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55자) · 한수겸 · 섣달 스무날

이름을 먼저 댄 값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형방청 부름장은 이레 뒤에 왔다. 옥분이한테 한 장, 황 대장한테 한 장이었다. 내 몫은 없었는데, 막쇠가 방앗간에 부름장을 붙이고 가면서 새기는 집 쪽문에 대고 한마디를 던졌다고 했다. 한 가도 오고 싶으면 오라더라고.

그 이레 동안 저잣거리에 노래가 하나 돌았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대장간 앞을 지나가며 부르는 노래였는데, 가사 한가운데에 두 자가 들어 있었다. 봄날 꽃잎이 물에 떠가는 그 두 자였다. 형방청 서리들이 술자리에서 먼저 웃었고, 그 웃음이 사령들 입을 타고 주막으로 가고, 주막에서 아이들 입으로 갔다.

황 대장은 그 이레 동안 대장간 문을 반만 열었다. 망치 소리도 반만 났다. 황 댁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갈 때마다 빨래 방망이를 들고 나가 쫓았는데, 쫓고 들어와서는 부엌에서 한참 소리를 죽여 웃었다고 옥분이가 전해 줬다. 웃다가 울었다고도 했다.

“그 댁이 황 대장 가슴 이름은 안 새어 나가서 다행이라고 합디다. 그것까지 나갔으면 이사 가야 한다고.”

옥분이의 이름은 노래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부르기에는 너무 흔한 두 자였다. 그녀는 그게 서운하다고 했다.

섣달 스무날 아침, 셋이 관아 문을 들어섰다. 떡전 아들은 따라오겠다는 것을 내가 말렸다. 형방청 문지기는 여전히 그를 몰라보지만, 옥분이와 황 대장은 이제 그의 얼굴을 안다. 형방청 안에서 그 둘이 그를 알아보는 눈빛을 들키면 안 됐다.

형방청 대청의 마루는 이번에도 얼어 있었다. 화로에는 숯이 넉넉했다. 형방은 우리를 대청이 아니라 옆방으로 들였다. 문을 닫자 방 안에 먹 냄새와 기름 먹인 종이 냄새가 찼고, 벽 선반에 쌓인 문서 더미가 등 뒤에서 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형방이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펼쳤다.

“표첩 초안이오.”

그는 초안 옆에 가죽으로 싼 두꺼운 책을 한 권 더 올려놓았다. 보름날 뒷마당에서 구 서리가 무엇인가를 옮겨 적던 그 책이었다. 형방은 그 책을 펼치지 않고 손바닥으로 표지만 한 번 쓸었다.

종이에는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첫 줄에는 방앗간 옥분이의 호적 이름이 있었고, 그 옆에 두 자가 있었다. 둘째 줄에는 대장간 황 아무개의 호적 이름과 두 자가 있었다. 구 서리의 글씨였다. 획마다 급하게 꺾여 있었다. 문짝에 귀를 대고 들은 것을 그 밤에 바로 옮겨 적은 글씨였다.

황 대장이 그 두 자를 보고 목덜미까지 빨개졌다. 옥분이는 제 줄을 한참 봤다. 제 이름이 남의 글씨로 적힌 것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 두 자를 가리려는 듯 종이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가, 형방이 쳐다보자 천천히 거뒀다. 방앗간 일로 늘 축축한 손이라 종이 위에 손바닥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고, 그 자국이 마르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

“이 고을에 금령은 아직 없소.”

형방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워진 사람 앞에서 이름을 부르는 걸 막는 법은 없소. 그러니 나는 두 분을 벌할 수 없소. 다만 이 초안이 표첩으로 옮겨 적히는 것도 막는 법이 없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표첩이오?”

옥분이가 따졌다. 형방은 고개를 저었다.

“죄가 있어서 오르는 책이 아니오. 필요할 때 쓰려고 올려 두는 책이오. 표첩에 한 줄이 있으면, 언제든 그 사람한테 한 자를 넣을 수 있소. 넣을지 말지는 그다음 일이오.”

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지워진 사람이 돌아오면 무엇이 같이 돌아오는지 아시오? 그 사람이 진 빚이 돌아오고, 그 사람이 받았어야 할 벌이 돌아오고, 그 사람 앞으로 있던 땅이 돌아오오. 스무 해 동안 정리된 셈이 하나씩 다 뒤집히오. 나는 그걸 막는 사람이오. 이 고을 셈이 안 뒤집히게.”

그러고는 종이 두 장을 더 내밀었다. 다짐이었다. 다시는 지워진 사람 앞에서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 부르는 자리에 가지 않겠다. 엄지를 누를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다짐을 쓰면 초안에서 그 줄은 지우겠소.”

황 대장이 다짐을 들여다봤다. 한참 그렇게 있었다. 대장간에서 쇠 빛깔을 볼 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그 눈이 떨렸다. 그에게는 안사람이 있고 열일곱 먹은 아들이 있다. 아들은 내년 봄에 대장간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선생, 미안하게 됐소.”

그는 인주에 엄지를 찍어 다짐에 눌렀다. 엄지 자국이 종이 위에 붉게 남았다. 형방이 그 종이를 집어 구 서리에게 건넸고, 구 서리는 초안 둘째 줄에 붓으로 줄을 그었다. 형방이 그 종이를 도로 받아 접으면서 말했다.

“줄은 그었소. 그래도 종이는 버리지 않소. 줄 그은 이름도 이름이니까.”

옥분이는 다짐을 손끝으로 밀어 형방 쪽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글을 반밖에 몰라서 이런 건 못 쓰오.”

“엄지만 누르면 되오.”

“엄지도 반밖에 몰라서.”

형방이 처음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옥분이는 치마를 털고 일어섰다.

“형방 어른, 내 이름 올리실 거면 올리시오. 그 대신 한 가지만 하시오. 형방청 앞 떡전 떡값이나 좀 깎아 주시오. 날마다 두 푼은 너무 비싸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형방은 몰랐다. 떡전 떡값을 형방청이 정할 리가 없다. 옥분이는 그걸 알면서 한 말이었다. 떡전에 떡장수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 방에서 저 혼자 알고 있었다. 아니, 황 대장도 알았다. 그는 다짐 위의 제 엄지 자국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숙인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웃음인지 다른 것인지 나는 보지 못한 척했다.

*

관아 문을 나서다가 형방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옥분이와 황 대장은 먼저 보냈다. 문지기 둘이 창을 세우고 있는 대문 아래였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낮볕에 녹아 목덜미에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고, 나는 그 차가움에 어깨를 움츠렸다.

“한 가, 댁이 한 짓을 아시오?”

“이름을 불렀소.”

“이름을 부르게 했지. 부르기 전에 제 이름을 먼저 대야 한다는 건, 나도 스무 해 전부터 아오. 댁 스승이 그 종이를 쓰던 무렵에 나는 그 사람 가게 앞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형방이 소매에 손을 넣었다.

“잘 들으시오. 부를수록 내 표첩이 두꺼워지오. 댁이 셋을 모으면 나는 이름 둘을 얻고, 아홉을 모으면 여덟을 얻소. 스물일곱을 모으려면 이 고을 사람 스물여섯을 내 책에 넘겨야 하오. 댁은 그걸 알면서 저 여자를 데려왔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맞았다. 옥분이를 설득할 때 나는 치부책의 빈칸을 보여 줬지만 형방청 표첩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스물둘의 광을 생각했다. 호방이 내 손에 두 냥을 쥐여 줄 때, 그 두 냥이 무슨 값인지 나는 알았고 받았다. 옥분이한테 나는 두 냥 대신 치부책의 빈칸을 쥐여 줬다. 그 빈칸이 무슨 값인지 그녀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제 두 자를 떡전 문짝 너머로 내보냈다. 그 셈을 하고 나니 스무 해 사이에 내 손이 어느 쪽으로 옮겨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냥을 받던 손에서 두 냥을 쥐여 주는 손으로 옮겨 간 것 같았다.

엄지가 오른팔 바깥쪽을 찾아갔다. 형방이 그 손을 봤다. 스무 날 전 새기는 집 평상에서도 그는 그 손을 봤다.

“그래도 부르겠소.”

“그러시오. 나는 적겠소.”

그때 대문 옆 작청 쪽에서 호방이 나왔다. 두루마기 앞섶에 먹이 튀어 있었고 손에는 호적 초본 한 뭉치를 들고 있었다. 그는 형방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마 형방, 그 책 두껍게 하려거든 첫 장부터 다시 읽어 보시오.”

“무슨 말씀이오?”

“스물여섯 줄 가운데 첫 줄은 내 손이오.”

호방은 그 말만 하고 초본을 겨드랑이에 끼고 갔다. 나는 두어 걸음 호방을 따라갔다.

“어른, 첫 줄이 누구입니까?”

호방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그믐날 밤 우리 집으로 오시오. 섣달 그믐은 수세하는 밤이라 잠 안 자는 사람이 하나 있어야 하오. 나는 사십 년을 혼자 샜소.”

나는 그 자리에 섰다. 돌아보니 형방은 아직 대문 아래에 서서 호방의 등을 오래 보고 있었다. 나는 형방의 얼굴에 무엇이 지나가는지 보려 했는데,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 얼굴은 스무 해 동안 아무것도 안 지나가게 연습한 얼굴이었다.

*

그날 밤 나는 떡전에 있었다. 떡전 안은 찹쌀 찐 김이 빠져나가고 난 뒤라 습기가 벽에 맺혀 있었고, 아궁이 잉걸불이 시루 밑을 붉게 비추며 이따금 탁 튀었다. 문짝 틈에는 이레 전 끼워 둔 헌 천이 그대로 있었다. 떡전 아들이 시루를 씻고 있었고, 나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그 등을 봤다. 그의 얼굴을 이제 안다. 아침마다 벽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쪽지는 떼지 않았다. 떼려고 손을 댔다가, 그 종이가 스무 날 동안 이 사내를 붙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손을 거뒀다.

“황 대장이 다짐을 썼소.”

“알고 있소. 옥분이가 낮에 떡 사러 와서 다 말해 줬소. 오늘은 떡값을 한 푼 반만 냈고.”

그가 시루를 뒤집어 물을 뺐다. 물이 흙바닥에 떨어져 김을 올렸다.

“옥분이가 오늘 치부책 빈칸에 또 얼굴을 그렸소. 여드레째요. 날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리는데, 오늘 건 코가 생겼소.”

그가 그 말을 하며 등을 돌리고 시루를 문질렀다. 그 등이 어딘가 들떠 있었다. 스무 해 동안 아무도 그의 얼굴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코가 생겼으면 닮아 가는 거요.”

“닮았는지는 모르겠고, 콧구멍이 셋이오.”

나는 웃었다. 그도 웃었다. 그러다 그가 먼저 웃음을 거뒀다.

“선생, 황 대장 탓하지 마시오. 그 양반은 안사람이 있고 아들이 있소. 나를 위해 그걸 걸 까닭이 없소. 한 번 불러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떡전 아들이 문을 열었다.

황 대장이 서 있었다. 대장간 앞치마를 두른 채였고, 손에 쇠 부지깽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새것이었다. 달군 쇠를 두드려 막 식힌 것이라 손잡이 끝에 망치 자국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문간에 선 채로 떡전 아들 얼굴을 봤다. 한참 봤다. 그가 아직 그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이 그 눈에 보였다.

황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부지깽이를 문간 벽에 세워 두고 돌아서 갔다.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그의 짚신 소리가 언 흙을 밟으며 한동안 들렸다.

떡전 아들이 부지깽이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의 망치 자국을 엄지로 하나씩 더듬었다.

“선생 가슴값이구먼.”

“내 부지깽이는 녹이 슬었으니, 이건 댁이 쓰시오. 내 벽 쪽지에는 가슴값 받았다고 적어 두겠소.”

그가 부지깽이를 아궁이 옆에 세워 두었다. 그 옆에 떡전 아주머니가 스무 해 쓰던 옛것이 기대 있었다. 끝이 닳아 뭉툭했다. 새것과 헌것이 나란히 불빛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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