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33자) · 마달수 · 시월 보름
이백만 입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입장 안채 뒷방에는 장부가 두 권 있었다. 한 권은 마루에 펴 두는 것으로, 누가 무슨 부름을 몇 입 샀는지가 적혀 있었다. 다른 한 권은 손바닥만 한 수첩이었고 마달수는 그것을 늘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수첩에는 부름이 하나밖에 없었다. 율포 명창 순덕.
시월 보름 밤, 마달수는 기름등 하나를 켜 놓고 두 장부를 나란히 폈다. 큰 장부의 합은 한 달 사이에 십팔만 입을 넘었다. 입꾼은 백서른이 되었고, 객줏집 마당은 아침마다 쪽지 받으려는 사람으로 발 디딜 데가 없었다. 수첩의 합은 천이백 입이었다. 입꾼마다 하루 한 입씩, 남의 부름 사이에 끼워 넣게 한 것이 한 달 동안 그만큼 쌓였다.
사천까지 이천팔백이 남았다. 셈으로는 석 달이면 됐다.
그런데 붙지 않았다. 마달수는 그걸 알았다. 입꾼 하나를 시켜 저잣거리 노인들에게 물어보게 했더니, 명창 순덕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들었는데 기억을 못 했다. 귀에서 매미가 운다고들 했다.
마달수는 수첩을 덮고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넉 달 전부터 날마다 꺼냈다 넣었다 해서 접힌 자리가 보풀처럼 일어나 있었다. 강경 포구 셋방에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쓴 글씨였다. 손이 떨려 획마다 먹이 번졌고, 다 쓴 뒤에 붓을 떨어뜨려 종이 귀퉁이에 먹 자국이 동그랗게 남았다.
거두어 다오.
어머니는 스물두 해 동안 소리를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강경 장터에서 젓갈 독을 닦으며 살았고, 누가 노래를 청하면 목이 나빠 못 한다고 했다. 마달수가 어머니의 소리를 들은 건 딱 한 번이었다. 열 살 겨울, 열이 올라 사흘을 앓던 밤에 어머니가 이불 위로 손을 얹고 무언가를 흥얼거렸다. 가사는 없었다. 낮은 데서 시작해 한참 올라갔다가 꺾여 내려오는 가락이었는데, 꺾이는 자리에서 어머니 숨이 떨렸다. 마달수는 그 가락을 지금도 외웠다. 외웠지만 어디서 온 소리인지는 몰랐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궤짝 밑바닥에서 율포 선산 지도와 명정 한 폭을 찾은 뒤에야 알았다. 명정은 비어 있었다. 이름 쓸 자리만 남겨 두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율포에 와서 알게 된 건 그다음이었다. 어머니 이름을 대자 저잣거리 노인들 입에서 먼저 올라온 말이 있었다. 열두 번 산 년. 그 말은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았는데 스물두 해를 돌았고, 천 입을 넘어서 평생 붙었다. 부름은 떼는 법이 없고 덮으려면 네 배가 든다. 그래서 사천이었다.
돈은 없었다. 강경에서 거간 노릇을 하며 모은 것이 여든 냥이었다. 부름집 값표대로 사천 입을 사면 열 입에 한 냥, 사백 냥이 들었고, 다시 사는 값까지 치면 그 두 배였다. 그래서 가게를 열기로 했다. 제 입꾼으로 제 부름을 돌리면 입값만 들었다. 남의 부름을 싸게 팔아 입꾼을 모으고, 그 입꾼 입에 어머니 부름을 하루 한 번씩 얹으면 됐다. 객줏집을 얻고 입꾼을 부를 밑천이 모자라서 진명도가 문을 두드렸다. 염태길은 사연을 끝까지 듣고 나서 천이백 냥을 한 번에 내주었다. 너무 쉽게 내주었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않았다.
*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 시각에 오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염태길은 혼자 오지 않았다. 뒤에 관복 대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따라 들어왔는데, 허리에 관아 호방의 패를 차고 있었다. 마흔 남짓이었고,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방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장부 쪽에 눈을 두었다.
“율포현 호방 채상곤이오.”
“이 밤에 관아에서 어쩐 일이십니까?”
“장세 때문이오.”
채상곤이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염태길이 방석을 당겨 앉으며 부채를 폈다. 시월 밤에 부채를 펴는 사람은 저잣거리에 이 사람 하나였다.
“장사가 잘되더군. 십팔만.”
“잘되고 있습니다.”
“아직 모자라오. 입값을 세 푼으로 올리시오.”
마달수가 붓을 내려놓았다.
“세 푼이면 부름값을 올려야 합니다. 반값이라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부름값은 그대로 두시오.”
“그러면 팔수록 밑집니다.”
“밑지는 건 내가 메우겠소. 천이백 냥에 얹어 주지.”
마달수는 셈을 했다. 입값을 올리면 좌판에 남은 사람들도 쪽지를 받으러 올 것이다. 떡 찌고 생선 떼는 것보다 입을 돌리는 게 두 배 남으면, 아무도 좌판에 안 앉는다. 어물전 서른둘 가운데 지금 스물이 남았는데, 그 스물도 빌 것이다.
“행수 어른, 장이 비면 제 손님도 없습니다. 부름은 장사꾼이 삽니다. 장사를 접은 사람이 부름을 사서 뭐 합니까?”
“손님은 필요 없소.”
염태길이 부채를 접었다. 딱 소리가 났다.
“자리가 필요하지.”
채상곤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장부 읽듯 고르고 낮았다.
“동짓날 점고가 있소. 저잣거리 좌판 삼백을 관에서 하나하나 세오. 그날 비어 있는 좌판은 관에 거두고, 과반이 비면 저잣거리 전체를 관허 도가에 붙이오. 금난전이오. 도가 말고는 율포에서 쌀 한 되도 못 팔게 되오.”
“그게 이 집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장세가 안 걷히오. 좌판마다 달에 두 푼씩인데 이번 달 반이 안 들어왔소. 현감 나리는 이유를 안 물으시오. 모자란 걸 물으시오. 도가 하나가 장세를 통으로 내면, 나는 좌판 삼백을 쫓아다닐 까닭이 없소.”
마달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기름등 불꽃이 문틈 바람에 옆으로 누웠고, 벽에 걸린 두 그림자가 한꺼번에 커졌다가 줄었다. 염태길의 그림자에서 부채 끝이 칼처럼 삐죽 나와 있었다.
“저를 쓰셨군요.”
“빌려준 거요. 쓴 게 아니라.”
“장을 비우려고 저한테 천이백 냥을 빌려주셨군요.”
“자네가 빌리러 왔소. 기억 안 나오? 사천 입이 필요하다고. 어머니 명정에 이름을 써야 한다고.”
마달수 손이 저고리 안주머니로 갔다. 종이가 거기 있었다. 염태길은 그 손을 보고 웃었다.
“동짓날까지 이백만 입이오. 그걸 채우면 빚은 절반으로 치겠소. 못 채우면 천이백 냥에 이자 한 달 두 푼이오. 이 객줏집 문서가 내 손에 있소.”
“이백만이면 저잣거리 사람이 하루에 쉰 번이 아니라 이백 번을 듣습니다. 그러면 아무 부름도 안 붙습니다.”
“그러니까.”
염태길이 일어섰다. 도포 자락이 방바닥의 먹물 접시를 스쳤고, 먹이 한 방울 튀어 큰 장부 위에 떨어졌다. 염태길은 그걸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안 붙는 장에 누가 앉겠소?”
채상곤은 염태길보다 한 걸음 늦게 일어섰다. 문턱을 넘기 전에 돌아서서 마달수에게 한마디를 보탰다.
“나는 규정대로 하오. 점고는 내가 세오. 한 좌판도 틀리게 안 세오.”
“그게 무슨 위로가 됩니까?”
“위로하려는 게 아니오. 알려 주는 거요.”
*
새벽 나루는 비어 있었다. 마달수는 밤을 새운 눈으로 계단에 앉아 물을 봤다. 안개가 강 위에 낮게 깔렸고, 그 안개를 헤치고 배 세 척이 들어왔다. 뱃전마다 쌀섬이 가득했고 뱃머리에 진명도가 깃발이 젖어 늘어져 있었다. 짐꾼들이 쌀섬을 지고 계단을 올라 도가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 사이에 쌀 냄새가 났다. 햅쌀 냄새였다. 저잣거리에는 한 섬도 나가지 않았다.
계단 아래쪽에 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덕구였다. 산가지 통을 옆에 두고 쌀섬이 지나갈 때마다 가지 하나를 옮기고 있었다.
“부름집 덕구. 요즘 입꾼 안 하더라.”
“할머니가 세라고 하셨습니다.”
“뭘 세?”
“쌀섬이요. 오늘 배 셋, 백여든 섬입니다. 한 섬도 장에 안 나왔습니다. 쌀 석 되가 어제 쉰 푼이었습니다.”
마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덕구가 산가지 하나를 또 옮기고 나서 마달수를 봤다.
“입값을 올린다면서요.”
“누가 그래?”
“왕방울댁이요. 새벽부터 떡전 앞에서 세 푼 된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떡 찌는 사람은 없는데 떡전 앞은 제일 시끄럽습니다.”
마달수가 웃었다. 오랜만에 제 뜻과 상관없이 나온 웃음이었다. 웃고 나니 목이 잠겼다.
*
입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가 마달수 소매를 붙잡았다. 키가 문틀만 한 사내였다. 등에 포대기를 두르고 손에 끌을 쥐고 있었다.
“여기 주인이오? 부름 좀 삽시다.”
“무슨 부름입니까?”
“목수.”
“목수 무엇이요?”
“그냥 목수. 앞에 아무것도 안 붙은 목수.”
사내가 억울한 얼굴로 사연을 털어놓았다. 부름집에서 쉰 입을 샀는데 반만 붙어서 목수 애기 아빠가 되었다고, 애기 아빠를 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마달수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떼는 법은 없습니다. 덮어야 합니다. 네 배요.”
“네 배면 이백 입이오?”
“여기서는 열 냥입니다.”
사내 얼굴이 셈을 하느라 일그러졌다. 그때 포대기 속 아이가 고개를 내밀고 마달수를 빤히 보더니 손가락을 뻗어 코를 잡았다. 마달수는 코를 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아이 손에서 대팻밥 냄새가 났다.
“안 사겠소. 애가 당신 코를 잡는 걸 보니 안 사는 게 낫겠소.”
“그게 무슨 셈입니까?”
“몰라. 우리 애가 코 잡는 사람한테 산 건 다 탈이 나더라고.”
사내는 그렇게 가 버렸다. 마달수는 코를 문지르며 서 있다가, 제가 오늘 처음으로 부름 하나를 안 팔았다는 걸 알았다.
*
한낮에 마달수는 저잣거리로 갔다. 어물전 앞 좌판 여럿이 비어 있었고, 빈 좌판마다 누가 쓰다 둔 도마와 칼이 그대로 놓여 비린 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파리가 도마 위를 맴돌다가 사람 그림자가 지나가면 흩어졌다. 마달수는 그 도마들을 세지 않았다. 세면 제 장부에 적힌 숫자와 맞춰 보게 될 것 같았다. 쌀전 끝에 볕바라기를 하는 노파들이 있었다. 대여섯이 짚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다들 귀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중 제일 나이 든 노파 앞에 마달수가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 명창 순덕이라고 아십니까?”
“뭐라고?”
“율포 명창 순덕이요. 스물두 해 전에 소리하던.”
노파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매미 소리 사이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얼굴이었다. 입술이 두어 번 달싹였다.
“순덕이? 부름집 방씨네 순덕이?”
“예.”
“아, 그 열두 번 산 년.”
그 말이 노파 입에서 나오는 데는 한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옆에 앉은 노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번 산 년. 맞아, 열두 번. 먹은 귀들이 그 말만은 또렷하게 들었다. 한 달 동안 천이백 번을 사서 돌린 명창은 한 사람 귀에도 안 붙었는데, 아무도 돈 내지 않은 말은 매미를 뚫고 곧장 나왔다.
마달수는 일어나서 입장으로 돌아왔다. 마루에 앉아 큰 장부를 펴고 새 장에 붓으로 적었다. 입값, 한 입 세 푼.
그리고 수첩을 꺼내 그날 날짜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명창, 오늘 한 입. 제 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