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34자) · 한수겸 · 섣달 그믐

사십 년 올린 청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섣달 그믐 아침에 작청 마당으로 나오라는 전갈이 왔다. 한 해 결산 자리에서 새기는 집 허가 첩을 정식으로 거둔다고 했다. 봉한 지 스무 날이 지났는데 이제야 거둔다고 했다. 관가 일에는 순서가 있다. 떡전 아들은 그 전갈을 듣고 말했다. 관가는 사람을 죽일 때도 순서대로 죽일 거라고.

작청 마당에는 멍석이 여러 장 깔렸다. 대청 위에 새 현감이 앉아 있었다. 서른넷이라고 들었는데 그보다 어려 보였다. 한양에서 온 지 석 달, 털을 댄 토시에 두 손을 넣고 앉아 있었고, 대청 아래 화로를 두 개나 끌어다 놓았는데도 코끝이 빨갰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아전들이 호적 궤와 장부 궤를 줄지어 내놓았고, 궤마다 붙은 종이가 바람에 파닥거렸다. 먹 냄새와 숯 냄새와 사람들 입김이 한데 섞여 마당 위에 낮게 깔렸다.

호방이 먼저 일어섰다. 두루마기 자락이 얼어서 무릎을 굽힐 때 버석거렸다.

“올해 이 고을 호구는 천이백열한 호, 사람 수는 오천팔백사십둘이옵니다.”

“작년보다 늘었소, 줄었소?”

“스물셋이 줄었사옵니다.”

현감이 토시 속에서 손을 빼 턱을 괴었다. 한양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늘었느냐 줄었느냐.

“내년 시월이 식년이오. 식년에 호구가 줄면 수령 치적에 흠이 가오. 호방은 어째서 줄었는지 아시오?”

“아옵니다.”

호방이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 고을에 살아 있으나 호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열아홉이옵니다. 표형을 받은 자들이옵니다. 형방청 표첩에 그 줄이 있사옵니다. 소인이 표첩 열람을 청하옵니다. 식년 전에 열아홉을 맞춰 보아야 호구가 바로 서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대청 아래쪽에 서 있던 형방이 한 걸음 나섰다.

“표첩은 형방청 궤에 드는 책이옵니다. 법전에 형방이 맡는다고 적혀 있사옵니다. 호방이 볼 책이 아니옵니다.”

“표 맞은 사람도 호적상 사람이오.”

“표 맞은 사람은 관가 붓에 먹이 안 서오. 먹이 안 서는 사람을 어떻게 호적에 올리오?”

형방이 호방을 보지 않고 현감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사또, 열아홉이 호적에 오르면 그 열아홉이 진 빚과 벌도 같이 오르옵니다. 스무 해 전 곡식 서른 섬도 다시 셈해야 하옵니다.”

현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그의 얼굴에서 지루한 기색이 조금 걷혔다. 그는 서른 섬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열아홉을 넣으면 세가 느오?”

“느옵니다.”

호방이 대답했다.

“군역도 느옵니다.”

형방이 대답했다. 그 말은 호방 편을 드는 말처럼 들렸는데, 형방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군역을 새로 지게 될 열아홉이 누구를 원망할지, 형방은 그것을 셈하고 있었다.

현감이 토시에 다시 손을 넣었다.

“숫자를 맞추시오. 나는 누가 옳은지 모르오. 시월에 호구가 몇인지만 알면 되오.”

호방이 한 걸음 더 나섰다.

“사또, 사람을 없애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 말은 호방이 사십 년 동안 위에 올린 청에 적힌 말 아니오? 오기 전에 읽어 봤소. 열두 장이나 되더구먼.”

현감이 웃었다. 비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오래된 물건을 보는 웃음이었다.

“다음 일을 올리시오.”

구 서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멍석 앞으로 나가 허가 첩을 내놓았다. 열여덟 해 전 스승이 돌아가던 해에 받은 첩이었다. 종이가 누렇게 떴고 관인은 번져 있었다. 현감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물었다.

“이 가게를 닫으면 이 고을 혼인 가슴은 누가 새기오?”

“남쪽 골목에 길 서방이 있사옵니다.”

형방이 대답했다. 현감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음 종이로 넘어갔다. 내 스무 해가 그 끄덕임 한 번으로 넘어갔다. 구 서리가 첩을 받아 궤에 넣었다. 궤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마당에 짧게 울렸고, 대청 위의 현감은 그 소리가 나기도 전에 하품을 한 번 삼켰다.

마당을 나오는데 떡전 아들이 관아 담 밑에 서 있었다. 광주리에 떡을 담아 들고, 결산 끝나고 나오는 아전들한테 떡을 팔고 있었다. 아전들은 처음 보는 떡장수한테 떡을 사고, 값을 치르고, 돌아서며 그를 잊었다. 옥분이한테 배운 셈이라며 그는 아전들한테만 두 푼 반을 받았다.

“한 해 결산에 떡이 빠지면 섭섭하오. 저 사람들은 올해도 나한테 떡을 사 먹고 나를 모르오. 스무 해째요.”

“현감은 어떻소?”

“한양 양반이 떡 맛을 알겠소? 대신 형방은 늘 사 가오. 인절미만 사 가오. 스무 해 동안 나한테 떡을 제일 많이 사 간 사람이 형방이오.”

그는 그 말을 하고 웃었는데, 웃음 끝이 조금 비틀렸다. 형방은 스무 해 전 광 문밖에서 등불을 들었다. 그리고 스무 해 동안 그 광 앞에서 인절미를 사 먹었다.

*

그믐 밤, 호방 집을 찾아갔다.

관아 뒤편 좁은 골목 끝의 초가였다. 방은 한 칸이었고, 둘이 마주 앉으면 무릎이 닿았다. 수세하는 밤이라 방 네 구석과 부엌과 광에까지 등잔을 켜 두어 집 안 어디에도 그림자가 들 틈이 없었다. 기름 타는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호방은 그 불들 가운데 앉아 떡국 두 그릇을 소반에 올려놓았다.

“사십 년 동안 수세를 혼자 했소. 올해 처음 둘이오. 둘이니 떡국도 두 그릇을 끓였는데, 간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짤 거요.”

짰다. 나는 말하지 않고 다 먹었다. 호방은 반쯤 먹다가 수저를 내려놓고 제 오른 소매를 걷었다.

두 자가 있었다. 먹빛이 사십 년 묵어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형수 왼팔 이름이오.”

그가 말했다.

“사십일 년 전 봄, 형님이 옥에서 갔소. 역모 문서에 이름 한 줄이 얹혔는데, 그게 형님 이름인지 누가 얹은 건지 나는 지금도 모르오. 명이 내려왔소. 그 집을 없애라. 없애라는 건 죽이라는 거요. 형님 집에 남은 사람은 형수 하나였소.”

그는 형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제 두루마기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집어 보였다. 소매 끝 안쪽에 아주 오래된 바느질 자국이 두 줄로 나 있었다. 한 줄은 촘촘했고 한 줄은 성겼다.

“촘촘한 줄이 형수 솜씨요. 성긴 줄은 내가 사십 년 동안 뜯어질 때마다 따라 꿰맨 거요. 따라 해도 그 촘촘한 게 안 되더구먼.”

그는 먼저 형수의 왼팔 이름을 제 오른팔에 받았다고 했다. 넷째 자리에 새긴 이름은 그 주인을 찾던 것이 못 찾게 한다. 추쇄가 형수를 못 찾았다. 그 값으로 그의 가슴이 갔다.

“그해 가을 혼례를 올리기로 한 사람이 있었소. 가슴 이름을 봄에 먼저 받아 두었소. 가슴이 가니 그 사람이 나를 모르게 됐소. 혼례 날 그 사람은 저희 집 마루에 앉아서 왜 제가 혼례복을 입고 있는지 몰라 울었다고 들었소.”

그는 그 이야기를 오래된 장부를 읽듯이 했다. 나는 무릎이 닿은 채로 그 무릎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명은 이름이 아니라 집으로 내려왔소. 추쇄가 형수를 못 찾으니 형방청에 표첩을 새로 만들고 첫 줄에 형수를 올리라는 명이 왔소. 형수 등 이름은 형님이 적어 둔 족보 뒷장에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소. 댁 스승을 불렀는데 그 사람이 안 한다고 했소. 이름을 넣는 사람이지 사람을 빼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은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무 해 뒤 떡전 광에서 또 했겠지.”

호방이 짧게 웃었다.

“그래서 스물일곱 먹은 내가 바늘을 들었소. 처음 드는 바늘이었소.”

*

그는 아래 하 자를 골랐다. 획이 셋이다. 가로 하나, 세로 하나, 점 하나. 획이 적으면 바늘이 적게 들어가고, 적게 들어가면 덜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가로에 스무 번, 세로에 열다섯 번, 점에 세 번. 서른여덟 번 찔렀소. 깊이를 몰라서 다 깊었소. 댁은 알 거요. 너무 깊이 든 것은 죽어도 못 지우오.”

나는 스물둘의 광을 생각했다. 나도 획이 제일 적은 것을 골랐다. 덜 아프라고.

“형수는 울지 않았소. 마루 끝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소. 그 눈을 나는 사십 년 동안 잊지 못했소. 얼굴은 남지 않았소. 세 번째 획이 끝나자 얼굴은 내 머리에서 빠져나갔소. 그런데 눈은 남았소.”

“어떤 눈이었습니까?”

“미안한 눈이었소.”

호방이 제 오른팔의 두 자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한테 시킨 게 미안했던 거요. 명을 받은 사람도 나고, 그걸 못 해서 저러고 앉아 있는 것도 나였소. 형수는 그걸 알았소.”

등잔 하나가 기름이 다 되어 꺼졌다. 호방이 일어나 기름을 붓고 다시 불을 붙였다. 수세하는 밤에는 불을 꺼뜨리지 않는다. 그는 굽은 무릎으로 다시 앉으며 말을 이었다.

“청은 그해 겨울부터 올렸소. 처음 아홉 번은 한 줄만 썼소. 사람을 없애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열째부터 한 줄을 보탰소. 없앤 사람도 같이 없어진다.”

“어른이 없어지셨습니까?”

“나는 여기 있소. 그런데 형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하나요. 내가 가면 그 이름도 가오.”

그가 나를 똑바로 봤다.

“그리고 스무 해 전 떡전 광에서 죽이는 대신 표로 하자고 한 것도 나요. 두 번 같은 짓을 했소. 한 번은 내 손으로, 한 번은 댁 손으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방 네 구석의 등잔이 우리 둘을 사방에서 비췄고, 그래서 둘 다 그림자가 없었다.

*

닭이 울기 전에 호방이 말했다.

“댁, 스승 종이 끝장을 읽었다 했지. 셋이 되면 얼굴이 남는다고.”

“떡전 아들은 셋이 됐습니다.”

“형수를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오.”

그가 오른 소매를 내렸다.

“이름은 내가 아오. 내 팔에 있으니. 그런데 그 이름을 불러 주려면 얼굴 앞에서 불러야 한다면서요? 나는 그 얼굴을 모르오. 사십 년 동안 저잣거리에서 예순 넘은 여자만 보면 걸음을 멈췄소. 한 번도 알아본 적이 없소.”

“찾겠습니다.”

“찾는 건 내가 하오.”

호방이 등잔 심지를 돋우었다. 불이 한 치쯤 올라갔다.

“사십 년을 찾았으니 조금 더 찾아도 되오. 얼굴을 찾는 건 나, 이름을 대는 건 댁이오. 댁은 스무 해 동안 이 고을 왼팔 절반을 새겼소. 그 이름들을 대시오. 떡전 아이 하나로 멈추지 말고.”

밖에서 첫닭이 울었다. 정월 초하루였다.

호방은 문간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그는 문설주에 한 손을 짚고 서서, 골목 끝의 어둠을 한참 봤다. 사십 년 동안 그 골목 끝을 그렇게 봤을 것이다.

골목으로 나서니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집집마다 켜 두었던 수세 불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고, 꺼진 창호지마다 새벽빛이 희게 들어찼다. 나는 새 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걸었다. 호방의 짠 떡국이 아직 속에서 뜨거웠다. 발자국을 돌아보니 한 줄이었다. 그 한 줄 위에서 나는 마흔셋이 되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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