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036자)

교육과 경쟁

니체의 삶 · 네오

강당은 꽉 찼다.

1월 16일 저녁, 바젤 박물관의 큰 강당에 300명이 넘게 앉았다. 교수들과 학생들과 상인 가문의 사람들과 그 부인들. 2년 전 소크라테스를 죽였다고 말한 사람이 이번에는 교육을 말한다고 했고, 바젤은 그 말을 들으러 왔다. 앞줄에 부르크하르트가 있었다. 그는 연단에 올라 종이를 폈다. 그리고 강연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했다.

라인 강가의 롤란트제크. 어느 여름 저녁, 두 학생이 숲으로 들어간다. 몇 해 전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둘이 모임을 만들었고 그 기념일을 지키러 온 것이다. 둘은 권총을 쏘며 논다. 그러다 늙은 철학자와 그의 젊은 동행을 만난다. 늙은 철학자는 두 학생이 시끄럽다고 꾸짖고, 두 학생은 물러나지 않고, 그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나무 아래서 교육이 무엇인지를 두고 말이 오간다.

그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았다. 쇤부르크 폐허. 포도주 병. 셋이 서명한 종이. 그는 그것을 라인 강가로 옮기고 셋을 둘로 줄이고 늙은 철학자를 지어냈다. 강당의 누구도 그것을 몰랐다. 그는 300명 앞에서 자기 열다섯 살을 읽고 있었다.

늙은 철학자가 말했다. 지금의 교육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빨리 교양을 주려 하고, 그 교양을 되도록 돈이 되는 것으로 줄이려 한다. 넓히면서 좁힌다. 그래서 김나지움은 라틴어를 가르치되 라틴어로 생각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고, 독일어를 가르치되 독일어로 쓰는 법은 가르치지 않으며, 신문이 교양의 자리를 차지한다. 강당에서 웃음이 났다. 신문 이야기에서였다. 그는 그 웃음을 들으면서 이 사람들이 내일 아침에 신문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연은 다섯 번이었다. 매번 강당이 찼다. 세 번째 강연이 끝난 저녁에 시의회의 늙은 의원이 그에게 왔다. 대학 이사였고 그의 월급에 서명하는 사람이었다.

“교수님, 재미있게 들었소.”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 물읍시다. 김나지움이 그렇게 틀렸다면, 교수님은 왜 거기서 그리스어를 가르치시오?”

“가르치면서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만두시겠소?”

“아니요.”

“그러면 뭘 하시겠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의원은 모자를 쓰고 갔다. 그는 그 질문을 집까지 들고 왔다. 오버베크의 방에 들러 그 이야기를 했다. 오버베크는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섯 번째 강연에서 답하면 되겠군.”

다섯 번째 강연은 3월 23일이었다. 그날 강당 뒷줄에 김나지움 학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 3년 전에 「저희도 노래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던 아이가 있었다. 이제 열여덟이었고 키가 그보다 컸다. 그는 연단에서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늙은 철학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된 교육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수를 위한 것이고, 그 소수는 자기를 이끌어 줄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 말을 읽으면서 뒷줄의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가 그 아이에게 그 한 사람인지, 그 아이가 자기에게 그 소수인지, 둘 다 아닌지. 강연이 끝나고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나갔다.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섭섭했고, 섭섭한 자기가 늙은 철학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여섯 번째 강연은 없었다.

그는 그것을 예고했고 날짜까지 잡았다가 취소했다. 앞의 다섯이 문제를 말했다면 여섯째는 답을 말해야 했다. 답이 없었다. 있었다면 그것은 자기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먼저 시험했어야 했다. 바그너가 편지로 다섯 강연을 책으로 내라고 했다. 코지마도 그랬다. 그는 내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것을 책으로 내면 끝난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는 원고를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는 리츨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여름에 로데가 교수가 되었다.

킬 대학. 원외교수. 그보다 세 해 늦게 같은 자리에 올랐다. 편지가 왔고 그는 그 편지를 읽고 기뻤다. 진심으로 기뻤다. 바로 답장을 썼다. 쓰다가 손이 멈추었다. 기쁨 밑에 다른 것이 있었다. 작고 차갑고 빠른 것.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로데는 그의 책을 변호하느라 자기 이름을 걸었다. 그 로데가 잘된 것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은 거기 있었다. 그는 답장을 끝까지 썼다. 좋은 편지였다. 봉하고 나서 그는 한참 동안 봉투를 보았다.

그날 밤 그는 공책에 적었다. 질투.

그리고 그 아래 적었다.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인들을 알았다. 그들에게 에리스는 둘이었다. 나쁜 에리스는 전쟁을 일으키고 좋은 에리스는 경쟁을 일으켰다. 도공이 도공을 시기하고 가수가 가수를 시기하고, 그 시기가 더 좋은 항아리와 더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시기를 없애지 않고 길렀다. 그리고 한 사람이 너무 강해져서 아무도 그와 겨룰 수 없게 되면 그를 도시에서 내보냈다. 도편추방. 벌이 아니라 보호였다. 경쟁이 계속되게 하려고.

그는 밤에 그것을 적기 시작했다. 「호메로스의 경쟁」.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노래로 겨루었다는 옛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질투가 문화를 만든다는 데까지. 적으면서 그는 자기 안의 작고 차가운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려 했다.

「인간은 가장 높고 고귀한 힘을 발휘할 때에도 온전히 자연이다.」[주 11-01]

그는 그 문장을 적고 나서 다음 문장을 적었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고. 자연의 가장 높은 것 안에 잔인한 것이 함께 있다고. 그는 빌라모비츠를 생각했다. 스물두 살의 그 아이도 에리스였다. 나쁜 쪽인지 좋은 쪽인지는 자기가 무엇을 만드느냐에 달렸다.

가을에 그는 다른 글을 썼다. 「그리스 국가」.

아름답지 않은 글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 썼다. 그리스의 문화는 노예 위에 서 있었다. 소수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려면 다수가 그 소수를 먹여야 했다. 그것은 그리스만의 일이 아니었다. 모든 문화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작년 5월에 루브르 때문에 울었던 자기를 생각했다. 그림을 위해 운 사람. 그는 그 사람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적었다. 적으면서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채로 끝까지 적었다. 이것을 아름답게 쓸 수는 없었다. 아름답게 쓰면 거짓말이 될 것이었다.

그는 그 글을 아무에게도 읽어 주지 않았다. 오버베크에게도.

크리스마스가 왔다.

바이로이트에서 초대가 왔다. 바그너 가족이 트립셴을 떠나 바이로이트에 자리 잡은 첫 크리스마스였다. 작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그는 트립셴의 계단 아래 서 있었다. 올해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가기로 했다. 2년 동안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편지에 그 말은 없었지만 그 말이 없다는 것이 그 말이었다.

대신 그는 선물을 보냈다.

다섯 편의 글을 손으로 깨끗이 옮겨 적어 묶었다. 「진리의 파토스에 대하여」.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관한 생각」. 「그리스 국가」. 「쇼펜하우어 철학과 독일 문화의 관계」. 「호메로스의 경쟁」. 제목을 「쓰이지 않은 다섯 권의 책을 위한 다섯 서문」이라고 붙였다. 다섯 권의 책. 한 권도 쓰지 않았다. 서문만 있었다. 그는 그것이 농담인지 고백인지 몰랐고, 둘 다라고 생각했다.

묶음은 코지마에게 갔다. 그는 나움부르크로 갔다.

어머니의 집은 그대로였다. 피아노 위에 수놓은 천이 있었고 그 위에 성경이 있었다. 엘리자베트가 트리를 꾸몄다. 그는 열두 살 때처럼 트리 아래 앉아 초를 세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웃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어머니가 말했다.

“바이로이트에 안 가도 되는 거니?”

“네.”

“그 사람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선물을 보냈어요.”

“선물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과자를 내왔다. 그는 과자를 먹었다.

바이로이트에서 답은 오지 않았다.

새해가 되었다. 1월 중순에야 편지가 왔다. 코지마였다. 길고 기울어진 글씨. 선물은 고맙다고 했다. 다섯 글을 다 읽었다고 했다. 「그리스 국가」가 깊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줄. 리하르트는 교수님이 크리스마스에 오지 않으신 것을 몹시 서운해하셨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는 그 편지를 나움부르크의 2층 방에서 읽었다.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피아노 위의 천을 터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 천을 다시 펴서 매만지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그 천을 날마다 털고 날마다 다시 폈다.

그는 편지를 접었다. 답장은 바젤에 돌아가서 쓰기로 했다. 지금 쓰면 사과가 될 것이고, 사과할 일인지 그는 아직 몰랐다. 서문 다섯 편으로 크리스마스 하루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였다. 책 없는 서문. 그것으로 될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후주

[주 11-01] 니체, 「쓰이지 않은 다섯 권의 책을 위한 다섯 서문」 가운데 다섯 번째 「호메로스의 경쟁」, 1872년 12월. eKGWB CV-CV5. 한국어 작업 번역. 이어지는 문장에서 자연의 잔혹한 양면성이 논의되므로 자연 찬가로만 읽지 않는다.

[근거 11-02] 1872년 1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바젤 박물관에서 공개 강연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 다섯 회. 라인 강가 롤란트제크에서 두 학생이 늙은 철학자와 동행을 만나는 대화체 구성은 강연 원문 그대로이며, 두 학생의 모임이 니체 자신의 「게르마니아」를 옮긴 것이라는 읽기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다. 예고된 여섯 번째 강연은 열리지 않았고, 바그너 부부가 출판을 권했으나 니체는 생전에 출판하지 않았다.

[근거 11-03] 에르빈 로데는 1872년 킬 대학 원외교수가 되었다. 니체가 그 소식에 질투를 느꼈다는 기록은 없으며, 이 감정과 「호메로스의 경쟁」의 연결은 소설의 해석이다.

[근거 11-04] 「그리스 국가」는 문화가 노예 노동 위에 선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그 논지를 미화하지 않고 니체가 불편한 채로 썼다는 해석을 택했다.

[근거 11-05] 1872년 크리스마스에 니체는 바이로이트 대신 나움부르크로 갔고, 코지마에게 손으로 옮겨 적은 「다섯 서문」을 보냈다. 바그너 부부가 그가 오지 않은 것에 서운해했다는 것은 코지마의 일기와 편지에 전한다. 편지의 문구는 그 취지를 옮긴 창작이다.

시의회 의원과의 대화, 오버베크의 말, 공책의 두 줄, 어머니와의 대화는 소설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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