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5자)

정문 밖의 사료 봉지

국회 고양이 국밥이 · 소예찬

국밥은 귤 냄새가 오지 않는 아침을 세 번 맞았다⁠.

아침마다 굴 입구까지 나가 코를 들었다⁠. 카펫에는 왁스 냄새와 모르는 사람들 냄새만 남아 있었다⁠. 물그릇에서도 귤 냄새가 빠졌다⁠. 물은 왁스 냄새 나는 손이 갈아 주었다⁠. 국밥은 물을 마시고 굴로 들어갔다가⁠, 해가 높아지면 다시 나와 코를 들었다⁠.

새끼들은 이제 걸었다⁠. 걸음은 비틀거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넷은 굴 입구를 넘어 나무 단 옆 계단까지 갔다⁠. 계단 한 칸이 새끼들 키만 했다⁠. 수육이 앞발을 걸치고 버둥거리다 뒤로 넘어갔고⁠, 깍두기가 수육을 밟고 올라가려다 같이 넘어갔다⁠. 부추는 계단 모서리를 오래 냄새 맡더니 옆으로 돌아 계단을 피해 갔다⁠. 순대는 계단 앞에 앉아 울었다⁠. 국밥은 넷을 한 마리씩 물어 굴로 데려왔다⁠. 넷은 내려놓자마자 다시 계단으로 갔다⁠.

밤이면 왁스 냄새 나는 사람이 굴 앞에 앉았다⁠. 등을 굴 입구에 대고⁠, 아무 말 없이 오래 앉아 있었다⁠. 국밥이 굴 밖으로 나가 밥그릇 앞에 가도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의 손바닥 위에 삶은 닭가슴살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은 국밥의 코앞에서 멈춘 채 다가오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국밥은 손바닥 앞에서 꼬리를 한 번 내리쳤다⁠. 그리고 닭가슴살을 물었다⁠. 손바닥은 그대로 있었다⁠.

순대가 굴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와 사람의 구두 끈을 물었다⁠. 구두 끈을 물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람은 숨만 쉬었다⁠. 국밥은 닭가슴살을 다 먹고 순대의 목덜미를 물어 굴로 돌아갔다⁠. 구두 끈이 젖어 있었다⁠.

*

진바다는 12월 23일 목요일 정오⁠, 국회 정문 철책 밖 인도에 서서 휴대전화로 의장석 밑을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오만식이 손바닥에 닭가슴살을 얹고 있었다⁠. 국밥이 손바닥 앞까지 와서 꼬리를 내리쳤다가 닭가슴살을 물어 갔다⁠. 채팅창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안경 아저씨 승급⁠」 「⁠손바닥 밥 성공⁠」 「⁠보좌관 언니 어디 갔어⁠」 「⁠잘렸대⁠」 「⁠잘린 언니 보고 있지⁠?⁠」⁠.

바다는 화면을 끄고 철책을 잡았다⁠. 철책은 차가웠다⁠. 정문 안쪽 화단 너머로 의사당 둥근 지붕이 보였다⁠. 사흘 동안 바다는 날마다 정오에 정문 앞에 왔다⁠.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방호원은 볼 때마다 순대 소식을 물었고⁠, 바다는 화면에서 본 것을 대답했다⁠.

정문 안쪽에서 남색 조끼가 걸어 나왔다⁠. 오만식이었다⁠. 오만식은 철책 문 앞까지 와서 방호원에게 목례를 하고 철책을 사이에 둔 채 바다 앞에 멈췄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과장님⁠, 저 들여보내 주세요⁠. 자원봉사로요⁠. 근무표 밤 칸 비어 있잖아요⁠.⁠”

“⁠안 됩니다⁠.⁠” 오만식이 공손하게 말했다⁠. “⁠경내 출입은 의원실 소개나 사무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진바다 씨는 지금 민원인이에요⁠. 민원인이 본회의장 의장석 밑에서 밤을 새우는 규정은 없습니다⁠.⁠”

“⁠규정 말고요⁠.⁠”

“⁠저한테는 규정밖에 없습니다⁠.⁠” 오만식이 철책 사이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사무총장 이름이 찍힌 짧은 지시문이었다⁠. 「⁠12월 31일 18시⁠, 본회의장 고양이 어미와 새끼 4두를 시설과 보일러실 옆 창고로 이동⁠. 이후 협력 보호소로 인계⁠」⁠.

바다는 지시문을 두 번 읽었다⁠.

“⁠보호소요⁠? 넷 다요⁠?⁠”

“⁠새끼들은 보호소에서 입양 공고를 냅니다⁠. 어미는 중성화 수술을 받고⁠, 이번엔 진짜로 받고요⁠, 경내로 돌아옵니다⁠.⁠”

“⁠넷이 따로따로 가요⁠?⁠”

“⁠보호소 규정입니다⁠. 신청하신 분들 가운데 추첨이고요⁠.⁠” 오만식이 잠깐 말을 멈췄다⁠. “⁠진바다 씨도 신청하실 수 있어요⁠. 공정하게⁠.⁠”

바다는 철책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쇠 냄새가 묻어났다⁠.

“⁠옮기면요⁠. 그 사람들 또 핑계 대요⁠. 고양이 쫓아낸 의장이라고⁠, 고양이 행방부터 밝히라고⁠. 그럼 31일 밤도 넘어가요⁠.⁠”

“⁠핑계는 그분들 사정입니다⁠.⁠” 오만식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새끼들이 이제 걸어요⁠. 어제는 깍두기가 의장석 계단 두 칸을 올라갔다가 굴렀습니다⁠. 31일 밤에 의원님 삼백 분이 들어오시면 구두가 육백 개예요⁠. 새끼 하나가 구두에 밟히는 건 제 사정이고요⁠.⁠”

바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만식은 지시문을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사무총장님께 이걸 올렸습니다⁠. 2025년 중성화 위탁 사업 검수 부실 보고서요⁠. 업체 고발 건의하고⁠, 검수 책임자는 제 이름 하나로 올렸어요⁠.⁠”

“⁠금동하 씨는요⁠?⁠”

“⁠담당자 칸에 금동하 씨 이름이 있긴 한데⁠, 도장은 제가 찍었으니까요⁠.⁠” 오만식이 봉투를 도로 넣었다⁠. “⁠징계위원회는 1월에 열린답니다⁠. 정년이 사 년 남았었는데⁠, 남을지 모르겠네요⁠.⁠”

“⁠왜요⁠? 조용히 끝내자고 하셨잖아요⁠.⁠”

“⁠진바다 씨가 로텐더홀에서 손에 있는 걸 쓰셨으니까요⁠.⁠” 오만식이 철책 너머로 바다를 보았다⁠. “⁠저도 제 손에 있는 걸 썼습니다⁠. 제 도장이요⁠.⁠”

방호원이 정문 초소 안에서 헛기침을 했다⁠. 오만식은 방호원에게 다시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가다가 고개만 돌렸다⁠.

“⁠31일 여섯 시입니다⁠, 진바다 씨⁠. 그 시간까지 저는 제 일을 합니다⁠.⁠”

*

12월 24일 금요일 밤 아홉 시⁠, 진바다는 정문 앞 가로수 밑에서 금동하를 만났다⁠.

여의도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전구가 감겨 있었다⁠. 금동하는 남색 조끼 위에 패딩을 걸치고 정문 옆 쪽문으로 나왔다⁠. 손에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 따뜻한 캔커피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과장님이 진바다 씨 정문 앞에 또 있으면 이거 주래요⁠.⁠” 금동하가 캔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아⁠, 이 말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바다는 캔커피를 받아 두 손으로 감쌌다⁠. 금동하는 다른 캔을 따지도 않고 한참 만지작거렸다⁠.

“⁠진바다 씨⁠. 과장님이 저 대신 보고서 올리신 거 아세요⁠?⁠”

“⁠들었어요⁠.⁠”

“⁠그 사업 제가 담당이었어요⁠. 업체가 가져온 수술 확인서 열두 장⁠, 제가 하나도 안 열어 보고 과장님 책상에 올렸어요⁠. 과장님은 제가 봤겠지 하고 도장 찍으셨고요⁠.⁠” 금동하가 캔을 꽉 쥐었다⁠. 알루미늄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제가 사무총장님한테 가서 제가 담당이었다고 말하면⁠, 과장님 징계가 가벼워질까요⁠?⁠”

“⁠과장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가면 저 다시는 안 본대요⁠.⁠” 금동하가 코를 훌쩍였다⁠. “⁠삼십삼 년 동안 막내 하나 못 지키는 과장으로 끝나기 싫대요⁠.⁠”

금동하가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의사중계 화면이 아니라 금동하가 시설과 휴대전화로 가까이 찍은 영상이었다⁠. 의장석 계단 앞에서 부추가 혼자 계단 한 칸을 올라가고 있었다⁠. 앞발을 걸치고⁠, 뒷발로 버둥거리고⁠, 마침내 몸을 끌어 올린 부추가 계단 위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영상 끝에서 오만식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어 있었다⁠. 「⁠옳지⁠.⁠」

“⁠이거 보내 드릴게요⁠. 과장님한테는 비밀이에요⁠.⁠”

금동하가 쪽문으로 돌아간 뒤⁠, 바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진바다 씨⁠. 하정필이에요⁠.⁠” 느리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바다는 가로수 밑에서 등을 곧게 폈다⁠.

“⁠원내대표님이 어떻게 제 번호를⁠.⁠”

“⁠원내대표실에 바다 씨 이력서가 있어요⁠. 처음 보좌진 들어올 때 낸 거⁠.⁠” 하정필이 웃었다⁠. “⁠바다 씨⁠, 우리 원내대표실로 와요⁠. 정책 비서관 자리 하나가 비어요⁠. 대신 하나만 해 줘요⁠. 로텐더홀에서 한 말 중에 원내대표 지시라는 부분⁠, 그건 탁원구 의원이 과장해서 전한 거라고 한 줄만⁠.⁠”

“⁠그 한 줄도 소견서처럼 한 줄이네요⁠.⁠”

“⁠세상 일이 대개 한 줄이에요⁠.⁠” 하정필이 잠깐 숨을 골랐다⁠. “⁠바다 씨 어머님 센터 급식 단가⁠, 그거 31일 밤 수정안에 들어가 있어요⁠. 수정안이 통과되려면 우리 당이 들어가야 하고⁠. 우리가 들어가려면 명분이 하나 필요해요⁠. 고양이가 나가든가⁠, 바다 씨가 한 줄을 고치든가⁠.⁠”

“⁠원내대표님⁠. 그 단가는 예결위에서 심사 받은 거예요⁠. 원내대표님 쪽지가 아니라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하정필은 처음으로 숫자를 붙이지 않고 말했다⁠.

“⁠바다 씨는 정치를 잘할 텐데⁠. 아깝네요⁠.⁠”

전화가 끊겼다⁠. 바다는 캔커피를 땄다⁠. 커피는 벌써 미지근했다⁠.

*

12월 26일 일요일 저녁⁠, 진바다는 인천 엄마의 지역아동센터 주방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했다⁠.

센터는 겨울방학이라 낮부터 아이들로 붐볐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식당 탁자에 휴대전화 하나를 세워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화면에서 국밥이 하품을 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하품을 따라 했다⁠.

“⁠언니가 고양이 언니예요⁠?⁠” 앞니 빠진 남자아이가 주방 창구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전에는⁠.⁠”

“⁠지금은요⁠?⁠”

“⁠지금은 설거지 언니⁠.⁠”

남자아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고양이 언니가 잘려서 설거지 언니가 됐대⁠. 아이들이 일제히 주방을 돌아보았다⁠. 엄마가 국자를 든 채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국을 데우는 냄비 앞에서 바다의 등을 국자 손잡이로 톡 쳤다⁠.

“⁠잘린 건 잘린 거고⁠. 고양이 밥은 누가 줘⁠?⁠”

“⁠시설과장님이요⁠. 손바닥에 놓고 줘요⁠.⁠”

“⁠손바닥에 놓고 주는 사람이면 됐네⁠.⁠” 엄마가 냄비 뚜껑을 덮었다⁠. “⁠근데 니 얼굴은 안 됐다⁠.⁠”

바다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눈가를 닦으려다 세제 거품을 묻혔다⁠. 엄마가 수건을 던져 주었다⁠. 식당에서는 아이들이 화면 속 순대를 보며 「⁠순대야 걷지 마⁠, 밟혀⁠」라고 소리를 질렀다⁠.

*

12월 28일 화요일 오전 열한 시⁠, 의장이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진바다는 센터 식당 휴대전화 화면으로 의장의 얼굴을 보았다⁠.

“⁠12월 31일 밤 열 시에 본회의를 엽니다⁠. 예결위 심사를 거친 수정안을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합니다⁠. 표결은 자정 전에 끝냅니다⁠.⁠” 의장은 한 문장씩 끊어 말했다⁠. “⁠본회의장 고양이는 사무처가 수의사 소견에 따라 안전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어떤 이유도 되지 않습니다⁠.⁠”

한 시간 뒤 두 원내대표가 차례로 마이크 앞에 나왔다⁠. 하정필은 느리게 말했다⁠. “⁠본회의장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당 의원 백몇십 명을 들여보낼 수는 없습니다⁠. 걸어 다니는 새끼 고양이가 넷이에요⁠. 고양이 이동이 확인된 뒤에 입장하겠습니다⁠.⁠” 맹준표는 빠르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 저희도 같은 입장입니다⁠. 고양이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걸 확인한 뒤에 들어가겠습니다⁠. 안전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센터 식당의 남자아이가 바다 옆에서 화면을 보다가 물었다⁠.

“⁠저번엔 고양이 옮기면 안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이번엔 고양이 안 옮기면 안 들어간대요⁠?⁠”

“⁠그러네⁠.⁠”

남자아이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고양이는 어디 있어야 돼요⁠?⁠”

바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육태란이었다⁠.

「⁠육태란⁠: 너 31일 방청권 필요해⁠? 우리 의원님 소개로 하나 뺄 수 있어⁠. 일반 방청석⁠. 소리 내면 쫓겨남⁠」

바다는 고무장갑을 벗고 답장을 쳤다⁠. 「⁠필요해⁠」⁠. 보내고 나서 한 줄을 더 쳤다⁠. 「⁠소리 안 낼게⁠」⁠. 육태란의 답이 바로 왔다⁠.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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