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23자) · 덕구 · 시월 스무닷새
닫으라는 종이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입값이 세 푼이 되고 열흘 만에 저잣거리가 반 넘게 비었다. 덕구는 날마다 해 뜰 때 한 번, 해 질 때 한 번 좌판을 셌다. 서쪽 어물전 골목에서 시작해 젓갈전을 지나 쌀전을 돌고 떡전과 짚신전을 거쳐 나루 어귀에서 끝나는 길이었다. 한 바퀴에 반 식경이 걸리던 길이 이제는 금방 끝났다. 앉아 있는 사람이 없으면 셀 것도 없었다.
시월 스무닷새 아침, 덕구는 마지막 좌판 앞에서 산가지를 내려놓았다. 마흔하나. 삼백 가운데 마흔하나가 남았다.
남은 사람들도 장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젓갈전 할멈 하나는 독 뚜껑을 닫아 둔 채 그 위에 앉아 졸고 있었고, 짚신전 노인은 짚을 꼬다 말고 손을 무릎에 얹은 채 먼 데를 봤다. 쌀전 도 영감만 되를 들고 앉아 있었는데, 앞에 놓인 쌀은 한 말도 안 되었다. 되 옆에 널빤지를 세워 값을 써 붙였다. 쌀 석 되 한 냥 반. 구월 스무날 다섯 푼이던 값이었다.
“영감님, 이 값에 누가 삽니까?”
“사는 사람이 있다. 입꾼들이 돈은 있거든. 돈이 있으니까 산다. 사고 나서 또 입 돌리러 간다.”
“그럼 장사가 되는 거 아닙니까?”
“장사가 되긴. 내가 도가 창고에서 받는 값이 한 냥 사 푼이다. 두 푼 남기고 앉아 있는 거다. 나도 입꾼 하면 하루에 한 냥 반을 번다.”
“그럼 왜 안 가십니까?”
도 영감은 쌀되를 내려놓고 덕구를 한참 봤다. 되 가장자리가 오래 손때를 먹어 까맣게 반들거렸다. 영감은 그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내가 가면 쌀은 누가 파냐?”
쌀전 뒤로 나루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쌀겨가 날려 덕구 소매에 붙었고, 빈 좌판들의 차일이 한꺼번에 펄럭이는 소리가 영감 목소리 뒤를 덮었다. 덕구는 그 말을 산가지로 치지 않았다. 부름이 아니었다. 그래도 매미 사이로 또렷하게 들렸다.
*
저잣거리 어귀 장승 옆 담벼락에 방이 붙어 있었다. 사람 몇이 그 앞에 서 있었지만 읽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방을 보며 귀를 문질렀다. 글자는 눈으로 읽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귀 먹은 사람처럼 멍했다. 덕구는 까치발을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율포현 영. 동짓날 저잣거리 좌판 삼백을 점고한다. 그날 비어 있는 좌판은 관에 거두어 관허 도가에 붙인다. 과반이 비면 저잣거리 전체를 도가에 붙이고 도가 외 매매를 금한다. 이를 어기는 자는 난전으로 다스린다.”
“뭐라고?”
옆에 선 짚신전 오씨가 물었다. 덕구가 다시 읽었다. 오씨는 또 뭐라고 했다. 세 번째 읽을 때 덕구 뒤에서 누가 방을 대신 읽었다. 목이 쉰 쇳소리였다. 왕방울댁이었다.
“도가 말고는 쌀 한 되도 못 판다는 거요. 떡도 못 팔고. 떡은 원래 안 팔고 있지만.”
왕방울댁이 목에 감은 흰 천을 풀었다 감았다 했다. 그러다 방 맨 끝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과반이면 몇이냐, 덕구야?”
“백쉰하나입니다.”
“지금 몇이 앉아 있냐?”
“마흔하나입니다.”
왕방울댁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스무 해 동안 저잣거리에서 제일 큰 입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
부름집에 돌아와 보니 문 앞에 사람이 셋 서 있었다. 둘은 관아 사령이었고 붉은 전립을 쓰고 있었다. 가운데 선 사람은 검은 두루마기 차림에 허리에 호방 패를 찼다. 사령 하나가 풀 그릇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가 매일 아침 덕구에게 붙이게 하던 한지는 떼어져 골목 바닥에 뒹굴었고, 그 자리에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
부름집. 관허 좌판 아님. 장세 명부에 없음. 동짓날까지 닫을 것.
할머니는 문지방 안쪽에 서 있었다. 곰방대를 손에 쥐었지만 불은 없었다.
“율포현 호방 채상곤이오. 방씨 되시오?”
“서른 해 동안 방씨요.”
“이 집은 좌판이 아니오. 저잣거리 삼백 안에 없소. 골목에서 값을 받고 물건을 파니 난전이오.”
“물건을 판 적 없소. 부름을 팔았소.”
“부름이 물건이 아니면 무엇이오?”
“물건이면 장세 명부에 올리지 그랬소. 서른 해 동안 관아에서 한 번도 안 물었소.”
“그동안은 좌판이 차 있었소. 지금은 비었소. 빈 저잣거리 옆 골목에 값 받는 집이 있으면 그게 눈에 띄오.”
“그럼 저잣거리를 누가 비웠소?”
채상곤이 할머니를 똑바로 봤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덕구는 그 사람이 화가 났는지 미안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셀 일이 아니오. 나는 좌판을 세오.”
“장세는 누가 받소? 동짓날 뒤에.”
“도가가 통으로 내오.”
“그러면 호방 나리는 편하겠소.”
사령 하나가 한 발 나섰다. 채상곤이 손을 들어 막았다.
“편한 게 아니오. 현감 나리가 모자란 장세를 내 봉록에서 떼오. 이번 달에 넉 냥을 뗐소. 나도 셈이 있소, 방씨.”
할머니가 곰방대를 허리띠에 꽂았다.
“그 셈에 우리 집은 없소?”
“한 가지 길이 있소. 저잣거리 삼백 안에 좌판을 얻으시오. 빈 좌판은 지금 이백쉰아홉이오. 동짓날에 그 좌판에 앉아 있으면 부름집은 난전이 아니오.”
채상곤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사령들이 풀 그릇을 챙겨 뒤를 따랐다. 골목 끝에서 채상곤이 한 번 돌아봤는데, 할머니가 아니라 문에 붙은 종이를 봤다. 종이가 비뚤게 붙어 있었다. 채상곤은 되돌아와서 종이 귀퉁이를 손바닥으로 눌러 반듯하게 폈다. 그러고는 다시 갔다.
“저 사람 뭡니까?”
“규정대로 하는 사람.”
“종이를 왜 폈습니까?”
“비뚤면 규정이 아니니까.”
“좌판 얻으실 겁니까?”
“부름을 좌판에서 어떻게 파냐? 부름은 멍석에 펴 놓는 게 아니다.”
덕구는 그 모습을 떠올려 봤다. 떡전 셋째 줄 빈 좌판, 왕방울댁이 두고 간 시루 옆에 할머니가 앉아 있다. 곰방대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름 사시오, 부름 사시오, 한다. 사람들은 귀를 문지르며 지나간다. 덕구는 웃음이 나왔다가 할머니 눈초리를 보고 삼켰다.
“웃지 마라. 나도 그 생각 했다.”
“하셨습니까?”
“하고 나서 웃었다.”
할머니가 정말로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그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문에 붙은 종이를 안쪽에서 한참 봤다. 창호지 너머로 글씨가 거꾸로 비쳤다.
*
해가 지고 나서 덕구는 부엌에서 궤짝 밑을 뒤졌다. 헝겊에 싸 둔 엽전 꾸러미가 거기 있었다. 석 냥이었다. 한 푼도 안 썼다. 입꾼 두 푼으로 쌀은 샀지만 이 석 냥으로는 아무것도 못 샀다. 손에 쥐면 무거웠고, 무거워서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덕구는 꾸러미를 들고 평상 앞으로 갔다. 할머니는 값표 나무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오늘은 닦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할머니.”
“오냐.”
“입장 장부 첫째 줄부터 쉰일곱째 줄까지, 제가 불러 줬습니다.”
할머니는 나무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석 냥 받았습니다. 한 푼도 안 썼습니다.”
덕구는 꾸러미를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엽전이 부딪는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귀 속 매미가 그 소리에 놀라 잠깐 멈췄다. 할머니가 드디어 덕구를 봤다. 장부 앞에서 봤던 그 얼굴, 숨 한 번 쉴 동안의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오래 봤다.
“알았다.”
“혼내십시오.”
“알았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입장에서 반값에 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손님이 끊겼습니다. 저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입장에 간 건 반값이라서다. 네가 이름을 안 불렀어도 갔다. 이름은 다 저잣거리에 있는 거다. 명부가 있어서 손님이 있는 게 아니다.”
할머니가 꾸러미를 들어 덕구 손에 도로 쥐여 줬다. 엽전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긁었다.
“이걸로 내일 쌀 사 와라. 한 냥 반이면 석 되다. 두 번 사면 여섯 되다. 우리 둘이 동짓날까지 먹는다.”
“할머니.”
“네가 말한 게 이 석 냥보다 비싸다. 그걸로 됐다.”
덕구는 엽전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눈앞이 흐려졌고, 평상 모서리의 나뭇결이 두 겹으로 보였다. 덕구는 울지 않으려고 산가지 셈을 했다. 마흔하나, 이백쉰아홉, 백쉰하나. 숫자가 자꾸 흐려졌다.
*
마달수는 부름집 골목 어귀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달이 소금 창고 지붕에 걸려 있었고, 창고 벽에서 소금기가 하얗게 피어 달빛을 받았다. 골목 바닥에 한지 한 장이 굴러다녔다. 주워 보니 부름 팝니다, 이름은 안 팝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풀 자국이 뒷면에 말라붙어 있었다.
오는 길에 저잣거리를 가로질렀다. 밤 저잣거리는 낮보다 더 비어 보였다. 걷어 두지 않은 차일들이 바람에 부풀었다 꺼지며 짐승 숨소리 같은 소리를 냈고, 떡전 셋째 줄 첫 좌판에서는 누가 어둠 속에 앉아 엽전을 세고 있었다. 왕방울댁이었다. 제 좌판에 앉아서 떡 대신 엽전을 세고 있었다. 마달수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주인 양반, 나 오늘 두 냥 칠 푼이오.”
“잘하셨습니다.”
“근데 내일 쌀을 사면 한 냥 반이 날아가오. 그러면 남는 게 한 냥 이 푼이오. 떡 팔 때는 하루 칠 푼 남았으니까 그래도 남는 거지?”
마달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칠 푼 남던 떡이 한 냥 이 푼 남는 입보다 나은지 못한지, 그 셈을 입장 장부로는 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왕방울댁이 제 셈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낮에 입꾼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관아가 부름집에 닫으라는 종이를 붙였다고. 염태길이 채상곤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마달수는 알았다.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었으니까.
문은 닫혀 있었는데 안에 불빛이 있었다. 마달수는 주운 종이를 손에 든 채 문을 두드렸다. 덕구가 문을 열었다가 마달수를 보고 몸을 굳혔다.
“할머니 뵈러 왔어.”
“주무십니다.”
“안 자는 거 알아. 곰방대 두드리는 소리가 났잖아.”
안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났다.
“들여보내라.”
마달수는 문지방을 넘었다. 좁은 방이었다. 벽 한쪽에 나무판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열 입 한 냥 사흘. 쉰 입 닷 냥 보름. 백 입 열 냥 한 달. 천 입은 안 판다. 마달수는 그 글씨를 처음 가까이 봤다. 어머니 궤짝 밑바닥 명정에 남은 먹 자국과 획을 긋는 버릇이 닮아 있었다. 왼쪽으로 조금 눕는 가로획이었다.
할머니가 평상 위에서 마달수를 올려다봤다. 등잔불이 할머니 얼굴 한쪽만 비췄다.
“무슨 일로 왔소?”
마달수는 주운 한지를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접힌 자리가 보풀처럼 일어난 종이였다. 펴서 한지 옆에 나란히 놓았다.
거두어 다오.
할머니가 그 글씨를 봤다. 곰방대를 쥔 손이 떨렸다. 덕구는 할머니 손이 떨리는 걸 처음 봤다.
“어머니 이름이 순덕입니다. 넉 달 전에 강경에서 죽었습니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할머니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할머니, 제가 외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