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87자)

창문 잠금장치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나만 안다 · 문가온

장마는 7월 3일 새벽 한 시 사십 분에 시작됐다. 해오름빌라 302호 부엌 창 바깥에는 건물 한가운데로 빛이 들라고 위아래로 비워 둔 좁은 틈, 채광 통로가 있었다. 그 꼭대기에 누가 덮어 둔 슬레이트 차양이 있었고, 첫 빗방울이 거기 떨어지자 소리가 방 안까지 들어왔다. 양철 지붕에 콩을 뿌리는 소리였다.

윤가희는 그 소리를 반기며 헤드폰을 한쪽만 벗었다. 모니터에는 덴마크 범죄 드라마 『호수 아래』 시즌 3의 7화가 멈춰 있었고, 화면 아래 자막 칸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금발 형사가 호숫가에서 동료에게 하는 말을 옮기는 중이었다. 영어 대본에는 “He‘s too nice. Nobody is that nice.”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 친절해.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없어.”

가희는 소리 내어 읽고 고개를 저었다. 시청자는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 그녀는 「사람이 저렇게 착할 리가 없지」로 고쳤다가, 형사 입에 붙지 않아서 다시 「저 사람, 너무 착해」로 바꿨다. 마감은 아침 아홉 시였고, 남은 분량은 이십육 분이었다.

책상은 부엌 창에 붙어 있었다. 원룸에 가까운 투룸에서 창이 제일 큰 자리였고, 창을 열면 손을 뻗어 닿을 듯한 거리에 301호 부엌 창이 있었다. 두 창 사이는 한 걸음 반쯤이었다. 바닥까지는 3층 높이였고, 밑바닥에는 늘 물이 고여 이끼 냄새가 올라왔다. 301호 창에는 회색 알루미늄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는데, 이사 온 3년 동안 가희는 그 블라인드가 다 걷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운데 살 하나가 휘어 있어서 밤에 불이 켜지면 그 자리로만 노란 빛이 새었다.

두 시 십 분에 그 빛이 켜졌다.

가희는 처음엔 보지 않았다. 옆집 사람이 밤에 물을 마시러 나오는 일은 흔했다. 그런데 물소리가 길었다. 수도꼭지를 끝까지 연 소리가 이 분 넘게 이어졌고, 그 위로 비가 차양을 두드렸다. 가희는 자막 칸에 손을 올린 채 눈만 옆으로 굴렸다.

휘어진 살 사이로 손이 보였다. 노란 고무장갑을 낀 손이 개수대 위에서 길쭉한 무언가를 물줄기 아래 오래 돌리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손은 서두르지 않았다. 물을 잠그고, 그것을 마른 수건에 싸서 아래쪽 어딘가로 내려놓은 다음, 장갑 낀 손가락으로 작은 것 하나를 집어 개수대 위 벽에 박힌 고리에 걸었다.

열쇠고리였다. 투명한 아크릴 안에 회색 고양이 사진이 들어 있었고, 고양이는 앞발 두 개에만 흰 양말을 신은 것처럼 털이 하얬다. 형광등 빛이 아크릴에 반사돼 한 번 반짝였다.

가희는 그 고양이를 알았다. 저녁 여덟 시쯤, 마감 전에 딴짓하다가 동네 커뮤니티 앱 「봉천동 이웃방」에서 본 사진이었다. 글쓴이는 김태희라는 사람이었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제 동생 태오가 늘 배달 가방에 달고 다니던 열쇠고리를 찾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두부예요. 경찰이 돌려준 유품에 이것만 없었어요. 혹시 길에서 보신 분 계시면 연락 주세요.」 사진 속에서 배낭 지퍼에 매달린 두부는 혀를 조금 내밀고 있었다. 가희는 그 글에 공감 표시만 누르고 넘겼다.

지금 그 혀가 301호 개수대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손이 멈췄다. 장갑 낀 손가락 하나가 휘어진 블라인드 살에 걸렸고, 살이 천천히 아래로 눌렸다. 틈이 두 배로 벌어졌다. 그 너머는 형광등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가희는 자기 모니터가 아직 켜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덴마크 호수의 파란 화면이 그녀의 얼굴을 창 쪽으로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가희는 모니터 전원 단추를 눌렀다. 손가락이 단추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화면이 꺼지자 방이 캄캄해졌고, 301호의 노란 틈만 남았다. 틈은 그대로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십 초쯤 뒤에 형광등이 꺼졌다.

*

가희는 책상 밑으로 내려가 냉장고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냉장고 모터가 등뼈를 따라 웅웅 울렸다. 바닥 장판은 습기를 먹어 발바닥에 쩍쩍 붙었다.

이 분쯤 지났을 때 현관문 아래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복도 센서등이었다. 해오름빌라 복도 센서등은 사람이 움직이면 켜지고 이십 초 뒤에 꺼졌다. 가희는 숨을 참고 셌다. 하나, 둘, 셋. 발소리는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도, 문 여닫는 소리도 없었다. 누가 302호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센서등은 스무 번 세고 꺼진다. 열아홉에서 불이 꺼졌다.

“미드에선 지금 나가면 죽어.”

가희는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드라마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여는 장면을 그녀는 아마 서른 번쯤 옮겼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화면에 대고 “왜 열어?” 하고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그 말을 자기 귀로 들었다.

휴대폰 밝기를 끝까지 낮추고 뉴스를 찾았다. 「봉천동 혼자 살던 20대 배달 기사 숨진 채 발견… 경찰, 앞선 세 건과 연관성 수사」. 6월 28일 기사였다. 침입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봉천동에서 혼자 사는 사람 넷이 집 안에서 숨졌고, 네 집 모두 현관이 잠겨 있었다고 했다. 이름은 김 씨, 스물아홉이라고만 나왔다. 가희는 이웃방으로 돌아가 김태희의 글을 다시 열었다. 댓글이 열한 개 달려 있었다. 「힘내세요」가 여섯 개, 「경찰은 뭐 하냐?」가 세 개였고, 둘은 고양이가 예쁘다는 말이었다.

다섯 시 사십 분, 301호 현관이 열렸다가 닫혔다. 센서등이 켜지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2층과 1층을 지나 빗속으로 나갔다. 걸음이 고르고 가벼웠다.

가희는 그제야 일어나 모니터를 켰다. 『호수 아래』의 금발 형사가 아까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멈춰 있었다. 그녀는 자막 칸에 손가락을 올리고 오래 앉아 있다가, 아홉 시 마감에 맞춰 남은 이십육 분을 다 옮겼다. 그 사이 「너무 착해」라는 대사를 세 번 고쳤고, 결국 처음 것으로 돌려놓았다.

*

“가희야! 윤가희! 장마 첫날이다!”

여덟 시 반, 계단 아래에서 구말례 할머니가 불렀다. 여든한 살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서, 자기 목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는 줄 알고 늘 동네가 다 들리게 불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102호 공시생이 가끔 그 목소리에 깨서 단어장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2층 201호 문이 열려 있었고, 기름 냄새가 계단 위까지 차올라 있었다. 할머니 부엌은 가희네보다 좁았지만 창이 남쪽이라 비 오는 날에도 밝았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무쇠 프라이팬이 있었다. 손잡이 나무가 오래전에 갈라져 떨어져 나갔는데, 그 자리를 굵은 철사가 촘촘히 감고 있었고, 철사 위에 다시 노란 전기 테이프가 감겨 손때로 갈색이 돼 있었다.

“앉아. 김치전이랑 부추전이야. 장마 첫날엔 부치는 거야.”

“할머니, 저 아침 원래 안 먹는….”

“안 먹으니까 그렇게 얇지.”

할머니는 부추전을 뒤집개 없이 팬째 들어 공중에서 뒤집었다. 전이 한 바퀴 돌아 정확히 팬에 떨어졌고, 기름이 튀어 할머니 손등에 점이 났다. 할머니는 손등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가희가 철사 손잡이를 보고 있자 할머니가 팬을 흔들었다.

“이거? 영감이 감았어. 1996년 장마 첫날에 손잡이가 빠졌는데, 새로 사자니까 아깝다고. 철사 한 뭉치 사 와서 감고는 ‘이걸로 당신 죽을 때까지 부쳐’ 그러더라. 지가 먼저 갈 줄은 몰랐지.”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고 가희는 웃지 못했다. 할머니가 부추전 한 장을 접시에 얹어 가희 앞으로 밀었다. 기름이 반짝였고 가장자리가 바삭하게 탔다. 한입 베어 물자 뜨거운 부추 즙이 입천장에 붙었다. 밤새 냉장고에 붙어 있던 등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근데 할머니. 301호 사람이요.”

“아, 그 총각!”

할머니 목소리가 한 칸 더 커졌다.

“어제 우리 현관 고쳐 줬어. 문이 안 잠겨서 영 찜찜했는데, 철물점 하는 총각이 퇴근하고 와서 한 시간을 붙들고 있더라. 돈을 안 받아. 내가 만 원 쥐여 주니까 도로 내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가. 그 총각 착하던데.”

“그분이 할머니 열쇠를 만졌어요?”

“만지지, 그럼. 고치는데.”

할머니는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얼굴로 다음 전을 부었다. 반죽이 기름에 닿아 쏴아 소리를 냈다. 가희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엇을 본 건지 말로 꺼내 보면 이랬다. 새벽 두 시에 옆집 블라인드 틈으로 고무장갑을 봤고, 고양이 열쇠고리를 봤다. 할머니가 그 말을 들으면 무슨 얼굴을 할지 가희는 알았다. 3년 전 신림동 원룸에서 가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지은 얼굴과 같을 것이다.

“할머니, 요즘 문 꼭 잠그세요. 고쳤어도요.”

“잠그지. 총각이 잘 잠기게 해 놨다니까.”

할머니는 접시 두 개에 전을 수북이 담고 한 장씩 은박지로 덮었다. 하나를 가희 손에 쥐여 주고, 다른 하나를 그 위에 얹었다.

“위에 건 301호 갖다줘. 총각 혼자 살아서 밥을 못 챙겨 먹어.”

가희는 접시 두 개를 든 채 할머니 현관에 서 있었다. 할머니 현관문 안쪽, 새로 단 은색 걸쇠가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문틀에는 동전만 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인혁철물 · 열쇠 · 도어락 · 출장」.

*

3층 계단참은 비 냄새가 났다. 계단 창이 깨진 채로 테이프만 붙어 있어서 빗물이 창틀을 타고 들어와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만 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가희는 그 웅덩이를 피해 올라가다가 멈췄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가희가 돌아보자 서인혁이 2층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검은 우산을 접어 손목에 걸었고, 다른 손에는 빨간 공구함을 들었다. 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한 칸에 하나씩 떨어졌다. 키가 크지 않았고 어깨가 둥글었다. 회색 작업복 가슴에 「인혁철물」이라고 수가 놓여 있었다. 삼십 대 중반,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302호시죠?”

“…네.”

“부침개네요. 할머니 장마 첫날.”

인혁이 가희 손의 접시를 보고 말했다. 위쪽 은박지가 조금 들려 있었다. 가희는 위 접시를 내밀지도, 감추지도 못하고 들고 있었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그 접시는 이 남자 몫이었다. 손이 저절로 아래 접시를 위로 돌려 쌓았다.

“이건 제 거예요.”

“그럼요.”

인혁은 웃으며 한 칸 더 올라왔다. 이제 둘은 같은 계단참에 서 있었다. 그의 작업복에서 기계 기름 냄새와 젖은 천 냄새가 났다. 공구함이 무릎께에서 달그락거렸다. 그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302호 창문이요. 채광 통로 쪽. 잠금장치가 헐거워 보이던데요. 바깥에서 보면 걸쇠가 반쯤 떠 있어요. 장마엔 바람 불면 덜컹거릴 거예요. 고쳐 드릴까요? 할머니 댁 하고 남은 부품이 있어서요. 돈은 안 받아요.”

가희는 접시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은박지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괜찮아요.”

“금방 해요. 십오 분이면.”

“괜찮다고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고, 계단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2층 어디선가 할머니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인혁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동안에도 눈은 가희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세요. 마음 바뀌시면 말씀하세요. 윤가희 씨.”

가희는 자기 이름을 그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302호 우편함에 이름이 붙어 있지도 않았다. 택배 상자에는 붙어 있었다. 지난주에 받은 모니터 받침대 상자를 그녀는 분리수거장에 그대로 내놓았다.

“제 창문이 헐거운지는 어떻게 아세요?”

인혁이 공구함을 왼손으로 옮겨 들었다. 그리고 301호 현관 쪽으로 한 걸음 가다가, 생각났다는 듯 돌아보았다. 머리 위 센서등이 그 움직임에 다시 켜졌다.

“맞은편이잖아요. 저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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