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56자)

여야가 처음 합의한 안건

국회 고양이 국밥이 · 소예찬

진바다가 본회의장 옆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오만식은 이미 의장석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12월 9일 아침 아홉 시 이 분이었다⁠.

이동장 뚜껑이 열려 있었고 핫팩에서 김이 올랐다⁠. 오만식은 고무장갑을 끼고 그물채를 틈 안쪽으로 비스듬히 밀어 넣는 중이었다⁠. 틈 안에서 국밥이 길게 하악질을 했다⁠. 바다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바람 빠지는 타이어 같은 소리 끝에 낮은 으르렁이 붙어 있었다⁠.

“⁠과장님⁠!⁠”

“⁠진바다 씨는 거기 계세요⁠. 그물 끝에 손 다칩니다⁠.⁠”

바다는 거기 있지 않았다⁠. 카펫 위로 뛰어가 그물채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오만식이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은빛 손잡이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의장석 앞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의원석 첫 줄의 금동하가 근무표 화이트보드를 몸으로 막고 서 있었다⁠. 무엇을 막는지는 금동하도 몰랐다⁠.

오만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만식은 그물채를 잡지 않은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총장님⁠. 지금 작업 중입니다⁠. …⁠…네⁠?⁠” 오만식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바다가 그물채를 통째로 끌어안고 뒤로 넘어졌다⁠. “⁠네⁠. 알겠습니다⁠. 중지하겠습니다⁠.⁠”

오만식이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사무총장이 보낸 문서 사진이었다⁠. 오만식은 화면을 바다 쪽으로 돌리지 않고 소리 내어 읽었다⁠.

“⁠여야 원내대표 공동 요청⁠. 본회의장 고양이 이동을 보류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명 존중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원내대표 하정필⁠, 원내대표 맹준표⁠.⁠” 오만식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의장님이 받아들이셨답니다⁠.⁠”

바다는 그물채를 안은 채 카펫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천장 조명이 동그랗게 번졌다⁠.

“⁠올해 여야가 같이 도장 찍은 문서가 이게 처음입니다⁠.⁠” 오만식이 이동장 뚜껑을 닫았다⁠. “⁠예산안도 아니고⁠, 민생 법안도 아니고⁠, 고양이요⁠.⁠”

“⁠잘된 거잖아요⁠.⁠”

“⁠기한이 없는 보류는 보류가 아닙니다⁠, 진바다 씨⁠. 그냥 핑계예요⁠.⁠” 오만식이 손을 내밀었다⁠. “⁠그물채 주세요⁠. 시설과 비품입니다⁠.⁠”

바다는 그물채를 돌려주었다⁠. 오만식은 그물채를 받아 들고⁠, 핫팩 두 개를 이동장에서 꺼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나가기 전에 의장석 앞에서 한 번 멈춰 틈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악질은 그쳐 있었다⁠.

*

진바다는 12월 9일 오후 세 시⁠, 본청 야당 원내대표실 긴 탁자의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내대표실 회의는 국밥으로 시작했다⁠. 원내대변인이 화면에 오늘의 언급량 그래프를 띄웠다⁠. 「⁠본회의장 고양이⁠」가 「⁠예산안⁠」을 엿새째 이기고 있었다⁠. 원내수석부대표가 종이 한 장을 돌렸다⁠.

“⁠국밥이법입니다⁠. 공공기관 경내 길고양이 보호 의무를 동물보호법에 넣는 거고⁠, 대표 발의는 탁원구 의원님으로⁠.⁠”

탁원구가 맨 끝자리 바다를 돌아보며 엄지를 세웠다⁠. 바다는 엄지를 세우지 않았다⁠.

“⁠좋아요⁠.⁠” 하정필이 종이를 내려놓고 바다를 보았다⁠. 하정필은 탁자 끝까지 들리게 말하는 법을 알았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진바다 보좌관⁠. 수의사 선생님 소견서를 하나 받아 와요⁠. 출산 후 4주간 이동 불가⁠. 한 줄이면 돼요⁠.⁠”

“⁠선생님은 일주일이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일주일은 오늘 끝났잖아요⁠.⁠” 하정필이 웃었다⁠. “⁠4주면 12월 30일이에요⁠.⁠”

바다는 수첩에 「⁠4주⁠」라고 적다가 볼펜을 멈췄다⁠.

“⁠원내대표님⁠, 4주가 의학적으로 맞는 거예요⁠?⁠”

“⁠의사가 쓰면 맞는 거죠⁠.⁠” 하정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원내대표실 사람들이 하정필을 보고⁠, 다시 바다를 보았다⁠. “⁠진바다 보좌관⁠, 내가 왜 시간이 필요한지 알아요⁠? 정부가 들고 온 국민 첫 집 사업이 3조예요⁠. 집 있는 사람 자식 이자를 나라가 대 주는 거⁠. 우리는 거기서 1조를 깎아서 지역 돌봄에 넣자는 거고⁠. 정부가 받으면 바로 본회의 들어가요⁠. 안 받으면⁠, 시간이 우리 무기예요⁠.⁠”

“⁠고양이가 무기예요⁠?⁠”

“⁠고양이는 시간이고요⁠.⁠” 하정필이 종이 한 장을 바다 앞으로 밀었다⁠. 지역 돌봄 증액 목록이었다⁠. 중간쯤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방학 급식 단가 인상⁠」⁠. “⁠인천 지역아동센터에서 조리하시는 분이 어머님이죠⁠? 한 끼에 천 원⁠. 그거 우리 당이 넣은 거예요⁠. 정부안에는 없어요⁠.⁠”

바다는 엄마 이야기를 원내대표실에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탁원구가 시선을 피했다⁠.

“⁠소견서 부탁해요⁠.⁠” 하정필이 다정하게 말했다⁠. “⁠한 줄이에요⁠. 한 줄⁠.⁠”

원내대표실을 나오자 휴대전화에 육태란의 문자가 와 있었다⁠. 「⁠육태란⁠: 우리 원내대표님이 너 좀 보재 진짜 비밀로 여당 원내대표실 뒷문⁠」⁠.

여당 원내대표실 뒷문은 탕비실과 붙어 있었다⁠. 맹준표는 탕비실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에 녹차를 우리고 있었다⁠. 맹준표는 바다를 보자 활짝 웃으며 종이컵을 하나 더 꺼냈다⁠.

“⁠국민 여러분⁠, 아니⁠, 진바다 보좌관⁠. 녹차⁠?⁠”

“⁠괜찮습니다⁠.⁠”

“⁠우리 육태란 비서가 바다 씨 칭찬을 많이 해⁠. 고양이한테 진심이라고⁠.⁠” 맹준표가 녹차 티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말이 빨랐다⁠. “⁠수의사 소견서 받으면 우리한테도 한 부 줄 수 있나⁠? 사무처가 고양이를 잘 관리하는지 우리도 봐야 하니까⁠. 그리고⁠.⁠” 맹준표가 티백을 건져 냈다⁠. “⁠4주라고 적혀 있으면 좋겠네⁠.⁠”

바다는 종이컵을 받지 않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재킷 안감과 접힌 종이가 맞닿았다⁠.

“⁠원내대표님⁠. 방금 야당 원내대표님도 똑같이 4주라고 하셨어요⁠.⁠”

맹준표가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웃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거 봐요⁠. 여야가 합의가 잘되네⁠.⁠”

*

국밥은 밤이 되자 굴 입구에서 따뜻한 것을 찾았다⁠.

물그릇 옆⁠, 굴 입구 바로 앞에 수건으로 싼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덩어리는 해 같은 열을 냈다⁠. 수건에서는 왁스 냄새가 났다⁠. 국밥은 코를 대 보고⁠, 앞발로 건드려 보고⁠, 덩어리를 굴 쪽으로 반 뼘 끌어당겼다⁠. 열이 굴 안까지 번졌다⁠.

새끼들은 이제 울음으로 국밥을 불렀다⁠. 배가 고프면 울고⁠, 추우면 울고⁠, 서로 엉켜 길을 잃으면 울었다⁠. 회색 줄무늬가 오늘 처음으로 눈꺼풀 사이를 가늘게 벌렸다⁠. 벌어진 틈으로 흐린 물빛 같은 눈이 보였다⁠. 회색 줄무늬는 뜬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 국밥의 턱 밑으로 기어 와 코를 박았다⁠.

국밥은 회색 줄무늬의 눈을 핥았다⁠. 눈꼽을 핥아 내고⁠, 다시 핥았다⁠.

밤이 깊어서 왁스 냄새가 한 번 더 굴 앞에 왔다⁠. 발소리를 죽인 무거운 걸음이었다⁠. 국밥은 몸을 일으키고 기다렸다⁠. 왁스 냄새는 굴 앞에 오래 머물다가 식은 덩어리를 들고 가고⁠, 새로 뜨거운 덩어리를 놓고 갔다⁠. 손이 굴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국밥은 왁스 냄새가 문 밖으로 멀어질 때까지 귀를 세우고 있었다⁠.

*

12월 10일 금요일 오전 열 시⁠, 진바다는 근무표 칸에 맞춰 의장석 앞에 앉았다가 틈 입구의 수건 덩어리를 보았다⁠.

수건을 들추자 핫팩이 나왔다⁠. 아직 뜨거웠다⁠. 바다는 어젯밤 열한 시에 마지막으로 근무를 넘겼는데⁠, 넘길 때 틈 앞에는 물그릇뿐이었다⁠. 근무표의 밤 칸은 전부 비어 있었다⁠. 시설과 사람들이 밤에 들어온다는 기록은 없었다⁠.

오만식은 화이트보드 옆 의자에서 영어로 된 공문을 들고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외국 방송사에서 방청석에 카메라 놓게 해 달랍니다⁠.⁠” 오만식이 공문을 흔들었다⁠. “⁠영문 협조 공문은 삼십삼 년 만에 처음 받아 봅니다⁠. 회신을 영어로 해야 됩니까⁠, 한국어로 해야 됩니까⁠?⁠”

“⁠과장님⁠, 핫팩 밤에 갈아 주셨어요⁠?⁠”

오만식이 공문을 내려놓았다⁠. “⁠근무표에 없는 출입은 없습니다⁠.⁠”

“⁠근무표에 없으니까 묻는 거예요⁠.⁠”

오만식은 대답 대신 수첩을 펼쳐 바다 앞에 내밀었다⁠. 오늘 날짜 칸에 반듯한 글씨가 있었다⁠. 「⁠사무총장 보고 — 이동 보류 기한 설정 건의⁠. 출산 후 2주가 되는 12월 16일에 어미와 함께 보일러실 옆 창고로 이동⁠」⁠.

“⁠수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2주입니다⁠.⁠” 오만식이 말했다⁠. “⁠보류는 해 드릴게요⁠. 대신 날짜를 박읍시다⁠. 날짜 없는 보류는 원내대표님들이 쓰시라고 드리는 선물이에요⁠.⁠”

“⁠16일이면 일주일도 안 남았잖아요⁠.⁠”

“⁠진바다 씨는 신문사에 그 종이 보내셨습니까⁠?⁠”

바다는 재킷 위로 안주머니를 눌렀다⁠. “⁠안 보냈어요⁠.⁠”

“⁠왜요⁠?⁠”

“⁠금동하 씨 때문이에요⁠. 과장님 때문 아니고요⁠.⁠”

오만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을 덮었다⁠. “⁠그럼 우리 둘 다 금동하 씨 때문에 말을 아끼는 거네요⁠.⁠” 오만식이 영문 공문을 다시 집었다⁠. “⁠16일 건의는 그대로 올립니다⁠. 그건 금동하 씨 때문이 아니라 본회의장 때문이고요⁠.⁠”

틈 안에서 새끼 하나가 냐⁠, 하고 울었다⁠. 바다가 몸을 숙이자 회색 줄무늬가 입구 가까이에서 가늘게 뜬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오만식도 몸을 숙였다⁠. 두 사람의 머리가 의장석 앞에서 한 뼘 거리로 나란히 내려갔다가⁠, 동시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올라왔다⁠.

“⁠영문 회신은 한국어로 하세요⁠.⁠” 바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 한국 국회잖아요⁠.⁠”

*

12월 10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여의도 장보은 동물병원 진료실에서 장보은은 바다가 내민 종이를 읽지도 않고 돌려주었다⁠.

“⁠안 써요⁠.⁠”

“⁠한 줄이에요⁠, 선생님⁠. 4주간 이동 불가⁠.⁠”

“⁠틀린 한 줄이잖아요⁠.⁠” 장보은이 진료대 위 소독약을 뿌리고 휴지로 닦았다⁠. “⁠2주 지나면 어미랑 같이 옮겨도 돼요⁠. 4주면 새끼들이 걸어 다녀요⁠. 걸어 다니는 새끼를 의장석 밑에 두는 게 더 위험해요⁠. 단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의자 바퀴에 꼬리 끼고⁠.⁠”

“⁠선생님⁠, 이거 안 받아 가면 저 잘릴 수도 있어요⁠.⁠”

장보은이 손을 멈추고 처음으로 바다를 똑바로 보았다⁠.

“⁠바다 씨 잘리는 거랑 새끼 고양이 다리 하나랑 바꾸자는 거예요⁠?⁠”

바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장보은은 서랍에서 진단서 용지를 꺼내 볼펜으로 빠르게 적었다⁠. 「⁠출산 후 2주 이후⁠, 어미와 함께라면 이동 가능⁠. 현 위치에 둘 경우 조명·플래시·고성만 줄이면 본회의 진행 가능⁠」⁠. 장보은은 아래에 도장을 찍고 용지를 바다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제 소견이에요⁠. 이거 말고는 없어요⁠.⁠”

밤 아홉 시⁠, 의원회관 6층 의원실에는 탁원구 혼자 남아 있었다⁠. 탁원구는 국밥이법 보도자료를 소리 내어 읽다가 바다가 내민 소견서를 받았다⁠. 소견서를 읽는 동안 탁원구의 눈썹이 한 칸씩 올라갔다⁠.

“⁠2주⁠?⁠” 탁원구가 소견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2주면 16일이잖아⁠. 원내대표님 4주라고 하셨잖아⁠.⁠”

“⁠선생님이 4주는 안 써 주세요⁠. 틀린 거래요⁠.⁠”

“⁠그럼 다른 병원 가⁠. 여의도에 동물병원이 거기 하나야⁠?⁠”

“⁠의원님⁠. 보좌관이 소견서 골라 받으러 동물병원을 돌아다녀요⁠?⁠”

“⁠보좌관이 원래 그런 거 하는 사람이야⁠.⁠” 탁원구가 의자를 바다 쪽으로 돌렸다⁠. 탁원구는 화를 낼 때 오히려 목소리를 낮췄다⁠. 바다는 탁원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바다 씨⁠, 이번 주에 바다 씨 이름 뉴스에 몇 번 나왔는지 알아⁠? 그 이름 누가 만들어 줬어⁠? 국회 앞에 보좌관 자리 하나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어⁠.⁠”

탁원구가 소견서를 반으로 접어 바다의 재킷 주머니에 도로 꽂았다⁠. 주머니 안에서 소견서가 먼저 들어 있던 출력 종이와 겹쳤다⁠.

“⁠월요일까지 4주로⁠. 오케이⁠, 오케이⁠?⁠”

탁원구가 보도자료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는 의원실 문을 닫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주머니 속 종이 두 장의 모서리가 손끝에 번갈아 닿았다⁠. 한 장에는 고양이를 잡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있었고⁠, 한 장에는 고양이를 옮겨도 된다는 사람의 도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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