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419자)

공청회

국민 판사 추첨제 · 은해록

5월 24일 목요일 오후 두 시⁠, 금분이네 통닭 계산대 텔레비전 앞에 의자 다섯 개가 놓였다⁠. 튀김기는 꺼져 있었고 기름도 다 퍼냈다⁠. 경호가 닦아 놓은 기름솥 바닥이 형광등 아래 은색으로 빛났다⁠. 가게에 닭 냄새 대신 세제 냄새가 났다⁠. 열두 해 만에 처음이었다⁠.

찬별이 리모컨으로 국회 방송을 틀었다⁠.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이 나왔다⁠. 긴 반원 탁자에 의원들이 앉았고⁠, 맞은편 진술인석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법학 교수 하나⁠, 시민단체 사람 하나⁠, 그리고 맨 끝자리에 흰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남자⁠.

“⁠판사님이다⁠.⁠”

경호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당겼다⁠. 떡집 사장이 해방 떡 남은 것을 접시에 담아 들어왔다⁠. 미용실 사장도 내려왔다⁠. 둘 다 오늘은 가게를 반나절 닫았다고 했다⁠. 찬별이 휴대전화로 화면을 찍으며 작게 중계했다⁠.

“⁠지금 법안 낸 의원님이 말해요⁠. 아⁠, 우리 가게 얘기 나와요⁠.⁠”

화면 속 의원이 서류를 넘겼다⁠. 「⁠“⁠수원의 한 국민 판사는 통닭집 사장입니다⁠. 재판 도중 증인에게 김밥을 권했고⁠, 재단 상임이사에게 콜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법이 장사 말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의실 뒷줄에서 웃음이 났다⁠. 의원은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두 해 전 판결문이 다시 화면에 떴다⁠. 세 번째 문단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장님⁠, 김밥 권한 거 국회 기록에 남았어요⁠.⁠”

“⁠김밥은 맛있었대⁠.⁠”

“⁠그건 안 남았어요⁠.⁠”

법학 교수가 먼저 진술했다⁠. 감정 판결의 위험⁠, 항소심 파기율⁠, 사법의 전문성⁠. 시민단체 사람이 다음이었다⁠. 사법 불신⁠, 이웃의 재판⁠, 국민의 참여⁠. 둘의 말은 서로 맞물리지 않고 나란히 지나갔다⁠. 경호가 졸았다⁠. 떡집 사장이 경호 옆구리를 찔렀다⁠.

위원장이 맨 끝 진술인을 불렀다⁠. 수원지방법원 형사3부 부장판사 한병찬⁠. 병찬이 마이크 앞으로 몸을 당겼다⁠. 화면 속 병찬은 법정에서보다 작아 보였다⁠. 넥타이 매듭에 손을 대지 않았다⁠.

「⁠“⁠두 해 전 이 법안이 근거로 삼는 판결에⁠, 저는 배석으로 서명했습니다⁠. 판결 이유 세 번째 문단이 법정형을 넘는 것을 알면서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 판결이 뒤집혔고⁠, 판결을 쓴 국민 판사는 가게를 닫았습니다⁠. 말리지 못한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가게 안도 조용해졌다⁠. 경호가 눈을 떴다⁠.

「⁠“⁠그래서 저는 이 제도를 가장 의심하는 판사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국민 판사가 감정으로 판결할까 봐 처음부터 반대 의견을 들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현장 검증 날⁠, 국민 판사가 발전기의 엔진 기름 색을 보고 정비가 미뤄졌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스티커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못 봤을 겁니다⁠”⁠」

찬별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떡집 사장이 떡을 집다 말았다⁠. 금분은 의자 끝에 걸터앉은 채 손으로 앞치마 주머니를 쥐었다⁠. 미경이 빨간 실로 꿰맨 자리였다⁠.

「⁠“⁠이 제도를 없앨지 말지⁠, 이번 사건 판결을 보고 정해 주십시오⁠. 판결이 감정이라면 저는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겠습니다⁠. 판결이 법이라면 저는 이 제도를 지키는 데 서명하겠습니다⁠”⁠」

법안을 낸 의원이 마이크를 켰다⁠. 「⁠“⁠그럼 판사님은 그 국민 판사의 판결에 서명하시겠습니까⁠?⁠”⁠」

화면 속 병찬은 잠깐 생각했다⁠. 가게 안의 다섯 사람이 숨을 멈췄다⁠.

「⁠“⁠읽어 보고 정하겠습니다⁠.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법안을 낸 의원이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그 국민 판사는 피고인 덕에 남편 수술비 천팔백만 원을 감면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판결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병찬은 이번에는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은 그 사실을 안 다음 날 가게 적금을 깨서 전액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공개 법정에서 직접 밝혔습니다⁠. 저는 판사로 스물여섯 해를 일했습니다⁠. 받은 것을 그렇게 돌려준 사람을 저는 법정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경호가 박수를 쳤다⁠. 혼자 쳤다⁠. 떡집 사장이 경호 손을 잡아 내렸다⁠. 찬별이 휴대전화 화면을 금분에게 내밀었다⁠. 중계 댓글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판사가 국회에서 자기 잘못 말하는 거 처음 봄⁠」 「⁠결국 닭집 판결에 제도가 걸림ㅋㅋ⁠」 「⁠닭집 아니고 국민 판사⁠」⁠. 금분은 화면을 밀어냈다⁠.

“⁠법적으로 저건 국회법 몇 조야⁠?⁠”

경호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저녁 일곱 시⁠, 금분은 계산대에 영수증 용지 한 롤을 통째로 꺼내 놓았다⁠. 판결문 초안을 쓸 종이였다⁠. 병찬이 건넨 판결문 열한 개를 옆에 펼쳐 놓고⁠, 맨 앞장의 순서를 따라 적어 보기로 했다⁠. 사건 번호⁠, 피고인⁠, 검사⁠, 변호인⁠. 다음 줄에서 볼펜이 멈췄다⁠.

「⁠주문⁠」

금분은 두 글자를 한참 보았다⁠. 판결문 열한 개가 모두 같은 자리에 같은 낱말을 두고 있었다⁠. 결론을 적는 자리였다⁠.

“⁠찬별아⁠. 판결문 첫 줄이 주문이래⁠.⁠”

퇴근하려고 헬멧을 들었던 찬별이 도로 내려놓고 영수증 롤을 들여다보았다⁠.

“⁠사장님 전문이잖아요⁠. 열두 해 주문 받으셨잖아요⁠.⁠”

“⁠이건 받는 게 아니고 내리는 거야⁠.⁠”

“⁠그럼 반대로 하면 되죠⁠. 손님이 뭘 원하는지 다 듣고⁠, 사장님이 뭘 줄지 정하는 거잖아요⁠. 반반이냐⁠, 후라이드냐⁠.⁠”

금분은 웃으려다 웃지 않았다⁠. 찬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손님이 원하는 것과 가게가 줄 수 있는 것은 늘 달랐다⁠. 무 많이는 다 줄 수 있었고⁠, 날개만 열 개는 줄 수 없었다⁠. 날개만 열 개를 달라는 손님에게는 날개만 열 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안 되는 까닭을 말했다⁠. 그래야 손님이 다시 왔다⁠.

금분은 「⁠주문⁠」 아래에 한 줄을 쓰다가 줄을 그었다⁠. 두 번째 줄도 그었다⁠. 영수증 용지가 계산대 아래로 둘둘 풀려 내려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공청회를 다시 틀었다⁠. 화면 귀퉁이에 외신 기사 제목이 지나갔다⁠. 「⁠한국 판사⁠, 국회에서 “⁠판결을 보고 정해 달라⁠”⁠」⁠. 금분은 텔레비전을 끄고 볼펜을 다시 쥐었다⁠.

*

밤 아홉 시⁠,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 문을 누가 두드렸다⁠. 셔터 아래로 구두 두 짝이 보였다⁠. 반짝이게 닦은 검은 구두였다⁠. 금분이 셔터를 올리자 병찬이 서 있었다⁠. 양복 상의를 벗어 팔에 걸쳤고⁠, 다른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었다⁠. 봉지 밑이 축축했다⁠.

“⁠판사님 가게에 닭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병찬이 봉지를 계산대에 올렸다⁠. 생닭 두 마리였다⁠. 얼음 녹은 물이 봉지 밑으로 번졌다⁠.

“⁠수원 시장에서 샀습니다⁠. 닭집 사장님께 어떤 닭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튀길 거면 십 호를 사라고 하셨습니다⁠. 십 호가 무엇인지는 묻지 못했습니다⁠.⁠”

“⁠닭 크기예요⁠. 십 호면 천 그램⁠.⁠”

“⁠그렇군요⁠. 오늘 하나 배웠습니다⁠.⁠”

금분은 생닭을 보았다⁠. 튀김기를 보았다⁠. 튀김기 뒤 벽의 흰 콘센트가 비어 있었다⁠. 엿새 전 제 손으로 뽑은 자리였다⁠. 바닥에 굵은 플러그가 똬리를 틀고 놓여 있었다⁠.

“⁠판사님⁠. 저 가게 닫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오늘만 열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손으로 닭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판결문을 읽기 전에 한 번은 먹어 보고 싶습니다⁠.⁠”

금분은 웃었다⁠. 웃음이 터져서 한참 멈추지 않았다⁠. 병찬은 웃지 않고 기다렸다⁠. 금분은 튀김기 뒤로 손을 넣어 플러그를 집었다⁠.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뽑지 않았다가⁠, 한 번 뽑았던 플러그였다⁠. 콘센트 구멍에 쇠를 맞추고 밀어 넣었다⁠. 작은 초록 불이 들어왔다⁠.

“⁠오늘만이에요⁠.⁠”

“⁠오늘만입니다⁠.⁠”

경호가 이층에서 내려와 기름통을 들었다⁠. 찬별은 퇴근한 뒤였다⁠. 금분은 생닭 두 마리를 손질했다⁠. 날개를 접고⁠, 다리를 꺾고⁠, 목을 따로 떼어 냈다⁠. 병찬이 계산대 너머에서 금분의 손을 보았다⁠. 금분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목은 왜 따로 떼십니까⁠?⁠”

“⁠목은 살이 적어서 다른 데랑 같이 튀기면 먼저 타요⁠. 따로 튀겨야 돼요⁠. 그래서 목 따로예요⁠. 선생님이 처음 시킬 때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그러고는 다음 주부터 목을 따로 시켰어요⁠.⁠”

기름이 데워지는 동안 둘은 플라스틱 탁자에 마주 앉았다⁠. 병찬이 셔츠 소매 단추를 풀어 두 번 걷었다⁠. 병찬이 소매를 걷는 것을 금분은 처음 보았다⁠.

병찬의 눈이 계산대 아래로 풀려 내려온 영수증 롤에 가 있었다⁠. 줄이 그어진 글씨가 몇 뼘이나 이어져 있었다⁠.

“⁠판결문입니까⁠?⁠”

“⁠초안이요⁠. 아직 주문도 못 썼어요⁠. 다 쓰면 보여 드릴게요⁠. 지금 보시면 판사님이 말리실 거잖아요⁠.⁠”

“⁠말릴 겁니다⁠.⁠”

“⁠그러니까요⁠.⁠”

금분은 영수증 롤을 둘둘 감아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병찬은 서랍이 닫히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판사님⁠. 하나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닭 먹으러 왔다면서요⁠.⁠”

“⁠둘 다입니다⁠.⁠”

병찬은 탁자 위에 두 손을 포개 올렸다⁠.

“⁠판결 이유에 재단의 발전기 이야기를 쓰시면⁠, 저는 반대 의견을 붙이겠습니다⁠. 서명은 하겠습니다⁠. 판사님의 결론을 제가 바꾸지는 못하니까요⁠. 다만 반대 의견을 판결문 뒤에 붙여서 공개하겠습니다⁠. 피고인 아닌 사람의 잘못을 판결 이유에 쓰는 것은 판결의 범위를 넘는다고 쓰겠습니다⁠. 국회는 아마 제 반대 의견을 오려 갈 겁니다⁠.⁠”

“⁠쓰세요⁠.⁠”

병찬이 금분을 보았다⁠.

“⁠판사님 이름으로 쓰세요⁠. 저는 제 이름으로 쓸게요⁠. 판사님 반대 의견도 사람들이 읽잖아요⁠. 둘 다 있어야 돼요⁠. 한쪽만 있으면 그게 감정이에요⁠.⁠”

“⁠두 해 전에는 반대 의견을 쓰지 못했습니다⁠. 서명만 했습니다⁠.⁠”

“⁠그럼 이번엔 쓰세요⁠. 그게 판사님 몫이에요⁠.⁠”

튀김기 타이머가 울렸다⁠. 기름 온도가 다 오른 소리였다⁠. 금분이 일어나 닭에 튀김옷을 입혔다⁠. 닭이 기름에 들어가자 지글지글 소리가 가게를 채웠다⁠. 엿새 만의 소리였다⁠. 경호가 주방 문간에서 소리를 듣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닭이 나오자 병찬은 나무젓가락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금분이 비닐장갑을 건넸다⁠. 병찬은 비닐장갑도 내려놓았다⁠. 맨손으로 다리 하나를 집었다⁠. 뜨거워서 손을 털었다⁠. 다시 집었다⁠. 한 입 베어 물고 오래 씹었다⁠.

“⁠어떠세요⁠?⁠”

“⁠판결문으로 쓰기 어려운 맛입니다⁠.⁠”

“⁠그게 칭찬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입니다⁠.⁠”

금분은 따로 튀긴 목 두 개를 접시에 담아 병찬 앞에 놓았다⁠. 병찬은 목 하나를 집어 뼈 사이 살을 이로 발라 먹었다⁠. 서툴렀다⁠. 다 먹고 나서 뼈를 접시에 내려놓고 오래 보았다⁠.

“⁠목 따로가 무엇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판사님⁠. 선고 날은 언제로 해요⁠?⁠”

“⁠결심이 25일입니다⁠. 임기는 6월 5일까지입니다⁠. 선고는 6월 4일 월요일이 맞습니다⁠. 판결문을 쓰실 시간은 열흘입니다⁠.⁠”

“⁠열흘이면 닭 천 마리 튀길 시간이네요⁠.⁠”

“⁠판결문 한 장은 닭 몇 마리입니까⁠?⁠”

“⁠몰라요⁠. 처음 써 봐요⁠.⁠”

병찬이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다림질이 반듯한 하얀 손수건이었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하얀 천에 노란 기름 자국이 손가락 모양대로 번졌다⁠. 병찬은 손수건을 펴서 자국을 보았다⁠. 접어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 않았다⁠.

병찬이 돌아가고 금분은 튀김기 전원을 내렸다⁠. 플러그를 뽑으려고 튀김기 뒤로 손을 넣었다가 멈췄다⁠. 손끝에 닿은 플러그가 아직 뜨거웠다⁠. 금분은 플러그를 뽑지 않고 손을 뺐다⁠. 초록 불만 꺼진 튀김기 위로 기름 김이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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