가 찍은 것. 그는 책을 폈다. 표지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1880. 아직 1879년 12월이었다. 책이 그보다 먼저 내년에 가 있었다. 출판사의 관례였다. 연말에 나온 책은 다음 해 연도를 적는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그 숫자를 한참 보았다.
그는 책을 피아노 위에 놓았다. 수놓은 천 위, 성경 옆에.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책을 나란히 둔 채로 천을 털었다.
후주
[주 17-01] 니체, 『반시대적 고찰 3: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 eKGWB SE-1. 한국어 작업 번역. 1874년에 쓴 문장을 1879년 사직 직전에 다시 읽는 장면으로 두었다. 다시 읽는 장면 자체는 창작이다.
[근거 17-02] 1879년 한 해 118일을 심한 발작으로 보냈다는 것은 니체 자신의 기록이다. 1월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eKGWB BVN-1879,799)는 원고를 돕는 친구에게 감사하며 통증 속에서 삶을 보는 태도를 적은 것으로, 본문의 문구는 그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근거 17-03] 『여러 의견과 잠언』은 1879년 3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부록으로 출간. 『방랑자와 그 그림자』는 1879년 여름 장크트모리츠에서 쓰고 그해 12월에 나왔으며 표지의 연도는 1880년이다. 방랑자와 그림자의 대화가 책의 처음과 끝에 있다.
[근거 17-04] 1879년 5월 2일 건강을 이유로 사직을 청했고 6월 14일 수리되어 연금을 받았다. 연금 액수는 바젤 대학과 학술협회의 기록에 따른다. 엘리자베트가 바젤의 살림을 정리하고 나움부르크로 돌아갔다.
[근거 17-05] 1879년 6~9월 장크트모리츠 체류. 이것이 엥가딘 고지대의 첫 경험이다. 1879/80년 겨울을 나움부르크 어머니 집에서 보냈고, 아버지가 죽은 나이에 이르러 자기도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해 말비다 등에게 작별에 가까운 편지를 썼다.
동생과의 대화, 오버베크와의 작별 대화, 그림자에게 말을 거는 저녁, 어머니와의 대화, 쾨젤리츠 답장의 문구는 소설의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