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63자) · 덕구 · 구월 스무날

값을 물으러

남들이 당신을 뭐라 부를지, 돈으로 삽니다 · 백해원

율포 저잣거리 서쪽 골목 끝, 소금 창고와 문 닫은 방앗간 사이에 부름집이 있다. 간판은 없고 문짝에 한지 한 장이 붙어 있다. 부름 팝니다. 이름은 안 팝니다.

덕구는 그 종이를 아침마다 새로 붙였다. 소금 창고에서 새어 나온 짠 바람이 밤새 풀을 불려 놓으면, 종이 귀퉁이가 들려 나풀거리고 파장 무렵이면 아예 떨어져 골목에 굴렀다. 풀을 너무 많이 바르면 할머니가 싫어했다. 종이가 반듯하면 사람들이 겁을 낸다고 했다.

경술년 구월 스무날, 해가 방앗간 지붕을 넘기도 전에 첫 손님이 왔다.

“여기가 부름 파는 데 맞소?”

키가 문틀에 닿는 사내였다. 등에 포대기를 두르고 그 안에 돌 지난 아이를 업었는데, 손에는 대패를 쥐고 있었다. 대패 밑바닥이 반들반들했다. 덕구는 산가지 통을 끌어안은 채 손님을 올려다봤다.

“맞습니다. 무슨 부름을 찾으십니까?”

“목수 김서방.”

“누가 목수입니까?”

“내가 목수요!”

사내 목소리에 포대기 속 아이가 깼다. 아이는 울지 않고 아버지 뒤통수의 상투를 잡아당겼다. 평상 안쪽에서 할머니가 곰방대를 내려놓았다. 방순금은 올해 예순여덟이고, 이 집에서 부름을 판 지 서른 해가 됐다. 귀가 밝아서 골목 어귀 발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는지 알았다.

“앉으시오. 지금은 뭐라고 불리오?”

“애기 아빠.”

“누가 그렇게 부르오?”

“다요. 목재 사러 가도 애기 아빠, 삯 받으러 가도 애기 아빠. 어제는 관아 지붕 고치러 갔는데 이방 나리가 날 보고 「애기 아빠, 거기 기와 좀 올려 주게」 이럽디다. 내가 스무 해를 대패질한 사람이오.”

덕구는 웃음을 참느라 산가지 통을 세게 끌어안았다. 통 속에서 대나무 가지들이 달그락거렸다. 할머니가 덕구를 한 번 봤고, 덕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애를 업고 다니니 그렇소.”

“애 엄마가 장에서 생선을 받으니 내가 업어야지 누가 업소?”

“그럼 애기 아빠가 맞소.”

“그러니까 돈 내고 바꾸려는 거 아니오!”

할머니가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손바닥 네 개만 한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먹으로 쓴 글씨가 서른 해 동안 손때와 연기에 절어 나뭇결과 한 빛깔이 되어 있었다. 열 입 한 냥 사흘. 쉰 입 닷 냥 보름. 백 입 열 냥 한 달. 천 입은 안 판다.

“입이 뭐요?”

“입꾼이 한 번 말하는 것이오. 떡전 아주머니가 손님한테 「저기 목수 김서방이 대패질을 잘한다더라」 하면 그게 한 입이오. 같은 말이 여러 입에서 나오면 사람한테 붙소. 붙으면 처음 보는 사람도 당신을 보자마자 목에서 그 말이 먼저 올라오오.”

“천 입은 왜 안 파오?”

“천 입이 붙으면 평생 가오. 못 떼오. 사람이 부름을 못 이기오.”

사내는 대패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셈을 했다. 입술이 움직였다. 덕구는 그 셈이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쉰 입으로 하겠소.”

“보름 가오. 그 보름 동안 남 보는 데서 대패질을 하시오. 일이 부름을 이으면 안 식소. 애 업고 다니지 말고.”

“애는 누가 보고?”

“그건 부름집이 모르오.”

“목수 김서방이 붙으면 애기 아빠는 없어지오?”

“안 없어지오. 밑에 깔리오. 부름은 떼는 게 아니라 덮는 거요.”

닷 냥이 엽전 꾸러미로 평상 위에 떨어졌다. 덕구가 꾸러미를 풀어 세는데, 포대기 속 아이가 아버지 귀에 대고 또렷하게 말했다.

“아빠.”

사내가 멈칫했다. 그리고 웃었다. 얼굴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웃음이었고, 대패를 쥔 손등의 굳은살까지 같이 웃는 것 같았다. 덕구는 엽전 세던 손을 멈추고 그 얼굴을 봤다. 쉰 입을 사 간 사람 얼굴이 이렇게 풀리는 건 처음 봤다.

사내가 가고 나서 덕구는 명부를 폈다. 부름집 명부는 한지를 실로 엮은 두툼한 책으로, 손님 이름과 산 부름과 입 수가 한 줄씩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어느 입꾼 입으로 몇 번을 돌릴지가 따로 적혀 있었다. 쉰 입이면 입꾼 다섯이 열 번씩 나눠 한다. 한 입꾼이 한 사람 부름을 열 번 넘게 말하면 듣는 쪽이 눈치를 챈다. 떡전 왕방울댁 열, 짚신전 오씨 열, 어물전 박씨네 열, 주막 순이 열, 그리고 나머지 열은 덕구 몫이었다.

“목수 김서방이 대패질을 잘한다더라.”

덕구는 벽을 보고 한 번 해 봤다. 할머니가 곰방대 끝으로 덕구 정강이를 툭 쳤다.

“벽이 부름을 듣냐? 사람 앞에서 해라. 그리고 잘한다더라, 말고 잘하더라. 본 것처럼 말해야 붙는다.”

*

두 번째로 문을 연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머니 들었소?”

왕방울댁이었다. 떡전 좌판을 스무 해 지킨 여자로, 눈이 커서 왕방울이고 목소리는 그보다 더 컸다. 저잣거리에서 소문 하나가 한 바퀴 도는 데 반나절이 걸린다면, 그중 두 식경은 이 여자 입에서 나왔다. 부름집 입꾼 가운데 제일 오래됐다.

“남쪽 나루 객줏집 있잖소, 문 닫은 황 객주네. 거기에 부름 파는 데가 새로 났소!”

“그래서?”

“값이 반이오! 열 입에 닷 돈! 그리고 입꾼한테 한 입에 두 푼을 준대요, 두 푼!”

덕구 손에서 엽전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부름집은 입꾼에게 한 입에 한 푼을 줬다. 왕방울댁은 하루에 쉰 입쯤 했으니 쉰 푼, 반 냥이었다. 두 푼이면 한 냥이다. 떡을 하루 종일 쪄 팔아도 한 냥이 안 남았다.

“값을 반으로 내리고 입값을 두 배로 주면 그 집은 뭐로 먹고삽니까?”

덕구가 물었다. 왕방울댁은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었다가 내렸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곰방대를 털고 일어났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가 보자.”

*

남쪽 나루까지는 저잣거리를 가로질러야 했다. 덕구는 할머니 반 발 뒤에서 걸으며 좌판을 셌다. 버릇이었다. 어물전 서른둘, 젓갈전 스물, 쌀전 열넷, 떡전 아홉, 짚신전 열하나. 차일 밑에서 새우젓 독 뚜껑이 열릴 때마다 비린내가 한 겹씩 덮쳐 왔고, 엿장수 가위가 그 비린내를 잘게 자르듯 쩔걱거렸다. 멍석 위에 소금 가마니가 줄지어 있었고, 가마니 사이로 짚신 신은 발들이 부지런히 지나갔다. 합해서 삼백. 덕구가 여섯 살 때부터 센 숫자였고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 반값이면 우리보다 두 배로 팔리겠지요?”

“두 배로 팔리면 두 배로 들리지.”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국도 두 배로 짜면 좋으냐?”

덕구는 대답을 못 하고 새우젓 독 옆을 지나갔다. 할머니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예순여덟 먹은 무릎으로 저렇게 걷는 날은 한 해에 몇 번 없었다.

객줏집 앞에 줄이 있었다. 쉰까지 세다가 덕구는 그만뒀다. 대문 위에 새 현판이 걸려 있었다. 입장(入場). 그 아래 종이에는 부름집 것보다 두 배는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열 입 닷 돈. 오백 입도 팝니다. 입꾼 구함, 한 입 두 푼.

“오백을 판다고?”

할머니가 처음으로 소리를 높였다. 줄 선 사람 몇이 돌아봤다.

대문 안에서 젊은 사내가 나왔다. 스물 남짓이었고, 바랜 무명 두루마기에 소매를 걷어붙였으며, 한 손에 붓을 쥐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웃음이 눈까지 닿지는 않았다. 사내는 할머니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덕구는 그게 이상했다.

“부름집 방씨 할머니시지요. 마달수라고 합니다. 이 집 주인입니다.”

“오백 입을 팔면 그 사람한테 몇 해 붙는지 아시오?”

“사는 사람이 압니다. 제가 다 말씀드립니다.”

“말하면 뭐하오? 오백 입이 한 사람 귀에 몇 번 들어가는지는 셈했소? 이 저잣거리가 삼백이오. 하루에 쉰 번 넘게 남의 부름을 들으면 귀가 먹소.”

“그건 할머니 셈이지요.”

마달수가 붓 끝으로 부름집 쪽을 가리켰다. 친절한 손짓이었다.

“할머니 값표가 서른 해 동안 뭘 했는지 아십니까? 가난한 사람이 부름을 못 사게 막았습니다. 열 입 한 냥이면 떡장수 사흘 벌이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에서 좋은 부름은 늘 돈 있는 사람 것이었지요. 저는 그걸 반값으로 여는 겁니다.”

줄 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줄 맨 앞에서는 쌀전 도 영감네 막내아들이 오백 입을 달라며 엽전 꾸러미를 내밀고 있었다. 무슨 부름이냐고 물으니 율포 제일 미남이라고 했다. 줄 선 사람들이 그 얼굴을 한 번씩 보고는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오백 입으로도 모자라 보였다. 덕구는 그중에 부름집 단골 얼굴을 셋 찾아냈다. 할머니 턱 밑 살이 한 번 떨렸다.

“값표는 막으려고 만든 게 아니오. 못 지킬 때를 알려고 만든 거요.”

“그럼 한 사람에 열 입까지만 파시지 그랬습니까? 할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라면서요.”

“누가 그러오?”

“다들 그럽니다. 사는 사람이 정하는 겁니다, 할머니. 파는 사람이 아니라.”

객줏집 마당 안쪽에서는 입꾼으로 뽑힌 사람들이 쪽지를 받고 있었다. 쪽지마다 부름 하나와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고, 입꾼들은 그것을 소리 내어 한 번 읽은 다음 저고리 앞섶에 찔러 넣고 대문을 나갔다. 부름집은 입꾼 하나에게 한 사람 부름을 열 번 넘게 맡기지 않았다. 덕구가 본 쪽지에는 서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객줏집 마루 끝 평상에서 누가 헛기침을 했다. 비단 도포를 입은 쉰 줄의 사내가 부채를 접은 채 앉아 있었는데, 도포 자락이 햇빛에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옆에 선 하인이 차를 따르고 있었다. 덕구는 그 사람을 알았다. 진명도가 행수 염태길이었다. 한양 시전에 줄이 닿아 있어서 율포에 들고 나는 소금과 쌀의 절반이 그 도가 창고를 거쳤다. 작년 겨울 쌀값이 두 번 뛰었을 때 두 번 다 그 창고 문이 닫혀 있었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 말을 오래 한 사람은 없었다.

“방씨, 오랜만이오. 젊은 사람 장사 시작하는데 덕담이나 해 주고 가시오.”

“행수 어른이 이 집에 왜 계시오?”

“돈을 좀 빌려주었소. 장사가 잘되면 나도 좋고.”

염태길은 부채로 저잣거리 쪽을 한 번 가리키고 웃었다. 그 웃음에는 눈까지 닿는 데가 있었다. 덕구는 그쪽이 더 싫었다.

“장이 좀 조용해지면 좋겠소. 너무 시끄러워.”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덕구 팔을 잡고 돌아서려는데 줄 앞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입꾼 자리 아직 있소? 나 목청 하나는 자신 있소!”

왕방울댁이 앞치마를 벗어 손에 둘둘 말고 있었다. 떡 찌는 김에 늘 젖어 있던 그 앞치마였다. 덕구는 저잣거리 쪽을 돌아봤다. 떡전 셋째 줄 첫 좌판, 시루가 그대로 얹힌 채 사람만 없었다.

이백아흔아홉.

덕구 입에서 숫자가 먼저 나왔다. 할머니가 덕구 팔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마달수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고, 할머니한테만 들리게 한 말이었는데 덕구 귀에도 들어왔다.

“할머니 값표, 스물두 해 전에 딱 한 번 어기셨다면서요?”

할머니가 멈췄다. 덕구는 할머니의 귓불이 빨개지는 걸 처음 봤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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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해원작가2026.10.09· 1화

    작가 백해원입니다. 이 가게는 이름이 아니라 남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지를 팝니다. 1화를 읽고, 여러분이라면 어떤 부름을 사고 싶으신가요?

  • 겨울차2026.04.30· 1화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 백해원작가2026.05.01

      끊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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