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27자)

반상회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정다은은 아침 여섯 시 십 분에 마트 뒷문으로 나왔다. 밤새 계산대에 서 있던 종아리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손끝에서는 바코드 찍던 비닐 냄새가 났다. 비는 그쳤다가 다시 왔고, 우산을 펴기도 귀찮은 가랑비가 봉천동 언덕길을 적셨다.

202호 현관 앞에 서서 다은은 열쇠를 꺼내다 말고 손을 멈췄다. 어젯밤 열두 시 반에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빨간 실 감은 여분 열쇠가 다른 열쇠로 바뀌어 있었다는 전화였다. 할머니는 3층 애가 그런 것 같다고 했다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가, 모르겠다고 했다. 다은은 계산대에서 그 전화를 받으며 바코드 기계를 떨어뜨렸다.

다은이 먼저 떠올린 얼굴은 3층 여자가 아니었다. 2년 전 새벽에 우진을 업고 도망쳐 나온 집, 그 집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다은의 새 주소를 몰라야 했다. 휴대폰 번호도, 우진의 학교도 몰라야 했다.

문을 열자 현관에 우진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는 이불을 차 낸 채 자고 있었다. 목에 건 열쇠 줄이 목덜미에 빨간 자국을 냈다. 다은은 그 줄을 조심스럽게 빼서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았다.

단톡방 초대가 와 있었다. 방 이름은 「해오름빌라 이웃방(진짜 이웃만)」. 만든 사람은 302호 윤가희였다.

「안녕하세요, 302호 윤가희입니다. 오늘 저녁 일곱 시 201호 할머니 댁에서 반상회를 합니다. 열쇠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허락받았습니다. 부침개 나옵니다.」

그 밑에 할머니가 음성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다은은 소리를 줄이고 재생했다. “다 와. 누가 거짓말하는지 다 같이 보자.” 할머니 목소리가 줄여 놓은 스피커를 찢었다.

*

일곱 시, 201호 현관 신발장 위 꽃무늬 접시에 열쇠가 쌓였다. 할머니 규칙이었다. 1층 101호 대리기사 남궁철이 열쇠 꾸러미를 통째로 내려놓자 접시가 기우뚱했다. 자동차 키만 다섯 개였다.

“손님 차 키 아니고 내 거야. 내 차는 없지만. 손님들이 두고 간 걸 내가 돌려주러 다니거든.”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남궁철이 말했다. 102호 공시생 이지호는 열쇠 하나와 형법 기본서를 함께 들고 왔다. 그는 열쇠만 접시에 놓고 책은 무릎에 올렸다. 가희는 날 닳은 놋쇠 열쇠를 접시 맨 위에 놓았다. 다은은 202호 열쇠를 우진 목에서 빼서 놓았다. 할머니는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바닥에 상 두 개를 붙였고, 상 위에는 김치전과 호박전이 접시마다 산처럼 쌓였다. 무쇠 팬은 아직 가스레인지 위에서 지글거렸다. 우진은 상 끝에 「우진 탐정 사무소」 간판을 세워 놓고 수첩을 펼쳤다. 수첩 첫 장에 삐뚤삐뚤 「반상회 수사 회의」라고 적혀 있었다.

가희가 일어났다. 다은은 3층 여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었다. 계단에서 몇 번 스친 게 다였다. 마르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었고, 목이 늘어난 회색 티셔츠를 입었다. 사람들 앞에 서니 손을 어디 둘지 몰라 바지 옆선을 자꾸 문질렀다.

“어젯밤 할머니 댁 여분 열쇠가 바뀌었어요. 202호 열쇠요. 실은 그대로고 열쇠만 다른 거였어요. 저는 그 열쇠를 안 가져갔어요. 그리고 저는….”

가희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저는 301호 서인혁 씨가 봉천동 사건하고 관계있다고 생각해요.”

방이 조용해졌다. 지글거리던 팬 소리만 났다. 이지호가 형법 책을 덮었다.

“그거 명예훼손이에요. 형법 307조. 사실을 말해도 걸려요.”

“지호 학생, 지금 공부해?”

할머니가 말했다. 이지호는 책을 다시 열었다.

남궁철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근데 인혁 씨도 이웃인데, 인혁 씨 없이 인혁 씨 얘기하는 건 좀 그렇잖아. 내가 방에 넣었어. 방금.”

“아저씨!”

가희가 소리쳤고 남궁철은 어깨를 움츠렸다. 다은이 휴대폰을 보니 단톡방에 「남궁철 님이 서인혁 님을 초대했습니다」가 떠 있었다. 그 아래로 바로 답이 올라왔다. 「지금 내려갈게요. 마침 드릴 게 있어요.」

삼 분 뒤에 현관문이 열렸다.

*

서인혁은 상자 네 개를 안고 들어왔다. 상자마다 은색 도어락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그는 상자를 현관에 내려놓고 고양이 열쇠고리 달린 열쇠를 꽃무늬 접시에 놓았다. 남궁철 꾸러미 위에 고양이가 얹혔다.

“늦어서 죄송해요. 할머니, 냄새가 계단까지 나요.”

“총각, 앉아. 호박전 먹어.”

인혁은 가희 맞은편에 앉았다. 상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보는 자리였다. 다은은 그 자리 배치가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요즘 동네가 험하잖아요. 할머니 댁 열쇠 일도 들었고요. 그래서 이거 가져왔어요. 구청에서 혼자 사시는 분들 안전 장비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제가 그거 설치 업체예요. 남은 물량이 네 개 있어요. 공짜예요. 설치도 제가 해 드려요.”

“공짜?”

남궁철과 장보람이 동시에 말했다. 장보람은 반지하 B01호에 사는 스물세 살 드러머였고, 오 분 전에 비에 젖은 채로 들어와 뒷주머니에 드럼 스틱을 꽂은 채 앉아 있었다. 그는 공짜라는 말에 스틱 두 개를 꺼내 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우진이 따라 젓가락으로 두드렸다.

“번호 키라서 열쇠 잃어버릴 일도 없어요. 번호는 각자 정하시는 거고요.”

“설치하시는 분이 처음 번호를 넣잖아요.”

가희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쓰는 게 다은 귀에 들렸다.

“그럼요. 처음 번호 넣고, 바꾸는 법 알려 드리고 나와요.”

“바꾸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요? 할머니는요?”

“제가 바꿔 드리죠.”

인혁이 웃었다. 할머니도 웃었다. 남궁철이 “아이고, 든든하다” 하고 호박전을 하나 더 집었다. 다은은 인혁 옆얼굴을 보았다. 웃는 얼굴이 끝까지 웃는 얼굴이었다. 마트 계산대에서 다은은 하루 오백 명의 얼굴을 보았고, 웃다가 지갑을 여는 순간 표정이 굳는 얼굴들을 보았다. 이 남자는 어느 순간에도 굳지 않았다.

그때 인혁이 상 끝의 우진을 보았다.

“우진이, 목요일 피아노 끝나고 비 오면 아저씨가 학원 앞으로 우산 갖다줄게. 여섯 시 십 분에 끝나지?”

“네!”

우진이 신나서 대답했다. 다은은 젓가락을 쥔 손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진이 목요일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건 다은과 학원 원장만 알았다. 끝나는 시간은 원래 여섯 시였는데, 지난달에 원장이 여섯 시 십 분으로 바꿨다. 다은은 그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도.

“그럼 정하죠.”

이지호가 손을 들었다.

“표결해요. 공동 주택은 다수결이에요. 이건 민법이고요.”

“아까는 형법이라며.”

“이건 민법이에요.”

찬성은 남궁철, 이지호, 장보람, 그리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손을 들면서 가희를 보지 않았다. 가희가 반대에 손을 들었다. 다은은 잠깐 망설였다. 공짜였다. 이번 달 월세가 이틀 밀려 있었다. 그리고 다은은 손을 들었다. 반대 쪽이었다.

“4 대 2네요.”

인혁이 말했다. 그는 이긴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 다정하게 말했다.

“다은 씨는 왜요? 우진이 혼자 있는 시간 많잖아요.”

다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희가 일어났다.

“할머니 댁하고 202호는 제가 달아 드릴게요. 다른 업체로요. 제 돈으로요.”

가희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림동 열쇠 업체였다. 통화는 이 분쯤 걸렸고, 가희는 두 집, 내일 오전, 번호 키, 가장 좋은 걸로, 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가희가 상 위에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았다. 견적이 와 있었다. 두 집 합쳐 오십육만 원.

“빚지기 싫어요.”

다은이 말했다. 처음 내뱉은 말이 그거였다.

“빚 아니에요.”

가희가 말했다.

“제가 겁나서 그래요. 다은 씨 위해서 하는 거 아니에요. 저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저 오늘도 잠 못 자요.”

인혁이 호박전 접시를 가희 쪽으로 밀었다.

“그럼 저는 나머지 집만 달게요. 101호, 102호, B01호. 윤가희 씨 댁은요? 하나 남는데.”

“필요 없어요.”

“그러세요.”

장보람이 드럼 스틱으로 상 모서리를 딱 한 번 쳤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

반상회는 아홉 시에 남궁철이 첫 대리 콜을 받으면서 흩어졌다. 현관이 붐볐다. 다들 신발을 꿰면서 꽃무늬 접시에 손을 넣어 제 열쇠를 집었다. 남궁철 꾸러미가 남의 열쇠들을 끌고 나왔다가 도로 떨어뜨렸고, 이지호가 엉뚱한 열쇠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다 돌아왔다. 장보람은 열쇠를 접시에 두고 간 걸 반지하에 가서야 알았다고 단톡방에 썼다. 할머니가 「내일 가져가」라고 답했다. 다은은 우진 열쇠를 먼저 찾아 아이 목에 걸었다. 인혁은 제 고양이 열쇠를 집으면서, 남궁철이 흩뜨려 놓은 열쇠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접시 가운데로 모아 주었다. “이러다 하나 잃어버려요” 하면서. 가희는 맨 마지막까지 남아 할머니 설거지를 거들었고, 접시에 홀로 남은 놋쇠 열쇠를 집어 주머니에 넣은 것은 열 시가 다 돼서였다. 다은은 그 열쇠를 보지 않았다. 볼 이유가 없었다. 그 사이 인혁은 도어락 상자 네 개 중 셋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마지막 하나는 할머니 현관에 남겨 두었다. 할머니 마음이 바뀌면 쓰시라고 인혁이 말했다.

다은은 할머니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가 세게 났다. 거울 속 얼굴은 밤샘 근무 다음 날 저녁답게 누렜다. 오십육만 원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서 바코드처럼 깜빡였다. 남이 다은을 위해 그만한 돈을 내 준 일은 이혼 소송 때 형편 어려운 사람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 주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상담사가 서류 복사비 이천 원을 대신 내 준 것 말고는 없었다. 다은은 물소리 아래에서 이 분쯤 울었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나왔다.

*

밤 열한 시. 다은은 우진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센서등이 켜졌다. 302호 문에 「인혁철물」 스티커는 없었다. 가희네 문은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그 스티커가 없는 문이었다.

노크하자 걸쇠 걸린 문이 반 뼘 열렸다. 가희의 눈이 그 틈에 나타났다. 그 눈이 다은을 알아보고 커졌다.

“도어락 일이면, 정말 괜찮아요. 안 갚으셔도….”

“그 얘기 아니에요.”

다은은 계단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2층 할머니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301호 문틈은 깜깜했다. 그래도 다은은 목소리를 낮췄다.

“저 믿어요. 윤가희 씨 말.”

가희가 걸쇠를 풀었다. 문이 다 열렸다. 다은은 들어가지 않고 문지방에 서서 말했다.

“그 사람, 우진이 학원 끝나는 시간을 알아요. 여섯 시 십 분. 저 그거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요.”

센서등이 꺼졌다. 둘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았다. 채광 통로 쪽에서 빗소리가 차양을 두드렸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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