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84자)

두 시 십사 분

국민 판사 추첨제 · 은해록

4월 19일 목요일 아침⁠, 형사4부 소법정 방청석은 지난번의 세 배로 찼다⁠. 기자들이 맨 뒷줄에 노트북을 펴고 앉았고⁠, 상인회장인 정육점 사장도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에 앉았다⁠. 금분은 법복을 입지 않고 앞치마 차림으로 증인석 비슷한 자리에 앉았다⁠. 앞치마 주머니에 은행 봉투 하나가 접혀 들어 있었다⁠.

기피 신청서는 두 장이었다⁠. 한 장은 공판 검사가 유족 측 요청으로 낸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재단 변호사가 피고인 이름으로 낸 것이었다⁠. 부장판사가 두 신청서를 나란히 놓고 읽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검사와 변호인이 같은 이유로 같은 판사의 기피를 신청한 것은 이 법원에서 처음 봅니다⁠.⁠”

방청석 뒤쪽에서 기자들 자판 소리가 한꺼번에 빨라졌다⁠. 공판 검사가 먼저 일어나 이유를 말했다⁠. 국민 판사가 피고인 덕에 큰돈의 이익을 보았으니 유족이 재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재단 변호사가 일어났다⁠. 은테 안경이 형광등 빛을 받아 하얗게 번쩍였다⁠.

“⁠피고인 역시 같은 이유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민 판사님은 피고인에게 빚진 사람이라⁠, 그 빚을 갚으려고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결할 염려가 있습니다⁠.⁠”

금분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참는데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부장판사가 금분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금분은 일어서서 앞치마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먼저 이것부터요⁠. 어제 은행 가서 적금 깼어요⁠. 가게 열고 십 년 부은 거예요⁠. 천팔백만 원 오늘 아침에 재단 기금 계좌로 보냈어요⁠. 송금 영수증이요⁠.⁠”

금분은 봉투에서 얇은 종이를 꺼내 법정 경위에게 건넸다⁠. 경위가 부장판사에게 가져가는 동안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정육점 사장이 모자챙을 들어 올렸다⁠.

“⁠남편이 받은 걸 저는 몰랐어요⁠. 그저께 밤에 기자 전화 받고 알았어요⁠. 몰랐으니까 괜찮다고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몰라도 먹은 건 먹은 거예요⁠. 손님이 계산 안 하고 간 닭을 제가 몰랐다고 공짜가 되진 않잖아요⁠.⁠”

금분은 재단 변호사를 보았다⁠.

“⁠그리고 하나 이상한 게 있어요⁠. 피고인 변호사님이 피고인한테 빚진 판사를 빼 달래요⁠. 가게로 치면 단골이 단골 할인 싫다고 다른 집 가겠다는 거예요⁠. 저는 열두 해 장사하면서 그런 손님 한 번도 못 봤어요⁠.⁠”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부장판사가 망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재단 변호사는 웃지 않았고⁠, 검사는 골무 낀 손가락으로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검사의 입꼬리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결정은 오후 한 시에 나왔다⁠. 기각이었다⁠. 「⁠감면의 이익은 국민 판사의 배우자가 받았고⁠, 국민 판사는 알지 못했으며⁠, 알게 된 즉시 공개 법정에서 밝히고 전액을 돌려주었다⁠. 숨기지 않은 것이 공정의 증거다⁠」⁠. 법원 누리집 첫 화면에 결정문 마지막 줄이 떴고⁠, 찬별은 마지막 줄을 캡처해 가게 냉장고에 붙은 경호의 「⁠이웃이다⁠」 옆에 나란히 붙였다⁠.

*

오후 세 시⁠, 합의실 정수기 물통에서 공기 방울이 올라갔다⁠. 금분은 물을 받지 않고 탁자에 종이 한 장을 올렸다⁠. 통신사에 보낼 사실조회 신청서였다⁠. 「⁠피고인 조정목 명의 휴대전화 · 2039년 12월 18일 오전 한 시부터 여섯 시까지 수신·발신 내역⁠」⁠. 공판 검사에게서 받은 서식에 금분이 직접 칸을 메웠다⁠.

병찬은 신청서를 읽고 나서 탁자에 엎어 놓았다⁠.

“⁠반대합니다⁠. 공소 사실 밖입니다⁠. 피고인의 사생활이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고 그물을 던지는 일입니다⁠.⁠”

“⁠무엇이 나올지 알면 안 던지죠⁠.⁠”

“⁠판사님⁠. 판사님이 지금까지 모은 것은 셋입니다⁠. 피고인이 자백할 때 재단 쪽을⁠, 아니⁠, 재단 사람들이 앉은 줄을 본 것⁠. 간호사가 휴대전화를 손으로 덮은 것⁠. 3번 환자가 살았다는 것⁠. 짐작 세 개를 모아도 증거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거 찾자는 거예요⁠.⁠”

병찬은 넥타이 매듭을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두 해 전 그분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짐작으로 시작해서 짐작으로 끝내셨습니다⁠. 그분 판결문에는 증거보다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판사님⁠. 그분이 짐작으로 끝낸 거 판사님이 봤어요⁠?⁠”

“⁠배석으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금분은 병찬을 보았다⁠. 병찬은 처음으로 금분의 눈을 피했다⁠. 탁자 위의 엎어 놓은 신청서만 보았다⁠.

“⁠그때 말리셨어요⁠?⁠”

“⁠…⁠…못 말렸습니다⁠.⁠”

“⁠그럼 이번엔 말리세요⁠. 대신 저도 짐작으로 안 끝낼게요⁠. 통화 기록에 아무것도 없으면⁠, 저는 짐작 세 개 다 버릴게요⁠. 기름 버리듯이 다 버릴게요⁠.⁠”

병찬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정수기 공기 방울이 두 번 올라갔다⁠. 병찬이 신청서를 뒤집어 금분 앞으로 밀었다⁠.

“⁠기록에 반대 의견을 남기겠습니다⁠.⁠”

“⁠남기세요⁠. 판사님 이름으로 남기세요⁠.⁠”

*

다시 연 공판에서 금분이 사실조회를 하겠다고 말하자 재단 변호사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이의가 길었다⁠. 금분은 끝까지 듣고 기각한다고 말했다⁠. 망치는 두드리지 않았다⁠. 금분은 피고인석을 보았다⁠. 정목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사람처럼 감은 눈이 아니었다⁠. 기름 튀는 소리가 들리기 직전⁠, 손을 솥에서 빼는 사람처럼 질끈 감은 눈이었다⁠.

방청석 오른편 맨 끝자리에서 남자 하나가 일어났다⁠. 감색 양복⁠, 반듯한 회색 머리⁠, 깃의 재단 배지⁠. 도상철이 법정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상철은 판사석에 가볍게 목례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고 부드러웠다⁠.

*

통신사 회신은 나흘 뒤 월요일 아침에 온다고 했다⁠. 사흘 동안 금분이네 통닭은 조용했다⁠. 적금을 깬 통장에는 백몇십만 원이 남았다⁠. 튀김기 한 대의 온도 조절기가 지난주부터 들쭉날쭉했는데⁠, 수리 기사가 부른 값을 듣고 금분은 다음 달에 오라고 했다⁠.

경호는 배달 조끼를 입고 잤다⁠. 수술비 이야기가 나온 새벽 뒤로 사흘째였다⁠. 금분이 벗고 자라고 하면⁠, 법적으로 배달원은 대기 중이라고 대답했다⁠. 근거가 되는 조항은 대지 못했다⁠. 찬별은 둘 사이에서 메뉴판을 닦다가⁠, 사장님 둘이 화해하면 해시태그를 바꾸겠다고 했다⁠.

“⁠지금은 뭔데⁠.⁠”

“⁠조끼 입고 자는 남편⁠.⁠”

“⁠그거 올렸어⁠?⁠”

“⁠구독자 열한 명이에요⁠. 제 친구들이에요⁠. 다 사장님 편이에요⁠.⁠”

일요일 밤⁠, 경위가 후라이드를 포장하러 와서 계산대 옆 노란 공을 오래 보았다⁠. 공 안의 종이 이야기를 금분이 해 주었다⁠. 경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난 두 해 동안 국민 판사 열한 명이 받은 공을 다 보았는데 공 속 종이를 꺼내 읽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다들 공만 책상에 올려 두었다고⁠.

경위가 나가고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 셔터 아래로 슬리퍼 신은 발이 보였다⁠. 미경이었다⁠. 천막에서 상가까지 걸어온 발이었다⁠. 미경은 허리를 숙여 셔터 밑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 선 채 말했다⁠.

“⁠반반 한 마리⁠. 포장⁠.⁠”

“⁠언니⁠, 재판 얘기는⁠—⁠”

“⁠재판 얘기 안 해⁠. 닭 얘기 해⁠. 내일부터 굶으니까 오늘 먹는 거야⁠.⁠”

금분은 대답하지 않고 튀김기에 닭을 넣었다⁠. 온도 조절기가 들쭉날쭉해서 기름 온도를 손등으로 가늠하며 튀겼다⁠. 반반을 상자에 담고⁠, 무를 두 개 넣었다가 하나를 더 넣었다⁠. 셔터 아래로 상자를 내밀자 미경이 상자를 받아 들고 무게를 손으로 쟀다⁠.

“⁠무 세 개네⁠.⁠”

“⁠무 많이는 달라고 하면 다 줘요⁠.⁠”

“⁠나 달라고 안 했는데⁠.⁠”

“⁠그럼 제가 실수한 거예요⁠.⁠”

미경은 오천 원짜리 넉 장을 셔터 밑으로 밀어 넣었다⁠. 금분이 거스름돈을 주려고 허리를 숙였을 때⁠, 슬리퍼는 이미 골목 끝으로 가고 있었다⁠. 금분은 셔터 밑에 쪼그려 앉아 지폐를 주웠다⁠. 지폐 귀퉁이가 시침핀 자국처럼 작게 접혀 있었다⁠.

*

4월 23일 월요일 오전 열 시⁠, 대법정 중계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방청석 왼편 맨 앞에 미경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노순자의 사진을 올렸고⁠, 사진 옆에 뚜껑을 따지 않은 생수 한 병이 있었다⁠. 오늘이 미경이 말한 날이었다⁠. 미경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

공판 검사가 일어나 통신사 회신을 읽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2039년 12월 18일⁠, 피고인 휴대전화⁠. 오전 한 시 오십이 분⁠, 본관 당직실 내선 발신⁠, 사십 초⁠. 한 시 오십구 분⁠, 시설팀 수신⁠, 일 분 십 초⁠. 두 시 십사 분⁠, 수신⁠.⁠”

검사가 종이에서 눈을 떼고 판사석을 보았다⁠. 다시 종이로 돌아갔다⁠.

“⁠발신 번호 명의⁠, 세온의료재단 상임이사 도상철⁠. 통화 시간⁠, 일 분 사십 초⁠.⁠”

방청석 오른편이 조용해졌다⁠. 재단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앞만 보았다⁠. 금분은 판사석 서랍을 열어 노란 공을 꺼냈다⁠. 공을 오른손에 쥐었다⁠. 공의 매끈한 표면이 손바닥에 차갑게 붙었다⁠.

“⁠피고인⁠. 두 시 십사 분에 상임이사님하고 무슨 얘기 했어요⁠?⁠”

정목이 일어섰다⁠. 재단 변호사가 정목의 팔꿈치를 잡고 귀에 대고 무언가 말했다⁠. 정목은 팔꿈치를 빼지 않았고⁠, 변호사의 말을 다 들은 다음 입을 열었다⁠.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진술하지 않겠습니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정목은 말을 마치고도 앉지 않았다⁠. 난간을 쥔 손이 떨렸다⁠. 금분은 정목의 손을 보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굳은살이 형광등 아래 노랗게 빛났다⁠. 앰부백을 다섯 시간 쥐었던 손이 지금은 피고인석 난간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진술 안 하셔도 돼요⁠. 그건 피고인 권리예요⁠.⁠”

금분은 공판 검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검사님⁠. 사건 밤 별관 중환자실 환자 스물네 명 의무 기록⁠, 처음부터 갖고 계셨죠⁠?⁠”

“⁠네⁠. 공소 제기할 때 받았습니다⁠.⁠”

“⁠3번 병상 환자분이 누구예요⁠?⁠”

검사가 서류 묶음을 넘겼다⁠. 골무 낀 손가락이 한 장에서 멈췄다⁠. 검사는 멈춘 장을 오래 보았다⁠. 3번은 살아서 퇴원한 환자였고⁠, 공소장에 오른 열두 명 가운데 없었다⁠. 검사가 공소장을 쓸 때 들여다볼 까닭이 없던 장이었다⁠.

“⁠3번 병상 환자는 일흔여덟 살 여자입니다⁠. 보호자 연락처가⁠…⁠…⁠”

검사가 말을 멈췄다⁠. 병찬이 금분 곁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보호자는 세온의료재단 이사장입니다⁠. 환자는 이사장의 어머니입니다⁠.⁠”

방청석 왼편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금분은 공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다른 손으로 사건 기록을 넘겼다⁠. 간호 기록 사본이 있는 장이었다⁠. 손가락이 한 줄 위에서 멈췄다⁠.

「⁠02⁠:05 · 4번 병상 인공호흡기 비상 전원 해제 · 3번 병상 비상 전원 연결 · 중증도 점수에 따름⁠」

“⁠간호 기록에는 4번을 뺀 시각이 두 시 오 분이에요⁠. 전화는 두 시 십사 분이고요⁠. 기록대로면 전화 오기 전에 옮긴 거네요⁠.⁠”

금분은 정목을 보았다⁠. 정목은 간호 기록이라는 말에서 눈을 들었다가⁠, 방청석 왼편 맨 앞으로 눈을 옮겼다⁠. 노순자의 사진이 있는 자리였다⁠. 정목은 사진을 오래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미경이 일어서 있었다⁠. 무릎에 있던 생수병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병은 피고인석 쪽으로 굴러가다가 난간 아래에서 멈췄다⁠. 미경은 병을 보지 않았다⁠.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고⁠, 정목을 똑바로 보았다⁠.

“⁠그 기록⁠, 누가 썼어요⁠?⁠”

정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단 변호사도 일어서지 않았다⁠. 중계 카메라의 빨간 불이 미경의 얼굴을 비추었다⁠. 미경의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아침을 거른 입술이었다⁠.

“⁠우리 엄마 자리에 이사장 엄마 꽂은 거⁠, 그거 누가 시켰어요⁠?⁠”

금분은 망치를 들지 않았다⁠. 경위가 미경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가⁠, 판사석을 보고 멈췄다⁠. 금분은 손바닥 안의 노란 공을 더 꽉 쥐었다⁠. 공 속의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