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18자) · 마달수 · 동짓달 열나흘
열세 번을 산 사람은 없다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배가 율포 나루에 닿은 것은 동짓달 열나흘 아침이었다. 강경에서 밤새 내려온 배였다. 관은 뱃바닥 한가운데 거적을 깔고 그 위에 놓았고, 마달수는 밤새 관 옆에 앉아 있었다. 강바람이 거적 틈으로 들어와 무릎을 얼렸다. 관 뚜껑 위에는 붉은 비단 명정 한 폭이 접혀 있었다. 어머니가 궤짝 밑바닥에 넣어 두고 이름 쓸 자리만 비워 둔 명정이었다.
밤새 마달수는 그 빈자리에 무엇을 쓸지 셈했다. 명창이라고 쓰면 사천 입을 못 채운 거짓말이 비단에 남았다. 열두 번 산 년이라고 쓸 수는 없었다. 이름만 쓰면 율포 사람들 목에서 그 뒤에 붙는 말이 저절로 올라올 터였다. 셋 다 아니었다. 셈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강경에서 거간 노릇을 할 때 마달수는 답이 안 나오는 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값은 늘 있었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 어딘가에서 정해졌다. 이 셈에는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었다. 배가 율포 나루 어귀를 돌 때까지 붓은 먹도 묻히지 못했다.
상두꾼은 둘밖에 못 구했다. 강경에서 데려온 품팔이 사내들이었다. 관을 멘 두 사람과 명정 장대를 든 마달수, 그렇게 셋이 나루 계단을 올랐다. 선산은 저잣거리 서쪽 끝, 소금 창고 뒤로 난 산길을 따라 반 식경을 올라가야 했다. 나루에서 그리로 가는 마른 길은 저잣거리를 가로지르는 길 하나였다.
저잣거리 어귀 장승 앞에서 사령 둘이 창을 가로로 들었다.
“상여는 못 지나가오.”
채상곤이 사령 뒤에서 나왔다. 손에 얇은 책을 들고 있었다.
“장중에는 저잣거리로 상여가 지나지 못하오. 율포현 장시 규정이오. 나루 뒤 갯길로 돌아가시오.”
“갯길은 지금 물이 들어 있습니다.”
“두 시진 기다리면 빠지오.”
“동짓달에 관을 두 시진 갯가에 세워 두라는 겁니까?”
“규정이 그렇소.”
마달수는 채상곤 뒤를 봤다. 장승 옆에 진명도가 하인들이 서 있었고, 그 한가운데 염태길이 도포를 여미고 서 있었다. 오늘은 부채가 없었다. 염태길 옆에 입꾼 여남은이 모여 있었다. 도가가 네 푼씩 주고 부리는 입꾼들이었다. 그 입꾼들이 마달수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쪽지를 볼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열두 번 산 년 상여 들어온다.”
“부름집 딸 열두 번 산 년.”
마달수 손에서 명정 장대가 기울었다. 상두꾼 하나가 관 무게에 비틀거렸다. 저잣거리 사람들이 좌판에서 고개를 들었다. 귀가 쉰 지 나흘이 지났다. 매미가 가라앉은 귀들이라서, 그 말은 한 번에 들어갔다.
마달수는 염태길을 봤다. 염태길이 입꼬리만 올렸다.
“거짓 부름은 안 붙는다며? 이건 참말이오. 공짜로 도는 걸 내가 조금 거들었을 뿐이오.”
*
방순금은 떡전 좌판에서 그 말을 들었다. 들은 순간 일어났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고 곰방대가 멍석에 떨어졌다. 덕구가 뭐라고 불렀지만 방순금 귀에는 다른 소리만 들렸다. 스물두 해 전 겨울, 저잣거리를 한 달 만에 한 바퀴 돌던 그 말이었다.
장승 앞에 이르렀을 때 관은 땅에 내려져 있었다. 상두꾼 둘이 멜빵을 풀고 어깨를 주물렀다. 마달수가 관 옆에 명정 장대를 짚고 서 있었다. 방순금은 관을 봤다. 소나무 관이었다. 대패질이 고르지 않아 모서리에 결이 일어나 있었다. 강경 포구에서 제일 싼 관이었다.
방순금은 관 앞에 섰다. 입꾼들 쪽으로 돌아섰다. 저잣거리 사람들 쪽으로도 돌아섰다.
“그 말, 스물두 해 전에 내가 들었소. 그때 나도 뭘 했는지 말해 주겠소.”
입꾼들이 입을 다물었다. 방순금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쉰 귀들이 그 목소리 쪽으로 기울었다.
“딸이 떠나고 나서 열두 번 산 년이 천 입을 넘었소. 평생 가게 됐소. 거둘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나는 부름을 하나 샀소. 딸 내쫓은 여편네. 천 입을 샀소. 내 돈으로, 내 입꾼한테 돈 주고, 나한테 붙였소. 딸 욕을 하는 입이 나를 욕하게 하려고.”
저잣거리가 조용해졌다. 왕방울댁이 떡전 좌판에서 반쯤 일어난 채 굳었다. 그 부름을 스물두 해 동안 입에 달고 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부름은 명부에 안 적었소. 서른 해 장사에 그 한 줄만 안 적었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게 내가 산 열세 번째라서. 딸한테는 열세 번째를 안 팔아 놓고 나는 샀소. 그래서 열세 번을 산 사람은 없다고 했던 거요. 내가 처음이었으니까.”
방순금이 관 뚜껑에 손을 얹었다. 결이 일어난 나무가 손바닥을 긁었다.
“덮지도 못했소. 딸 부름은 참말이라 안 덮였고, 내 부름은 산 거라 참말 위에 얹히기만 했소. 부름이 둘이 됐소. 그게 다요.”
마달수가 방순금을 봤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십니까? 부름집에서 그날 밤에 말씀하셨으면.”
“네가 사천 입을 사러 왔으니까. 사러 온 사람한테 내가 산 얘기를 하면, 너는 나처럼 샀을 거다.”
“지금은요?”
“지금은 네가 관을 들고 왔다. 사러 온 게 아니라.”
마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얼굴에서 딸의 턱이 떨렸다. 방순금은 그 턱을 끝까지 보았고, 눈을 돌리지 않았다.
*
“나 그 소리 들었소.”
저잣거리 뒤편에서 누가 말했다. 사람들이 돌아봤다. 소금 창고 쪽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고 있었다. 창고지기 한 노인이었다. 일흔을 넘겼고, 저잣거리 사람 누구보다 오래 소금 창고 밤일을 한 사람이었다.
“스물몇 해 전에 창고에서 밤마다 소금 가마니를 쌓았소. 방앗간하고 창고 사이가 흙벽 하나요. 밤마다 그 벽 너머에서 소리가 났소. 여자 목소리였소. 누군지는 몰랐소. 낮은 데서 올라갔다가 꺾여 내려오는 소리였소. 그 소리 들으면서 가마니를 쌓으면 허리가 덜 아팠소.”
노인이 관 쪽을 지팡이로 가리켰다.
“저 사람이오?”
방순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뒤에서 또 누가 나왔다. 창고에서 같이 밤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다들 늙어서 어물전에서 생선을 떼거나 나루에서 짐을 졌다. 셋이 나왔고, 다섯이 됐다.
“나도 들었소. 그게 방앗간 귀신인 줄 알았소.”
“귀신이 소리를 그렇게 잘하겠소?”
“그러니까 귀신인 줄 알았지.”
누가 웃었다. 웃음 끝에 누가 그 가락을 흥얼거렸다. 창고지기 한 노인이었다. 음이 조금 틀렸다. 마달수가 그 틀린 음 위에 제 목소리를 얹었다. 열 살 겨울 앓던 밤에 들은 대로, 낮은 데서 시작해 한참 올라갔다가 꺾여 내려왔다. 꺾이는 자리에서 둘 다 숨이 떨렸다.
그 가락이 저잣거리로 번졌다. 입꾼 입이 아니었다. 들은 사람이 들은 대로 옮겼다. 방앗간 소리꾼. 벽 너머 명창. 그 말이 쌀전으로, 젓갈전으로, 떡전으로 건너갔다. 돈 낸 사람은 없었다. 매미가 가라앉은 귀들이 그 말을 한 번에 받았다. 염태길의 입꾼들이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 말은 가락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
“호방 나리.”
덕구가 채상곤 앞에 섰다. 산가지 통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장중에는 상여가 못 지나간다고 하셨지요?”
“그렇소.”
“장중이라는 건 장이 선 거지요?”
“그렇소.”
“장이 서려면 좌판이 과반 앉아야 합니다. 동짓날 점고 규정이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셌습니다. 왕방울댁이 같이 돌았습니다. 제가 한 줄 세면 왕방울댁이 뒤에서 한 번 더 셌습니다. 두 번 다 백열둘입니다. 백쉰하나가 안 됩니다.”
채상곤이 덕구를 내려다봤다. 책을 펴서 한 장을 넘겼다. 또 한 장을 넘겼다. 사령 둘이 서로를 봤다.
“과반이 안 앉았으면 장이 선 게 아니오.”
“그럼 장중이 아닙니다.”
채상곤이 책을 덮었다. 사령들에게 손짓했다. 창이 내려갔다.
“지나가시오. 규정대로요.”
염태길이 한 걸음 나섰다.
“호방, 저잣거리가 비어서 상여를 들이는 거요?”
“비어서 들이는 거요. 행수 어른이 비운 거 아니오?”
채상곤은 그렇게 말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염태길이 채상곤을 한참 봤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하인들을 데리고 나루 쪽으로 갔다.
상여가 저잣거리로 들어섰다. 상두꾼 둘로는 모자랐다. 도 영감이 쌀되를 내려놓고 관 모서리를 멨다. 목수 김서방이 포대기를 왕방울댁에게 맡기고 반대편 모서리를 멨다. 왕방울댁이 포대기를 받아 들고 입을 벌리더니, 스무 해 떡 파는 목청으로 상여 앞소리를 메겼다. 가사는 없었다. 그 가락이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받았다.
방순금은 상여 뒤를 걸었다. 덕구가 그 옆에서 걸었다. 방순금은 걸으면서 한 번 입을 열었다. 스물두 해 만에, 서른 해 장사에 처음으로, 제 입으로 딸을 불렀다.
“명창.”
한 입이었다. 덕구는 그걸 세지 않았다.
*
선산은 소금 창고 뒤 산길을 반 식경 올라간 곳에 있었다. 방순금의 남편과 시부모가 누운 자리 아래로 새로 판 흙이 붉었다. 동짓달 땅이 얼어 삽이 잘 안 들어갔는데, 상여를 따라온 사람들이 번갈아 삽을 잡았다. 목수 김서방이 제일 오래 팠고, 그동안 아이는 왕방울댁 품에서 잠들었다.
관을 내리기 전에 마달수가 명정에 붓을 댔다. 먹을 찍은 붓끝이 비단 위에서 한참 떨렸다. 방순금이 옆에서 곰방대를 쥔 채 서 있었다. 무엇을 쓰라고 하지 않았다.
“할머니, 사천 입은 못 채웠습니다.”
“안 채워도 된다.”
“그럼 명창이라고 못 씁니다.”
“못 쓰지.”
마달수가 적었다. 율포 방앗간 소리꾼 순덕. 참말만 적었다. 방순금은 그 글씨를 오래 봤다. 가로획이 왼쪽으로 조금 누워 있었다.
해가 질 때 덕구가 선산을 내려왔다. 저잣거리 어귀 장승 옆 담벼락에 새 방이 붙어 있었다. 덕구는 까치발을 들고 읽었다. 동짓날 점고는 공주 감영에서 보내는 관리가 맡는다. 율포현 호방은 참관만 한다.
덕구는 방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입장 마당에서 염태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세는 사람을 바꾸면 된다고 했다.
담벼락 그늘에 누가 서 있었다. 채상곤이었다. 방을 붙인 사령들은 가고 없었고, 채상곤 혼자 그 방을 읽고 있었다. 제 손으로 붙인 방이 아니었다. 풀 자국이 비뚤었다.
“호방 나리도 오늘 아셨습니까?”
“한 식경 전에 알았소. 감영 전령이 가져왔소.”
“감영 관리는 누가 옵니까?”
“그건 규정에 없소.”
채상곤이 손을 들어 방 귀퉁이를 눌렀다. 비뚤게 붙은 종이가 반듯해졌다. 그러고는 덕구를 내려다봤다.
“세는 사람이 바뀌어도 좌판은 안 바뀌오. 앉아 있는 건 앉아 있는 거요. 나는 옆에서 보오. 참관이 그거요.”
덕구는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 채상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관아 쪽으로 걸어갔다. 덕구는 산가지 통을 흔들어 봤다. 백열둘. 이틀 남았다. 서른아홉이 모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