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04자)
사다리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7월 16일 아침 여섯 시 사십 분, 해오름빌라 사람들 휴대폰에 같은 음성 메시지가 하나씩 도착했다. 병원 6층에서 구말례 할머니가 다은의 휴대폰을 빌려 한 집씩 보냈다. 1층 101호 남궁철은 대리 마치고 들어와 양말을 벗다가 그걸 들었고, 102호 이지호는 형법 기본서를 베고 엎드려 자다가 들었다. 반지하 B01호 장보람은 드럼 패드를 두드리다가 이어폰으로 들었다.
할머니 목소리는 병원 스피커 너머로도 쩌렁쩌렁했다.
“나 구말례야. 가희 말 들어. 내가 틀렸어. 그 총각 착한 거 아니야. 착한 사람은 사람이 숨이 넘어가다 살아났는데 괜찮으냐고 먼저 물어. 그 총각은 안 물었어. 그러니까 가희 말 들어. 이상.”
남궁철은 그 메시지를 세 번 들었다. 그리고 양말을 도로 신었다.
*
일곱 시 반, 단톡방이 하나 새로 생겼다. 만든 사람은 가희였다. 인혁은 없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은 남궁철이었고 첫 마디는 방 이름이었다.
「방 이름 ‘해오름 특공대’ 어때」
「봉천 언더그라운드」
장보람이 바로 받았다. 이지호가 일 분 뒤에 끼어들었다.
「법적으로 정확하게 하면 ‘주거침입 공모방’입니다. 형법 30조, 공동정범.」
「지호 학생 그거 지금 자수하는 거야?」
「사실관계를 말한 겁니다.」
가희는 방 이름을 「해오름빌라 진짜」로 바꿨다. 다은이 웃는 얼굴 그림을 하나 붙였다. 다은이 그런 그림을 붙이는 것을 가희는 처음 보았다.
가희는 길게 쓰지 않았다. 301호 사람이 오늘부터 이틀 집을 비운다고 했다. 미끼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몰래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고, 거기서 무엇을 가져 나오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형사가 말했다고 했다. 그러니 가져 나오지 않고 보기만 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 형사에게 알리고, 형사가 정식으로 들어가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혼자 하는 일이고,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해 달라고 했다.
답이 한동안 없었다. 그러다 남궁철이 썼다.
「모르는 걸로 하는 건 하는데, 뭘 몰라야 하는지는 알아야지. 내 일은 뭐야?」
그다음은 빨랐다. 남궁철은 인혁의 승합차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대리기사는 남의 차 뒤를 따라가는 게 일이라고 했다. 장보람은 반지하 창이 골목 바닥 높이라 해오름빌라 현관으로 들어오는 발을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발만 보이지만 그 사람 운동화는 안다고 했다. 회색 뉴발란스, 오른쪽 끈이 늘 풀려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드럼을 치겠다고 했다. 이지호는 102호 현관 바로 위가 1층 센서등이라 불이 켜지면 방 안까지 빛이 들어온다고 했다. 다은은 202호에서 우진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302호 창가에서 사다리 끝을 잡겠다고 했다. 우진에게는 할머니 집 화분에 물 주는 임무를 주기로 했다. 할머니 집 문은 열지 않고 202호 베란다에서 손을 뻗어 줄 수 있는 화분이었다.
*
여덟 시, 가희는 202호에서 302호로 짐을 가지러 올라가다가 3층 계단참에서 멈췄다.
인혁이 301호 문을 잠그고 있었다. 등에 큰 배낭을 메고, 발치에 공구함을 놓았다. 회색 운동화였다. 오른쪽 끈이 풀려 있었다. 그는 가희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마침 잘 만났어요, 윤가희 씨. 이거 할머니 갖다드리세요.”
그가 신문지로 싼 납작한 것을 내밀었다. 손에 닿자 묵직했다. 가희는 그 무게를 알았다. 신문지를 벗기기도 전에 알았다. 무쇠 팬이었다.
신문지 끝을 젖혔다. 팬 몸통은 그대로였다. 길이 든 검은 바닥, 가장자리의 작은 이 빠진 자국. 손잡이가 달랐다. 철사도, 노란 테이프도 없었다. 매끈한 검은 플라스틱 손잡이가 새 나사 두 개로 박혀 있었다. 나사 머리가 반짝였다.
“감식반 오셨을 때 제가 문 열어 드렸거든요. 그때 보니까 손잡이가 철사라 위험하더라고요. 녹도 슬고. 뜨거울 때 잡으시면 데세요. 그래서 새 걸로 갈아 드렸어요. 퇴원 선물이에요.”
가희는 팬을 들고 서 있었다. 손잡이가 손바닥에 너무 매끄러웠다.
“철사는요?”
“버렸죠. 녹슨 거라.”
“그거 할아버지가 감아 주신 거예요. 1996년 장마 첫날에요.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그걸로 부치라고. 할머니가 30년을 그걸로 부치셨어요.”
“알아요.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저한테도요.”
인혁이 배낭끈을 고쳐 멨다.
“그러니까 바꿔 드려야죠. 돌아가신 분 철사로 계속 부치시면 위험하잖아요. 할머니 연세에.”
가희의 손가락이 팬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무쇠가 차가웠다. 그녀는 이 남자에게 팬을 던지는 장면을 아주 또렷하게 보았다. 드라마였다면 그 장면에서 음악이 커졌을 것이다. 그녀는 던지지 않았다. 던지면 오늘이 없었다. 오늘 밤이 없었다.
“이틀이에요.”
인혁이 공구함을 들며 말했다.
“비 많이 온대요. 문단속 잘하세요, 윤가희 씨. 302호 문은 이제 잘 잠기니까 걱정 없고요.”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센서등이 2층, 1층에서 차례로 켜졌다. 일 분 뒤에 단톡방에 장보람이 썼다.
「회색 뉴발. 오른쪽 끈 풀림. 나감.」
그 밑에 남궁철.
「승합차 출발. 따라감. 이따 봐」
*
낮은 길었다. 장마 열나흘째였고 비는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
가희는 신림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작은 철물점에서 2미터짜리 알루미늄 사다리를 샀다. 사장님이 어디 쓰냐고 물었다. 형광등 갈 거라고 했다. 사장님은 형광등 가는 데 2미터는 필요 없다고 했다. 가희는 천장이 높다고 했다. 다세대 천장은 다 낮다고 사장님이 말했다. 가희는 그냥 계산했다. 버스에 사다리를 들고 타자 기사가 한숨을 쉬었다.
오후 세 시에 마경태가 전화했다.
“윤가희 씨, 다은 씨 집에 있죠?”
“네.”
가희는 302호 부엌 바닥에 눕혀 놓은 사다리를 보며 말했다.
“그 사람 오늘 아침에 승합차 끌고 나갔어요. 경기도 쪽 공구 도매 단지로요. 감식 보고서 일로 오후에 전화했더니 거기라고 하더라고요. 나 내일 그 가게 부품 목록 받으러 가요. 그러니까 하루만 기다려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네.”
“윤가희 씨 ‘네’ 할 때 목소리가 제일 거짓말 같아요.”
“…형사님도 바나나우유 그만 드세요.”
마경태가 무슨 말을 하려다 끊었다. 가희는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거짓말을 한 손이 차가웠다. 그녀는 부엌 의자에 앉아 무쇠 팬을 무릎에 올려놓고 새 플라스틱 손잡이의 나사를 손톱으로 긁었다. 나사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팬을 다시 신문지로 쌌다. 할머니에게는 보여 줄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병원에서 할머니는 퇴원하면 제일 먼저 장마 끝 부침개를 부치겠다고 했다. 장마 첫날에 부치고 끝날에 또 부치는 게 영감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가희는 신문지 뭉치를 침대 밑 깊숙이 밀어 넣었다. 버렸다는 철사가 정말로 쓰레기통에 들어갔는지, 그녀는 그것부터 알고 싶었다.
다섯 시, 우진이 단톡방에 처음으로 글을 올렸다. 다은이 아이를 방에 넣어 주었다.
「탐정 보고. 할머니 화분 물 줌. 상추 2개 살아 있음. 1개 죽음.」
장보람이 「ㅠㅠ」를 붙였다. 이지호가 「상추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남궁철은 운전 중이라 답이 없었다.
저녁 일곱 시, 다은이 202호 부엌에서 라면 두 개를 끓였다. 우진은 먼저 먹고 할머니 화분 보고서를 다시 쓰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둘만 남자 다은이 젓가락으로 면을 들었다 놓았다.
“우진이 아빠도 착한 사람이었어요. 남들한테는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 명절마다 홍삼 돌리고,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들 짐 들어 드리고. 제가 경찰서에 처음 갔을 때 경비 아저씨가 진술서를 써 줬어요.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다은은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식혔다.
“그래서 그날 반상회에서 알았어요. 그 웃음이요. 계산할 때까지 안 굳는 얼굴. 저 그 얼굴이랑 칠 년 살았어요.”
가희는 라면을 먹었다. 맛이 나지 않았다. 다 먹었다. 다은이 빈 그릇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야 사다리를 건넌다는 얼굴이었다.
*
밤 열한 시, 남궁철이 보고를 올렸다.
「승합차 도매 단지 옆 모텔 주차장에 아홉 시부터 서 있음. 모텔 이름 「궁전」. 궁철이가 궁전 앞에 있음. 3층 방에 불 켜져 있음. 나 길 건너 편의점. 컵라면 두 개째.」
이지호. 「컵라면 그만 드세요. 나트륨.」
남궁철. 「공시생이 나트륨을 왜 알아」
장보람. 「골목 조용. 발 없음.」
이지호. 「센서등 꺼짐. 1층 이상 없음.」
다은. 「우진 잠. 올라갈게요.」
가희는 302호 부엌 창을 열었다. 빗소리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슬레이트 차양을 두드리는 소리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났다. 채광 통로 바닥에서 이끼와 고인 물 냄새가 올라왔다. 건너편 301호 창은 깜깜했고, 블라인드 살은 하나도 휘지 않았다.
다은이 들어와 창가에 섰다. 둘은 말없이 사다리를 들어 창밖으로 밀어냈다. 알루미늄 사다리가 허공으로 나가며 비에 젖었다. 끝이 301호 창틀에 닿을 때 탁,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숨을 멈추고 그 소리가 빗소리에 묻히기를 기다렸다. 묻혔다. 다은이 302호 쪽 사다리 끝을 두 손으로 눌렀다. 손등의 핏줄이 섰다.
“3층이에요.”
다은이 말했다. 가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에 꽂힌 우유 상자 별을 한 번 만졌다. 그리고 창틀에 무릎을 올렸다.
사다리 가로대가 무릎뼈를 눌렀다. 빗물이 목덜미로 들어가 등을 타고 흘렀다. 아래를 보지 않으려 했는데 눈이 저절로 내려갔다. 통로 바닥 웅덩이가 멀었다.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하얀 점으로 보였다. 손바닥 상처가 알루미늄에 쓸려 다시 벌어졌다. 아픈 줄은 몰랐다. 한 칸, 또 한 칸. 1미터 40센티미터가 그렇게 길었다.
301호 창에 손이 닿았다. 걸쇠가 벌어진 새시를 옆으로 밀었다. 창은 소리 없이 열렸다. 블라인드 살이 그녀의 이마에 차갑게 닿았다. 그녀는 블라인드를 들추고 몸을 밀어 넣었다. 개수대 가장자리에 배가 걸렸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발을 끌어 넣었다.
301호 부엌 바닥에 내려섰다. 운동화에서 빗물이 흘러 타일에 고였다. 공기에서 락스 냄새가 났다. 그 밑에 기계 기름 냄새가 깔려 있었다. 냉장고가 웅웅 울었다. 가희 집 냉장고와 같은 소리였다. 개수대 위 벽의 고리는 비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떨렸다. 남궁철이었다.
「가희 씨. 이상해. 모텔 주인한테 물어봤는데 3층 그 방 손님 저녁 아홉 시 반에 걸어서 나갔대. 우산 쓰고. 불은 켜 놓고.」
일 초 뒤에 한 줄이 더 왔다.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