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87자)

별점 하나

국민 판사 추첨제 · 은해록

“⁠별 하나⁠, 판사 놀이 하느라 닭이 탔음⁠.⁠”

찬별이 태블릿을 두 손으로 들고 아나운서처럼 읽었다⁠. 아침 열 시⁠, 가게 문을 열기 전이었다⁠. 금분은 무를 썰다가 칼을 멈췄다⁠.

“⁠닭 안 탔어⁠.⁠”

“⁠다음이요⁠. 별 하나⁠, 피고인 단골이라던데 무 많이는 판사 특혜냐⁠.⁠”

“⁠무 많이는 다 줘⁠. 달라고 하면⁠.⁠”

“⁠별 하나⁠, 유족 앞에서 반값 장사⁠, 소름⁠.⁠”

금분은 칼을 도마에 내려놓았다⁠. 상가 앞에서 백 마리를 반값에 판 날이 사진으로 돌고 있었다⁠. 사진 속 박스 뚜껑에는 「⁠사정이 있는 닭⁠」이라는 글씨가 또렷했고⁠, 매직으로 북북 지운 줄 아래에서 「⁠판사님이⁠」 세 글자가 반쯤 비쳐 보였다⁠.

“⁠다음은 반대쪽이에요⁠. 별 하나⁠, 자백한 의사를 왜 괴롭힘⁠, 우리 엄마 살린 교수님임⁠. 별 하나⁠, 국민 판사가 병원 망하게 하면 우리 동네 응급실 어디로 가냐⁠.⁠”

밤사이 리뷰가 마흔 개 넘게 달렸다⁠. 닭을 먹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앱 첫 화면에 노란 띠가 떴다⁠. 「⁠최근 이 가게에 신고된 리뷰가 많습니다 · 평점 4⁠.1⁠」⁠. 사흘 전까지 4⁠.9였다⁠.

“⁠사장님⁠, 제가 답글 달아도 돼요⁠? 진심을 담아서요⁠.⁠”

“⁠뭐라고 쓸 건데⁠?⁠”

찬별이 밤새 써 둔 답글을 띄웠다⁠. 「⁠고객님⁠, 저희 닭은 타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장님의 속이 조금 탔습니다⁠. 그 속을 매일 아침 새 기름으로 갈아 넣으며⁠, 저희는 오늘도 법과 양념 사이에서 바삭함을 지키겠습니다⁠.⁠」

“⁠지워⁠.⁠”

“⁠감동 포인트가 있는데요⁠.⁠”

“⁠법과 양념 사이가 뭐야⁠. 지워⁠.⁠”

경호가 주방 안쪽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여보⁠, 변호사 언니가 그러는데 이런 건 법적으로 업무방해래⁠. 형법 삼백십사 조⁠.⁠”

“⁠이번엔 맞아⁠?⁠”

“⁠이번엔 끝까지 봤어⁠. 광고 건너뛰기 눌렀어⁠.⁠”

금분은 웃지 않으려다 웃었다⁠. 웃고 나서 태블릿을 엎어 놓았다⁠. 엎어 놓은 태블릿 밑에서 주문 알림이 한 번 울렸다⁠. 순살 한 마리였다⁠. 평소 금요일이면 아침 열 시에 예약 주문이 열 개는 들어와 있었다⁠.

*

밤 아홉 시가 되자 금분은 저도 모르게 태블릿을 보았다⁠. 주문 창은 조용했다⁠. 「⁠반반 한 마리 · 목 따로⁠」는 오지 않았다⁠. 정목은 금분이 보낸 거절 사유대로 하고 있었다⁠.

경호가 튀김기 앞에서 무언가를 튀기고 있었다⁠. 냄새가 익숙했다⁠. 닭 목이었다⁠. 손질하면서 따로 모아 둔 목을 경호가 습관처럼 한 바구니 튀겨 낸 것이었다⁠.

“⁠누구 거야⁠?⁠”

“⁠우리 거⁠. 버리기 아깝잖아⁠.⁠”

둘은 꺼진 튀김기 옆 의자에 나란히 앉아 목을 뜯었다⁠. 목뼈 사이 살은 발라 먹기가 성가셨지만⁠, 씹을수록 고소했다⁠. 정목이 왜 목을 따로 시키는지 금분은 처음으로 알았다⁠. 경호가 목뼈를 접시에 내려놓으며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내복 두 겹 아래 흉터가 있는 자리였다⁠.

“⁠여보⁠. 그 선생님 감옥 가⁠?⁠”

“⁠몰라⁠. 그거 정하려고 내가 앉아 있는 거야⁠.⁠”

“⁠수술 끝나고 선생님이 나한테 그랬어⁠. 다음 주부터 닭 시키겠다고⁠. 사장님 닭 먹으려면 오래 살라고⁠.⁠”

“⁠그 말은 처음 듣네⁠.⁠”

“⁠말 안 했어⁠. 여보 울까 봐⁠.⁠”

금분은 목 하나를 더 집었다⁠. 수술비 이야기가 나오면 늘 그랬듯이⁠, 경호는 보험에서 다 나왔잖아 하고 먼저 말을 막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막았다⁠. 금분은 손님이 묻지도 않은 거스름돈 이야기를 꺼낼 때를 떠올렸다가⁠, 남편 얼굴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경호는 목뼈만 열심히 발랐다⁠.

*

재단의 정비 기록은 제출 기한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 오십 분에 법원에 들어왔다⁠. 판사실 탁자 위에 상자 두 개가 놓였다⁠. 병찬이 첫 묶음을 꺼내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종이마다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업체 이름⁠, 단가⁠, 날짜 몇 개⁠, 그리고 문서 맨 아래 결재한 사람의 이름까지 굵은 먹으로 지워져 있었다⁠.

금분은 한 장을 들어 형광등에 비춰 보았다⁠. 달걀을 불빛에 비춰 속을 보던 버릇이었다⁠. 먹 아래로 글자가 비치지 않았다⁠. 앞뒤를 같이 덮은 먹이었다⁠.

“⁠꼼꼼하게도 칠했네⁠.⁠”

“⁠일부 불이행입니다⁠. 다시 명령하시면 됩니다⁠. 영업 비밀이 걱정이라면 법정에서 공개하지 않고 판사들만 원본을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먹 칠하기 전 거로 다시 내라고 하세요⁠. 다음 주 수요일까지요⁠.⁠”

병찬이 명령서 초안을 쓰는 동안 금분은 검은 줄의 개수를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정밀 점검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장마다 검은 줄이 유독 많았다⁠. 2039년 4월이라는 글자 옆이 특히 그랬다⁠. 발전기 스티커에 적혀 있던 달이었다⁠.

판사실 창밖으로 법원 정문 앞이 내려다보였다⁠. 미경이 영정 탁자 옆에 새로 천막을 치고 있었다⁠. 미경 혼자 말뚝을 박고 있었다⁠. 망치 소리가 창유리를 타고 작게 들어왔다⁠.

*

목요일 밤 열한 시 반⁠, 금분이네 통닭 셔터를 반쯤 내린 안쪽에 상인 여섯이 모였다⁠. 플라스틱 의자를 둥글게 놓고⁠, 가운데 탁자에 금분이 팔다 남은 순살과 콜라를 내놓았다⁠. 정육점 사장⁠, 떡집 사장⁠, 미용실 사장⁠, 약국 약사⁠, 철물점 사장⁠, 그리고 2층에서 내려온 미경이었다⁠. 미경은 문 가까운 의자에 앉아 시침핀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상인회장인 정육점 사장이 종이 한 장을 탁자에 펼쳤다⁠. 세온의료재단 로고가 박힌 안내문이었다⁠. 「⁠영통중앙상가 임대 계약 갱신 관련 안내 · 올해 갱신분부터 시세를 반영한 임대료 조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상철의 이름과 직함이 반듯하게 찍혀 있었다⁠.

“⁠오늘 상가 열여섯 집에 다 돌았어⁠. 검토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다들 알지⁠?⁠”

“⁠올리겠다는 거죠⁠.⁠”

떡집 사장이 말하고 나서 순살 한 조각을 집었다⁠. 집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

“⁠금분 사장⁠, 내가 돌려 말 안 할게⁠. 이번 재판 때문이야⁠. 재단 사람들이 지난주부터 상가에 와서 둘러보고 가⁠. 우리 아들 원무과에서도 말 나와⁠. 국민 판사 가게가 우리 건물에 있다고⁠.⁠”

“⁠그래서요⁠?⁠”

정육점 사장이 떡집 사장에게 눈짓을 했다⁠. 떡집 사장이 가방에서 누런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앞면에 붓펜 글씨가 있었다⁠. 「⁠금분 사장 해방 기금⁠」⁠.

“⁠우리가 모았어⁠. 삼백이십만 원⁠. 나머지는 상인회 비상금에서 채워 줄게⁠. 벌금 천만 원 다 내 줄 테니까⁠, 판사 그만둬⁠. 다시 우리 동네 통닭집 사장 해⁠.⁠”

봉투 옆에 떡집 사장이 비닐봉지를 하나 더 올려놓았다⁠. 시루떡이 한 말 들어 있었다⁠.

“⁠이건 뭐예요⁠?⁠”

“⁠해방 떡⁠.⁠”

미용실 사장이 콜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철물점 사장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웃음이 났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아무도 봉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금분은 봉투를 보았다⁠. 봉투가 두꺼웠다⁠. 만 원짜리가 많고 오만 원짜리는 몇 장 안 되는 두께였다⁠. 상인들 지갑에서 한 장 두 장 나온 돈이었다⁠. 금분은 손님들이 계산대에 지폐를 펴 놓는 손을 하나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떡집 사장은 늘 지폐 귀퉁이를 접어서 냈고⁠, 약사는 동전을 먼저 냈다⁠.

“⁠고마워요⁠. 진짜로요⁠. 근데 이건 못 받아요⁠.⁠”

“⁠금분 사장⁠.⁠”

“⁠제가 그만두면요⁠, 다음 국민 판사가 공 뽑혀서 와요⁠. 그 사람은 발전기 기름 색 볼 줄 몰라요⁠. 미경 언니 엄마가 4번이었는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다시 해요⁠. 재단은 그거 좋아해요⁠. 시간 끌수록 좋아해요⁠.⁠”

“⁠그건 금분 사장 생각이고⁠. 우리는 장사를 해야지⁠. 임대료 오르면 떡집은 끝이야⁠.⁠”

떡집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사는 탁자만 보았다⁠. 미용실 사장은 휴대전화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정육점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아서 다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우리 그이가 작년에 세온 응급실에서 살았어요⁠. 새벽 세 시에 갔는데 조정목 교수가 내려와서 봐 줬어요⁠. 그런 의사가 감옥 가면⁠, 다음에 우리 그이 같은 사람은 누가 봐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경이 무릎 위 시침핀 상자를 꽉 쥐었다⁠. 상자 뚜껑이 딸깍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솔직히⁠, 의사 선생이 다 인정했다며⁠. 그럼 끝난 거 아니야⁠? 왜 금분 사장 혼자 일을 키워⁠?⁠”

문간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미경이 일어서 있었다⁠. 시침핀 상자를 의자에 내려놓고 탁자로 걸어왔다⁠. 미경은 봉투를 집어 들더니⁠, 정육점 사장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안 낼래⁠. 내 몫 빼⁠.⁠”

“⁠미경 씨는 유족이니까 그렇지⁠.⁠”

“⁠나도 상인이야⁠. 월세 나도 내⁠. 내 가게도 재단 건물이야⁠.⁠”

미경은 의자로 돌아가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입에 핀을 물지 않았는데도 말이 짧았다⁠.

“⁠처음엔 나도 그만두라고 했어⁠. 근데 발전기실에서 금분 씨가 기름 막대 뽑는 거 봤어⁠. 재단 사람들 얼굴이 하얘지더라⁠. 판사가 바뀌면 그 얼굴 다시 못 봐⁠.⁠”

정육점 사장은 봉투를 손으로 누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떡집 사장이 해방 떡 봉지를 조용히 당겨 무릎에 올렸다⁠. 금분은 의자에서 일어나 정육점 사장 앞에 섰다⁠.

“⁠사장님⁠. 내일부터 닭 넣지 마시라고 하면 안 넣으실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럼 됐어요⁠. 벌금은 제가 안 내요⁠. 판사도 제가 해요⁠. 임대료는 제가 재단 사람한테 따질게요⁠. 법정에서요⁠.⁠”

정육점 사장은 한숨을 쉬고 봉투를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상인회 이름으로 법원에 의견서를 내겠다고 했다⁠. 국민 판사 교체를 바라는 상인들의 뜻을 적어서⁠. 금분은 말리지 않았다⁠. 의견서를 내는 것도 동네 사람의 재판이었다⁠.

상인들이 하나씩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가던 떡집 사장이 해방 떡 봉지를 계산대에 슬쩍 놓고 갔다⁠. 떡은 떡이었다⁠.

*

금분은 혼자 남아 셔터를 마저 내렸다⁠. 텔레비전을 켜자 밤 뉴스가 법사위 소식을 하고 있었다⁠. 법안을 낸 의원이 영통중앙상가 사진을 띄워 놓고 말했다⁠. 「⁠“⁠국민 판사 한 명 때문에 상인들이 의견서를 낸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도의 현실입니다⁠”⁠」⁠. 금분은 텔레비전을 껐다⁠. 의견서는 아직 법원에 가지도 않았다⁠.

찬별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장님 답글 지웠어요⁠. 대신 하나만 남겼어요⁠. 「⁠고객님⁠, 다음엔 드시고 별 주세요⁠.⁠」 이건 안 지울래요⁠」⁠. 금분은 답장을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미경이 꿰맨 주머니 실이 손끝에 까슬하게 닿았다⁠.

*

이튿날 아침 아홉 시⁠, 금분은 법원 정문을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미경의 천막 앞에 기자 셋이 서 있었다⁠. 영정 탁자 앞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매직 글씨였다⁠.

「⁠세온의료재단은 먹칠한 서류 말고 진짜 서류를 내라⁠」

미경이 기자들 앞에서 휴대전화 녹음기에 대고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재단이 시간 끄는 거 판사가 막아야 돼요⁠. 사월 이십삼일까지 재단이 진짜 서류를 안 내면⁠, 그날부터 저는 밥 안 먹어요⁠.⁠”

기자 하나가 금분을 알아보고 마이크를 돌렸다⁠. 카메라 불빛에 금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미경이 기자들 사이로 금분을 보았다⁠. 둘 사이에 영정 열두 장이 있었다⁠. 맨 끝 노순자의 사진은 콩나물시루 앞에서 웃고 있었다⁠.

“⁠언니⁠, 굶지 마요⁠. 서류는 받아 낼게요⁠.⁠”

“⁠받아 내⁠. 날짜 잡아⁠.⁠”

“⁠기름 다 걸러야 날짜 잡아요⁠. 덜 거른 기름으로 튀기면 다 버려요⁠.⁠”

“⁠그럼 빨리 걸러⁠.⁠”

미경은 몸을 돌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입구가 내려왔다⁠. 천막 앞에 생수병이 한 상자 놓여 있었고⁠, 상자 위에 매직으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4⁠.23⁠」⁠. 미경이 거기서부터 하루씩 지워 나갈 날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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