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09자)
비 오는데요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301호는 302호를 거울에 비춘 집이었다. 부엌 창이 오른쪽 대신 왼쪽에 있었고, 현관으로 가는 짧은 복도가 반대쪽으로 꺾였다. 가희는 휴대폰 손전등을 손바닥으로 가려 빛을 바닥으로만 흘렸다. 그 좁은 빛 안에서 타일 줄눈이 하얗게 빛났다. 줄눈에 때가 하나도 없었다.
단톡방에 한 줄을 썼다. 「들어왔어요. 사람 없어요. 오 분만.」
다은이 바로 답했다. 「궁철 씨 문자 봤어요? 나와요. 지금.」
「오 분만요.」
장보람. 「골목 발 없음. 아직.」
이지호. 「참고로 지금 나오셔도 주거침입은 이미 성립했습니다. 미수 아니고 기수, 그러니까 이미 다 저지른 거예요. 오 분 더 있으나 지금 나오나 법적으로는 같습니다.」
「지호 학생 지금 그게 위로야?」 남궁철이었다. 「나 지금 궁전 앞에서 택시 잡는 중. 이십 분.」
가희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떨려서 화면을 두 번 잘못 눌렀다.
거실은 정리돼 있었다. 너무 정리돼 있었다. 소파 위 쿠션 두 개가 같은 각도로 기대어 있었고, 텔레비전 리모컨이 탁자 모서리와 나란했다. 벽에 사진이 없었다. 달력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공구 도매상이 준 것이었고, 7월 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냉장고 문에는 자석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가희네 냉장고에는 배달 전단 자석이 열두 개 붙어 있었고, 그중 넷은 같은 치킨집이었다. 침대는 병원 침대처럼 이불 끝이 매트리스 밑으로 접혀 들어가 있었다. 신발장 위에 고양이 열쇠고리 상자가 있었다. 「열쇠 복사 사은품 고양이 200」. 가희는 그 상자를 열어 보지 않았다. 열어 볼 필요가 없었다.
신발장 서랍, 옷장 아래 칸, 침대 밑. 손전등 빛이 닿는 데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갔다. 삼 분. 가희는 부엌으로 돌아왔다.
7월 3일 새벽 두 시. 고무장갑 낀 손이 길쭉한 것을 수건에 싸서 아래쪽 어딘가로 내려놓았다. 그 아래쪽이라면 개수대 아래였다.
*
싱크대 하부장 문은 경첩이 조용했다. 기름칠이 돼 있었다. 안에는 세제 통 세 개가 키 순서로 서 있었고, 노란 고무장갑 한 켤레가 반으로 접혀 세제 통 위에 얹혀 있었다. 장갑은 말라 있었다. 가희는 장갑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손을 옆으로 비켜 넣었다. 세제 통 뒤, 배수관이 꺾여 내려가는 구석에 빨간 쇠 상자가 있었다.
공구함이었다. 인혁이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훨씬 낡았다. 모서리마다 칠이 벗겨져 녹이 올라와 있었고, 손잡이에 검은 절연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가희는 그것을 하부장 바닥에서 끌어냈다. 쇠가 합판을 긁는 소리가 빗소리 아래로 낮게 났다. 무거웠다.
뚜껑을 열었다. 맨 위 칸에 나사와 너트가 크기별로 칸칸이 들어 있었다. 가희는 그 칸 쟁반을 들어 올렸다. 쟁반 밑에 종이 수건이 깔려 있었다. 종이 수건을 걷었다.
열쇠였다. 열쇠고리 여러 개에 열쇠가 하나둘씩 꿰어져 있었다. 고리마다 무언가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이름표. 흙이 말라붙은 끝이 뾰족했다. 「고추 2호」. 한상국의 옥상, 고무 대야의 빈 구멍.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 떡에 무늬를 찍는 떡살의 일부였다. 꽃잎 무늬 한 장이 새겨져 있었고, 나뭇결 사이에 하얀 쌀가루가 아직 끼어 있었다. 오명순이 서른 해 동안 새벽 네 시에 쌀을 불려 찍던 무늬였다.
파란 목걸이 줄. 동물병원 사원증을 거는 줄이었다. 사원증은 없고 줄만 있었다. 줄 끝 플라스틱 고리에 볼펜으로 「서진」이라고 작게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서진 쌤」이라고 쓰던 그 사람.
그리고 투명 아크릴. 회색 고양이. 앞발 두 개만 하얬다. 모서리가 깨지지 않았다. 혀가 오른쪽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김태희가 손바닥으로 덮고 있던 그 열쇠고리와 짝이었다.
가희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걸 알고 숨을 쉬었다. 락스 냄새가 목구멍을 긁었다.
그 아래에 고리가 더 있었다. 매달린 물건이 없는 고리들이었다. 열쇠만 있었다. 하나는 할머니 집 옛 현관 열쇠였다. 손잡이 쪽에 「201」이라고 매직 자국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하나는 빨간 실 끝이 한 올 남은 열쇠였다. 202호 여분이었다. 보일러를 고치던 날 할머니 접시에서 은색 가짜와 바꿔치기된 진짜였다. 그리고 놋쇠 열쇠 하나. 날 끝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가희는 그것을 손전등 빛에 비추지 않아도 알았다. 3년 동안 문고리를 들어 올리며 돌린 열쇠였다.
공구함 맨 바닥에 둥글게 감긴 철사 뭉치가 있었다. 굵은 철사였다. 노란 전기 테이프가 군데군데 붙은 채 손때로 갈색이 돼 있었다. 감겨 있던 모양 그대로, 손잡이가 빠진 자리의 둥근 꼴을 하고 있었다.
버렸다고 했다.
*
가희는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플래시를 끄고 찍었다. 화면이 어두워서 손전등을 옆에서 비췄다. 열쇠고리 하나하나, 공구함 전체, 하부장 안, 세제 통의 위치, 부엌 전체. 손이 떨려 다섯 장 중 두 장이 흔들렸다. 다시 찍었다.
그리고 마경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가자마자 받았다.
“윤가희 씨.”
“형사님.”
목소리를 낮추자 쇳소리가 났다. 마경태가 한 박자 쉬었다.
“어디예요?”
“….”
“어디냐고요?”
“301호요. 싱크대 아래요. 형사님, 다 여기 있어요. 고추 2호 이름표요. 오명순 씨 떡살이요. 박서진 씨 목걸이 줄이요. 두부요. 혀가 오른쪽이에요. 그리고 할머니 집하고 202호 옛 열쇠, 제 원래 열쇠, 할머니 팬 철사까지요.”
전화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나나우유 빨대 소리도, 복사기 소리도. 가희는 마경태가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 찍었어요?”
“네.”
“그 사진, 못 써요. 알죠?”
“알아요.”
“그럼 왜 거기 있어요?”
“있는지 알아야 했어요. 형사님이 들어오게 하려면요.”
“윤가희 씨가 거기 들어간 게 알려지는 순간, 저 상자 안의 건 다 오염돼요. 변호사가 그럴 거예요. 이웃집 여자가 몰래 들어가서 넣어 놨다고. 스토킹 신고까지 돼 있는 여자가. 판사가 그 말을 들어요.”
“제가 넣었다고요? 고추 2호를 제가 어디서 구해요?”
“옥상에 가 봤잖아요. 윤가희 씨 입으로 나한테 말했잖아요.”
가희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질 뻔했다. 그녀는 공구함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녹이 손바닥 상처에 묻었다.
“그럼 가져갈게요. 다요. 형사님한테 바로 갖다드릴게요. 지금 안 가져가면 저 사람이 내일 다 없애요.”
“가져오지 마요.”
마경태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가져오면 끝이에요. 그건 영원히 증거가 아니게 돼요. 윤가희 씨 손에서 나온 건 다 윤가희 씨 거예요. 법정에서는. 그리고 그 사람은 걸어 나가요. 오명순 씨 아들 앞에서, 김태희 씨 앞에서 걸어 나가요. 그거 보고 싶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내일 없어지면요?”
“내가 지금부터 영장 근거를 만들 거예요. 보일러 감식이 있어요. 부품 목록이 있어요. 윤가희 씨 이름 빼고 만들 거예요. 오늘 밤 안에. 그러니까 다 제자리에 넣어요. 만진 순서 거꾸로. 그리고 나와요. 지금.”
가희는 공구함 안을 내려다보았다. 두부의 혀가 손전등 빛에 반짝였다. 김태희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다른 하나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그것도 갖고 싶다고. 두 개가 같이 있으면 태오가 좋아할 거라고.
그녀는 두부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아크릴 앞에서 멈췄다. 멈춘 채로 오래 있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손을 거뒀다.
종이 수건을 덮었다. 쟁반을 얹었다. 뚜껑을 닫았다. 공구함을 배수관 뒤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세제 통 세 개를 키 순서로 세웠다. 고무장갑을 반으로 접어 그 위에 얹었다. 하부장 문을 닫았다. 경첩이 조용했다.
“넣었어요.”
“나와요.”
전화가 끊겼다.
*
부엌 창으로 돌아갔다. 블라인드를 들추고 고개를 내밀었다.
사다리가 없었다.
302호 창가에서 다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고 있었다. 다은 손끝에서 빗물만 떨어졌다. 통로 바닥 웅덩이에 알루미늄 사다리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휴대폰이 떨렸다.
「아까 들어갈 때 발로 밀렸나 봐요. 끝이 계속 미끄러져서 잡고 있었는데, 빠졌어요. 소리는 빗소리에 묻혔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채광 통로는 1미터 40센티미터였다. 건너뛸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래는 3층이었다.
가희는 현관 쪽을 보았다. 짧은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안에서는 걸쇠만 풀면 열리는 문이었다. 열고 나가서 세 걸음이면 302호였다. 다은이 302호 문을 열어 두면 되었다.
「다은 씨, 302호 현관 열어 줘요. 앞문으로 나갈게요.」
「알았어요. 지금.」
장보람. 「골목 발 없음.」
이지호. 「1층 센서등 꺼져 있음.」
가희는 운동화 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물기를 닦았다. 부엌 타일에 그녀가 떨어뜨린 빗물이 작은 웅덩이 세 개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소매로 그것을 닦았다. 하나는 다 닦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를 죽였다. 문 앞에 섰다. 걸쇠 두 개가 위아래로 걸려 있었다. 위쪽 걸쇠를 풀었다. 쇠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휴대폰이 떨렸다. 다은이었다.
「잠깐만요. 3층 센서등 켜졌어요. 1층하고 2층은 안 켜졌는데.」
이어서 장보람.
「골목 발 없음. 진짜 없음. 아무도 안 들어왔음.」
이지호.
「1층 센서등 여전히 꺼져 있습니다. 아래로 올라온 사람은 없습니다.」
가희는 그 세 줄을 읽었다. 아래로 올라온 사람은 없었다. 3층 센서등만 켜졌다. 해오름빌라 3층 계단참 위에는 옥상으로 나가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장마 내내 잠겨 있지 않던 문이었다.
아래쪽 걸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다. 풀지 않으면 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에 누가 있든. 그리고 풀지 않으면 그녀는 이 집 안에 남았다. 사다리는 3층 아래 웅덩이에 있었다.
그녀는 아래쪽 걸쇠를 풀었다.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센서등이 하얗게 켜져 있었다. 복도에 빗물 냄새가 가득했다. 301호 문 앞, 가희에게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인혁이 서 있었다. 검은 장우산을 펴 든 채였다. 우산 살 끝마다 물방울이 맺혔다가 하나씩 떨어져 시멘트 바닥에 둥근 자국을 냈다. 그의 어깨는 젖어 있지 않았다. 신발도 젖어 있지 않았다. 계단참 위 옥상 철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빗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가 웃었다. 늘 웃던 얼굴이었다. 자기 집 현관에서 나오는 이웃을 맞는 얼굴이었다.
그가 우산을 가희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비 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