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38자)
경보기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구말례는 7월 14일 밤 아홉 시에 보일러를 켰다. 장마 열이틀째였다. 장판이 발바닥에 쩍쩍 들러붙었고, 이불에서 쉰내가 났다. 여름이라도 장마에는 보일러를 한 시간 돌려 방바닥을 말려야 한다고 영감이 늘 말했다. 영감은 그 말을 하면서 늘 기름값 아깝다고 투덜댔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보일러가 삐 하고 울더니 다용도실에서 웅웅 돌기 시작했다. 총각이 고쳐 준 뒤로 처음 켰다. 소리가 예전보다 고왔다.
말례는 식탁에 앉아 내일 부칠 반죽을 저었다. 내일은 다은이 쉬는 날이라 우진이 데리고 올라온다고 했다. 3층 가희도 같이. 가희는 요즘 다은이네서 잤다. 왜 거기서 자는지 말례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 애가 또 총각 얘기를 할 것이고, 그러면 말례는 또 언성을 높일 것이고, 그게 싫었다.
반죽 그릇 옆에 무쇠 팬이 엎어져 있었다. 철사 손잡이의 노란 테이프 끝이 또 들떠 있었다. 지난번 설거지 때 가희가 손톱으로 눌러 붙였던 자리였다. 말례는 그걸 보다가 저도 모르게 엄지로 눌렀다. 테이프가 붙었다가 다시 떴다.
벽에 붙은 동그란 기계가 말례 눈에 들어왔다. 가희가 도어락 달던 날 사다 붙였다. 연기 감지기 같은 건데 연기가 아니라 다른 걸 잡는다고 했다. 무슨 가스라고 했는데, 냄새도 없고 색도 없는 가스라고 했다. 말례는 냄새도 없는 걸 어떻게 무서워하느냐고 웃었다. 가희는 웃지 않고 건전지를 두 번 확인했다.
열 시 반쯤 머리가 무거워졌다. 관자놀이에서 맥이 뛰었다. 말례는 반죽 그릇에 랩을 씌웠다. 손이 랩을 두 번 놓쳤다. 장마라 그렇겠지. 나이 들면 비 오는 날 머리가 아픈 법이었다. 영감도 그랬다. 말례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소파에 누웠다. 아침 드라마 재방송이 또 하고 있었다. 말례는 그 드라마를 세 번째 보는 중이었는데 아직 누가 범인인지 몰랐다.
눈꺼풀이 내려왔다. 귀 안쪽에서 무언가 삐삐 울렸다. 텔레비전 소리인지 귀울음인지 말례는 구분하지 못했다. 늘 그랬다.
*
202호 거실에서 한우진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손전등을 켜 놓은 채 잠복 중이었다. 탐정은 밤에 잠복을 한다. 엄마는 야간 근무를 나갔고, 조수는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조수는 요새 잠을 못 자서, 잠들면 아무리 흔들어도 잘 안 깼다.
벽에서 소리가 났다. 할머니 집 쪽 벽이었다. 삐삐삐, 쉬고, 삐삐삐. 우진은 이불을 젖히고 벽에 귀를 댔다. 벽지가 서늘했다. 할머니 텔레비전 소리가 그 뒤에서 웅얼거렸다. 그런데 텔레비전 소리는 저렇게 규칙적으로 울지 않았다.
우진은 소파로 가서 조수 얼굴에 손전등을 비췄다.
“조수. 탐정 보고. 할머니 집에서 삐삐 소리 나요. 계속.”
가희가 눈을 떴다. 손전등 빛에 눈을 찡그리다가, 아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
말례는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멀었다. 물속에서 듣는 것 같았다. “할머니” 했다가 “구말례 씨” 했다가 다시 “할머니” 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 그다음에 도어락 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네 번. 띠리릭.
영감 생일이었다. 말례는 그 번호를 누가 누르는지 궁금했다. 영감 생일을 아는 사람은 이제 순례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기사 아저씨 앞에서 말례가 억지로 알려 준 아이 하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창문 여는 소리가 났다. 부엌 창, 거실 창, 다용도실 창. 빗소리가 한꺼번에 방으로 쏟아졌다. 누가 말례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다. 마른 팔인데 힘이 셌다. 말례는 소파에서 끌려 내려갔다. 발뒤꿈치가 장판에 끌렸다. 현관 신발장을 지날 때 꽃무늬 접시가 흔들려 열쇠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계단참의 시멘트가 등에 닿았다. 서늘했다. 누가 말례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손바닥이 거칠었다. 아물다 만 상처가 말례 볼에 까슬하게 닿았다.
“할머니. 할머니, 눈 떠 봐요. 저 보여요?”
말례는 눈을 떴다. 가희였다. 머리가 산발이었고 티셔츠 가슴에 우유 상자를 오려 만든 별이 매달려 있었다. 별 한가운데 「조수」라고 쓰여 있었다. 그 뒤에서 우진이 키즈폰을 귀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여기 봉천동 해오름빌라요! 할머니가 안 일어나요!” 아이 목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너….”
말례 입에서 나온 말이 그거였다.
“너 내 영감 생일 안 까먹었구나.”
가희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을 했다. 그 애 손이 말례 손을 꽉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말례는 그 손을 마주 잡으려 했는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
말례는 다음 날 아침 구청 근처 큰 병원 6층 병실에서 깼다. 코에 줄이 꽂혀 있었다. 의사는 일산화탄소 중독이라고 했다. 한 시간만 늦었어도 위험했다고 했다. 다용도실 보일러 배기통 연결부가 빠져 있었다고, 아침에 소방서에서 나와서 봤다고 했다. 연기가 굴뚝으로 안 나가고 집 안으로 돌았다고.
배기통. 말례는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직 무거웠다.
열 시쯤 병실 문이 열렸다. 총각이었다. 한 손에 전복죽 통을, 다른 손에 노란 국화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말례는 반가워서 손을 들었다.
“총각 왔어.”
그런데 총각은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가희가 일어나 문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말례 자리에서는 둘의 옆얼굴이 보였다. 복도 형광등이 두 사람 머리 위에서 하얗게 떨었다.
“들어오지 마세요.”
“윤가희 씨, 할머니 뵈러 온 거예요.”
“보일러 배기통이요. 그날 손보셨다고 했잖아요. 장마엔 습기 차서 헐거워진다고. 할머니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가 걸음을 늦췄다. 총각은 죽 통을 든 손을 내렸다. 그리고 말례 쪽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분명히 끼웠는데. 장마 습기에 패킹이 불었나 봐요. 제 불찰이에요. 병원비는 제가 낼게요. 다 낼게요.”
말례는 숙인 등을 보았다. 작업복이 아니라 다린 셔츠였다. 총각이 이렇게 숙이는 걸 처음 보았다. 마음이 녹았다. 녹는 게 맞았다. 그런데 녹는 마음 한쪽 귀퉁이에 무언가 걸렸다. 총각은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할머니 괜찮으시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말례 얼굴도 거의 보지 않았다. 총각 눈은 처음부터 가희에게 가 있었다.
총각이 허리를 펴며 가희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런데 윤가희 씨. 할머니 댁 도어락 번호, 아는 사람이 윤가희 씨뿐이었죠? 어젯밤에 문 연 것도 윤가희 씨고요.”
가희 어깨가 굳었다. 말례가 입을 열기 전에 복도 끝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얘기는 내가 할게요.”
형사였다. 셔츠 단추를 잘못 끼운 남자가 바나나우유를 들고 복도를 걸어왔다. 그는 총각 앞에 서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총각을 보았다. 아래에서 위로, 다린 셔츠 깃부터 국화 다발까지. 총각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사는 따라 웃지 않았다.
“소방 감식 보고서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서인혁 씨. 보일러 수리하신 날짜하고 쓰신 부품 목록, 가게에 남아 있죠?”
“그럼요. 다 있어요.”
“그거 좀 준비해 주세요.”
형사는 그 말만 했다. 총각은 죽 통과 국화를 간호사실 앞 탁자에 내려놓고 갔다. 가면서 말례에게 손을 흔들었다. 말례는 손을 흔들어 주지 못했다. 손가락이 아직 말을 안 들었다. 그 탓이라고 말례는 생각했다.
형사는 가지 않았다. 병실 문간에 가희와 나란히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 말례는 귀가 어두웠지만, 이상하게 낮은 목소리는 잘 들렸다. 영감이 늘 하던 말이었다. 당신은 크게 말하면 못 듣고 작게 말하면 다 듣는다고.
“윤가희 씨가 문을 막았잖아요. 열쇠도, 도어락도. 그러니까 그 사람이 굴뚝으로 온 거예요. 이미 만져 놓은 데로.”
“그럼 그 사람이 이 건물에서 이미 만진 데가 어디어디예요?”
“그걸 나한테 물어요?”
가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례는 머릿속으로 셌다. 현관 걸쇠, 보일러, 202호 우진이 자전거, 101호와 102호와 반지하 도어락. 3층 그 애 문과 창문. 손가락이 모자랐다.
“감식 붙어서 나 내일 옥상 못 가요. 페트병은 다음 주에.”
형사가 그렇게 말하고 바나나우유를 다 빨았다. 빈 통이 쭈그러드는 소리가 났다.
*
점심때 다은이 와서 휴대폰을 보여 주었다. 「봉천동 이웃방」이라는 데에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말례는 돋보기를 쓰고 읽었다.
「해오름빌라 2층 할머니 어젯밤 가스사고로 병원 실려감. 근데 3층 그 여자가 할머니 도어락 번호 알고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함. 철물점 사장님 신고했던 그 여자임. 이상하지 않음? 경찰은 조사 똑바로 하길. — 봉천토박이(매니저)」
글 밑에 댓글이 백 개가 넘었다. 말례는 글자를 다 읽지 못했다. 맞춤법이 틀린 글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다은이 대신 읽어 주었다. 최 사장이 가희에게 문자도 보냈다고 했다. 12월에 재계약 없다고. 될 수 있으면 이달 말까지 짐 빼 달라고. 보증금은 그때 돌려주겠다고.
가희는 병실 구석 의자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펴 놓고 있었다. 화면에 자막 파일이 떠 있었는데 커서가 한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깜빡였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례는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엄지, 검지, 중지. 이제 말을 들었다.
“가희야.”
“네.”
“최 사장한테 내가 전화할게. 걔 아버지가 나한테 쌀 꿔 간 게 있어. 1983년에.”
가희가 고개를 들었다. 다은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말례는 웃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
밤 열한 시, 가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가희는 병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다가 화면을 보았다. 말례도 그 화면을 곁눈질로 보았다. 반상회 날 만든 단톡방, 총각도 들어 있는 그 방이었다.
「할머니 쾌유를 빕니다. 제 불찰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서 내일부터 이틀 도매상 다녀오며 머리 좀 식히겠습니다. 가게는 쉽니다. 해오름빌라 분들 문단속 잘하세요. — 301호 서인혁」
남궁철이 바로 답을 달았다. 「인혁 씨 너무 자책하지 마~ 사고야 사고」. 이지호가 엄지 그림 하나를 붙였다.
가희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다은에게 따로 문자를 보내는 것을 말례는 보았다. 글자가 작아서 다 읽지는 못했다. 첫 줄만 보였다.
「미끼예요.」
가희가 일어나 창가로 갔다. 병원 창밖으로 봉천동 언덕이 보였다. 불 꺼진 지붕들 사이 어딘가에 해오름빌라가 있었다. 가희는 그쪽을 보면서 가슴에 꽂힌 우유 상자 별을 손끝으로 만졌다. 별 끝이 젖어서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