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92자)

증거 있어요?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가희가 집 밖으로 나간 것은 열하루 만이었다. 장을 보러 마트에 다녀온 날이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쌀도 휴지도 문 앞으로 왔다. 해오름빌라 현관을 나서자 장맛비가 우산 위로 무겁게 쏟아졌다. 골목 하수구가 벌써 넘쳐 흙탕물이 운동화 앞코를 적셨고, 봉천동 언덕길을 내려가는 동안 양말까지 차가워졌다.

관악경찰서 민원실은 에어컨이 너무 셌다. 젖은 바지가 허벅지에 붙어 식었다. 접수 창구 직원은 「봉천동 사건 제보」라는 말을 듣자 표정 없이 내선 번호를 눌렀고, 십 분 뒤에 2층 강력팀 사무실 문이 열렸다.

마경태 형사는 마흔 중반쯤으로 보였다. 셔츠 단추를 하나 잘못 끼워 왼쪽 깃이 오른쪽보다 높았고, 손에는 빨대 꽂은 바나나우유가 들려 있었다. 그는 가희를 칸막이 책상 앞 의자에 앉히고, 자기는 바퀴 의자를 끌어와 등받이를 앞으로 돌려 앉았다.

“뉴스 나가고 나흘 동안 제보가 서른두 건 들어왔어요. 어제는 어떤 아저씨가 장모님을 신고했고요. 장모님이 칼을 너무 잘 간대요.”

“저는 장모님 얘기 하러 온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말씀하세요.”

가희는 말했다. 새벽 두 시 십 분, 301호 부엌, 이 분 넘게 튼 물, 노란 고무장갑, 개수대 위 고리, 회색 고양이 열쇠고리. 이웃방의 김태희 글을 휴대폰으로 열어 보여 주었다. 마경태는 빨대를 문 채 화면을 오래 보았다. 사무실 구석에서 복사기가 종이를 씹는 소리를 냈다.

“새벽 두 시에 남의 집 부엌을 왜 보고 계셨어요?”

“제 책상이 창 앞이에요. 일하고 있었어요. 번역이요.”

“무슨 번역요?”

가희는 잠깐 망설였다.

“범죄 드라마 자막이요. 덴마크 거.”

마경태가 바나나우유를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칸막이 너머에서 누가 키득거렸다. 가희는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휴대폰을 다시 그에게 들이밀었다.

“두부 열쇠고리 유품에서 없어진 거, 형사님도 아시잖아요.”

“알죠. 유족이 말했으니까. 그런데 윤가희 씨, 회색 고양이 열쇠고리가 이 동네에 몇 개일 것 같아요? 다이소에도 팔아요. 형광등 불빛에 블라인드 틈으로, 그것도 비 오는 새벽에 본 걸 가지고 제가 그 사람 집 문을 따요?”

“문 따 달라는 게 아니라….”

“증거 있어요?”

가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경태가 볼펜을 꺼내 메모지에 「해오름 301 철물」이라고 적었다. 글씨가 빗물에 번진 것처럼 삐뚤었다.

“근처 순찰 가는 길에 들러 볼게요. 들러 보는 거예요. 그 이상은 아니고. 그리고 윤가희 씨.”

“네.”

“그 사람이 진짜 그런 사람이면 윤가희 씨가 경찰서에 온 것도 알게 돼요. 집에 가서 문 잘 잠그세요.”

*

마경태는 저녁 일곱 시 반에 왔다. 사복 차림에 검은 장우산을 들었고, 바나나우유 대신 편의점 커피를 들고 있었다. 가희는 302호 문을 반쯤 열고 복도에 섰다. 센서등이 머리 위에서 켜졌다.

마경태가 301호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네에” 하는 소리가 길게 났다. 문을 연 서인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뒤로 라면 끓는 냄새와 텔레비전 야구 중계 소리가 흘러나왔다.

“관악서 마경태입니다. 근처 사건 때문에 주민분들 몇 가지 여쭤보고 다녀요.”

“아, 고생 많으세요. 태오 씨 일 때문이죠? 들어오세요. 신발 그냥 신고 들어오셔도 돼요.”

인혁은 형사를 들이며 복도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희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웃었다. 문은 활짝 열린 채였다. 가희 자리에서 301호 현관과 짧은 복도와 부엌 한쪽이 보였다. 부엌 창의 회색 블라인드, 휘어진 살 하나, 그리고 개수대 위 고리.

고리에는 열쇠 한 개가 걸려 있었다. 열쇠 끝에 회색 고양이 열쇠고리가 매달려 있었다.

“형사님 혹시 저것 때문에 오셨어요?”

인혁이 먼저 말했다. 그는 고리에서 열쇠를 벗겨 와 마경태 손바닥에 올렸다.

“제 집 열쇠예요. 가게 사은품인데, 손님들이 강아지만 달라고 해서 고양이가 많이 남아요. 잠깐만요.”

그가 신발장 아래에서 납작한 종이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고양이가 쏟아져 나올 듯 가득했다. 투명 아크릴 안에 회색 고양이, 줄무늬 고양이, 검은 고양이 사진이 박혀 있었고, 회색이 제일 많았다. 상자 옆면에 매직으로 「열쇠 복사 사은품 고양이 200」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져가실래요? 따님 있으시면.”

“아들만 둘이에요.”

“아드님도 고양이 좋아해요.”

마경태가 상자를 내려다보며 잠깐 말이 없었다. 가희는 복도에서 한 발 들어섰다. 센서등이 꺼졌다가 그녀의 움직임에 다시 켜졌다.

“새벽 두 시에 뭐 하셨어요?”

가희가 물었다. 마경태가 고개를 돌려 가희를 보았다. 「가만있으라」는 얼굴이었다. 인혁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설거지요. 냄비를 태워서요. 야간에 가게 정리하고 들어와서 라면 끓이다가 잠들었거든요. 깨니까 냄비가 새까매. 고무장갑 끼고 수세미로 한참 문댔어요. 시끄러웠어요? 죄송해요.”

그가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를 들어 보였다. 바닥이 정말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탄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마경태가 냄비를 보고, 고양이 상자를 보고, 다시 가희를 보았다.

“그 고양이, 앞발 두 개만 하얬어요.”

인혁이 상자에서 회색 고양이 하나를 집어 불빛에 비췄다. 앞발 두 개에 흰 양말이 있었다. 하나를 더 집었다. 그것도 그랬다. 같은 사진을 수백 장 찍어 낸 사은품이었다.

“이 친구들 다 그래요. 같은 고양이예요.”

복도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1층 101호 대리기사 남궁철이 퇴근하는 대신 출근하는 차림으로, 조끼 주머니에 휴대폰 두 대를 꽂고 3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형사의 장우산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 경찰이에요?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인혁 씨 도둑 들었어?”

“아니에요, 형님. 형사님이 동네 탐문하세요.”

“아이고, 그 봉천동 사건? 나 그거 때문에 요새 손님들 집 앞에 내려 줄 때 문 앞까지 따라 들어가 보잖아. 대리비에 경호비는 안 들어 있는데. 형사님, 범인 키 커요? 작아요?”

“아저씨, 내려가세요.”

마경태가 말했다. 남궁철은 내려가지 않고 계단 난간에 기대섰다. 마경태는 열쇠를 인혁에게 돌려주고 수첩을 접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아니에요. 잠깐만요, 형사님.”

인혁이 냉장고를 열어 은박지 덮인 접시를 꺼냈다. 아침에 할머니가 담던 그 접시였다.

“2층 할머니가 부치신 거예요. 순찰 도시면 차에서 드세요. 아침에 할머니가 302호 편에 보내셨는데, 안 오길래 할머니가 아까 직접 다시 갖다주셨어요.”

남궁철이 “아이고” 하는 소리를 냈다. 가희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들고 올라온 두 번째 접시는 그녀의 냉장고 안에 있었다. 마경태는 접시를 받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그리고 복도에서 가희와 나란히 섰을 때 낮게 말했다.

“윤가희 씨. 저 집 냄비 탔어요. 고양이는 이백 개고요. 다음엔 증거 가지고 오세요. 그 전엔 저 사람한테 아무 말 하지 말고요.”

“앞발이….”

“앞발 얘기 그만.”

마경태가 계단을 내려갔다. 센서등이 층마다 켜졌다가 꺼졌다. 남궁철이 가희를 한 번 보고, 인혁을 한 번 보더니 휴대폰 두 대를 다 꺼내 들며 내려갔다. 인혁은 문틀에 기대어 고양이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하나 드릴까요, 윤가희 씨? 열쇠 복사 안 하셔도 드려요.”

가희는 문을 닫았다. 잠금 장치를 두 번 돌렸고, 걸쇠를 걸었다. 걸쇠를 거는 동안 손가락이 쇠에 두 번 긁혔다.

*

밤 열 시에 가희는 이웃방 쪽지함을 열었다. 김태희에게 보낼 쪽지를 세 번 지웠다가 네 번째에 보냈다.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두부 열쇠고리요, 혹시 사은품 같은 거였나요? 철물점에서 받는 것 같은.」

답은 이십 분 뒤에 왔다.

「아니요. 태오가 직접 맞춘 거예요. 동네 사진관에서 두부 사진 뽑아서 아크릴에 넣어 달라고 했어요. 두 개 만들었는데 하나는 제가 갖고 있어요.」

그 밑에 사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손바닥 위의 열쇠고리였다. 아크릴 모서리가 조금 깨져 있었고, 사진 속 두부의 혀가 오른쪽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그리고 한 장이 더 왔다. 진짜 고양이였다. 회색 고양이가 원룸 바닥의 택배 상자 안에 몸을 말고 들어가 있었다. 앞발 두 개가 하얬다.

「두부는 지금 제가 키워요. 태오가 남긴 것 중에 숨 쉬는 건 얘밖에 없어서요. 태오는 배달 가다가 두부가 아프다고 하면 콜을 끄고 집에 갔어요. 그래서 걔 수입이 맨날 제일 적었어요.」

가희는 그 사진을 오래 보았다. 상자 안의 두부가 카메라 쪽으로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사진 속 원룸 벽에는 배달 가방이 걸려 있었고, 지퍼 고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가희는 「사진관에서 맞춘 거면, 혀가 오른쪽이죠?」라고 쓰려다 지웠다. 새벽 두 시에 본 혀가 어느 쪽으로 나와 있었는지 그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마경태가 옳았다. 이건 증거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두부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만 보냈다.

*

다음 날 아침, 이웃방 첫 화면 맨 위에 글 하나가 고정돼 있었다. 글쓴이는 「봉천토박이(매니저)」였다. 해오름빌라 건물주 최봉길의 아이디였다. 그는 동네 부동산 사장이었고, 이웃방을 처음 만든 사람이었고, 맞춤법을 자주 틀렸다.

「해오름빌라 3층 여자분 조심하세요. 멀쩡한 철물점 사장님을 살인범으로 신고햇다고 함. 우리 동네 이미지 망침니다. 요즘 같은 때 이런 허위신고가 진짜 범인 잡는데 방해가 됨. 인혁철물 사장님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음. 이 동네 삼십년 산 사람으로서 한마디 함.」

조회 수가 칠백을 넘었다. 댓글이 마흔 개였다. 「헐 인혁 사장님을?」 「우리 집 도어락도 그분이 달아 주셨는데」 「3층 여자 누군지 알 것 같음 맨날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 「경찰은 왜 그런 신고를 받아 줌?」. 남궁철로 보이는 아이디 「대리왕궁철」은 「내가 현장에 있었는데 형사가 앞발 얘기 그만하라 했음」이라고 써 놓았다. 가희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 올렸다가 도로 내렸다.

댓글 마지막에 인혁철물 공식 아이디가 있었다.

「다들 그러지 마세요. 302호 분도 요즘 사건 때문에 많이 무서우셨을 거예요. 저는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바로 옆집이니까요.」

공감이 이백 개였다. 그 아래 댓글 하나가 방금 달려 있었다. 아이디는 「장마0703」이었고, 가입일이 오늘이었다.

「그분 신림동 원룸 살 때도 옆집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가 허위로 밝혀져서 합의금 물었어요. 원래 그런 분이에요.」

가희는 휴대폰을 쥔 채 일어나 앉았다. 그 일은 이 동네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이사 올 때 보증금을 빌려준 엄마도 몰랐다. 아는 사람은 신림동 그 원룸 건물 사람들과, 합의서를 받아 간 옆집 부부뿐이었다.

창밖에서 비가 차양을 두드렸다. 채광 통로 건너편, 301호 블라인드의 휘어진 살 하나가 오늘따라 반듯하게 펴져 있었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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