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21자) · 방순금 · 시월 스무엿새
열두 번 산 딸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방순금은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두고 한참 앉아 있었다. 한 장은 제 집 문에 서른 해 붙어 있던 한지였고, 다른 한 장은 넉 달 전 강경에서 쓴 글씨였다. 거두어 다오. 스물두 해 전에 부름집 평상 위에 놓여 있던 쪽지에는 거두어 주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어미에게 쓴 말과 제 아들에게 쓴 말은 끝 한 글자만 달랐다.
등잔 기름이 거의 다 탔다. 심지 끝이 검게 말려 올라가며 그을음을 냈고, 방 안에 들기름 타는 냄새가 짙게 고였다. 덕구는 부엌 문턱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방순금은 덕구를 내보내지 않았다. 이제 와서 감출 것이 없었다.
“외손자라고 했소?”
“예.”
“네 어미가 강경에 있었소?”
“스물두 해를 있었습니다. 젓갈 독을 닦았습니다.”
“소리는?”
“안 했습니다. 한 번도요. 목이 나빠 못 한다고 했습니다.”
방순금은 곰방대를 쥐었다. 손이 아직 떨렸다. 떨림을 멈추려고 대통을 무릎에 대고 눌렀다.
“목이 나쁜 애가 아니었소.”
*
순덕은 열여섯에 처음 소리를 했다. 방순금이 그걸 안 건 방앗간 벽 때문이었다. 그 시절 방앗간은 아직 돌았고, 밤이면 방아가 쉬었다. 순덕은 식구들이 잠든 뒤에 몰래 나가 방앗간 곡식 창고에서 소리를 했다. 부름집과 방앗간 사이에는 흙벽 하나가 있었다. 방순금은 귀가 밝았다. 벽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낮은 데서 시작해 한참 올라갔다가 꺾여 내려오는 것을 이불 속에서 다 들었다. 꺾이는 자리마다 숨이 떨렸고, 그 떨림이 흙벽을 타고 방순금의 베개까지 왔다.
방순금은 한 번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딸이 들킨 줄 알면 그만둘 것 같았다.
열여덟 되던 봄에 순덕이 부름집 평상 앞에 섰다. 손에 엽전 한 냥을 쥐고 있었다. 제 손으로 삯바느질을 해 모은 돈이었다.
“율포 명창, 열 입이오.”
“누가 명창이냐?”
“내가 명창이 되고 싶소. 장터에서 소리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들어 주오. 다들 부름집 딸이라고만 하오.”
방순금은 팔았다. 값표대로 열 입 한 냥에 사흘이었다. 사흘 동안 저잣거리 사람들이 순덕을 보면 명창이라는 말이 목에서 올라왔다. 순덕은 그 사흘 동안 장터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서면 목이 닫힌다고 했다. 부름은 붙었는데 소리는 안 했다. 일이 부름을 잇지 않았으니 사흘 만에 식었다.
사흘 동안 부름집 문 앞은 난리였다. 명창이 붙었으니 사람들이 소리를 청하러 왔다. 주막 주모가 잔치 소리를 해 달라고 왔고, 젓갈전 윤 서방이 딸 혼례에 한 대목만 해 달라고 왔고, 나룻배 사공들은 뱃노래를 청하며 문짝을 두드렸다. 순덕은 뒷방에 숨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방순금이 빗자루를 들고 나가 사람들을 쫓았다. 명창이 목이 쉬었소, 명창이 체했소, 명창이 오늘은 뒷간에 갔소. 사흘째 되는 날에는 댈 핑계가 없어서 명창이 부름집 딸이오, 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갔다.
그리고 순덕은 다시 샀다. 한 냥 반. 또 식었다. 두 냥. 또 식었다.
방순금에게는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은 규칙이 있었다. 값표 나무판에는 적지 않은 줄이었다. 같은 사람에게 같은 부름을 세 번 넘게 팔지 않는다. 세 번 사서 안 붙으면 그 사람이 그 부름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네 번째부터는 부름이 아니라 가두는 것이 된다. 값을 반 냥씩 올린 까닭도 거기 있었다. 못 지킬 때를 알려고.
방순금은 딸에게 네 번째를 팔았다. 다섯 번째도 팔았다. 딸이 평상 앞에 서서 엽전을 내밀 때마다 방순금 귀에는 방앗간 벽 너머의 그 가락이 들렸다. 이번에는 장터에 나가겠지. 이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하겠지. 그렇게 열두 번을 팔았다. 열두 번째 값은 여섯 냥 반이었고, 순덕은 그 돈을 모으느라 겨울 내내 손가락이 터지도록 바느질을 했다.
열세 번째 값은 일곱 냥이었다. 순덕이 일곱 냥을 가지고 왔을 때 방순금은 처음으로 안 판다고 했다.
“왜 안 파오?”
“열세 번을 산 사람은 없다.”
“내가 처음이 되면 되지 않소?”
“부름을 사지 말고 소리를 해라. 장터에 나가서.”
순덕이 무슨 얼굴을 했는지 방순금은 지금도 기억했다. 입술을 깨물었는데 피가 나지 않았다. 턱이 떨렸고, 쥐고 있던 엽전 꾸러미를 평상에 놓지도 못하고 들고 서 있었다.
그 겨울 저잣거리에 부름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았다. 입꾼이 한 것도 아니었다. 부름집 딸이 제 어미한테서 명창을 열두 번 샀다는 이야기가 떡전에서 쌀전으로, 쌀전에서 나루로 건너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서 값 없이 돌았다. 한 달 만에 천 입을 넘었다. 평생 가는 부름이 되었다. 열두 번 산 년.
그 겨울 순덕은 방앗간에 가지 않았다. 방순금은 밤마다 이불 속에서 흙벽에 귀를 댔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아도 쉬고 딸도 쉬었다. 낮이면 순덕은 부름집 뒷방에서 삯바느질을 했다. 바늘이 천을 뚫는 소리만 났다. 저잣거리에 나가면 사람들 목에서 그 말이 먼저 올라왔고, 순덕은 그 말이 제 등에 닿기 전에 걸음을 돌렸다.
이듬해 봄에 순덕은 떠났다. 평상 위에 쪽지 한 장이 있었다. 거두어 주시오. 쪽지 옆에 일곱 냥이 꾸러미째 놓여 있었다. 열세 번째 값이었다.
*
“네 어미가 네게 무슨 소리를 했소?”
방순금이 물었다. 마달수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흥얼거렸다. 가사가 없었다. 낮은 데서 시작해 한참 올라갔다가 꺾여 내려왔다. 꺾이는 자리에서 마달수의 숨도 떨렸다.
방순금 손에서 곰방대가 떨어졌다. 대통이 평상 모서리에 부딪혀 굴렀고, 담뱃재가 방바닥에 흩어졌다. 덕구가 주우려고 일어났다가 멈췄다. 방순금은 흥얼거림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다. 방앗간 흙벽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등을 벽에 붙였다.
“열 살 때 앓았는데, 그때 한 번 들었습니다.”
“그거 네 어미가 지은 거요. 방앗간에서 밤마다 했소.”
“아셨습니까?”
“벽 너머로 다 들었소.”
“잘한다고 하셨습니까?”
방순금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불이 꺼질 듯 작아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한 번도 안 했소. 명창을 열두 번 팔면서 내 입으로는 한 번도 안 했소. 열두 번을 팔고 한 입을 안 했소.”
덕구가 부엌 문턱에서 코를 훌쩍였다. 마달수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 뒤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방순금은 그게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걸 알았다. 입장 마루에서 늘 웃던 사내가 웃지 않으니 딸의 턱이 거기 있었다.
“그럼 이제 파십시오.”
“무엇을?”
“율포 명창 순덕, 사천 입이요. 부름집 입꾼으로요. 할머니 입꾼은 한 사람에 열 입까지만 하니까 귀가 안 먹습니다. 입장 입으로는 안 붙었습니다. 여기서는 붙을 겁니다. 값은 다 드리겠습니다. 입장을 팔아서라도 드리겠습니다.”
“안 판다.”
마달수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를 가둔 건 할머니입니다. 열두 번 팔아서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안 판다고 하십니까?”
“그래서 안 판다.”
방순금은 떨어진 곰방대를 주웠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사천 입으로 덮으면 그것도 천 입을 넘는다. 평생 간다. 못 거둔다. 네 어미는 명창으로 산 적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 소리 한 번 안 했다. 그런 부름을 사천 입 붙이면 네 어미는 죽어서도 거짓 부름에 갇힌다. 열두 번이 사천 번이 될 뿐이다.”
“그럼 열두 번 산 년으로 묻으라는 겁니까?”
“묻는 건 네 일이다. 나는 안 판다.”
“할머니는 서른 해 동안 남의 부름을 팔았습니다. 딸 부름 하나를 못 거둬서 이러시는 겁니까?”
방순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달수가 일어섰다. 평상 위의 종이 두 장 가운데 거두어 다오를 집어 도로 안주머니에 넣었다. 문지방에서 돌아봤다.
“사천 입은 제가 채웁니다. 입장에서요. 붙을 때까지 팔 겁니다. 동짓날까지 이백만을 채우면 빚이 절반이 된답니다.”
“이백만이면 저잣거리가 죽는다.”
“저잣거리가 제 어머니를 먼저 죽였습니다.”
문이 닫혔다. 마달수의 발소리가 소금 창고 앞을 지나 골목 끝까지 갔다. 방순금은 그 발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딸이 떠나던 봄에는 발소리를 못 들었다. 새벽에 잠들어 있었다.
*
닭이 울기 전에 방순금은 덕구를 깨웠다.
“일어나라. 좌판 보러 가자.”
덕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부름을 좌판에서 어떻게 파냐고 하셨잖습니까?”
“부름은 안 판다. 앉기만 한다.”
“앉아서 뭘 합니까?”
“하나를 채운다. 백쉰하나 가운데 하나.”
새벽 저잣거리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다. 빈 좌판 멍석마다 하얗게 성에가 앉았고, 발을 디디면 짚신 밑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방순금은 떡전 셋째 줄 첫 좌판 앞에 섰다. 왕방울댁 자리였다. 시루가 그대로 있었고 시루 안에 얼어붙은 떡 한 덩이가 남아 있었다. 방순금은 그 옆 둘째 좌판에 앉았다. 주인이 입꾼 하러 간 지 보름 된 자리였다.
덕구가 입김을 불어 손을 녹이고 나서 산가지 통을 열었다.
“마흔둘입니다.”
“세지 마라. 아직 해도 안 떴다.”
방순금은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부싯돌이 두 번 헛돌고 세 번째에 불이 붙었는데, 언 손가락이 쇠에 쩍 들러붙었다가 떨어졌다. 연기가 서리 위로 낮게 흘렀다. 저잣거리 끝에서 누가 좌판 차일을 걷는 소리가 났다. 쌀전 도 영감이었다. 영감이 방순금을 보더니 되를 든 채 한참 서 있었다.
“방씨가 왜 거기 앉았소?”
“자리가 비었길래.”
“뭘 팔려고?”
방순금이 대답하기 전에 나루 쪽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왕방울댁이 쪽지 뭉치를 들고 입장으로 가다가 떡전 앞에서 멈춰 섰다. 목에 감은 흰 천이 새벽바람에 날렸다.
“할머니! 거기 최씨 자리요!”
“최씨는 입장에 갔소.”
“최씨가 알면 난리 나오. 그 여편네 자리 욕심이 얼마나 센데.”
“자리 욕심 센 사람이 자리를 비웠소?”
왕방울댁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러다 제 좌판 시루를 봤다. 얼어붙은 떡 덩이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이거 내가 보름 전에 찐 거요. 버려야겠네.”
“버리지 마오. 그 자리에 떡이 있다는 건 떡전이 아직 있다는 거요.”
“떡이 얼었는데?”
“언 떡도 떡이오.”
왕방울댁은 뭐라고 대꾸하려다 입을 닫았다. 쪽지 뭉치를 치마 속에 넣고 한 번 돌아보고는 나루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아까보다 느렸다.
방순금은 도 영감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몰랐다. 모르는 채로 앉아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남의 부름을 팔고 한 번도 제 입으로 딸을 부르지 않은 사람이, 빈 좌판 위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