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210자)
바이로이트
니체의 삶 · 네오
크리스마스에 그는 서른 시간을 토했다.
1875년의 마지막 주였다. 엘리자베트가 차린 식탁에 앉았다가 일어나지 못했고, 그 뒤로 서른 시간 동안 어두운 방에서 세숫대야를 끌어안고 있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고 눈 뒤에 못이 아니라 쇠막대가 들어와 있었다. 동생이 이마에 젖은 수건을 갈아 주었다. 세 번째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이마에 수건을 갈아 주던 고모, 의무실의 늙은 여자, 그리고 동생. 그는 수건이 바뀔 때마다 그것을 세었다.
새해를 그는 침대에서 맞았다. 대학에 또 병가를 냈다. 1월과 2월이 그렇게 갔다. 책을 읽을 수 없어서 생각만 했고, 생각만 하니 생각이 짧아졌다. 긴 문장을 머리에 들고 있을 수 없었다. 한 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이 시작되기 전에 쉬어야 했다. 그는 그것이 병인 줄 알았다. 병이었다. 그리고 다른 것이기도 했다.
4월에 그는 제네바에 갔다.
레만 호숫가의 봄. 의사가 권한 요양이었다. 거기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마틸데 트람페다흐. 스물한 살, 리가에서 온 음악 학생, 긴 금발, 피아노를 쳤다. 그는 그녀와 닷새 동안 세 번 만났다. 호숫가를 걸었고 롱펠로의 시를 함께 읽었고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들었다. 닷새째 밤에 그는 편지를 썼다.
청혼이었다.
그는 그 편지를 쓰면서 바그너의 편지를 생각했다. 결혼하시오. 아니면 오페라를 쓰시오. 오페라는 쓸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바그너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자기 마음을 듣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모른 채로 봉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서로를 안 지 며칠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을 할 용기를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낼 것 같습니다.
답장은 이틀 뒤에 왔다. 정중하고 짧았다. 아니요. 그녀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 편지를 읽고 바로 답장을 썼다. 당신이 옳다고. 자기가 성급했다고.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겠다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날 밤 호숫가를 걸으면서 그는 자기가 거절당해서 안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도가 수치보다 컸다. 수치는 그 안도 때문에 더 컸다.
바젤로 돌아와서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엘리자베트에게도. 오버베크에게는 10년 뒤에 말했다.
바그너에 대한 책은 1년째 서랍에 있었다.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반시대적 고찰의 네 번째. 그는 작년 여름에 그것을 썼고 쓰고 나서 내지 않기로 했다. 왜 내지 않는지 그는 자기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좋은 글이었다. 바그너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 음악이 왜 지금 독일에 필요한지, 그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시대와 싸웠는지. 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다 진심인 글이 서랍에 있었다. 쾨젤리츠가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내야 한다고 했다.
“왜?”
“축제가 8월입니다. 그 전에 나와야 합니다. 이 글은 바이로이트를 위한 글입니다.”
“바이로이트를 위한 글이라서 못 내겠네.”
쾨젤리츠가 그를 보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자기도 알게 될 것이었다. 결국 그는 냈다. 쾨젤리츠가 정서했고 7월 초에 책이 나왔다. 축제 한 달 전이었다. 첫 권이 바이로이트로 갔다.
답장이 왔다. 바그너였다.
「친구여! 당신의 책은 엄청나오! 나에 대한 그 경험을 대체 어디서 얻었소?」[주 15-01]
그는 그 편지를 들고 웃지 않았다. 바그너는 책에서 자기를 보았다. 그것이 맞았다. 그 책에는 바그너가 있었다. 그런데 바그너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 책을 쓴 사람이 어디 있는지. 쓴 사람은 바그너 뒤에, 바그너를 설명하는 자리에 있었다. 설명하는 사람은 설명되는 사람보다 뒤에 있다. 그는 그 자리에 1년 동안 있었고, 이제 그 자리를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남에게 준 찬사가 자기를 묶었다. 그는 그것을 7월 초에 알았고 7월 말에 바이로이트로 갔다.
바이로이트는 미쳐 있었다.
작은 도시에 유럽이 들어와 있었다. 빈 방이 없었고 빈 식탁이 없었고 빈 마차가 없었다. 거리에 공작과 백작과 은행가와 신문기자와 가수와 그들의 하인들이 섞여 걸었다. 황제가 온다고 했다. 황제가 왔다. 빌헬름 1세가 마차를 타고 극장 언덕을 올라갈 때 사람들이 모자를 흔들었고, 그는 그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황제가 그 나라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자기가 적은 음악가의 극장에 오고 있었다. 모자를 흔드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순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는 느꼈다. 느끼는 사람이 자기 하나라는 것이 바이로이트에서 그가 제일 먼저 안 것이었다.
바그너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반프리트에 가면 사람이 서른 명이었다. 바그너는 그 가운데서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움직였고 그를 보면 손을 잡고 「친구여」 하고는 다음 사람에게 갔다. 코지마는 손님 명단을 들고 있었다. 그는 손님 명단에 있었다. 트립셴에서 그는 식탁에 있었다. 지금 그는 명단에 있었다.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그너가 설계한 극장.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 깊은 구덩이에 숨어서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되어 있었고, 객석은 어두웠고, 모든 자리에서 무대가 똑같이 보였다. 그는 어두운 객석에 앉았다. 「라인의 황금」. 소리가 어둠에서 올라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 그 소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그는 7년 동안 책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머리가 아팠다.
극장은 더웠다. 8월이었고 창이 없었고 1,500명이 숨을 쉬었다. 그는 두 시간 반 동안 쇠막대를 눈 뒤에 꽂은 채 앉아 있었다. 음악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아는 것과 듣는 것이 달랐다. 그는 알기만 했다. 막이 끝나고 불이 켜지자 사람들이 일어나 샴페인 이야기를 했다. 어느 공작부인의 목걸이 이야기를 했다. 내일 황제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 사이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저녁 공기가 뜨거웠다. 극장 입구에 책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고 거기 그의 책이 쌓여 있었다.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사람들이 그것을 샀다. 공연 안내서처럼.
그는 다음 날 떠났다.
바이에른 숲의 클링겐브룬이라는 마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 여관 하나와 숲과 길. 그는 거기서 열흘을 있었다. 아침마다 숲을 걸었다. 숲은 서늘했고 조용했고 소리가 하나였다. 바람.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가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쇠막대가 못이 되고 못이 바늘이 되었다.
그리고 썼다. 작은 공책에, 연필로, 걸으면서. 긴 문장을 들고 있을 수 없어서 짧게 썼다. 한 생각에 한 문장. 다음 생각에 다음 문장.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병 같았고, 사흘째부터는 다른 것 같았다. 그는 공책 첫 장에 제목을 적었다. 쟁기날. 땅을 가는 날. 짧은 문장들이 그에게는 쟁기날이었다. 7년 동안 쌓은 긴 문장의 땅을 그것으로 갈아엎고 있었다. 무엇을 심을지는 몰랐다.
열흘째 저녁에 그는 공책을 덮고 세어 보았다. 문장이 백 개가 넘었다. 그 가운데 바그너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는 그것을 깨닫고 한참 앉아 있었다.
8월 12일에 그는 바이로이트로 돌아갔다. 공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흘 동안 「반지」 전편을 보았다. 머리는 견딜 만했다. 숲이 준 것이었다. 그는 어두운 객석에서 「신들의 황혼」의 마지막을 들었다. 세계가 불타고 라인이 넘치고 황금이 돌아가고, 음악이 올라갔다가 가라앉았다. 그는 울지 않았다. 4년 전 베토벤의 9번에서 울었던 사람이 울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알기만 했다.
객석에서 그는 두 사람을 만났다.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 쉰아홉, 혁명 때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에 사는 여자, 바그너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책을 전부 읽은 독자. 그리고 파울 레. 서른, 유대인, 바젤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적 있는 철학자, 작년에 「심리학적 관찰」이라는 짧은 책을 낸 사람. 셋은 공연 사이에 함께 걸었다. 말비다가 말했다. 겨울에 소렌토로 오세요. 집을 하나 빌릴 거예요. 거기서 읽고 쓰고 쉬어요. 레도 올 거예요.
그는 알겠다고 했다. 바로 알겠다고 했다.
떠나는 날 반프리트에 인사를 갔다. 바그너는 서른 명 사이에 있었다. 그가 떠난다고 하자 바그너가 손을 잡았다. 「친구여, 겨울에 봅시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 갔다. 코지마가 명단에서 그의 이름 옆에 무엇인가 적었다. 그는 반프리트의 정원을 걸어 나왔다. 극장의 지붕이 언덕 위에서 햇빛을 받고 있었다.
12년 뒤에 그는 이렇게 적는다.
「내가 어디에 있었던가?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바그너조차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주 15-02]
그러나 그날의 그는 그렇게 적지 않았다. 그날의 그는 기차에 앉아 가방에서 작은 공책을 꺼냈다. 연필 글씨 백 개. 쟁기날. 그는 첫 장을 폈다. 그리고 바이로이트가 뒤로 사라지는 창밖은 보지 않았다.
후주
[주 15-01] 바그너가 니체에게 보낸 편지, 1876년 7월 13일. 비평판 수신서신(KGB II/6). 한국어 작업 번역.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를 받은 직후의 편지다.
[주 15-02]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절. eKGWB EH-MA-2. 한국어 작업 번역. 1888년에 1876년의 바이로이트를 돌아본 회고이며, 본문은 이것을 그날의 생각이 아니라 12년 뒤의 기록으로 명시했다.
[근거 15-03] 1875년 크리스마스 무렵의 심한 발작과 1876년 초의 병가. 1876년 4월 제네바에서 마틸데 트람페다흐를 만난 지 며칠 만에 편지로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일. 니체의 청혼 편지와 거절 뒤의 답장은 남아 있으며 본문의 문구는 그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근거 15-04] 『반시대적 고찰 4: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1875년에 쓰고 1년 가까이 출판을 미루다가 쾨젤리츠의 권유로 1876년 7월에 냈다. 책에 담긴 존경은 당시의 진심이었고 이 소설은 그것을 뒤의 비판 때문에 거짓으로 만들지 않는다.
[근거 15-05] 1876년 8월 첫 바이로이트 축제. 빌헬름 1세 황제 참석. 니체는 7월 말에 도착해 리허설을 보다 8월 초 두통으로 바이에른 숲의 클링겐브룬으로 피했고, 거기서 「쟁기날」이라는 제목의 잠언 노트를 썼다. 이것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출발이다. 8월 12일 돌아와 「반지」 공연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파울 레와 소렌토 체류를 약속했다.
청혼 뒤의 안도, 극장 입구의 책 가판대, 손님 명단, 반프리트에서의 짧은 작별은 소설의 창작이다. 바그너와의 단절은 이 축제에서 한 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며, 두 사람은 같은 해 가을 소렌토에서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