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53자) · 덕구 · 시월 초닷새

많이 들려서 붙는다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덕구 귀의 매미는 닷새째 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조금 작았다가, 저잣거리에 발을 들이면 커지고, 해 질 녘이면 머릿속 전체가 한여름 느티나무가 되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덕구가 두 푼씩 받아 온 엽전으로 쌀을 사 오면 받아서 밥을 지었고, 밥상 앞에서는 곰방대도 물지 않았다. 덕구는 그 침묵이 매미보다 시끄러웠다.

시월 초닷새 아침, 할머니가 먼저 신을 신었다.

“입장에 가자. 줄 좀 서 보자.”

“할머니가요?”

“내가 서면 안 되냐?”

“부름집 주인이 입장 줄에 서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자는 거다.”

*

입장 줄은 여드레 전보다 길었다. 대문에서 시작해 나루 계단을 따라 내려가 뱃사공들이 그물을 널어 둔 자리까지 이어졌다. 덕구는 백까지 세다가 산가지 통을 도로 허리에 찼다. 늦가을 햇볕이 강물에 부서져 줄 선 사람들 얼굴을 아래서부터 비췄고, 그물에서 마르는 갯내와 입장 부엌의 밥 냄새가 한데 섞여 코끝에 눌어붙었다. 할머니는 그 줄 맨 끝에 섰다. 뒷짐을 지고 곰방대를 허리띠에 꽂은 채였다.

앞에 선 사람은 마흔 줄의 여자였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검지 끝에는 바늘에 찔린 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었다. 여자가 돌아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부름집 할머니 아니시오?”

“그렇소.”

“여긴 왜 오셨소?”

“구경 왔소.”

덕구는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할머니가 구경 왔다고 하면 구경이 아니었다. 여자는 잠깐 머뭇거리다 제 쪽에서 먼저 털어놓았다.

“나 삼 년 전에 할머니 집에서 샀소. 바느질 잘하는 사람. 쉰 입에 닷 냥 냈소.”

“기억하오. 대장간 옆 바느질댁.”

“기억하시오?”

“바늘 자국은 잊어도 닷 냥은 안 잊소.”

바느질댁이 웃었다. 웃다가 손을 비볐다. 오른손 엄지 밑이 붉게 부어 있었다.

“쉰 입이 보름 간다고 하셨잖소. 근데 삼 년 갔소.”

“그동안 바느질을 하셨소?”

“했소. 그전보다 두 배로 했소. 바느질 잘하는 사람이라고 불리니까 혼수 일이 들어오고, 혼수를 하니까 또 그렇게 불리고.”

“그래서 삼 년 간 거요. 일이 부름을 이으면 안 식소.”

“근데 손목이 탈이 나서 반년을 쉬었소. 쉬니까 식었소. 이제는 대장간 옆 여편네요. 그래서 다시 사러 왔소.”

할머니가 바느질댁 손을 잡았다. 굳은살 위를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덕구는 할머니가 손님 손을 잡는 걸 서른 번쯤 봤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부름이 아니라 손을 보고 값을 매겼다.

“아주머니, 여기서 사시오.”

“예?”

“쉰 입에 여기는 두 냥 반이오. 우리 집은 닷 냥이고. 같은 쉰 입인데 두 냥 반을 더 받을 까닭이 없소. 사고 나서 손이 나으면 바느질을 하시오. 안 하면 보름이고, 하면 또 삼 년이오.”

바느질댁이 할머니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인사인지 우는 건지 덕구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손을 놓고 뒷짐을 다시 졌다. 덕구가 할머니 옆구리를 찔렀다.

“할머니, 손님을 남의 집에 보내면 어떡합니까?”

“손님이 아니라 사람을 보낸 거다.”

“그 사람이 손님이잖아요.”

“손목 아픈 사람한테 두 냥 반 더 받아서 뭐 하게?”

덕구는 대꾸를 못 하고 산가지 통만 만졌다. 매미가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달수가 마루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를 보고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당에서는 입꾼들이 쪽지를 받고 있었고, 그 가운데 왕방울댁이 목에 흰 천을 감고 서 있다가 할머니를 보자 얼른 등을 돌렸다. 등을 돌려도 그 덩치는 가려지지 않았다.

마루 앞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엽전 꾸러미를 여러 개 쌓아 놓고 있었다. 젓갈전 뒤편에서 돈놀이를 하는 박 생원이었다. 저잣거리에서 이자를 달마다 한 푼씩 올린다는 사람이었다.

“인정 많은 박 생원, 오백 입이오.”

마달수가 붓으로 쪽지를 쓰고 있었다. 할머니가 마루 끝에 섰다.

“오백 입이면 몇 달 가오?”

“반년입니다.”

“누가 반년 동안 이 사람을 인정 많다고 부르오?”

“입꾼들이 부릅니다.”

“입꾼이 부르면 사람들 귀에 들어가오? 저잣거리 삼백이 지금 하루에 남의 부름을 몇 번 듣는 줄 아시오? 덕구야.”

덕구는 제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덕구 쪽을 보지 않은 채 손만 내밀었다. 셈을 대라는 손짓이었다. 덕구는 입장에서 입꾼 노릇을 한 닷새 동안 센 것을 떠올렸다. 하루 입꾼 여든, 한 사람 쉰 입이면 사천 입, 그걸 삼백이 나눠 들으면.

“하루에 한 사람이 열서너 번입니다. 부름집 입까지 치면 열다섯입니다. 근데 입꾼이 계속 늘어서 다음 달이면 쉰을 넘습니다.”

“쉰을 넘으면 어떻게 되냐?”

“귀가 먹습니다.”

할머니가 마달수를 봤다.

“귀가 먹으면 오백 입이 한 입도 안 붙소. 당신이 파는 건 부름이 아니라 소리요.”

마달수는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쪽지의 마지막 글자를 다 쓰고 나서야 얼굴을 들었다.

“안 붙으면 또 사러 오시겠지요.”

“그걸 알고 파오?”

“할머니도 아시잖아요. 다시 사면 반 냥씩 오르는 거, 그게 할머니 값표입니다. 할머니도 다시 사러 오는 사람한테 파셨습니다. 저는 안 올립니다. 몇 번을 와도 반값입니다.”

“율포 사람 삼백이 다 좋은 부름 하나씩 가지면 그게 나쁩니까?”

“다 가지면 아무도 안 가진 거요. 삼백이 다 인정 많으면 인정 많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오?”

“그래도 서른 해 동안 돈 있는 사람만 가진 것보다는 공평하지요.”

마달수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그 웃음을 한참 봤다. 덕구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알아보려는 얼굴이라는 걸 알았다. 손님 손을 보고 값을 매길 때의 얼굴이었다.

박 생원이 엽전을 밀어 놓고 쪽지를 받아 나갔다. 할머니는 그 뒤를 눈으로 따라가다 마루 위 장부에 눈을 떨어뜨렸다. 펼쳐진 장에 이름이 줄지어 적혀 있었다. 덕구도 봤다. 대장간 김씨, 젓갈전 윤씨네, 어물전 한 서방, 주막 순이. 첫째 줄부터 할머니 명부와 똑같은 순서였다. 할머니가 곰방대로 짚으며 가르쳐 준 그 순서였다.

할머니가 장부에서 눈을 떼고 덕구를 봤다. 오래 보지 않았다. 숨 한 번 쉴 동안이었다. 덕구 손바닥에 땀이 뱄고, 산가지 통을 쥔 손가락이 저절로 풀렸다. 통이 바닥에 떨어져 대나무 가지들이 마당에 흩어졌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대문을 나갔다. 덕구는 흩어진 산가지를 주우려고 무릎을 꿇었는데, 마달수가 마루에서 내려와 몇 개를 주워 건넸다. 마달수 손끝에 먹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가 너한테 뭐라고 하실 거야?”

“모르겠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실걸. 그런 분이라며.”

마달수가 산가지를 덕구 손에 쥐여 주고 마루로 돌아갔다. 덕구는 그 사람이 할머니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또 궁금해졌다.

*

돌아오는 길에 쌀전 앞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덕구가 까치발을 들고 보니 가운데에 목수 김서방이 있었다. 김서방은 쌀전 도 영감네 좌판 옆 빈자리에 작업대를 펴 놓고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남 보는 데서 하라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등에는 여전히 포대기가 있었고, 아이는 아버지 등에 붙어 잠들어 있었다.

대팻날이 나무 위를 지날 때마다 얇은 대팻밥이 돌돌 말려 나왔다. 소나무 진 냄새가 젓갈 비린내를 밀어냈다. 대팻밥은 햇빛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났고, 바람이 불자 구경꾼 발치로 굴러가 짚신 코에 걸렸다. 김서방은 이마에 땀이 맺혀도 닦지 않았다. 덕구는 그 사람이 대패질하는 걸 처음 제대로 봤다. 대패를 쥔 두 손이 나무 결을 따라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구경꾼 대부분은 멍한 얼굴이었다. 귀에서 매미가 우는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맨 앞줄에 쪼그려 앉은 아이 하나가 손가락으로 김서방을 가리켰다.

“목수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목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입꾼이 지나가며 말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대팻밥을 주워 머리에 얹고 한 번 더 외쳤다. 목수다. 옆에 선 어른 몇이 그 말을 따라 했다. 목수네. 목수 양반이네.

김서방이 대패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를 보더니 턱을 쳐들었다. 봤소? 하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등에서 아이가 깨어 아버지 귀를 잡아당겼다.

“아빠, 쉬.”

구경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 애기 아빠 목수라고 했다. 김서방 얼굴이 도로 무너졌다. 할머니가 곰방대로 덕구 등을 밀며 걸음을 뗐다. 덕구는 걸으면서 산가지 하나를 통에 넣었다. 아무도 돈을 안 낸 한 입이었다.

*

그날 밤 부름집에는 등잔을 켜지 않았다. 할머니가 기름을 아끼자고 했다. 창호지 너머로 달빛이 들어와 값표 나무판 위에 비스듬히 누웠고, 소금 창고 문짝이 바람에 삐걱일 때마다 그 빛이 조금씩 흔들렸다. 덕구는 평상 끝에 앉아 할머니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곰방대에 담배를 채우기만 하고 불은 붙이지 않았다.

“덕구야.”

“예.”

“오백 입이 몇 달 가냐?”

“반년입니다.”

“귀가 먹은 데서는?”

“안 붙습니다. 한 달도 안 갑니다.”

“그 집이 이번 달에 판 입이 몇이냐?”

덕구는 셈했다. 입꾼 여든에서 백스물, 날마다 쉰 입, 한 달이면.

“십오만 입쯤입니다. 다음 달에 입꾼이 두 배가 되면 삼십만입니다.”

“넉 달이면?”

“백만, 아니, 이백만 가까이 됩니다.”

할머니가 곰방대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저잣거리 사람이 삼백이다. 이백만을 삼백이 나눠 들으면 한 사람이 몇 번이냐?”

“육천 번이 넘습니다.”

“그다음에 팔 데가 있냐?”

덕구는 입을 다물었다. 없었다. 삼백이 다 사면 더 팔 데가 없었다. 물건은 많이 팔리면 값이 오르는데, 부름은 많이 퍼지면 값이 내렸다. 그 끝에는 아무도 안 듣는 저잣거리가 있었다. 덕구는 그런데도 입장이 왜 입값을 올리는지 알 수 없었다. 파는 사람이 망하는 장사를 누가 하는가?

“내일부터 입장에 가지 마라.”

덕구 어깨가 굳었다. 쫓겨나는 줄 알았다.

“대신 세라. 그 집이 하루에 몇 입을 파는지, 누가 사는지, 저잣거리 좌판이 몇이 비는지. 나루에 도가 쌀 배가 몇 척 들어오는지도.”

“할머니, 명부는.”

“세라고 했다.”

할머니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닷새 동안 머릿속을 채우던 매미 소리 사이로, 그 말이 매미를 뚫고 똑바로 들어왔다. 덕구는 한 글자도 흘리지 않고 들었다. 창밖에서 소금 창고 문짝이 또 한 번 삐걱였는데, 그 소리도 들렸다. 매미가 잠깐 멈춰 있었다.

덕구는 그게 왜인지 몰랐다. 몰라서 셌다. 할머니가 한 말, 세 마디. 그 세 마디는 먹은 귀를 뚫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달밤에책2026.05.02· 3화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

    • 종이배2026.05.03

      완전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요.

많이 들려서 붙는다 · 이름을 파는 가게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