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12자)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니체의 삶 · 네오
산은 질문을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7월에 그는 그라우뷘덴의 베르귄에 갔다. 높은 골짜기의 작은 마을이었고 여관 창에서 눈 덮인 봉우리가 보였으며, 아침마다 소 방울 소리가 안개 속에서 올라왔다. 바젤의 소들과 같은 소리였는데 여기서는 메아리가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걸었고 저녁에 썼다. 눈이 허락하는 만큼. 푸른 안경을 쓰고 낮은 등불 아래서 한 시간씩.
그가 쓰려는 것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런데 쓰기 시작하자 쇼펜하우어가 아니었다.
젊은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는 그 질문에서 시작했다. 답은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네가 정말로 사랑한 것들을 세어 보라. 네 영혼을 끌어올린 것들, 네가 그 앞에서 자기를 잊은 것들. 그것들을 한 줄로 세우면 거기 네가 있다. 네가 지금 하는 일, 지금 믿는 것, 지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 줄을 세웠다. 아버지의 피아노. 크루크의 집에서 들은 소리. 횔덜린. 헌책방의 두 권. 트립셴의 계단. 그 줄의 끝에 자기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줄은 전부 남이었다. 남을 사랑한 것으로 자기를 안다. 그는 그것이 이상했고, 이상하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그 줄의 하나였다. 그가 쇼펜하우어에게서 배운 것은 의지도 표상도 아니었다. 정직이었다. 혼자인 것. 자기 시대와 맞지 않아도 자기 생각을 끝까지 가는 것. 책이 20년 동안 안 팔려도 쓰는 것. 그는 그것을 적었다. 쇼펜하우어가 무엇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그렇게 제목을 붙이고 나서 그는 자기가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헌책방에서 책으로 만났다. 책으로 만난 사람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살아 있는 스승은 둘 있었고 둘 다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려 주었다. 죽은 스승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밤에 이렇게 적었다.
「네가 삶의 강을 건너야 할 바로 그 다리를, 너 자신 말고는 아무도 놓아 줄 수 없다.」[주 14-01]
적고 나서 등불을 껐다. 창밖에 봉우리가 희게 서 있었다. 그는 자기가 서른이 되기 석 달 전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다리. 누가 놓아 주지 않는 다리. 그는 지금까지 남이 놓은 다리를 건너왔다. 리츨이 놓은 다리로 바젤에 왔고 바그너가 놓은 다리로 바이로이트에 갔다. 자기가 놓은 다리는 아직 없었다.
책은 10월에 나왔다. 반시대적 고찰의 세 번째였다.
열흘 뒤에 그는 서른이 되었다. 생일 아침에 바젤의 하숙방에서 그는 거울을 보았다. 콧수염이 전보다 두꺼웠고 눈 밑이 전보다 검었다. 서른 살의 원외교수. 책이 넷이었고 그중 하나는 학문적으로 그를 죽였다고들 했으며, 나머지 셋은 반시대적이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을 세 권 쓴 사람. 그는 거울 속의 사람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바이로이트에서 편지가 왔다. 바그너였다. 책을 읽었다고 했다.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소. 결혼하시오. 아니면 오페라를 쓰시오.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오.
그는 그 편지를 들고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웃음이 끝났을 때 자기가 왜 웃었는지 생각했다. 바그너는 이 책을 읽고 쇼펜하우어도 교육도 보지 않았다. 외로운 사람을 보았다.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아서 웃었다. 그는 답장에 결혼도 오페라도 쓰지 않았다. 다음 책 이야기를 썼다. 바그너에 대한 책. 네 번째 반시대적 고찰.
2월에 집 안에서 전쟁이 났다.
로문트였다. 하인리히 로문트. 라이프치히에서부터 친구였고 바젤에 와서 같은 집에 살았으며, 그와 오버베크와 셋이서 바우만의 동굴을 채운 사람. 철학 강사였고 쇼펜하우어를 읽었고 그의 모든 책을 처음 읽는 독자였다. 그 로문트가 어느 저녁 둘에게 말했다.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그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이 아니었다. 로문트는 조용히, 미리 준비한 말로, 자기가 왜 그 길을 가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그의 얼굴이 굳었다. 오버베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자네가 내 책을 읽었나?”
“다 읽었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도?”
“읽었어.”
“거기 뭐라고 적혀 있던가?”
로문트가 그를 보았다.
“자기 길을 가라고. 남이 놓아 주지 않는 다리를 건너라고.”
“그런데 사제가 되겠다고?”
“이게 내 길이야, 프리츠. 자네가 적은 그 길이 내게는 이쪽이야.”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다. 2천 년 동안 사람을 길들여 온 교회로 자기 발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에게, 자기 책을 읽고 그 결론을 냈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는 결국 이렇게만 말했다.
“자네는 자네를 버리는 거야.”
“자네가 보기에.”
“그래. 내가 보기에.”
오버베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교회사를 가르치는 신학자였다.
“하인리히. 가톨릭이 자네를 받아 줄지부터 알아보게. 그 사람들은 쇼펜하우어 읽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로문트가 웃었다. 그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음이 전쟁을 끝내지는 않았다. 두 달 동안 집 안이 조용했다. 셋이 저녁을 같이 먹지 않았다. 그는 밤에 자기 책을 다시 읽었다. 자기 길을 가라. 그는 그 문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자기가 싫어하는 길로도.
4월에 로문트가 떠났다.
역에서 셋이 섰다. 로문트가 기차에 올랐다. 창을 내리려 했는데 창이 내려오지 않았다. 로문트가 창 안에서 뭐라고 말했고 둘은 듣지 못했다. 기차가 움직였다. 로문트의 얼굴이 유리 뒤에서 멀어졌다. 그는 그 유리를 보았다. 말이 건너오지 않는 유리. 그는 그날 밤 로데에게 썼다. 창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로문트는 결국 사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 소식을 1년 뒤에 들었다. 들었을 때 기쁘지 않았다. 자기가 옳았다는 것이 기쁘지 않은 첫 번째 일이었다.
봄에 그는 자기 강의 노트를 꺼냈다.
6년치였다. 아이스킬로스, 라틴어 문법, 수사학, 플라톤, 그리스 문학사. 그는 그것을 책상에 쌓아 놓고 보았다. 그리고 공책에 적기 시작했다. 우리 문헌학자들. 우리는 그리스인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어 철자를 사랑한다. 우리는 고대를 되살린다고 말하면서 고대를 표본으로 만든다. 우리는 젊은이를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우리처럼 만든다. 그는 그것을 밤마다 적었다. 반시대적 고찰의 네 번째가 될 것이었다. 바그너 대신.
되지 않았다.
노트는 쌓였고 글은 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알았다. 자기가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였다. 아침에 그 노트를 들고 강의실에 가서 월급을 받았다. 월급으로 어머니에게 돈을 보냈다. 문헌학자를 비판하는 글을 문헌학 교수가 문헌학 교수의 책상에서 쓰고 있었다. 그는 그 글을 끝내지 못했다. 끝내려면 책상을 떠나야 했고, 떠날 수 없었다. 서랍에 끝내지 않은 것이 넷이 되었다.
엘리자베트가 왔다.
봄에 동생이 바젤로 와서 살림을 차렸다. 슈팔렌토어베크 48번지. 오빠의 하숙방이 아니라 집이었다. 동생은 커튼을 달고 식탁보를 깔고 식사 시간을 정했다. 그는 식사 시간에 식탁에 앉았다. 10년 만에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었다. 동생이 그의 셔츠를 빨고 그의 편지를 정리하고 그의 손님을 맞았다. 그는 그것이 편했고, 편한 것이 조금 불안했다. 어머니의 집이 바젤에 와 있었다.
10월에 젊은 사람이 하나 왔다.
하인리히 쾨젤리츠. 스물한 살, 작센의 안나베르크에서 왔고, 라이프치히에서 음악을 공부했는데 「비극의 탄생」을 읽고 바젤로 왔다고 했다. 이 책을 쓴 사람의 강의를 듣고 싶어서. 그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그 젊은이를 보았다. 그 책을 읽고 바젤로 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책 때문에 바젤에 오지 않은 사람은 많았다.
쾨젤리츠는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수님 원고를 깨끗이 옮겨 적는 일을 자기가 해도 되겠느냐고. 눈이 나쁘시다고 들었다고. 그는 서랍에서 노트 한 뭉치를 꺼내 주었다. 우리 문헌학자들. 끝나지 않은 글이었다.
쾨젤리츠는 사흘 뒤에 깨끗한 원고를 가져왔다. 글씨가 인쇄 같았다. 엘리자베트의 글씨보다 단정하고 게르스도르프의 글씨보다 정확했다. 그는 첫 장을 읽었다. 자기 문장이 남의 글씨로 자기 앞에 있었다. 네 번째 손이었다. 동생, 게르스도르프, 오버베크의 목소리, 그리고 이 젊은 음악가. 자기 생각은 늘 남의 손을 거쳐 종이가 되었다. 그는 그것이 자기 눈 때문인지 자기 때문인지 생각했다.
쾨젤리츠가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말해 보게.”
“교수님. 셋째 장 둘째 줄에 쉼표가 있는데요.”
“그래서?”
“그 쉼표가 없는 쪽이 문장이 더 셉니다. 제 생각에는.”
그는 셋째 장을 펴고 둘째 줄을 보았다. 쉼표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한참 보았다. 쾨젤리츠의 말이 맞았다.
“지우게.”
쾨젤리츠가 펜을 꺼냈다. 그는 그 젊은이가 자기 문장의 쉼표를 지우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창밖을 보았다. 서른한 살이었고, 아직 자기가 놓은 다리는 없었다. 그런데 방금 누군가 그 다리의 못 하나를 뽑아 주었다.
후주
[주 14-01] 니체, 『반시대적 고찰 3: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 eKGWB SE-1. 한국어 작업 번역. 같은 절에 「세상에는 오직 너만 걸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는 문장이 있으며, 이 소설은 그 문장을 뒤의 사임 대목에 둔다.
[근거 14-02] 1874년 7월 그라우뷘덴 베르귄에서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집필, 10월 출간. 「지금까지 정말로 사랑한 것들을 세어 보라」는 논지는 1절에 있다. 쇼펜하우어와의 만남은 책을 통한 만남이며 실제 만남은 없었다.
[근거 14-03] 바그너가 1874년 가을 니체에게 결혼하거나 오페라를 쓰라고 권한 것은 사실이다. 편지의 문구는 그 취지를 옮긴 창작이다.
[근거 14-04] 하인리히 로문트는 바젤에서 니체·오버베크와 같은 집에 살던 철학 강사로, 1875년 2월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밝혀 두 사람과 심한 갈등을 겪고 4월에 바젤을 떠났다. 역에서 기차 창이 내려오지 않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니체가 편지에 적은 것이다. 로문트는 결국 사제가 되지 않았다. 대화는 창작이다.
[근거 14-05] 「우리 문헌학자들」은 1875년에 반시대적 고찰의 하나로 구상한 미완성 노트다.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고 사후 편집본의 제목으로 알려졌다.
[근거 14-06] 엘리자베트가 1875년 봄 바젤로 와서 오빠와 살림을 차렸다. 하인리히 쾨젤리츠(훗날의 필명 페터 가스트)는 1875년 10월 바젤에 와서 니체의 강의를 들었고 원고 정서를 맡기 시작했다. 쉼표 대화는 창작이다.
사랑한 것들의 줄, 서른 살 생일 아침, 로데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는 소설의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