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98자)
인혁철물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신림동 열쇠 업체 기사는 7월 8일 오전 열 시에 왔다. 오십 대 아저씨였고, 201호 현관 앞에서 문틀의 「인혁철물」 스티커를 보더니 혀를 찼다.
“봉천동은 인혁철물 구역인데. 내가 와도 되나 몰라. 여기 사장님이 이 동네 문을 다 쥐고 있어요. 우리끼리는 봉천동 문지기라고 불러.”
“그러니까 아저씨가 오신 거예요.”
가희가 말했다. 기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는 얼굴로 드릴을 켰다. 할머니 집 도어락을 다는 데 사십 분, 202호에 삼십오 분이 걸렸다. 할머니는 새 도어락 번호를 다섯 번 틀렸고, 여섯 번째에 「영감 생일」로 정했다. 기사가 생일은 남들이 안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영감 생일을 아는 사람은 이제 자기밖에 없다고 했다. 기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가희는 번호판 위로 할머니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가 가희 팔을 잡아끌었다.
“너도 알아 둬. 내가 까먹으면 네가 열어.”
할머니는 아직 가희에게 화가 덜 풀려 있었다. 그런데도 번호를 알려 주었다. 가희는 그 네 자리를 휴대폰에 적지 않고 머리에만 넣었다.
*
장마 2주째로 들어선 7월 9일, 가희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김태희를 만났다. 집에서 버스로 십오 분이었다. 버스 안에서 가희는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쓰고 우비 모자까지 덮었다. 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이 버스에서 제일 수상한 사람은 나다.
김태희는 서른한 살이었고, 동생과 눈매가 닮았다고 했다. 가희는 동생 얼굴을 몰랐다. 태희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배달 헬멧을 머리에 얹고 원룸 현관 앞에서 이삿짐 상자를 든 남자가 웃고 있었다. 2024년 봄, 태오가 봉천동으로 이사하던 날이라고 했다.
“얘가 겁이 많았어요. 현관을 꼭 두 번 잠갔어요. 위아래 다요. 두부가 문 열고 나갈까 봐서라고 했는데, 사실은 자기가 무서웠던 거예요. 어릴 때 우리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어서.”
태희는 커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컵에 맺힌 물방울이 탁자에 둥근 자국을 냈다.
“발견됐을 때도 문은 두 번 잠겨 있었대요. 경찰이 그 말을 몇 번이나 했어요. 두 번 잠겨 있었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나중에 알았어요.”
가희는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벌려 키웠다. 태오 어깨 너머 현관 문틀 위쪽에 동전만 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글씨는 화소가 뭉개져 읽히지 않았다. 그래도 색과 모양은 알 수 있었다. 흰 바탕에 빨간 열쇠 그림. 가희가 이 동네에서 매일 보는 모양이었다.
“동생분 이사하고 도어락이나 자물쇠 바꾼 적 있으세요?”
“바꿨어요. 작년 겨울에요. 위쪽 보조키가 뻑뻑하다고. 동네 철물점 사장님이 싸게 해 줬다고 했어요. 고양이 모래 사러 갔다가 얘기가 나와서.”
태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 사장님이에요? 이웃방에 글 난 그분?”
가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경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전엔 저 사람한테 아무 말 하지 말고요.” 태희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말하면 태희는 오늘 밤 그 철물점 앞에 갈 것이다. 가희는 그 장면을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옮겼다.
“아직 몰라요. 그래서 알아보는 중이에요.”
“알게 되면 저한테 제일 먼저 말해 주세요.”
“네.”
태희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두부 열쇠고리였다. 아크릴 모서리가 깨진 그것이었다. 태희는 그걸 가희 쪽으로 밀지 않고 자기 손바닥으로 덮었다.
“이거 하나 남은 거, 저 매일 들고 다녀요. 다른 하나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그것도 제가 갖고 싶어요. 두 개가 같이 있으면 태오가 좋아할 거예요.”
*
그날 저녁, 가희는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두 정거장 일찍 내렸다. 한상국이 살던 4층 빌라는 해오름빌라에서 골목 셋 건너에 있었다. 옥상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녹슨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리자 비에 젖은 흙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고무 대야 열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고추는 대부분 시들어 꺾였지만, 대야 셋에서는 새 잎이 올라와 있었다. 흙이 촉촉했다.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야 옆에 물이 반쯤 찬 페트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누군가 아홉 달 동안 여기에 물을 주고 있었다. 가희는 대야마다 꽂힌 하얀 이름표를 세어 보았다. 「고추 1호」 「고추 3호」 「안 매운 거」. 2호 대야에는 이름표가 꽂혔던 구멍만 흙 위에 남아 있었다. 가희는 그 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흙이 손톱 밑으로 차갑게 들어왔고, 구멍 가장자리는 물을 여러 번 먹고 말라 오래전에 굳어 있었다.
*
다음 날 가희는 봉천중앙시장에 갔다. 오명순의 떡집 「오씨네 떡집」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 위에 누가 붙였는지 모를 종이가 비에 젖어 반쯤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글씨는 번져서 마지막 획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옆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가희를 아래위로 훑었다. 마스크와 모자와 우비였다.
“아가씨, 범인 같어.”
“…자주 듣는 말은 아니에요.”
“떡집 찾아? 문 닫았어. 명순 언니 1월에 갔잖아.”
아주머니는 콩자반 통을 정리하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오명순은 서른 해 동안 새벽 네 시에 쌀을 불렸다. 손님이 오면 무조건 절편 한 조각을 덤으로 얹었고, 그걸 안 받으려는 사람과 실랑이를 하느라 줄이 늘 길었다. 혼자 살았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부산에서 배를 탔다. 1월 그 아침, 떡 찌는 냄새가 안 나서 아주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언니 집 도어락은 누가 달아 줬는지 아세요?”
“인혁이가 달아 줬지. 이 시장 사람들 다 인혁이가 해 줬어. 가을에 시장 상인회에서 단체로 했거든. 우리 집도.”
아주머니가 턱으로 시장 입구를 가리켰다. 비 사이로 빨간 열쇠 간판이 보였다.
가희는 시장을 나오는 길에 동물병원 앞을 지났다. 세 번째로 숨진 박서진이 일하던 곳이었다. 기사에는 서른두 살, 야간 진료 간호사라고만 나왔다. 유리문 안쪽에 크레파스 그림이 잔뜩 붙어 있었다. 아이들 그림이었다. 털이 뭉툭한 강아지, 귀가 하나뿐인 고양이, 그리고 파란 옷을 입은 여자. 그림마다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서진 쌤 고마웠어요.」 어떤 그림 귀퉁이에는 「우리 콩이 밤에 주사 놔 주셔서」라는 말이 덧붙어 있었다. 그 그림들 사이에 작은 안내문이 있었다. 「병원 앞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함께해 주신 인혁철물 사장님 감사합니다.」
*
인혁철물은 열 평이 조금 넘었다. 문을 열면 기계 기름과 녹 냄새가 한꺼번에 덮쳐 왔다. 천장까지 닿는 선반에 나사와 경첩과 수도꼭지가 칸칸이 들어차 있었고, 계산대 옆에서 열쇠 깎는 기계가 쇳소리를 내며 울었다. 계산대 앞 회전 진열대에 고양이와 강아지 열쇠고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인혁은 손님을 받는 중이었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현관 열쇠 두 개를 복사하고 있었다. 인혁은 기계 소리에 묻히지 않게 목소리를 높여 아주머니 아들 군대 얘기를 들어 주었다. 깎은 열쇠를 건네며 진열대에서 강아지 하나를 떼어 주었다.
“아드님 휴가 나오면 하나 더 해 가세요. 그때도 드릴게요.”
아주머니가 나가자 인혁이 가희를 보았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윤가희 씨. 비 많이 오죠?”
“김태오 씨 집 보조키, 여기서 바꾸셨죠. 작년 겨울에요.”
가희는 우비 모자를 벗지 않고 말했다. 빗물이 모자 끝에서 계산대 위로 떨어졌다. 인혁이 마른 걸레로 그 물을 닦았다.
“태오 씨요. 배달하던 친구. 고양이 모래를 여기서 샀어요. 두부 모래요. 보조키가 뻑뻑하대서 갈아 줬죠. 좋은 친구였어요.”
그는 걸레를 접어 계산대 아래 넣었다.
“오명순 할머니 도어락도 제가 달았어요. 상인회에서 단체로요. 할머니 절편 맛있었어요. 매번 덤을 주셔서 제가 안 받으려고 하면 화를 내셨죠. 한상국 어르신은 옥상 고추를 봉지째 갖다주셨고요. 박서진 선생님은 우리 가게 앞 길고양이들 중성화를 해 주셨어요. 저는 사료만 댔고.”
그는 네 사람의 이름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하나도 더듬지 않고 말했다. 슬퍼하는 목소리도 아니었고 자랑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단골 손님 이름을 대는 목소리였다.
“이 동네 사람이면 다 알아요, 윤가희 씨. 이 동네 문은 제가 다 만졌으니까요. 그게 제 일이에요.”
열쇠 기계가 멈췄다. 가게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함석 차양이었다. 해오름빌라 채광 통로의 슬레이트보다 소리가 높았다.
“윤가희 씨는 혼자 사시죠.”
인혁이 계산대에 팔꿈치를 짚고 몸을 조금 숙였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분 열쇠는 있으세요? 혼자 사시는 분들은 여분이 꼭 있어야 해요. 잃어버리면 문을 못 여니까. 열쇠 복사 하나 해 드릴까요? 고양이도 하나 드리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다. 열쇠를 거기 올려놓으라는 손이었다. 손금에 검은 기름이 배어 있었다.
가희는 손을 진열대에 짚었다. 짚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회전 진열대가 그녀의 무게에 반 바퀴 돌더니 기울었다. 고양이와 강아지 수십 개가 짤랑거리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크릴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는 소리가 비처럼 났다. 회색 고양이 하나가 가희 운동화 앞까지 미끄러져 와서 멈췄다. 앞발 두 개가 하얬다.
가게 밖에서 우산을 든 사람 둘이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으세요?”
인혁이 계산대를 돌아 나왔다. 가희는 뒷걸음질 쳤다. 그는 가희에게 다가오지 않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열쇠고리를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주울 때마다 짤랑 소리가 났다. 그는 줍다가 고개를 들어 가게 안 구석 천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검은 둥근 카메라가 빨간 불을 켜고 있었다.
“천천히 가세요, 윤가희 씨. 미끄러워요.”
*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십 분, 휴대폰이 울렸다. 가희는 밤새 한 줄도 옮기지 못한 자막 파일을 열어 둔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화면에 「관악서 마경태」가 떴다.
“윤가희 씨.”
마경태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뒤에서 복사기가 종이를 씹고 있었다.
“어제 인혁철물 가셨죠. 그 전에 시장 상인들한테 그 사람 물어보고 다니셨고요. 그 전주엔 그 사람 집 앞에서 형사 데리고 소리 지르셨고. 그 사람이 그거 다 모아서 왔어요. 가게 CCTV 영상하고, 동네 사람 진술 세 개하고.”
가희는 엎드린 채 눈만 떴다. 채광 통로 건너 301호 블라인드가 반듯했다.
“스토킹으로 신고 들어왔어요. 오늘 오후 두 시까지 관악서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