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018자)

반시대적 고찰

니체의 삶 · 네오

책은 8월에 나왔다.

「다비트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바그너가 치라고 한 사람을 그는 쳤다. 슈트라우스는 예순다섯이었고 40년 전에 예수의 생애를 신화로 읽은 책을 써서 독일 신학을 뒤집은 사람이었으며, 작년에 「옛 믿음과 새 믿음」이라는 책을 내어 온 독일이 읽고 있었다. 옛 믿음은 끝났다, 새 믿음은 과학과 진보와 다윈과 독일 제국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저녁에는 음악회에 가라. 그런 책이었다. 그는 그 책을 읽고 화가 났다. 신을 버린 사람이 신 대신 신문을 믿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을 부르는 말을 만들었다. 교양속물.

책은 팔렸다. 욕도 팔렸다. 그는 두 달 동안 신문에서 자기 이름을 보았다. 좋은 말은 바그너 쪽에서 나왔고 나쁜 말은 나머지 전부에서 나왔다. 어느 날 로데가 편지에 적어 보냈다. 슈트라우스가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더라. 이 니체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미워하는가.

그는 그 줄을 읽고 한참 앉아 있었다. 무슨 짓을 했기에. 슈트라우스는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슈트라우스를 친 것이 아니었다. 슈트라우스가 서 있는 자리를 친 것이었다. 승리한 나라의 편안한 교양. 그런데 자리를 치면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맞는다. 예순다섯 살의 사람이 맞았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알고도 책을 거두지 않았다.

가을이 되자 눈이 더 나빠졌다.

그는 또 어두운 방에 누웠고 게르스도르프가 또 책상에 앉았다. 이번에 그가 말하는 것은 역사였다. 몇 달 전부터 머리에 있던 것이었다. 독일은 역사를 너무 많이 알았다. 모든 것의 기원을 알고 모든 것의 발전을 알고 모든 것을 박물관에 넣었다. 아는 것이 많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과거가 너무 무거워서 오늘을 살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말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낮에 그는 산책을 했다. 의사가 허락한 유일한 것이었다. 라인 강변의 풀밭에 소들이 있었다. 그는 소들을 보았다. 소들은 풀을 뜯었다. 뜯고 씹고 삼키고 다시 뜯었다. 어제 뜯은 풀을 기억하지 않았다. 내일 뜯을 풀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부러워하는 자기를 보고 웃었다. 바젤 대학의 교수가 라인 강변에서 소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세어 보았다. 리츨의 침묵. 빌라모비츠의 느낌표. 비어 있던 강의실. 바그너의 하품. 바이로이트에서 거부당한 글. 슈트라우스의 질문. 여섯이었다. 여섯은 아침마다 왔다. 눈을 뜨면 거기 있었고, 강의를 하는 동안 뒷줄에 앉아 있었고, 밤에 베개 밑에 있었다. 그는 여섯을 전부 또렷이 기억했다. 날짜와 글씨와 목소리까지. 그것이 그의 역사였다. 그는 그 역사를 너무 많이 알았다.

그날 저녁 그는 게르스도르프에게 말했다.

「그러나 망각 없이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주 13-01]

게르스도르프가 적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모든 행동에는 망각이 필요하다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동안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동안 질 수 있다는 것을 잊고, 그렇게 잊는 사람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기억만 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 볼 수만 있다.

그는 자기가 어느 쪽인지 알았다. 그래서 그 글을 썼다. 쓴다고 잊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왜 못 잊는지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이 적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셋으로 나누었다. 위대한 사람을 보고 자기도 하려는 역사. 옛것을 아껴 지키려는 역사. 과거를 재판정에 세워 깨뜨리는 역사. 셋 다 삶을 위해 있어야 하고 셋 다 삶을 죽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셋 가운데 어느 것으로 자기 여섯을 다루고 있는지 생각했다. 셋 다 아니었다. 그냥 들고 있었다.

2월에 슈트라우스가 죽었다.

신문에서 읽었다. 그는 신문을 내려놓고 창가에 섰다. 푸른 안경 너머로 성문의 탑이 어두웠다. 그는 게르스도르프에게 편지를 썼다. 사흘 뒤였다.

「나는 내가 그의 마지막 시간을 더 힘들게 하지 않았기를, 그리고 그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었기를 간절히 바란다.」[주 13-02]

쓰고 나서 그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모른 채 죽었기를. 슈트라우스는 알았다. 로데의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 니체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바라고 싶은 것을 쓴 것이었다. 그는 그 편지를 고치지 않고 보냈다.

오버베크가 저녁에 올라왔다. 신문을 읽은 얼굴이었다.

“자네 글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네.”

“알아.”

“아는 얼굴이 아닌데.”

“그 사람이 죽기 전 반년을 내 책이 차지했어. 그건 알아.”

오버베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신학자가 할 말이 있을 자리였는데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고마웠다.

같은 달에 역사 책이 나왔다.

「삶에 대한 역사의 이익과 해악」. 반시대적 고찰의 두 번째. 이번에는 욕이 적었다. 적은 만큼 조용했다. 슈트라우스 책은 사람을 쳐서 소리가 났고 이 책은 시대를 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 차이를 알았다. 그리고 바젤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부르크하르트였다. 쉰다섯의 역사가가 스물아홉의 문헌학자가 쓴 역사 비판을 읽고 편지를 썼다. 길지 않았다. 그러나 끝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당신 글은 내 직업을 치고 있는데, 읽는 동안 한 번도 화가 나지 않았소. 그게 당신 글이 한 일이오.

그는 그 편지를 서랍에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두었다. 아침에 강의를 나가면서 보았고 저녁에 들어와서 보았다. 여섯 가지 기억 옆에 그것을 두면 여섯이 조금 작아졌다. 작아졌다가 밤이면 도로 커졌지만, 아침에 또 작아졌다. 그는 그것이 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었다.

여름에 그는 바이로이트에 갔다.

극장은 지붕이 올라가 있었고 바그너의 집도 다 지어져 있었다. 반프리트. 평화로부터의 망상. 바그너가 지은 이름이었다. 그는 그 집에 손님으로 묵었다. 짐 속에 악보 하나가 있었다. 브람스의 「승리의 노래」. 붉은 가죽으로 장정한 것이었는데, 그가 바젤에서 그 곡을 듣고 좋아서 산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반프리트의 피아노 위에 놓았다.

왜 놓았는지 그는 나중에 여러 번 생각했다. 바그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좋은 것이 바이로이트 밖에도 있다고. 혹은 그냥 좋아서. 혹은 바그너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서. 세 가지가 다 있었고 그 가운데 세 번째가 있다는 것을 그는 피아노 위에 악보를 놓는 순간에는 몰랐다.

바그너가 그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바그너가 악보를 집어 들었다. 붉은 가죽. 브람스. 바그너의 얼굴이 변했다. 그는 그 얼굴을 보았다. 트립셴의 계단 아래서 본 얼굴이 아니었다. 다른 얼굴이었다.

“이게 뭐요.”

“브람스입니다. 바젤에서 들었는데.”

“그건 나도 보면 아오. 왜 내 피아노 위에 있소.”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바그너가 악보를 던졌다. 소파 위로였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다. 브람스가 무엇인지, 그 음악이 얼마나 죽은 음악인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귀가 어떤 귀인지, 그런 귀를 가진 사람이 왜 자기 집에 와 있는지. 코지마가 일어나서 남편의 팔을 잡았다. 바그너는 팔을 뿌리치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교수, 당신은 날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채 그는 바그너를 보고 있었다. 예순한 살의 작은 사람이 서른한 살 연하의 음악가 악보 하나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2년 전 공책에 적었던 낱말을 생각했다. 질투.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바그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그너는 바그너였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하면서 처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바그너는 결국 멈추었다. 멈추고 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담배를 피웠다. 코지마가 그에게 눈짓을 했다. 나가 있으라는 눈짓이었다. 그는 나갔다. 정원에 섰다. 밤이었고 극장의 지붕이 어둠 속에 검게 서 있었다. 그는 그 지붕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악보는 피아노 위에 없었다. 그는 묻지 않았다. 아침 식탁에서 바그너는 어제 저녁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에게 버터를 건네주었으며, 코지마는 두 사람 사이의 빈 접시를 보고 있었다.

바젤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는 공책을 폈다. 그리고 적었다. 바그너의 얼굴. 일곱 번째였다. 그는 그 줄을 보다가, 자기가 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들은 라인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을 것이었다.

후주

[주 13-01] 니체, 『반시대적 고찰 2: 삶에 대한 역사의 이익과 해악』 1절. eKGWB HL-1. 한국어 작업 번역. 과거를 전부 지우라는 명령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의 긴장을 말하는 자리다.

[주 13-02] 니체가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에게 보낸 편지, 1874년 2월 11일. eKGWB BVN-1874(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슈트라우스는 1874년 2월 8일에 죽었다. 슈트라우스가 생전에 니체의 책을 알았고 친구에게 「이 니체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물었다는 것은 슈트라우스의 편지에 전한다.

[근거 13-03] 『반시대적 고찰 1: 다비트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는 1873년 8월 출간. 「교양속물」이라는 말은 이 글에서 처음 쓰였다. 『삶에 대한 역사의 이익과 해악』은 1873년 가을 구술로 쓰여 1874년 2월 출간. 역사의 세 유형(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적)과 풀을 뜯는 가축의 비유는 원문에 있다.

[근거 13-04] 부르크하르트가 『역사의 이익과 해악』을 읽고 호의적인 편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편지의 문구는 창작이다.

[근거 13-05] 1874년 8월 바이로이트 반프리트에서 니체가 브람스의 「승리의 노래」 악보를 피아노 위에 두었고 바그너가 격노한 일은 코지마의 일기와 동석자의 증언에 전한다. 「날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요」는 바그너의 말로 전해지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산책길의 소, 기억하는 여섯 가지의 목록, 오버베크와의 대화, 공책의 일곱 번째 줄은 소설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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