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544자)
자유정신
니체의 삶 · 네오
그는 서른두 살에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제노바였다. 10월 저녁, 레와 브레너와 함께 기차에서 내려 항구로 걸어갔는데,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서 갑자기 땅이 없어지고 물이 시작되었다. 그는 멈추어 섰다. 라인은 강이었다. 레만은 호수였다. 이것은 끝이 없었다. 끝이 없는 것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레가 옆에서 뭐라고 말했는데 그는 듣지 못했다. 바닷바람이 푸른 안경 밑으로 들어와 눈을 적셨다. 소금이었다. 그는 손으로 눈을 닦고 다시 보았다. 여전히 끝이 없었다.
소렌토의 집은 절벽 위에 있었다.
빌라 루비나치. 말비다가 빌린 집이었고 창을 열면 나폴리 만이 있었고 그 건너에 베수비오가 연기를 올리고 있었다. 정원에 오렌지 나무가 있었고 레몬 나무가 있었고 11월인데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2층 방을 받았다. 침대와 책상과 바다. 그는 첫날 밤 창을 열어 둔 채 잤다. 파도 소리가 밤새 들어왔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소리였다. 밀려오고 물러가고 밀려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이 그는 처음이었다.
집에는 넷이 살았다.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 쉰아홉, 집의 주인이자 어머니이자 사서. 파울 레, 서른, 철학자. 알베르트 브레너, 스물한 살, 바젤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고 시를 쓰고 폐가 약했다. 그리고 그. 넷은 아침에 각자 썼고 오후에 함께 걸었고 저녁에 함께 들었다. 말비다가 읽어 주었다. 투키디데스. 헤로도토스. 볼테르. 몽테뉴.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말비다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고 지치지 않았으며, 그는 등불 아래 눈을 감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쇼펜하우어를 읽어 주던 밤 이후로 누군가 자기에게 책을 읽어 준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한 문단 읽고 덮었다. 말비다는 덮지 않았다.
레는 다른 식으로 생각했다.
레의 책은 작년에 나왔다. 「심리학적 관찰」. 짧은 문장들. 그리고 지금 소렌토에서 다음 책을 쓰고 있었다. 도덕 감정의 기원. 레의 생각은 간단하고 차가웠다. 선과 악은 하늘에서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쓸모 있는 것을 선이라 부르고 해로운 것을 악이라 불렀고, 몇백 년이 지나자 그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잊었다. 그래서 선이 하늘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양심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습관의 소리다. 레는 그것을 다윈과 영국 사람들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둘은 오후마다 오렌지 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처음에 저항했다.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고. 레가 물었다.
“왜 간단하면 안 되지?”
“사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
“사람이 간단하지 않은 것과 사람에 대한 설명이 간단한 것은 다른 문제야.”
그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채로 사흘을 걸었다. 나흘째에 그는 자기가 레의 방법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성한 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어디서 왔는지 보는 것. 쇼펜하우어는 그에게 고통에 이름을 주었다. 레는 그에게 이름을 뜯어보는 법을 주었다. 그는 그것을 레알리즘이라고 불렀다. 레가 웃었다. 레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말비다는 다른 걱정을 했다. 교수님은 결혼하셔야 해요. 식탁에서 그 말이 세 번 나왔다. 세 번째에 레가 말했다.
“부인, 그러면 저희 둘 다 부잣집 딸과 결혼시켜 주십시오. 그 돈으로 평생 걷고 읽겠습니다.”
“레 박사, 농담이 아니에요.”
“저도 아닙니다.”
말비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저녁 식탁의 공기가 좋았다. 자기를 걱정하는 사람과 자기를 웃기는 사람과 자기 시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한 식탁에 있었다. 10년 동안 그런 식탁이 없었다. 트립셴의 식탁은 바그너의 식탁이었다. 이 식탁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바그너는 같은 마을에 있었다.
소렌토의 빅토리아 호텔. 축제가 끝나고 지친 바그너가 가족과 함께 와 있었다. 그는 몇 번 그 호텔에 갔다. 바그너는 피곤해 보였고 늙어 보였다. 11월 초의 어느 오후 둘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을 걸었다. 바그너가 말했고 그가 들었다. 바그너는 다음 작품 이야기를 했다. 파르지팔. 성배와 창과 순결한 바보. 그리고 구원. 바그너는 구원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성찬의 경험. 기독교의 깊이. 자기가 그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걸으면서 들었다. 바다가 아래에서 밀려오고 물러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도 아니었다. 할 말이 바그너에게 가 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였다. 이 사람은 지금 자기 성당을 짓고 있었다. 축제가 끝난 뒤의 피로가 성당을 짓게 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하면서 자기가 레의 방법으로 바그너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교수, 말이 없소.”
“듣고 있습니다.”
바그너가 그를 보았다. 큰 눈이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바다 쪽을 보고 걸었다.
그는 그날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 뒤로 둘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편지는 몇 통 더 오간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는 일은 없다. 그는 그것을 그날 몰랐고, 알았다 해도 다르게 걷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 내내 그는 짧게 썼다.
클링겐브룬의 쟁기날이 자라고 있었다. 한 생각에 한 문장. 어떤 것은 세 줄이고 어떤 것은 한 쪽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브레너나 레에게 구술했고, 혹은 눈이 허락하면 직접 썼다. 쓰는 것은 모두 레알리즘이었다. 형이상학은 어디서 왔는가. 종교는. 예술은. 천재라는 생각은. 그는 자기가 7년 동안 믿은 것들을 하나씩 책상에 올려놓고 뜯어보았다. 비극의 탄생이 믿었던 것. 바이로이트가 믿었던 것. 뜯어보면 전부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사람이 만들고 잊은 것.
어느 아침에 그는 이렇게 구술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생성되어 왔다. 영원한 사실은 없으며, 절대적인 진리도 없다.」[주 16-01]
브레너가 적었다. 적고 나서 기침을 했다. 그는 브레너의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베수비오가 연기를 올리고 있었다.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산이 사실은 매일 조금씩 자라고 무너지는 중이었다. 그는 그것을 적지 않았다. 적으면 비유가 될 것이고, 비유는 그가 지금 뜯어보는 것이었다.
봄에 소렌토를 떠났다. 여름을 스위스 산에서 보내고 가을에 바젤로 돌아왔다. 엘리자베트가 집을 지키고 있었고 쾨젤리츠가 근처에 방을 얻어 있었다. 그는 소렌토의 종이를 쾨젤리츠에게 주었다. 쾨젤리츠가 정서했다. 쉼표를 셋 지웠다. 그는 셋 다 받아들였다.
1878년 1월에 바이로이트에서 소포가 왔다.
얇은 책이었다. 「파르지팔」. 소렌토의 언덕길에서 들은 그것이 시가 되어 인쇄되어 있었다. 첫 장에 바그너의 글씨가 있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리하르트 바그너, 상급교회참사관.」 상급교회참사관. 농담이었다. 바그너가 자기를 교회의 높은 사람으로 부르는 농담. 그는 그것을 읽고 웃었다. 그리고 웃음이 끝나기 전에 차가워졌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었다. 바그너는 정말로 그 자리에 가 있었다. 그는 「파르지팔」을 읽었다. 성배, 창, 피, 구원, 무릎 꿇는 사람들. 아름다운 시였다. 그는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가 이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두 가지를 동시에 아는 것이 소렌토에서 배운 것이었다.
5월에 그의 책이 나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정신을 위한 책」. 켐니츠의 슈마이츠너에서, 볼테르 서거 100주년에 맞추어, 볼테르에게 바치는 헌사와 함께. 바그너에게 바친 사람이 볼테르에게 바쳤다. 638개의 짧은 문장. 그는 첫 권을 받아 들고 무게를 가늠했다. 가벼웠다. 비극의 탄생과 같은 무게였는데 안에 든 것이 반대였다.
그는 한 권을 바이로이트로 보냈다. 포장하면서 그는 책을 폈다. 1부 2절. 모든 것은 생성되어 왔다. 영원한 사실은 없다. 그 문장을 바그너가 읽을 것이었다. 천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문장을. 그는 책을 덮고 종이로 쌌다. 짧은 편지를 넣었다. 선생님께. 그 이상은 쓰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우체국까지 걸었다. 뛰지 않았다.
답은 오지 않았다.
6월이 가고 7월이 갔다. 8월에 바이로이트의 잡지에 바그너의 글이 실렸다. 「대중과 인기」.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교수가 음악에서 멀어져 차가운 과학으로 갔다는 문장이 있었고, 그 문장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독일의 바그너 숭배자 전부가 알았다. 그는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들었다. 말비다가 조심스럽게 전해 준 말이었다. 코지마가 어느 편지에 적었다고. 마침내 이스라엘이 레 박사의 모습으로 와서 니체를 데려갔다고.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레. 잘 웃는 사람. 오렌지 나무 사이를 함께 걸은 사람. 코지마는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핏줄을 보았다. 그는 자기가 화가 난 것이 자기 때문인지 레 때문인지 몰랐다. 둘 다였다. 둘 다라는 것이 그를 더 화나게 했다.
그는 책장으로 갔다. 「파르지팔」을 꺼냈다. 상급교회참사관의 글씨가 있는 첫 장. 그는 그것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옆에 꽂았다. 두 책이 나란히 섰다. 같은 해에 같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간 두 권. 하나는 구원을 노래했고 하나는 구원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 둘을 한참 보았다. 그러고 나서 책장을 떠나 창가에 섰다. 성문의 탑이 있었다. 바다는 없었다.
후주
[주 16-01]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부 1장 2절. eKGWB MA-I-I-2. 한국어 작업 번역. 역사적 철학을 요구하는 문맥의 문장이다. 본문은 이 문장을 소렌토에서 구술하는 장면과 바그너에게 보낼 책을 포장하는 장면에 두 번 두었다.
[근거 16-02] 1876년 10월 바젤 대학에서 1년 병가를 얻어 파울 레·알베르트 브레너와 제노바를 거쳐 소렌토로 갔다. 제노바에서 바다를 처음 본 것은 사실이다. 소렌토 빌라 루비나치에서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와 넷이 1877년 5월까지 함께 살았고, 저녁마다 말비다가 책을 읽어 주었다.
[근거 16-03] 파울 레의 『도덕 감정의 기원』은 1877년에 나왔다. 니체가 레의 방법을 「레알리즘」이라 부른 것은 사실이다. 오렌지 나무 사이의 대화, 식탁의 결혼 이야기는 창작이며, 말비다가 니체의 결혼을 바란 것은 사실이다.
[근거 16-04] 바그너 가족은 1876년 10~11월 소렌토 빅토리아 호텔에 머물렀다. 11월 초 두 사람이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걸으며 바그너가 「파르지팔」과 기독교 체험을 이야기했고 니체가 침묵했다는 것은 니체 자신과 동생의 후기 회고에 전한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다. 단절은 이 산책 한 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1878년까지 이어진다.
[근거 16-05] 1878년 1월 초 바그너가 「파르지팔」 시집을 「상급교회참사관」이라 서명해 보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1878년 5월 켐니츠의 슈마이츠너에서 볼테르 헌사와 함께 출간되었고 니체가 바이로이트에 보냈다. 바그너는 답하지 않았고 8월 「바이로이트 블래터」에 「대중과 인기」를 실었다. 코지마가 편지에 「마침내 이스라엘이 레 박사의 모습으로 왔다」는 취지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니체가 그 말을 전해 들은 경로는 창작이다.
두 책을 나란히 꽂은 장면은 창작이다. 니체는 1888년 『이 사람을 보라』에서 두 책이 엇갈려 오간 것을 두 자루 칼이 엇갈린 것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