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98자) · 덕구 · 동짓날

한 사람에 열 입까지만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동짓날 전날 밤, 부름집 평상 앞에 사람이 가득 찼다. 방이 좁아서 문을 떼어 냈고, 골목까지 사람이 섰다. 소금 창고 벽에 기대선 사람도 있었다. 다들 좌판 주인이었다. 백열둘 가운데 여든 남짓이 왔고, 아직 도가 입꾼으로 남아 있는 사람도 스물이 넘게 왔다. 마달수는 골목 끝 방앗간 문턱에 앉아 있었다.

덕구가 벽 앞에 섰다. 값표 나무판은 벽에서 내려 평상 밑에 넣어 두었다. 그 자리에 흰 벽이 드러났는데, 서른 해 동안 나무판에 가려 있던 자리라 둘레보다 밝았다. 사각형 모양의 밝은 벽이었다.

“내일 아침 점고 때 백쉰하나가 앉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 백열둘입니다. 서른아홉이 모자랍니다.”

“도가 입꾼 스물셋이 오늘 밤 여기 있소.”

왕방울댁이 말했다. 목에 감은 흰 천을 풀어 손에 쥐고 있었다. 목소리가 반쯤 돌아와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앉으면 백서른다섯이오. 열여섯이 모자라오.”

“열여섯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에 기름등 두 개가 타고 있었고, 사람들 숨에서 나온 김이 등불 둘레에 뿌옇게 고였다. 누가 헛기침을 했다. 누가 곰방대를 두드렸다. 도가 입꾼 가운데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떡전 최씨였다. 방순금이 여드레를 앉아 있던 그 자리의 주인이었다.

“나는 내일 앉겠소. 근데 우리가 앉아도 도가가 가만히 있겠소? 감영 관리가 온다면서. 행수 사람이라면서.”

“행수 사람이면 행수 셈으로 셀 거요.”

방순금이 말했다. 평상 위에서 곰방대를 무릎에 놓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셈으로 이기려고 하면 안 되오. 앉아서 이기오. 앉은 건 앉은 거요. 호방 말이 그렇소.”

“열여섯은요?”

“덕구야.”

덕구가 산가지 통을 흔들었다. 밤새 센 것이 있었다.

“율포 저잣거리 좌판은 삼백인데, 주인이 입장 시절에 아예 율포를 떠난 좌판이 스물입니다. 그 좌판은 장세 명부에 주인 이름이 있어도 사람이 없습니다.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스물은 내일 빈 좌판이오.”

“아닙니다. 채상곤 나리 책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장세 명부에는 좌판 번호가 올라 있지 사람이 올라 있지 않다고요. 누가 앉든 파는 게 있고 값이 붙어 있으면 앉은 좌판입니다. 할머니가 최씨 좌판에서 떡을 팔 때 그렇게 셌습니다.”

방 안이 술렁였다. 방앗간 문턱에서 마달수가 일어났다.

“그 스물 가운데 하나는 내가 앉겠습니다. 강경 젓갈이 두 독 있습니다. 섬 사공이 오늘 싣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마달수를 봤다. 입장 주인이었다. 반값을 걸고, 입값을 두 배로 불려, 이 저잣거리를 비운 사람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목수 김서방이 손을 들었다.

“나도 하나 앉겠소. 대패로 도마를 깎아 팔겠소. 애는 업고.”

“그럼 애기 아빠 좌판이오.”

왕방울댁이 말했다.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김서방이 얼굴을 붉히며 뭐라고 하려다 그냥 같이 웃었다. 웃음 끝에 손이 하나씩 올라갔다. 도 영감네 막내아들이 하나, 바느질댁이 하나, 창고지기 한 노인이 하나, 주막 순이가 하나. 덕구는 손을 셌다. 열여덟이었다.

*

동짓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저잣거리가 찼다.

덕구는 서쪽 어물전 골목에서부터 걸었다. 차일마다 서리가 하얗게 앉았고, 차일 밑에서 사람들이 손을 비비며 좌판을 폈다. 새우젓 독 뚜껑이 열렸다. 생선 비늘이 새벽빛에 번쩍였고, 떡전 시루에서 김이 올라와 차가운 공기 속에서 흰 기둥이 되었다. 쌀전에는 섬 사공이 실어 온 쌀이 멍석마다 쌓였다. 바느질댁 좌판에는 누빈 버선이 줄지어 걸렸고, 김서방 좌판에는 소나무 도마가 대팻밥 냄새를 풍기며 놓였다. 마달수는 나루 어귀 빈 좌판에 젓갈 두 독을 놓고 앉아 있었다. 값 쪽지를 독 옆에 세워 두었다. 한 종지 두 푼.

덕구는 세지 않았다. 할머니가 오늘은 세지 말라고 했다. 세는 건 감영 관리 몫이었다.

방순금은 떡전 셋째 줄에 앉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최씨가 돌아와 앉아 있었다. 방순금은 나루 어귀로 걸어가 마달수 좌판 앞에 섰다. 마달수가 젓갈 독 뚜껑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잠은 잤소?”

“못 잤습니다. 젓갈 값을 얼마로 할지 셈하느라고요.”

“두 푼이면 싸오.”

“반값입니다. 제가 잘하는 게 그겁니다.”

방순금이 웃지 않았다. 마달수도 웃지 않았다. 둘은 젓갈 독을 사이에 두고 잠깐 서 있었다. 입장에서 반값에 판 부름이 이 저잣거리를 비웠다는 걸 둘 다 알았다. 방순금은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마달수도 꺼내지 않았다. 그 얘기는 오늘 끝날 얘기가 아니었다.

“빚은 어떻게 하오?”

“모르겠습니다. 객줏집은 넘어갔고 천이백 냥은 그대로입니다.”

“그럼 젓갈이나 파시오. 한 종지씩.”

방순금은 그렇게 말하고 떡전 쪽으로 돌아갔다. 마달수는 한참 그 뒷모습을 보다가 독 뚜껑을 마저 닦았다.

해가 방앗간 지붕을 넘을 때 저잣거리 어귀에 가마가 들어왔다. 공주 감영에서 온 비장이었다. 붉은 철릭을 입었고, 수염이 짧았다. 가마 뒤로 진명도가 하인들이 따라왔고, 그 뒤로 염태길이 걸어왔다. 채상곤은 장승 옆에 혼자 서 있었다. 손에 얇은 책을 들었다.

비장이 좌판을 세기 시작했다. 셈이 느렸다. 좌판 하나 앞에서 한참을 섰다.

“이 좌판 주인이 누구요?”

“도 영감이오.”

“장세 명부에 도 영감 이름이 있소?”

“있소.”

“그럼 하나.”

다음 좌판 앞에서 비장이 멈췄다. 바느질댁 좌판이었다.

“이 좌판은 명부에 짚신전 한씨로 되어 있소. 한씨는 어디 있소?”

“강경으로 떠났소.”

“그럼 빈 좌판이오.”

바느질댁이 버선을 쥔 채 굳었다. 그때 장승 옆에서 채상곤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장부 읽듯 고르고 낮았다.

“비장 나리, 율포현 장시 규정 셋째 조요. 장세 명부는 좌판 번호로 적고 사람으로 적지 않소. 파는 것이 있고 값이 붙었으면 앉은 좌판이오. 이달 초나흘에 최씨 좌판에서 방씨가 떡을 팔 때도 그렇게 적었소.”

비장이 채상곤을 돌아봤다.

“호방은 참관이오.”

“참관이오. 그래서 규정을 읽어 드리는 거요. 세는 건 나리가 세시오. 틀리게 세면 내가 감영에 보고하오. 참관이 그거요.”

염태길이 한 걸음 나섰다. 채상곤은 염태길을 보지 않았다. 비장을 봤다. 비장이 책을 한 번 봤다가 염태길을 한 번 봤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했다.

“하나.”

바느질댁이 버선을 쥔 손을 가슴에 댔다.

셈은 한낮까지 갔다. 비장은 좌판마다 트집을 잡았고, 채상곤은 좌판마다 규정을 읽었다. 도가 하인들이 저잣거리 한쪽에서 목청을 돋워 떠들었다. 셈 부르는 소리를 덮으려고 떠드는 소리였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 떠들지 않았다. 흥정만 했다. 이거 얼마요. 두 푼이오. 입을 쉬어 본 귀들이라 셈 부르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점고가 나루 어귀에 가까워졌을 때 도가 하인 둘이 마달수 좌판 쪽으로 걸어왔다. 하나가 발을 헛디딘 척 젓갈 독 하나를 걷어찼다. 독이 옆으로 쓰러지며 깨졌고, 새우젓이 멍석 위로 쏟아져 짠 국물이 흙바닥으로 번졌다. 비린내가 한꺼번에 치솟았다. 하인이 다른 독에도 발을 들었다. 마달수가 몸으로 그 독을 안았다. 하인 발이 마달수 옆구리에 맞았다. 마달수는 독을 놓지 않았다.

주변 좌판 사람들이 일어섰다. 도 영감이 쌀되를 든 채 달려왔고, 목수 김서방이 대패를 든 채 왔다. 김서방 등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하인 둘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채상곤이 장승 옆에서 책에 무언가를 적었다. 덕구가 목을 빼고 봤다. 도가 하인, 좌판 기물 훼손.

마달수가 깨진 독 조각 사이에서 종지 하나를 주워 옷자락으로 닦았다. 남은 독에서 젓갈을 한 종지 떠 멍석 위에 놓고 값 쪽지를 그 옆에 다시 세웠다. 옆구리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비장이 나루 어귀 마지막 좌판 앞에 섰다. 마달수의 젓갈 좌판이었다. 비장이 쪽지를 봤다. 한 종지 두 푼. 비장이 한참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백쉰셋.”

저잣거리가 조용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러다 떡전 쪽에서 누가 한 번 박수를 쳤다. 왕방울댁이었다. 한 번 치고 멈췄다. 그다음에 쌀전에서 누가 쳤다. 젓갈전에서, 어물전에서. 소리가 한 번씩, 한 사람씩, 저잣거리를 건너왔다. 돈 낸 사람은 없었다.

염태길은 박수 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그러고는 채상곤 앞으로 갔다.

“감영에 올리겠소. 율포 장세 명부가 규정에 어긋난다고. 좌판 번호로 세는 규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올리시오. 나는 규정대로 했소.”

“호방, 규정은 감영이 고치오.”

염태길은 그렇게 말하고 가마 뒤를 따라 저잣거리를 나갔다. 오늘은 부채를 펴지 않았다. 채상곤은 책을 덮었다. 덮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한참 서 있다가, 떡전 좌판으로 가서 떡 한 개를 샀다. 한 푼을 내고 한 리를 거슬러 받았다.

*

그날 밤 부름집 벽에 덕구가 붓으로 한 줄을 적었다. 값표 나무판이 걸렸던 밝은 자리였다. 저잣거리 사람들이 밤에 다시 모여 정했고, 말은 할머니가 불러 주었다.

한 사람에 열 입까지만.

부름을 사고파는 규칙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남 하나를 두고 같은 부름을 하루에 열 번 넘게 하지 않는다. 입꾼이든 아니든, 참말이든 아니든. 그래야 귀가 먹지 않는다.

문은 열어 두었다. 떼어 낸 문짝을 도로 달지 않았다. 등잔불 아래 평상에 방순금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왕방울댁이, 그 옆에 도 영감이 앉았다. 셋이었다. 골목에서 발소리가 났고 마달수가 문지방을 넘었다. 넷이 되었다.

덕구가 산가지 통을 열었다.

“세지 마라.”

“그럼 뭘 합니까?”

“들어라.”

덕구는 통을 닫았다. 방 안에 말소리가 섞였다. 왕방울댁 쇳소리, 도 영감 느린 소리, 할머니 낮은 소리, 그리고 방앗간 문턱에서 흥얼거리던 마달수의 목소리가 그 사이로 하나 더 섞였다. 덕구는 그 소리를 하나도 흘리지 않았다. 귀가 맑았다.

그때 골목 끝에서 다른 발소리가 났다. 짚신이 아니었다. 가죽신이었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고, 갓을 쓴 사내가 문지방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도포 자락에 먼 길 먼지가 앉아 있었다.

“여기가 율포 부름집이오? 한양 운종가에서 왔소.”

방순금이 곰방대를 내려놓았다.

“부름은 안 파오.”

“들었소. 율포 저잣거리 백쉰셋이 도가를 이겼다는 말이 한양까지 왔소. 아무도 돈을 안 냈는데 왔소.”

사내가 문지방 안으로 한 발 들였다. 등불이 그 얼굴을 비췄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우리 시전이 사고 싶은 부름이 있소. 천 입이 아니오. 십만 입이오. 한 사람한테 붙일 거요.”

“누구한테?”

사내가 입을 열었다. 덕구는 그 이름을 들었다. 들은 순간 귀 안쪽에서 매미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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