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42자) · 덕구 · 구월 그믐

정하셨습니까

이름을 파는 가게 · 백해원

열흘 동안 덕구는 목수 김서방 부름을 쉰 번 말했다. 입꾼 다섯 가운데 넷이 입장으로 가 버려서였다. 왕방울댁이 제일 먼저 갔고, 짚신전 오씨와 어물전 박씨네가 이틀 사이로 따라갔고, 주막 순이는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주모가 떠밀어서 갔다. 한 입에 두 푼이면 주막 술값보다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쉰 입이 전부 덕구 몫이 됐다. 한 입꾼이 한 사람 부름을 열 번 넘게 말하면 듣는 쪽이 눈치챈다는 할머니 말은 옳았다. 서른 번째쯤부터 어물전 사람들은 덕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손을 내저었다.

“알아, 알아. 목수 김서방이 대패질을 잘하더라. 그 애기 아빠 말이지?”

덕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산가지 하나를 통에 도로 넣었다. 부름 앞에 애기 아빠가 붙으면 그건 김서방 입이 아니라 애기 아빠 입이었다. 셈이 안 맞았다.

구월 그믐 아침, 김서방이 부름집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아이를 안 업었고, 대패 대신 끌을 들었다.

“어제 쌀전 앞을 지나는데 누가 날 불렀소.”

“뭐라고 불렀습니까?”

“목수 애기 아빠.”

덕구는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가 평상에서 곰방대 연기를 길게 뱉었다.

“반은 붙었소.”

“반만 붙으면 어쩌란 말이오?”

“대패질을 반만 했나 보지.”

김서방은 끌을 쥔 채 한참 할머니를 노려보다가, 들어올 때보다 조금 덜 화난 얼굴로 나갔다. 문턱을 넘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수 애기 아빠도 애기 아빠보다는 낫지. 덕구는 그 말을 산가지 하나로 쳤다.

*

손님은 그날 김서방 하나였다. 전날도 하나였고, 그 전날은 없었다.

점심때 덕구는 부엌 쌀독 뚜껑을 열었다. 바닥이 보였다. 바가지로 긁으니 두 줌이 나왔다. 쌀전 도 영감네 좌판에 가 보니 쌀 석 되가 여드레 전 다섯 푼에서 열두 푼이 되어 있었다. 도 영감은 덕구를 보더니 미안한 얼굴로 쌀되를 들었다 놓았다.

“진명도가 창고에서 안 풀어. 풀어도 비싸게 풀어. 나도 받는 값이 있으니 어쩌겠냐.”

덕구는 다섯 푼어치만 샀다. 한 되 남짓이라 주머니 하나에 다 들어갔고, 걸을 때마다 쌀알이 주머니 안에서 사각거렸다. 여드레 전만 해도 같은 돈으로 석 되를 샀는데, 그때는 주머니 셋이 필요했다. 덕구는 주머니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좌판을 셌다. 떡전 아홉 가운데 넷이 비었고, 짚신전은 셋이 비었고, 어물전은 여섯이 비었다. 빈 좌판에는 차일만 남아 바람에 펄럭였다. 차일 밑 멍석 위로 비둘기가 내려앉아 흘린 떡고물을 쪼았고, 그 옆 좌판 주인은 비둘기를 쫓지도 않고 앞섶에 찔러 둔 쪽지를 꺼내 입술로 읽고 있었다. 이백예순넷.

부름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값표 나무판을 벽에서 내려 무릎에 놓고 마른 걸레로 닦고 있었다. 서른 해 먹물이 걸레에 묻어 나올 리 없었는데도 할머니는 같은 자리를 계속 문질렀다.

“할머니.”

“오냐.”

“입장에서 입꾼을 더 뽑는답니다. 한 입에 두 푼이요.”

“들었다.”

“제가 하루에 쉰 입을 하면 한 냥입니다. 쌀이 석 되에 열두 푼이니까, 한 냥이면 스물다섯 되입니다.”

“셈은 잘하는구나.”

“우리 집 이번 달 번 거 다 합해도 여섯 냥이 안 됩니다. 김서방 닷 냥 빼면 한 냥입니다.”

할머니가 걸레를 내려놓았다. 덕구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입이 먼저 나갔다.

“할머니 값표가 사람을 쫓은 거 아닙니까? 그 사람 말이 틀린 게 아니잖아요. 열 입에 한 냥이면 떡장수 사흘 벌이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마달수요.”

“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을 네 입으로 하는구나. 그게 입꾼이다.”

“그럼 할머니는요? 할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누가 합니까? 서른 해 동안 값표 얘기는 할머니만 했습니다. 아무도 안 따라 했습니다.”

할머니가 덕구를 봤다.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덕구가 여섯 살 때 처음 부름집 문턱을 넘던 날, 흙 묻은 발을 내려다보던 그 얼굴과 비슷했다.

“그래서 값표지.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서.”

덕구 얼굴이 뜨거워졌다. 귀 끝까지 열이 올라 소금 창고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할머니는 값표를 다시 벽에 걸었다. 못이 헐거워 나무판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할머니는 그걸 바로잡지 않았다.

“가라.”

“예?”

“가라고 했다. 두 푼 받고 쌀 사 와라. 대신 명부는 두고 가.”

덕구는 명부를 봤다. 평상 한쪽 궤짝 위, 실로 엮은 그 두꺼운 책이었다. 가지고 갈 생각은 없었다. 가지고 갈 필요도 없었다. 덕구는 거기 적힌 이름 쉰일곱과 그 사람들이 산 부름과 입 수를 다 외우고 있었다.

*

입장 마당에는 오늘도 줄이 있었다. 마달수는 마루에 앉아 장부를 넘기다가 덕구를 보고 붓을 내려놓았다.

“부름집 덕구지?”

“입꾼 하러 왔습니다.”

“정했어?”

“정했습니다.”

마달수는 쪽지 한 장에 부름을 적어 내밀었다. 율포 제일 미남, 삼십. 쌀전 도 영감네 막내아들 부름이었다. 덕구가 쪽지를 받으려는데 마달수가 손을 떼지 않았다.

“하나 더 부탁하자. 부름집 손님 명부 있지? 누가 무슨 부름을 샀는지.”

“그건 할머니 겁니다.”

“베껴 달라는 거 아니야. 네 머리에 든 걸 말해 달라는 거지. 석 냥 줄게.”

석 냥은 쌀 일흔다섯 되였다.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덕구는 쪽지 한 귀퉁이를 쥔 채로 한참 서 있었다. 마달수의 웃는 얼굴 뒤로 객줏집 부엌에서 밥 짓는 김이 올라왔고, 그 김에서 누룽지 눋는 냄새가 났다. 부름집 부엌에서는 사흘째 그 냄새가 안 났다.

“그 사람들한테 싸게 팔 겁니까?”

“반값에. 할머니 집에서 못 산 걸 여기서 사게 해 주는 거야. 나쁜 일이야?”

나쁜 일이라고 말할 말이 덕구에게는 없었다. 덕구는 이름을 불렀다. 첫째 줄부터 쉰일곱째 줄까지, 할머니가 곰방대로 짚으며 가르쳐 준 순서 그대로였다. 마달수의 붓이 따라왔다. 석 냥이 엽전 꾸러미로 덕구 손바닥에 올라왔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덕구가 돌아서려는데 마달수가 붓을 든 채로 물었다.

“할머니는 요즘 뭐 하셔?”

“값표를 닦으십니다.”

“닦아?”

“먹물이 안 지워지는데도 닦으십니다.”

마달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붓 끝에서 먹 한 방울이 장부 위로 떨어져 번졌고, 마달수는 그걸 한참 내려다보다가 종이를 넘겼다. 덕구는 그 사람이 왜 할머니 일을 묻는지 몰랐다. 모르는 채로 대문을 나섰다.

*

오후 내내 덕구는 율포 제일 미남을 말했다. 말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건 듣는 사람이었다.

저잣거리가 시끄러웠다. 원래도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소리가 달랐다. 흥정 소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부름 소리가 있었다. 떡전 앞에서는 누가 누구더러 인정 많은 박 생원이라더라 했고, 바로 옆에서는 다른 입이 같은 박 생원을 두고 셈 빠른 박 생원이라더라 했다. 젓갈 냄새 사이로 이름과 별명과 칭찬이 뒤엉켜 날아다녔는데, 아무도 그걸 붙잡지 않았다. 덕구가 도 영감네 막내아들 부름을 말하자 짚신 파는 노인이 덕구를 멍하니 봤다.

“뭐라고?”

“율포 제일 미남이요. 쌀전 막내아들이요.”

“뭐라고 했냐니까?”

노인이 제 귀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귀에서 매미가 운다고 했다. 아침부터 쉰 번은 들었다고, 이제는 무슨 말을 들어도 그 매미 소리밖에 안 난다고 했다.

덕구는 산가지를 꺼내려다 말았다. 이 한 입을 셀지 말지 알 수가 없었다.

덕구는 할머니 말을 떠올렸다. 국도 두 배로 짜면 좋으냐. 그때는 대답을 못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짜면 아무도 안 먹는다. 다들 입에 넣었다가 뱉는다. 저잣거리 사람들이 지금 하는 일이 그랬다. 들었다가 흘리고, 또 들었다가 흘렸다. 들을수록 덜 들렸다.

새참 무렵 덕구는 나루 계단에서 왕방울댁을 만났다. 왕방울댁은 계단에 퍼질러 앉아 엽전 꾸러미를 무릎에 올려놓고 세고 있었는데,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났다. 스무 해 떡 파는 소리로도 안 쉰 목이 입꾼 열흘에 쉬었다.

“덕구 너도 왔냐? 잘 왔다, 잘 왔어. 나 오늘 벌써 한 냥 반이다.”

“떡은 누가 찝니까?”

“누가 찌긴, 아무도 안 찌지. 그게 문제야.”

왕방울댁이 꾸러미를 흔들었다. 엽전끼리 부딪는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파서 떡 사 먹으려고 떡전에 갔더니 떡전이 없어. 셋째 줄 첫 좌판이 내 자린데, 거기 가서 떡 달라고 할 뻔했다니까. 옆 좌판 최씨도 입꾼 하러 갔고 그 옆 윤씨네도 갔어. 돈은 있는데 떡이 없어!”

왕방울댁이 제 말에 제가 웃었다. 쉰 목에서 웃음이 끊겨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나루 쪽을 봤다. 배가 한 척 들어오고 있었다. 쌀섬이 가득 실려 있었고, 뱃머리에 진명도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저 쌀은 어디로 가냐?”

“도가 창고로 갑니다.”

“창고로 가면 언제 나오냐?”

덕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왕방울댁은 엽전 꾸러미를 치마 속에 넣고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리고 쪽지를 꺼내 들고 다시 저잣거리로 걸어갔다. 쪽지에는 인정 많은 박 생원, 사십이라고 적혀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쌀전 앞에서 여자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복남아! 복남아!”

젓갈전 어물전 사이로 사람이 빽빽했다. 여자는 그 사이를 헤치며 아이 이름을 불렀는데,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여자의 치맛자락이 소금 가마니에 걸려 찢어졌고 여자는 그걸 보지도 않았다. 덕구 눈에 아이가 보였다.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엿장수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아 가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미 목소리가 열 발 거리에서 울렸는데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덕구는 아이에게 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복남이냐?”

아이가 덕구를 올려다봤다. 입이 벌어져 있었고 눈이 한참 뒤에야 덕구를 알아봤다.

“엄마가 부른다.”

“아무도 안 불렀는데.”

덕구는 아이 손을 잡았다. 손이 차고 끈적했다. 엿 조각을 쥐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여자 앞에 아이를 세우자, 여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자가 우는 소리도 부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어미 품 안에서 덕구를 보며 한 번 더 말했다.

“아무도 안 불렀어.”

덕구는 저고리 앞섶 속 석 냥을 만졌다. 엽전 가장자리가 손끝을 긁었다.

그날 밤 부름집 문 앞에서 덕구는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문짝의 한지가 반쯤 떨어져 바람에 흔들렸다. 안에서 할머니가 곰방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정했으면 들어와라. 밥은 먹어야지.”

덕구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귀 안쪽에서 무언가가 울기 시작했다. 가늘고 높고 끊이지 않는 소리였다. 오늘 하루 덕구는 남의 부름을 몇 번 들었을까? 셀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셈이 안 됐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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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01· 2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