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07자) · 덕구 · 동짓달 열흘
값은 안 받았습니다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부름집 문에 한지가 다시 붙었다. 관아가 붙인 닫으라는 종이는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덕구가 새로 써서 붙였다. 할머니가 불러 주는 대로 썼는데 글씨가 삐뚤어서 세 번을 다시 썼다.
부름 안 팝니다. 들어 드립니다. 값은 안 받습니다.
동짓달 초엿새부터 사람들이 그 종이 앞에 줄을 섰다. 입장 줄처럼 길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오는 사람은 다 장사꾼이었다. 입장에서 입꾼을 하다가 좌판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아직 입꾼인데 돌아갈까 망설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같은 말을 했다. 도 영감처럼 되고 싶다고. 외상 쌀 주는 영감처럼 공짜로 도는 부름을 하나 사고 싶다고.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한 사람씩 들었다. 사는 부름은 안 붙는다고, 먹은 귀에는 참말만 들어간다고, 그러니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장사꾼이 대답하면 할머니는 그것을 덕구에게 말했다. 덕구는 그걸 받아 저잣거리에 나가 옆 좌판 사람에게 전했다. 한 사람에 열 입까지만이었다. 덕구가 열 번 말하면 그다음은 들은 사람이 했다. 참말이면 거기서부터 저절로 돌았다.
첫날 온 사람은 어물전 박씨네였다.
“우리 저울이 좀 기울었소. 한 근에 두어 돈쯤. 그걸 고치겠소.”
“고친다고 말하지 말고 고쳐서 보여 주시오. 손님 앞에서 저울추를 빼서 보여 주시오.”
“그럼 손해 아니오?”
“두어 돈 손해 보고 한 근을 파는 게 낫소, 두어 돈 남기고 한 근도 못 파는 게 낫소?”
박씨네는 그날 오후 저울추를 좌판 위에 꺼내 놓고 손님마다 달아 보였다. 이튿날 저잣거리에 부름이 돌았다. 저울 보여 주는 박씨네. 덕구는 그 부름을 저잣거리에서 네 번 들었는데 네 번 다 제 입이 아니었다.
사흘째에는 짚신전 오씨가 왔다. 오씨는 짚신 한 켤레에 덤으로 짚 한 줌을 얹어 주겠다고 했다. 해진 짚신은 그 짚으로 제 손으로 기워 신으라는 뜻이었다. 나흘째에는 젓갈전 할멈이 왔다. 새우젓 독 뚜껑을 열어 두겠다고 했다. 냄새를 맡아 보고 사라고. 냄새가 싫으면 안 사도 된다고.
나흘째 오후에는 채상곤이 왔다. 이번에도 혼자였다. 문에 붙은 새 종이를 한참 읽더니 평상 앞으로 와서 책을 폈다.
“값을 안 받는다고 적었소. 정말이오?”
덕구가 대답했다. 할머니가 대답하라고 턱짓을 했다.
“값은 안 받았습니다. 엿새째 한 푼도 안 받았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먹고사오?”
“할머니가 떡전 좌판에서 왕방울댁 떡을 대신 팔고 한 개에 한 리씩 받습니다. 그건 떡값이지 부름값이 아닙니다.”
채상곤이 붓을 멈추고 덕구를 봤다. 덕구는 그 얼굴이 웃으려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채상곤은 책에 한 줄을 적었다. 덕구가 목을 빼고 읽었다. 값 없음. 매매 아님.
“값이 없으면 매매가 아니오. 매매가 아니면 난전도 아니오.”
“그럼 문에 붙인 종이는 떼 주십니까?”
“안 떼오. 붙인 건 붙인 거요. 동짓날까지 닫으라고 했지, 닫힌 집에서 사람 말을 듣지 말라고는 안 했소.”
채상곤은 책을 덮고 갔다. 할머니가 곰방대로 평상을 두 번 두드렸다. 웃음을 참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덕구는 그 사람들을 명부에 적지 않았다. 할머니가 적지 말라고 했다. 대신 좌판을 셌다. 초엿새 쉰셋, 초이레 쉰아홉, 초여드레 예순여섯.
*
동짓달 초아흐레, 할머니가 한 가지를 더 정했다.
“내일 하루 입을 쉬자.”
“입을 쉬어요?”
“저잣거리 전체가. 하루 동안 아무도 남의 부름을 안 한다. 흥정만 한다. 귀가 쉬어야 참말도 들린다.”
덕구는 그 말을 저잣거리에 옮겼다. 옮기는 데는 반나절이면 됐다. 좌판에 돌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좋다고 했다. 문제는 왕방울댁이었다.
왕방울댁은 떡전 제 좌판과 입장을 번갈아 오가고 있었다. 새벽에 떡을 쪄서 좌판에 놓고 값 쪽지를 붙여 둔 다음, 해가 뜨면 입장에 가서 쪽지를 받아 입을 돌렸다. 떡은 할머니가 옆 좌판에서 대신 팔아 주었다. 하루에 떡 값 서른 푼, 입값 두 냥 반. 왕방울댁은 그 둘을 다 챙겼다.
“하루를 쉬라고? 입을 쉬면 두 냥 반이 날아가는데?”
“하루만입니다.”
“덕구야, 너 셈 잘하지? 두 냥 반이면 떡이 몇 개냐?”
“이백오십 개입니다.”
“내가 하루에 떡을 이백오십 개 찌냐? 서른 개 찐다. 서른 개!”
“그럼 입장으로 가십시오. 떡전은 제가 할머니한테 말씀드려서 빈 좌판으로 치겠습니다.”
왕방울댁이 입을 딱 벌렸다. 덕구도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왕방울댁 눈이 가늘어졌다. 스무 해 동안 저잣거리 모든 소문을 제일 먼저 옮긴 눈이었다.
“너 이놈, 누구한테 그런 말버릇을 배웠냐?”
“할머니한테요.”
“그 할멈이 그런 말은 안 한다.”
“그럼 저한테 배웠습니다.”
왕방울댁이 한참 덕구를 노려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쉰 목에서 나온 웃음이라 꽥꽥거리는 소리가 났고, 옆 좌판 사람들이 다 돌아봤다.
“하루다. 딱 하루. 그다음 날 내가 두 냥 반 못 벌면 너희 할멈 곰방대 뺏어서 팔 거다.”
“곰방대는 두 푼도 안 나갑니다.”
“그러니까 두 개 뺏을 거다.”
*
동짓달 열흘, 저잣거리가 조용했다.
덕구는 그 조용함을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다. 한 달 넘게 부름 소리가 빗소리처럼 깔려 있던 거리였다. 그 소리가 빠지자 다른 소리들이 드러났다. 새우젓 독 뚜껑이 열리는 소리, 엿장수 가위, 소금 가마니를 멍석에 내려놓는 둔한 소리, 나루에서 사공이 닻줄을 던지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가 그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거 얼마요. 두 푼이오. 한 푼 반에 주시오. 한 푼 칠 리. 그런 소리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제자리에서 울렸다. 동짓달 햇볕이 차일 틈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멍석 위 생선 비늘을 한 줄씩 반짝이게 했고, 떡전 시루에서 오른 김이 그 빛 속으로 흩어졌다.
덕구 귀의 매미가 점심때쯤 멈췄다. 멈춘 줄도 모르고 있다가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다. 도 영감이었다. 쌀을 나르라고 불렀다. 덕구는 쌀섬을 지고 가다 말고 섰다. 제 이름이 들렸다. 부름집 덕구가 아니라 그냥 덕구였다.
오후에는 목수 김서방이 쌀전 옆 빈자리에 또 작업대를 폈다. 대패질을 한참 하던 김서방이 갑자기 손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덕구가 가까이 가자 김서방이 목소리를 낮췄다.
“덕구야, 오늘 이상하다. 아무도 날 애기 아빠라고 안 부른다.”
“오늘은 입을 쉬는 날입니다. 아무도 남의 부름을 안 합니다.”
“그럼 날 뭐라고 부르냐?”
“안 부릅니다. 흥정만 합니다.”
김서방이 실망한 얼굴로 대패를 내려다봤다. 그때 등에 업힌 아이가 아버지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는 작업대 위에 쌓인 대팻밥을 가리키며 또렷하게 말했다.
“아빠, 목수.”
김서방이 대패를 떨어뜨렸다. 부름을 쉬는 날이라 아무도 그 말을 따라 하지 않았다. 따라 하지 않아도 됐다. 김서방은 대패를 줍지도 않고 아이를 포대기째 앞으로 돌려 안았다.
해 질 녘에 쌀전 앞에서 여자가 아이를 불렀다.
“복남아!”
한 번이었다. 엿장수 좌판 앞에 쪼그려 있던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돌아봤다. 그리고 엿 조각을 쥔 채 어미에게 뛰어갔다. 여자는 아이를 안지 않았다. 손을 잡고 그냥 걸었다. 아이가 어미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무언가를 말했고, 여자가 웃었다. 저잣거리에서 늘 있던 일이었다. 덕구는 한 달 동안 그게 없었다는 걸 그제야 셌다.
*
해가 지고 나서 덕구는 입장으로 갔다. 왕방울댁한테 오늘 떡 판 돈을 전해 주러 가는 길이었다. 서른 개를 다 팔았다. 입을 쉰 날, 떡이 제일 잘 팔렸다. 엽전 서른 닢을 꿴 꾸러미가 걸을 때마다 허벅지에 부딪혔다.
입장 대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소리가 났다. 덕구는 대문 기둥 뒤에 섰다.
마당 한가운데 마달수와 염태길이 마주 서 있었다. 마당에 입꾼이 없었다. 쪽지 받는 사람도, 줄 선 사람도 없었다. 마루 위 큰 장부만 펼쳐져 있었다.
“오늘 하루 한 입도 못 팔았소. 저잣거리가 입을 쉬었소.”
“그러니 내일 입값을 네 푼으로 올리시오.”
“안 올립니다.”
염태길이 부채를 펴지 않았다. 손에 든 것은 부채가 아니라 종이 한 장이었다.
“그럼 이 객줏집 문서를 내가 가져가오. 천이백 냥에 이자 두 달치. 오늘 갚겠소?”
“못 갚는 거 아시잖습니까?”
“알지. 그러니 묻는 거요.”
마달수가 마루 위 장부를 봤다. 그러고는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한 장을 펴서 염태길 앞에 들었다. 덕구는 거기 무엇이 적혔는지 보이지 않았다.
“행수 어른 입꾼들이 한 달 반 동안 판 입이 오십만입니다. 그 가운데 붙은 게 몇인 줄 아십니까? 제가 셌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제 어머니 부름도 천육백 입을 돌렸는데 하나도 안 붙었습니다. 오늘 저잣거리에서 붙은 건 제 장부에 하나도 없는 것들입니다. 외상 쌀 주는 영감, 저울 보여 주는 박씨네, 언 떡 지키는 할머니. 돈 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장사는 끝났습니다. 이백만을 채워도 아무것도 안 붙습니다.”
“붙으라고 판 적 없소.”
염태길이 문서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뒤에 서 있던 하인 둘이 마루로 올라가 큰 장부를 걷었다.
“내일부터 입꾼은 도가에서 직접 부리오. 네 푼이오. 입장 현판은 그대로 두오. 사람들이 익숙하니까.”
“입꾼 삯을 도가에서 대면 행수 어른은 뭐가 남습니까?”
“저잣거리가 남지.”
마달수가 한 걸음 나섰다. 하인 하나가 막았다. 마달수는 그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염태길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동짓날에 백쉰하나가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염태길이 대문 앞에서 멈췄다. 기둥 뒤에 선 덕구와 눈이 마주쳤다. 염태길은 덕구를 알아봤고, 놀라지 않았다.
“그럼 백쉰하나를 세는 사람을 바꾸면 되지.”
대문이 닫혔다. 마달수는 빈 마당에 혼자 서 있었다. 덕구가 기둥 뒤에서 나왔다.
“다 들었냐?”
“들었습니다.”
“오늘 저잣거리 몇이냐?”
“여든여덟입니다.”
마달수가 웃었다. 입장 마루에서 늘 웃던 웃음이 아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도중에 멈췄다.
“열나흘에 어머니를 모셔 온다. 강경에 가매장해 뒀어. 율포 선산으로 이장한다.”
“할머니한테 말씀드릴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 명정에 뭘 쓸지 아직 못 정했다.”
마달수는 빈 마당을 한 번 둘러보고 대문을 나갔다. 수첩은 손에 쥐고 있었다. 덕구는 왕방울댁 떡값 서른 푼을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문 위 현판이 바람에 한 번 삐걱였다. 입장. 주인이 바뀌어도 현판은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