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12자)

녹음 파일 지우는 데 사십 초

국회 고양이 국밥이 · 소예찬

진바다는 12월 21일 새벽 두 시 십육 분⁠, 조정실 모니터 앞에서 오만식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복사해요⁠. 지금요⁠. 제 휴대전화로라도⁠.⁠”

“⁠안 됩니다⁠.⁠” 오만식이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화면에 녹음 목록이 떠 있었다⁠. 오늘 날짜⁠, 의장석 이 번 마이크⁠, 01⁠:58부터 02⁠:16까지의 구간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두 원내대표가 고양이 핑계로 31일에 쪽지 넣기로 했잖아요⁠. 다 들으셨잖아요⁠.⁠”

“⁠들었습니다⁠.⁠”

“⁠그럼 이걸 왜 지워요⁠?⁠”

오만식은 손목을 빼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보았다⁠. 조정실 모니터 불빛이 오만식의 동그란 안경알에 두 개의 네모로 비쳤다⁠.

“⁠진바다 씨⁠. 공개되지 않은 남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기계로 엿들으면 처벌받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이에요⁠. 엿들은 걸 남한테 알려도 처벌받고요⁠.⁠” 오만식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 마이크는 새끼 숨소리 들으라고 켠 겁니다⁠. 원내대표님 말씀 들으라고 켠 게 아니에요⁠. 이 파일이 밖으로 나가면⁠, 원내대표님들 쪽지 이야기가 아니라 사무처 도청 이야기가 됩니다⁠. 경찰서는 금동하 씨랑 제가 가고요⁠. 진바다 씨도요⁠.⁠”

“⁠그럼 저 사람들은요⁠?⁠”

“⁠저 사람들은 도청당한 피해자가 되죠⁠.⁠” 오만식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원내대표님들이 제일 바라는 그림이 그거예요⁠. 고양이도⁠, 쪽지도 다 사라지고 도청만 남는 거⁠.⁠”

바다는 손목을 놓지 않았다⁠. 오만식은 바다가 손목을 잡은 채로 녹음 구간을 눌렀다⁠. 「⁠선택한 구간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오만식이 「⁠예⁠」를 눌렀다⁠. 「⁠관리자 비밀번호를 입력하십시오⁠」⁠. 오만식이 한 손가락으로 자판을 하나씩 눌렀다⁠.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과장님⁠.⁠”

“⁠대문자가 켜져 있었습니다⁠.⁠” 오만식이 대문자 키를 끄고 다시 눌렀다⁠. 한 글자⁠, 한 글자⁠. 바다는 오만식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힘을 풀었다⁠. 「⁠삭제되었습니다⁠」⁠. 화면의 파란 구간이 사라지고 회색 줄만 남았다⁠.

조정실 벽시계의 초침이 반 바퀴를 조금 넘게 돌아 있었다⁠. 사십 초였다⁠.

“⁠들은 건 못 지웁니다⁠.⁠” 오만식이 마우스를 놓았다⁠. “⁠진바다 씨 머릿속은 제 관할이 아니에요⁠.⁠”

“⁠머릿속에 있는 걸 말하면 그것도 처벌받는다면서요⁠.⁠”

“⁠네⁠. 그러니까 머릿속에 있는 말 말고⁠, 진바다 씨 손에 있는 걸 쓰세요⁠.⁠” 오만식이 바다의 재킷 주머니를 턱으로 가리켰다⁠. 주머니 위로 접힌 종이 모서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 도장 찍힌 거요⁠. 그건 진바다 씨가 받은 거잖아요⁠.⁠”

오만식은 헤드폰을 다시 썼다⁠. 바다는 오만식의 옆얼굴을 오래 보았다⁠. 헤드폰 밖으로 새끼들 숨소리가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

*

국밥은 새벽 내내 굴 입구에 남은 냄새를 맡았다⁠.

모르는 냄새 둘이었다⁠. 하나는 쓴 풀 냄새가 나는 물을 얼굴에 바른 냄새였고⁠, 하나는 담배 연기가 옷에 밴 냄새였다⁠. 둘 다 굴 앞까지 왔다가 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둘이 남긴 냄새는 카펫에 오래 남았다⁠. 국밥은 냄새가 밴 자리를 앞발로 긁고⁠, 긁은 자리에 볼을 문질러 자기 냄새를 덮었다⁠.

새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굴 안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었다⁠. 부추가 깍두기의 꼬리를 물면 깍두기가 순대의 귀를 물었고⁠, 순대는 울면서 수육에게 기어갔다⁠. 수육은 무거웠다⁠. 수육이 순대를 깔고 앉으면 순대가 더 크게 울었고⁠, 국밥은 수육을 밀어냈다⁠.

국밥은 새끼들을 다 재운 뒤에도 눕지 않았다⁠. 굴 입구에 앉아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국밥은 문을 오래 보다가⁠, 꼬리로 앞발을 감고 눈을 반쯤 감았다⁠. 귀는 감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 귤 냄새가 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귤 냄새 나는 사람은 굴 입구 앞 바닥에 엎드려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국밥은 입구까지 나가 귤 냄새 나는 사람의 손가락에 코를 댔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국밥은 손가락을 한 번 핥았다⁠. 사람의 숨이 크게 한 번 들썩였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

진바다는 아침 아홉 시⁠, 의원회관 6층 의원실에서 탁원구의 책상 유리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유리 밑 지역구 지도에 빨간 줄이 세 번 덧그어져 있었다⁠.

“⁠의원님⁠, 우회도로 이백억 들어가요⁠?⁠”

탁원구가 보도자료에서 고개를 들었다⁠. “⁠누가 그래⁠?⁠”

“⁠제가 지난봄에 그 사업 설명서 썼잖아요⁠. 예결위에서 다 잘렸던 거요⁠. 그게 31일에 들어가요⁠?⁠”

탁원구는 대답 대신 안경을 벗었다⁠. 의원실 문 앞에서 수행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오려다 멈췄고⁠, 탁원구가 손짓하자 문을 닫고 나갔다⁠.

“⁠들어가⁠.⁠” 탁원구가 손가락으로 지도의 빨간 줄을 따라 그었다⁠. “⁠바다 씨⁠, 이 길 없어서 우리 동네 애들 통학 버스가 국도 사고 구간을 매일 두 번 지나가⁠. 십 년 동안 군청이 올리고 도청이 올리고 내가 올렸어⁠. 십 년 동안 잘렸어⁠. 그게 쪽지로 들어가면 쪽지인 거지⁠. 쪽지라서 애들이 덜 안전해져⁠?⁠”

“⁠예결위에서 정식으로 다시 올리시면 되잖아요⁠.⁠”

“⁠정식으로 십 년 했다니까⁠.⁠” 탁원구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바다 씨 뭘 하려고 그래⁠.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고양이는 표결 안 막는다고 말하려고요⁠. 수의사 소견서 들고요⁠.⁠”

“⁠그 말 하는 순간 면직이야⁠.⁠” 탁원구가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문밖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보좌관은 의원이 자르면 그날로 끝이야⁠. 바다 씨 이름 뉴스에 나간 거⁠, 그거 다 우리 의원실 이름이야⁠. 의원실 나가는 순간 바다 씨는 그냥 고양이 좋아하는 스물아홉 살이야⁠.⁠”

“⁠그것도 괜찮아요⁠.⁠”

바다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지난주 월요일 탁원구가 보낸 개인 문자가 아직 맨 위에 있었다⁠. 「⁠탁원구 의원⁠: 4주 소견서 오늘까지⁠. 원내대표님 지시야⁠. 안 되면 다른 병원⁠」⁠. 바다는 화면을 탁원구 쪽으로 돌리지 않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오케이⁠, 오케이는 안 할게요⁠, 의원님⁠.⁠”

*

오후 두 시⁠, 진바다는 본청 로텐더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바다가 로텐더홀에 들어서자 기자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고양이 보좌관이다⁠, 하는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타고 퍼졌다⁠. 오 분 만에 카메라 열몇 대가 반원으로 바다를 둘러쌌다⁠. 로텐더홀을 지나던 의원 보좌진들이 걸음을 멈추고 기둥 뒤에 모였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의원실 단톡방에 생중계를 올렸다⁠. 본회의장 의원석과 같은 모양이었다⁠. 바다는 마이크들 앞에서 장보은의 소견서를 펼쳤다⁠. 종이가 떨렸다⁠. 바다는 종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탁원구 의원실 보좌관 진바다입니다⁠. 본회의장 고양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로텐더홀 둥근 천장이 소리를 모아 주었다⁠. “⁠고양이를 진찰한 수의사 소견서입니다⁠. 읽겠습니다⁠. 「⁠출산 후 2주 이후⁠, 어미와 함께라면 이동 가능⁠. 현 위치에 둘 경우 조명·플래시·고성만 줄이면 본회의 진행 가능⁠」⁠.⁠”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 바다는 소견서를 내리고 카메라들을 보았다⁠.

“⁠고양이는 표결을 막지 않습니다⁠. 의장석 밑에 고양이가 있어도 본회의는 열 수 있어요⁠. 고양이는 오늘로 딱 19일째 젖을 먹이고 있고요⁠, 의사봉 소리보다 사람들 발소리를 더 싫어합니다⁠.⁠”

“⁠그럼 표결은 누가 막고 있습니까⁠?⁠” 앞줄 기자가 물었다⁠.

바다는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카메라들 앞으로 돌렸다⁠. 「⁠탁원구 의원⁠: 4주 소견서 오늘까지⁠. 원내대표님 지시야⁠. 안 되면 다른 병원⁠」⁠.

“⁠저는 이 소견서를 4주간 이동 불가로 고쳐 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틀린 말이라고 안 써 주셨어요⁠. 저도 안 받아 왔고요⁠. 여당 원내대표님도 저한테 같은 부탁을 하셨습니다⁠. 녹차 한 잔 앞에서요⁠.⁠”

로텐더홀이 한순간 조용했다가⁠, 질문이 한꺼번에 터졌다⁠. 고양이를 언제 옮기느냐⁠, 탁원구 의원과 상의했느냐⁠, 원내대표 지시라면 어느 당 원내대표냐⁠. 기자들 어깨 너머로 육태란의 얼굴이 보였다⁠. 육태란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고⁠, 막은 손 위로 눈이 동그랬다⁠.

“⁠고양이는 언제 옮깁니까⁠?⁠” 누가 한 번 더 크게 물었다⁠.

“⁠어미가 정해요⁠.⁠” 바다가 대답했다⁠. “⁠사람이 정하면 핑계가 되고요⁠.⁠”

바다는 나머지 질문을 다 듣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만 말했다⁠.

“⁠고양이 핑계는 오늘로 끝입니다⁠. 의장석 밑에 넷이 있고⁠, 어미가 있습니다⁠. 표결하실 분들은 그 위에서 하시면 됩니다⁠.⁠”

*

오후 세 시⁠, 진바다는 본청 복도를 걸어 의원회관으로 가는 동안 텔레비전 다섯 대에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복도마다 걸린 화면이 같은 장면을 돌렸다⁠. 로텐더홀 한가운데에서 소견서를 두 손으로 쥔 바다⁠, 「⁠고양이 핑계는 오늘로 끝입니다⁠」⁠. 화면 아래 자막이 바뀔 때마다 반응이 따라붙었다⁠.

하정필은 원내대표실 앞에서 짧게 말했다⁠. “⁠보좌관 한 사람의 개인 의견입니다⁠. 우리 당은 처음부터 고양이를 지키자고 했고⁠, 지금도 지킵니다⁠.⁠” 맹준표는 소통관 계단에서 웃으며 말했다⁠. “⁠녹차는 손님한테 드리는 겁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원내대표실은 녹차를 아낌없이 드립니다⁠.⁠” 기자 하나가 「⁠4주는 누구 지시였느냐⁠」고 다시 묻자 맹준표는 녹차 이야기를 한 번 더 했다⁠.

의장실은 세 시 반에 한 줄을 냈다⁠. 「⁠의장은 고양이의 위치와 관계없이 본회의를 열 준비가 되어 있다⁠」⁠.

지하 연결 통로에서 엄마의 전화가 왔다⁠.

“⁠바다야⁠, 너 회사 잘리는 거야⁠?⁠”

“⁠아직 몰라요⁠.⁠”

“⁠잘리면 집에 와⁠. 센터 주방 설거지는 늘 사람이 모자라⁠.⁠” 엄마가 수돗물을 틀었다가 잠갔다⁠. “⁠근데 바다야⁠. 너 그거 다 말하면 우리 센터 단가는 어떻게 돼⁠? 그 사람들이 넣어 준 거라며⁠.⁠”

바다는 통로 한가운데에 멈췄다⁠. 사람들이 바다를 피해 양옆으로 지나갔다⁠.

“⁠엄마⁠. 그 단가⁠, 예결위에서 정식으로 심사 받은 거예요⁠. 쪽지 아니에요⁠. 표결만 하면 들어가요⁠.⁠”

“⁠그럼 됐네⁠.⁠” 엄마가 다시 물을 틀었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럼 됐어⁠. 밥은 먹었니⁠?⁠”

*

오후 네 시 이 분⁠, 의원실 단톡방에 한 줄이 떴다⁠. 「⁠탁원구 의원⁠: 진바다 보좌관 면직 요청함⁠. 오늘부로 출입증 반납 바람⁠」⁠. 일 분 뒤에 한 줄이 더 떴다⁠. 「⁠탁원구 의원님이 진바다님을 내보냈습니다⁠」⁠. 단톡방 화면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저녁 여섯 시⁠, 국회 정문 방호실 창구 앞에서 바다는 출입증 줄을 목에서 벗겼다⁠. 줄 끝에 육태란이 달아 준 국밥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바다는 열쇠고리를 빼서 주머니에 넣고 출입증만 창구에 밀어 넣었다⁠. 출입증 사진 속 동그란 얼굴이 유리 창구 너머로 미끄러져 갔다⁠.

방호원이 출입증을 받아 들고 바다를 보았다⁠. 새벽 세 시에 배가 이만한 게 뒤뚱뒤뚱 들어갔다고 말해 준 방호원이었다⁠.

“⁠순대 잘 크죠⁠?⁠” 방호원이 물었다⁠.

“⁠딸꾹질해요⁠.⁠”

정문 밖 인도는 어둑했다⁠. 바다는 분홍 사료 봉지를 품에 안고 정문 철책 앞에 서 있었다⁠. 철책 너머로 의사당 둥근 지붕에 조명이 들어왔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만식이었다⁠.

「⁠오만식⁠: 오늘 밤 근무표 진바다 칸⁠, 비워 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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