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58자)
부드럽게 도는 열쇠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관악경찰서 3층 진술실은 창이 없었다. 벽은 연두색이었고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다 말다 했다. 책상 위에 휴지 상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휴지 상자는 반쯤 비어 있었다. 이 방에서 운 사람이 많았다.
마경태 옆에는 이십 대 후반쯤 된 여자 형사가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었다. 명찰에 「소은비」라고 적혀 있었다. 가희가 들어오자 소은비가 고개를 들었다.
“덴마크 드라마 번역하시는 분이죠? 그거 넷플릭스에 있어요?”
“은비야.”
“궁금해서요. 요즘 볼 게 없어서.”
마경태가 바나나우유 빨대를 깨물었다. 소은비는 입을 다물고 타자를 쳤다. 손가락이 빨랐다.
“신고 내용 읽어 드릴게요.”
마경태가 서류를 넘겼다. 7월 3일, 형사를 데리고 와 집 앞에서 소리를 지름. 7월 5일, 보일러 수리 중 주머니 수색을 요구함. 7월 7일, 반상회에서 공개적으로 살인범으로 지목함. 7월 9일과 10일, 시장 상인들에게 신고인에 대해 묻고 다님. 7월 10일, 가게에 찾아와 진열대를 쓰러뜨림. 첨부, 가게 카메라 영상 하나, 상인 진술 셋.
“진열대는 넘어진 거예요. 제가 넘어뜨린 게 아니라.”
“영상에서는 그게 구분이 안 돼요.”
마경태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번엔 경고예요. 한 번만 더 그 가게 가거나, 그 사람 따라다니거나, 동네 사람들한테 그 사람 얘기 하고 다니면 접근 금지 신청 들어간대요. 그 사람 변호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변호사도 있더라고요. 철물점 하는 사람이.”
가희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손에 땀이 나서 화면이 미끄러웠다. 김태희가 보내 준 태오 이사 날 사진을 열어 문틀을 키웠다. 뭉개진 스티커가 화면 가득 번졌다.
“네 집 다 문이 잠겨 있었죠. 부순 자국도 없었고요. 그럼 들어간 사람은 열쇠가 있었던 거예요. 김태오 씨는 작년 겨울에 인혁철물에서 보조키를 바꿨어요. 오명순 씨는 시장 상인회 단체로 인혁철물에서 도어락을 달았고요. 박서진 씨가 일하던 동물병원은 인혁철물이랑 같이 길고양이 사업을 했어요. 한상국 씨는요, 그건 아직 모르는데….”
“우리 팀장님 집 도어락도 거기 거예요.”
마경태가 말했다. 소은비가 타자를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엄마 집도요. 봉천동 사시거든요.”
“이 동네 문 절반에 그 스티커 있어요, 윤가희 씨. 제가 그거 몰랐을 것 같아요? 6월에 그 사람 불러다 조사했어요. 참고인으로. 네 집 다 열쇠 만진 기록이 있냐고. 다 있대요.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하더라고요. 만졌다고. 이 동네 문을 다 만졌으니까.”
가희는 어제 계산대 앞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같은 말이었다. 이 남자는 형사 앞에서도, 가희 앞에서도 같은 문장을 썼다.
“한상국 씨 옥상에 가 봤어요.”
가희가 말했다. 마경태의 손이 바나나우유에서 떨어졌다.
“고추 대야 열두 개가 그대로 있어요. 누가 아직 물을 줘요. 페트병이 있었어요. 그리고 2호 대야 이름표가 없어요. 「고추 2호」요. 꽂혀 있던 구멍만 있어요.”
마경태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였다. 소은비가 마경태를 흘끔 보았다. 마경태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가 아까보다 낮았다.
“그 사건, 내가 고독사로 넘겼어요. 작년 10월에. 혼자 사는 예순여덟 살 노인이 집 안에서 발견됐고, 문은 잠겨 있었고, 몸에 이상한 데가 바로는 안 보였어요. 그래서 넘겼어요. 두 번째가 나오고서야 다시 열었는데, 그땐 화장이 끝나 있었어요.”
“….”
“옥상에 물 주는 거, 그거 나예요.”
소은비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 채 굳었다. 마경태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가요. 2호 이름표는 내가 처음 갔을 때부터 없었어요. 그것도 증거 아니에요.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고, 애들이 뽑아 갈 수도 있어요. 윤가희 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그 사람 집에서 뭘 들고 나오는 순간, 그건 영원히 증거가 아니게 돼요. 몰래 들어가서 가져온 건 법정에서 못 써요. 그리고 그 사람은 풀려나요. 그러니까 하지 마요. 내가 할게요. 시간이 걸려도.”
가희는 그 말을 들으며 휴대폰을 무릎 위에서 뒤집었다. 그때 휴대폰이 떨렸다.
*
같은 시각, 해오름빌라 2층.
구말례 할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아침 드라마 재방송을 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었다. 리모컨이 무릎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다은은 이번 주부터 토요일 주간 근무를 하나 더 잡았다. 오십육만 원을 갚겠다고 했다. 가희가 받지 않겠다고 해도 다은은 근무표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오늘 우진은 할머니 집에 맡겨져 있었다.
우진은 할머니 집에서 나와 2층 계단참에 쪼그리고 있었다. 계단참 구석에 세워 둔 파란 자전거 체인이 어제 빠졌다. 아이는 돋보기로 체인을 들여다보며 밀가루로 지문을 뜨고 있었다. 범인이 체인을 뺐다고 믿었다.
발소리가 3층에서 내려왔다.
“우진이, 뭐 해?”
“수사요. 범인이 체인 뺐어요.”
서인혁이 계단 두 칸 위에서 웃었다. 오늘은 작업복이 아니라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자전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와 같은 높이였다.
“범인 아니고 장마야. 습기 먹으면 체인이 늘어나. 아저씨가 끼워 줄까?”
우진은 망설였다. 엄마가 지난밤에 한 말이 있었다. 301호 아저씨랑 단둘이 있지 마.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다. 아이는 이유가 없는 말은 잘 지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키즈폰을 꺼내 가희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수는 보고를 받아야 했다.
「탐정 보고. 301 아저씨 2층에 있음. 내 자전거 고쳐 준대.」
인혁은 체인을 톱니에 걸고 페달을 손으로 천천히 돌렸다. 체인이 한 칸씩 물리며 딸깍딸깍 소리를 냈다. 손가락에 검은 기름이 묻었다.
“엄마 오늘 몇 시에 와?”
“여섯 시요. 오늘 낮에 일해요.”
“그렇구나. 할머니는 주무셔?”
“네. 코 골아요.”
“그럼 조용히 하자.”
인혁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했다. 우진도 따라 쉿 했다. 그는 체인을 다 끼우고, 자전거를 세워 페달을 한 바퀴 돌려 보였다. 바퀴가 헛돌며 빗소리 사이로 사르르 소리를 냈다.
*
가희는 진술실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윤가희 씨! 아직 서명 안 했어요!”
마경태 목소리가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가희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층 민원실 자동문이 너무 천천히 열렸다. 그녀는 우산을 펴지 않았다. 펴는 시간이 아까웠다. 비가 정수리부터 목덜미로 흘러내렸고, 운동화는 세 걸음 만에 물을 먹었다. 봉천동 언덕길은 오르막이었다. 숨이 목구멍을 긁었다. 3년 동안 이렇게 뛴 적이 없었다. 다리가 자기 다리 같지 않았다. 골목 셋을 지나며 그녀는 한 번 미끄러져 손바닥을 아스팔트에 짚었다. 손바닥 살이 쓸렸는데 아픈 줄은 나중에 알았다.
해오름빌라 현관 계단을 두 칸씩 올라 2층 계단참에 닿았다.
인혁이 자전거 옆에 서 있었다. 우진은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아 페달 위에 발을 얹고 있었다. 아이가 가희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조수! 아저씨가 고쳐 줬어요!”
가희는 아이 팔을 잡아 안장에서 끌어 내렸다. 너무 세게 잡았다. 우진이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가희는 아이를 등 뒤로 돌려세웠다. 그녀의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계단참 시멘트에 고였다.
“애 근처에 오지 마세요.”
인혁은 기름 묻은 손을 반팔 티셔츠에 닦지 않았다. 손을 공중에 든 채로 서 있었다.
“애가 혼자 있길래요. 할머니 주무시고. 요즘 동네가 험하잖아요.”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요.”
“윤가희 씨.”
그가 가희의 젖은 머리와 쓸린 손바닥을 차례로 보았다.
“접근 금지는 제가 신청했는데요.”
가희의 숨이 멎었다. 우진이 가희 등 뒤에서 그녀의 젖은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누나, 아저씨 착한데 왜 그래요?”
아이 목소리가 떨렸다. 가희가 돌아보자 우진 눈에 물이 차 있었다. 팔을 잡힌 자리를 다른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아이는 가희를 보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인혁 쪽으로.
201호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나왔다.
“무슨 소리야? 가희야, 너 왜 이렇게 젖었어?”
계단 아래에서 현관문이 쾅 열렸다. 다은이었다. 마트 조끼를 입은 채였다. 가희가 진술실을 뛰쳐나오며 보낸 문자 「우진이 2층 계단에 인혁」 한 줄을 보고 근무 중에 뛰어나왔다. 다은은 계단을 뛰어올라 우진을 끌어안았다. 아이가 엄마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누나가 나 아프게 잡았어.”
다은은 가희를 보았다. 그다음 인혁을 보았다. 인혁은 손에 묻은 기름을 그제야 바지에 닦고 있었다.
“다은 씨, 근무 중에 나오셨어요? 괜찮으세요? 팀장님이 뭐라 안 하세요?”
다은은 대답하지 않고 우진을 안은 채 202호로 들어갔다. 새 도어락이 띠리릭 소리를 내며 잠겼다. 할머니는 문간에 서서 가희와 인혁을 번갈아 보다가, 가희 쪽으로 혀를 찼다.
인혁이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손 다치셨네요. 소독하세요, 윤가희 씨.”
*
가희는 3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계단을 도로 내려가 언덕 아래 편의점에 들어갔다. 창가 좁은 탁자에 앉아 소독약과 거즈를 샀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가 한 젓가락도 먹지 않고 불게 두었다. 유리창 너머로 비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젖은 티셔츠가 에어컨 바람에 등에 달라붙어 식었다.
밤 아홉 시, 다은에게서 문자가 왔다. 「팀장이 경고 줬어요. 한 번 더 근무 중 이탈하면 야간조 빠진대요. 가희 씨 탓 아니에요. 우진이는 자요. 내일 얘기해요.」 가희는 답을 세 번 쓰다가 「죄송해요」만 보냈다.
열 시에는 마경태에게서 문자가 왔다. 「서명 안 하고 뛰쳐나가면 다음엔 출석 요구서가 집으로 가요. 농담 아님.」 일 분 뒤에 한 줄이 더 왔다. 「애는 괜찮아요?」 가희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물었다. 「옥상엔 언제 가세요?」 답은 금방 왔다. 「다음 주 화요일. 페트병 두 개 더 갖다 놔야 돼요. 가게 앞에 가지 말고, 옥상엔 와도 돼요.」
손바닥에 소독약을 붓자 따가웠다. 그제야 아팠다.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 너머에서 가희를 힐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한 시가 다 돼서 가희는 불어 터진 컵라면을 버리고 언덕을 올랐다. 해오름빌라 3층 계단참에 센서등이 켜졌다. 301호 현관 아래로는 빛 한 줄 새지 않았다.
그녀는 302호 문 앞에서 열쇠를 꺼냈다. 3년 동안 이 문은 한 번에 열린 적이 없었다. 열쇠를 꽂고 문고리를 위로 들어 올린 채 반쯤 돌려야 했다. 그래야 걸리던 핀이 넘어갔다. 집주인에게 고쳐 달라고 두 번 말했고, 두 번 다 다음 달에 고쳐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오늘 아침 경찰서에 나갈 때도 그렇게 잠갔다.
열쇠를 꽂았다. 문고리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손목에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열쇠가 돌았다.
너무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