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028자)

진리와 거짓

니체의 삶 · 네오

새해 첫날 그는 남을 위해 썼다.

「새 제국에서」라는 잡지에 알프레트 도베라는 사람이 바그너를 비웃는 글을 실었다. 바이로이트의 계획이 과대망상이라는 것, 음악가가 철학자 행세를 한다는 것, 그 뒤에 붙은 젊은 교수까지. 그는 그 글을 12월 마지막 날 저녁에 읽었고, 새해 첫날 아침에 답을 다 썼다. 「새해의 말」. 짧고 날카롭고 끝이 뾰족했다. 그는 그것을 바이로이트로 보냈고 바그너는 기뻐했다. 코지마의 편지에서 크리스마스의 서운함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렸고, 알아차린 자기가 조금 싫었다.

쓰면서 그는 한 가지를 알았다. 남을 위해 쓸 때 자기 손이 빨랐다. 비극의 탄생은 7년이 걸렸고 이 글은 하룻밤이었다.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 쉽게 나왔다. 그는 그 쉬움을 믿지 않기로 했다. 믿지 않기로 하고도 그 글을 고치지 않았다.

봄에 그는 다른 것을 쓰고 있었다.

「비극 시대의 그리스 철학」. 탈레스에서 시작해 아낙사고라스까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한 사람씩 쓰는 글이었다.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쓰려고 했다. 탈레스가 왜 만물이 물이라고 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지. 헤라클레이토스를 쓸 때 그는 가장 오래 멈추었다. 세계는 불이고 흐름이고, 그 흐름을 주관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아이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았다 허무는 아이. 이유 없이 쌓고 이유 없이 허문다. 그는 그 구절을 적으면서 뢰켄의 묘지를 생각했다. 이유를 묻던 아이. 2천 년 전 사람이 그 아이에게 답하고 있었다. 이유는 없다. 놀이다. 그는 그것이 답인지 몰랐다. 답이라면 끔찍한 답이었고, 끔찍한데 어딘가 가벼웠다.

4월에 그는 원고를 들고 바이로이트에 갔다.

바그너의 집은 아직 짓고 있는 중이라 셋집이었다. 저녁에 거실에서 그는 원고를 읽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바그너는 소파에 앉아 들었고, 들으면서 담배를 피웠고, 담배가 끝나자 다른 담배를 피웠다. 파르메니데스에 이르렀을 때 바그너가 하품을 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하품이었는데 그래서 더 잘 보였다. 코지마가 남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그는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낙사고라스까지 읽었다. 읽고 나서 원고를 덮었다. 바그너가 말했다.

“좋소. 그런데 교수, 지금 독일에서 누가 그리스 철학자를 읽겠소.”

“……”

“슈트라우스를 치시오. 그 늙은이가 낸 책 말이오. 온 독일이 그걸 읽고 있소. 그걸 치면 온 독일이 당신을 읽을 거요.”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날 밤 셋집의 손님방에서 그는 원고를 가방에 넣었다. 끝내지 않은 글이었고, 끝내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그 밤에 알았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아이는 바그너의 거실에서 하품을 받았다. 그는 그것이 그 아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조금 웃었고, 웃는 것이 괴로웠다.

여름에 눈이 나빠졌다.

갑자기는 아니었다. 겨울부터 글자가 둘로 보이는 날이 있었고, 봄에는 책을 한 시간 읽으면 눈 뒤에서 못이 박혔으며, 6월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창이 둘이었다. 의사 시스는 그에게 읽지도 쓰지도 말라고 했다. 몇 주 동안. 어두운 방에서. 그는 그 처방을 세 번째로 들었다. 네 살 때 아버지에게 내려진 처방, 스물세 살 때 자기에게 내려진 처방, 그리고 지금.

게르스도르프가 왔다.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 슐포르타의 친구, 귀족이고 군인이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가 바젤에 와서 여름을 함께 지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손님이었고 며칠 뒤에는 손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말했고 게르스도르프가 책상에 앉아 적었다. 덧문은 닫혀 있었고 방 안은 더웠으며, 게르스도르프의 펜 소리가 유일한 소리였다.

그는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머리에 있던 것이었다. 사람이 낱말을 만든다. 처음에는 감각이 있다. 뜨거움, 단단함, 붉음. 그것을 소리로 옮긴다. 소리를 낱말로 굳힌다. 낱말을 개념으로 올린다. 개념이 많아지면 그것으로 세계를 짓는다. 그러고 나서 잊는다. 자기가 지었다는 것을. 그래서 개념이 세계 그 자체라고 믿는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것을 말했고, 말하면서 자기가 지금 낱말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멈추었다. 게르스도르프의 펜이 멈추었다.

“은유와 환유와 의인화로 이루어진, 움직이는 군대다.”[주 12-01]

게르스도르프가 적었다. 적고 나서 읽어 주었다. 그런데 한 낱말이 달랐다. 「움직이는」을 「움직이지 않는」으로 적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것을 들었다.

“아니야. 움직이는.”

“움직이는 군대. 미안하네, 자네 목소리가 낮아서.”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방금 일어난 일을 보았다. 자기 머릿속의 문장이 소리가 되어 방을 건너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종이가 되는 동안, 한 낱말이 뒤집혔다. 진리가 움직이지 않는 군대가 되었다. 그는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낱말이 세계를 옮기지 않는다는 것. 낱말은 세계와 세계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그 말을 하는 동안 그 말이 길을 잃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천천히.

“진리들은 환상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주 12-02]

게르스도르프가 적었다. 이번에는 맞게 적었다. 맞게 적었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아는가. 게르스도르프가 읽어 준 소리를 듣고 안다. 그 소리가 또 길을 잃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는 그 생각을 멈추었다. 멈추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멈추고 다음 문장을 말했다.

원고는 여름이 끝날 때 서른 장이 되었다. 제목을 「도덕 외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이라고 붙였다.

게르스도르프가 떠나기 전날 밤에 오버베크가 올라와 그것을 읽어 주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오버베크는 책상의 등불 아래 앉아 있었으며 게르스도르프는 창가에 서서 들었다. 신학 교수가 진리는 환상이라는 문장을 읽었다.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다 읽고 나서 오버베크가 종이를 내려놓고 말했다.

“내 목소리로 들으니 설교 같군.”

게르스도르프가 웃었다. 그도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그는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같은 서른 장이 게르스도르프의 손에서는 받아쓰기였고 오버베크의 입에서는 설교였고 자기 머릿속에서는 무엇이었는지 그는 이제 확실하지 않았다. 셋 가운데 어느 것이 원본인가. 원본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는 그 질문을 서른 장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적으면 서른한 장째가 될 것이고, 그러면 또 서른두 장째가 필요할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내지 않았다. 게르스도르프의 글씨로 된 서른 장을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 끝내지 않은 것이 셋이 되었다. 다섯 강연. 그리스 철학자들. 그리고 이것.

가을에 바그너가 또 부탁을 했다.

바이로이트의 돈이 모자랐다. 10월 말에 전국의 후원회 대표들이 바이로이트에 모이기로 했고, 그 자리에서 독일 국민에게 호소하는 글을 낭독해 신문에 실을 계획이었다. 바그너는 그 글을 그에게 맡겼다. 그는 썼다. 사흘 만에 썼다. 남을 위해 쓰는 손은 빨랐다. 「독일인들에게 보내는 호소」. 전쟁에 이기고 돈이 넘치는 나라가 자기 가장 큰 예술가의 극장 하나를 못 짓는다면 그것은 가난이 아니라 수치라고. 승리한 나라의 교양이 얼마나 얇은지를 이 극장이 시험하고 있다고.

그는 그것을 들고 바이로이트에 갔다. 10월 31일, 대표들 앞에서 낭독했다. 눈이 나빠서 글자가 둘로 보였고, 그래서 외워서 읽었다. 낭독이 끝났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너무 날카롭다고. 돈을 내 달라는 사람들에게 수치라는 말을 쓸 수는 없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 글이 신문에 나가면 바이로이트가 적을 만든다고. 표결이 있었다. 그의 글은 채택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쓴 부드러운 글이 채택되었다. 그는 그 글을 들었다. 좋은 글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글이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글이었다.

바그너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소. 당신 글이 옳았소. 옳은 글은 늘 이렇게 되지.”

“……”

“교수,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말하오. 전에도 말했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그너의 손은 뜨거웠다. 4년 전과 같았다. 그는 그 손 아래서 자기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았다. 고마움. 그리고 그 고마움 밑의 작고 차가운 것. 이번에는 질투가 아니었다. 다른 것이었다. 이름을 그는 아직 몰랐다.

바젤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는 창밖을 보았다. 창이 둘이었다. 들판도 둘이었고 하늘도 둘이었다. 그는 가방에서 안경을 꺼냈다. 시스가 처방해 준 것이었다. 푸른 유리. 빛을 줄이는 안경. 그는 그것을 코에 얹었다. 세계가 어두워지고 하나가 되었다.

그는 그 안경을 그 뒤로 벗지 않았다.

후주

[주 12-01] [주 12-02] 니체, 「도덕 외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 1절. eKGWB WL-1. 한국어 작업 번역. 1873년 여름 게르스도르프에게 구술한 원고로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모든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뜻으로 쓰지 않는다. 구술 중에 한 낱말이 뒤집힌 일은 소설의 창작이다.

[근거 12-03] 1873년 1월 「새해의 말」. 「새 제국에서」지에 실린 알프레트 도베의 바그너 비판에 대한 짧은 공개 논박이다.

[근거 12-04] 「비극 시대의 그리스 철학」은 1873년을 중심으로 쓴 미완성 원고다. 1873년 4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부부에게 읽어 주었으나 반응이 미지근했고, 바그너가 다비트 슈트라우스를 공격하는 글을 권한 것은 사실이다. 바그너의 하품과 대사는 그 취지를 옮긴 창작이다.

[근거 12-05] 1873년 여름 시력 악화로 의사 시스에게 읽기와 쓰기를 금지당했고,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가 바젤에 머물며 구술을 받아 적었다. 푸른 안경은 이 무렵부터 썼다.

[근거 12-06] 「독일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는 바그너의 부탁으로 써서 1873년 10월 31일 바이로이트 후원회 대표 회의에서 낭독했으나 너무 날카롭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이 채택되었다. 바그너의 위로 대사는 창작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아이와 뢰켄의 아이를 겹친 것, 「남을 위해 쓰는 손이 빠르다」는 자각, 「작고 차가운 것」은 소설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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