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24자) · 방순금 · 동짓달 초사흘

공짜로 도는 것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방순금은 동짓달 초사흘까지 여드레를 꼬박 앉아 있었다. 떡전 셋째 줄 둘째 좌판, 입꾼 하러 간 최씨 자리였다. 파는 것은 없었다. 멍석 위에 곰방대와 부싯돌과 빈 사발 하나를 놓고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첫날은 사람들이 멀찍이서 봤고, 사흘째에는 가까이 와서 뭘 파느냐고 물었고, 닷새째부터는 묻지도 않고 옆에 쪼그려 앉아 제 얘기를 했다.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들 왔다. 저잣거리 사람 모두 귀에 매미를 달고 다녔고, 누구도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방순금 귀만 멀쩡했다. 서른 해 동안 남의 부름을 팔면서도 제 입으로는 한 사람에 열 입을 넘겨 본 적이 없었고, 남이 떠드는 부름은 흘려듣는 버릇이 있었다. 그 귀가 이제 저잣거리에서 하나 남은 귀였다.

동짓달 초사흘 아침, 방순금 옆에 앉은 사람은 쌀전 도 영감이었다. 영감은 되를 무릎에 얹고 한숨을 쉬었다.

“도가 창고에서 이제 석 되에 한 냥 칠 푼을 받소. 나는 두 냥에 팔고. 두 냥이면 입꾼 하루 벌이요. 하루 일해서 사흘 먹을 쌀을 사는 거요.”

“그래도 사 가오?”

“사 가오. 근데 요즘은 애들이 와.”

“애들이?”

“어미 아비가 새벽부터 입 돌리러 나가면 애들만 남소. 배고프면 쌀전으로 와. 돈은 없고.”

그러면서 영감은 턱으로 쌀전 쪽을 가리켰다. 쌀 좌판 앞에 아이 셋이 서 있었다. 제일 작은 아이는 방순금도 알았다. 덕구가 엿장수 앞에서 손을 잡아 제 어미한테 데려다준 복남이였다. 복남이가 빈 바가지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그래서 주오?”

“주지. 외상으로. 갚을 때 갚으라고 했소. 누가 갚을지는 모르지.”

영감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쌀전으로 갔다. 되를 들어 복남이 바가지에 쌀을 부었다. 쌀알이 바가지 바닥에 떨어지며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냈고, 아이 셋이 그 소리에 한꺼번에 고개를 숙였다. 영감은 장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되를 털고 다음 아이 바가지를 받았다.

*

이튿날 아침 방순금은 좌판에 앉기도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외상 쌀 주는 영감.

떡전에서 들었고, 젓갈전 앞에서 또 들었다. 나루 계단에서 짐 지던 사공 입에서도 나왔다. 입꾼이 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쪽지를 앞섶에서 꺼내 읽고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본 것을 옆 사람한테 옮기는 말이었다. 누가 돈을 냈는지 방순금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안 냈다.

방순금은 귀를 기울였다. 이상한 게 있었다. 입꾼들이 떠드는 부름은 사람들 귀에 닿자마자 미끄러져 떨어졌다. 듣는 사람 눈이 멍했다. 그런데 외상 쌀 주는 영감이라는 말에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매미를 달고 사는 귀가 그 말만은 붙잡았다. 짚신전 오씨가 쪽지 뭉치를 들고 지나가다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더니 쌀전 쪽을 봤다. 그리고 쪽지 뭉치를 도로 앞섶에 넣고 쌀전으로 걸어갔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쌀전 앞에 줄이 섰다. 입장 줄만큼은 아니었지만 저잣거리에서 한 달 만에 처음 보는 장사 줄이었다. 두 냥은 여전히 두 냥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쌀전 열넷 가운데 도 영감 좌판에만 섰다. 같은 쌀을 같은 값에 파는데 그 좌판에서만 샀다.

덕구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할머니, 쌀전에 줄이 섰습니다! 도 영감님이 외상 쌀을 줬다고, 다들 그 얘기만 합니다. 누가 입꾼을 산 겁니까?”

“아무도 안 샀다.”

“그럼 어떻게 먹은 귀에 들어갑니까?”

방순금은 곰방대를 내려놓았다. 서른 해 동안 알던 것을, 오늘에야 제 귀로 확인한 얼굴이었다.

“진짜는 공짜로 돈다. 그리고 진짜는 먹은 귀에도 들어간다.”

“왜요?”

“사람 귀가 원래 그런 거다. 거짓말은 백 번 들어야 붙고, 참말은 한 번 들어도 안 떨어진다. 스물두 해 전에 그걸 배웠다. 우리 집 딸이 그걸로 쫓겨났다.”

덕구가 입을 다물었다. 방순금은 쌀전 줄을 한참 봤다. 줄 끝에 짚신전 오씨가 서 있었고, 그 뒤에 어물전 박씨네가 섰다. 둘 다 입장 입꾼이었다.

“덕구야, 세라.”

“뭘요?”

“좌판에 돌아온 사람.”

*

점심 무렵 채상곤이 저잣거리를 돌았다. 사령 하나 없이 혼자였고, 손에 얇은 책 한 권과 붓을 들었다. 좌판 하나하나 앞에 멈춰서 책에 무언가를 적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방순금 좌판 앞에서 채상곤이 멈췄다.

“여기는 최씨 좌판이오. 장세 명부에 최씨 이름으로 올라 있소.”

“최씨는 입장에 갔소. 비워 두면 동짓날 관에 거둔다면서.”

“그러니까 방씨가 대신 앉았다는 거요?”

“앉았소.”

채상곤이 책을 한 장 넘겼다. 규정을 찾는 손이었다.

“점고 때 세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장사요. 멍석 위에 파는 게 없으면 앉아 있어도 빈 좌판이오. 곰방대하고 빈 사발은 물건이 아니오.”

“그럼 무얼 놓으면 되오?”

“그건 내가 정하지 않소. 파는 게 있으면 되오. 값이 붙어 있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채상곤이 붓 끝으로 방순금 멍석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옆 좌판, 언 떡 덩이가 든 시루를 한 번 봤다. 붓을 들어 무언가 적으려다 멈췄다.

“저 떡은 누구 거요?”

“왕방울댁 거요.”

“주인이 없는데 떡은 있소. 파는 거요?”

“언 떡을 누가 사겠소?”

“그럼 빈 좌판이오.”

채상곤은 그렇게 적고 지나갔다. 방순금은 그 뒤통수를 봤다. 규정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규정을 한 줄도 넘지 않았고, 한 줄도 모자라게 하지 않았다. 덕구가 옆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저 사람, 떡 있는 건 봤으면서.”

“봤으니까 물었지. 안 봤으면 안 묻는다.”

*

오후에 도 영감이 방순금 좌판으로 왔다. 얼굴이 흙빛이었다.

“도가에서 쌀을 안 준다오. 창고 앞에 갔더니 행수가 직접 나와서 그러오. 외상 쌀 주는 영감한테는 한 되도 안 판다고.”

“이유를 댔소?”

“안 댔소. 이유를 대 주는 사람이 아니오.”

방순금이 일어났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덕구가 부축하려는 걸 손으로 밀쳤다.

“나루로 가자.”

나루에는 배가 한 척 들어와 있었다. 진명도가 깃발이 없는 배였다. 돛이 누렇게 바랬고, 뱃전에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서해 섬에서 쌀을 싣고 올라온 작은 배였다. 뱃바닥에 쌀섬이 스무 남짓 쌓여 있었고, 섬마다 거적이 덮였는데 바닷물이 튀어 거적 가장자리가 하얗게 소금으로 굳어 있었다. 사공 아들로 보이는 소년이 이물에 앉아 닻줄을 감고 있었다. 사공은 예순 줄의 사내였는데 계단 위를 올려다보며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단 위에 염태길이 서 있었다. 하인 둘이 엽전 궤짝을 들고 뒤에 서 있었다.

“배째 사겠소. 석 되 값에 한 푼씩 얹어 주지.”

“행수 어른, 이 쌀은 저잣거리에 내려고 가져온 거요.”

“저잣거리가 도가요. 곧 그렇게 되오.”

방순금이 계단을 내려갔다. 사공과 염태길 사이에 섰다. 계단 돌 틈에서 갯물이 스며 나와 짚신 바닥을 적셨고, 썰물 갯벌에서 올라온 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씨. 좌판에 앉았다더니 이제 쌀도 파오?”

“쌀은 안 파오. 이 사공 쌀이 저잣거리로 가는지 창고로 가는지 보러 왔소.”

“내가 사면 창고로 가오. 내 돈이오.”

“행수 돈이 얼마요?”

“방씨 서른 해보다 많소.”

“그럼 사시오. 나는 안 막소. 사공이 파는 거지 내가 파는 게 아니니까.”

방순금은 그렇게 말하고 사공을 봤다. 사공도 방순금을 봤다. 방순금은 한마디만 물었다.

“사공 양반, 율포 올라오면서 무슨 말 들었소?”

사공이 머리를 긁었다.

“나루 입구에서 짐꾼들이 그럽디다. 외상 쌀 주는 영감이 있다고. 애들한테 쌀을 공짜로 퍼 준다고.”

“그 영감이 쌀이 없소. 도가에서 끊었소.”

사공이 염태길을 봤다. 염태길이 부채를 폈다. 사공은 동짓달 바닷바람에 부채를 펴는 사람을 처음 본다는 얼굴로 그 부채를 봤다.

“한 푼씩 얹는다고 했소. 두 푼으로 하지.”

사공이 한참 셈을 했다.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영감한테 팔겠소. 값은 저잣거리 값으로. 모자라면 외상으로.”

“외상?”

“그 영감이 외상을 주는데 나라고 못 주겠소? 섬에 돌아가서 나도 그 얘기 하겠소. 율포에 외상 쌀 주는 영감이 있더라고. 그게 나한테는 두 푼보다 낫소.”

염태길이 부채를 접었다. 딱 소리가 났다. 방순금은 그 소리를 한 달 새 두 번째로 들었다.

“사공, 동짓날 뒤에는 율포에 도가 배 말고는 못 대오. 금난전이오.”

“동짓날 뒤 일은 동짓날 뒤에 보겠소.”

사공은 뱃전에 걸쳐 둔 널을 계단에 내렸다. 방순금 뒤에서 덕구가 쌀섬을 향해 뛰어갔다. 염태길은 방순금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도포 자락이 계단 물기를 쓸었고, 하인 둘이 엽전 궤짝을 도로 들고 그 뒤를 따랐다.

*

해 질 녘에 덕구가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방순금은 떡전 좌판에 앉아 기다렸다. 언 떡 덩이가 든 시루 옆이었다. 덕구가 돌아와 숨을 고르고 산가지 통을 흔들었다.

“쉰셋입니다. 열하나가 돌아왔습니다. 쌀전 셋, 짚신전 오씨네 둘, 어물전 박씨네 셋, 젓갈전 둘, 그리고 떡전에 하나.”

“떡전에 누가?”

덕구가 떡전 셋째 줄 첫 좌판을 가리켰다. 왕방울댁 자리였다. 시루는 그대로였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시루 안 언 떡 덩이가 치워져 있었고, 그 자리에 새로 찐 떡 한 판이 김을 올리며 식어 가고 있었다. 떡 옆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왕방울댁 글씨였다. 삐뚤빼뚤한 한글이었다. 한 개 한 푼. 내일 옴.

“이것도 셉니까? 주인이 없는데요.”

“값이 붙었다. 사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방순금이 품에서 엽전 한 푼을 꺼내 쪽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떡 한 개를 집어 반으로 갈라 덕구에게 반을 내밀었다. 떡이 아직 따뜻했다. 쑥 향이 났고, 팥소가 손가락에 묻었다. 왕방울댁이 떡 파는 소리로 스무 해를 산 저잣거리에서 한 달 만에 처음 팔린 떡이었다.

“이제 떡전이다.”

덕구가 산가지 하나를 통에 넣었다. 그때 옆 좌판에서 누가 방순금을 불렀다. 짚신전 오씨의 손녀딸이었다. 일곱 살쯤 된 아이가 방순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제 할아비한테 말했다.

“할아버지, 저 할머니가 언 떡 지키는 할머니지?”

오씨가 얼굴이 벌게져서 아이 입을 막았다. 방순금은 아이를 봤다. 그러다 웃었다. 서른 해 동안 남의 부름을 팔고, 제 부름은 딱 하나만 가지고 살았는데, 아무도 돈을 안 낸 두 번째 부름이 방금 붙었다.

“그렇다. 언 떡 지키는 할미다.”

덕구가 산가지를 하나 더 넣으려다 말았다. 방순금이 덕구 손을 눌렀다.

“그건 세지 마라.”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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