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28자) · 한수겸 · 정월 열사흘
네 번째 그릇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정월 열사흘, 쉰 줄의 사내 하나가 새기는 집 쪽문을 두드렸다. 앞문에는 관가 봉인이 붙어 있으니 쪽문으로 오는 손님은 뭔가를 알고 오는 사람이다.
사내는 원 씨라고 했다. 동문 안쪽에서 그릇 가게를 한다고 했다. 평상에 앉기도 전에 그가 먼저 물었다.
“떡전에서 이름을 부르니 사람이 보이더라는 말이 돌던데, 선생이 한 일이오?”
그 말은 황 대장의 노래를 따라 퍼졌다. 저잣거리 아이들은 두 자만 불렀지만, 어른들은 그 노래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수군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우리 집은 밥그릇을 넷 놓소. 식구는 셋이오.”
원 씨는 그 말을 하고 한참 제 손을 봤다. 그릇을 오래 만진 손이라 손끝이 반들반들했다.
“어머니가 그러셨소. 열여섯 해 동안 밥상에 그릇을 넷 놓았소. 왜 넷이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하셨소. 모르겠다면서 끝까지 넷을 놓으셨소. 돌아가신 지 세 해인데, 나도 모르게 넷을 놓고 있소.”
“그 넷째 그릇은 누가 먹소?”
“비어 있소. 그런데 아침에 보면 비어 있지 않소.”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밤사이 누가 먹소. 그릇은 깨끗이 핥아져 있고. 처음엔 도둑고양이인 줄 알았소. 그런데 고양이가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가지는 않소.”
그리고 그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쥐여 준 것이라고 했다. 두 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두 자를 읽었다. 읽히지 않았다. 눈이 자꾸 종이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
*
정월 열나흘 밤, 원 씨 집에 갔다.
원 씨 집은 그릇 가게 뒤에 붙은 기와집이었다. 마당 한쪽에 깨진 사기그릇 조각을 모아 둔 독이 있었고, 헛간 처마 밑에는 누군가 쪼갠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원 씨의 안사람은 마흔 후반쯤 되어 보였는데, 부엌에서 나오며 나한테 고개를 숙이고 나서 헛간 쪽을 흘끔 봤다.
“저기 누가 삽니다. 머슴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날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날마다 장작을 패 놓고 물을 길어 놔요.”
나는 헛간 쪽으로 갔다. 헛간 문간에 늙은 사내 하나가 앉아 새끼를 꼬고 있었다. 예순은 넘어 보였다. 짚을 비비는 손바닥이 거칠어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고, 헛간 안에서는 볏짚과 쇠죽 냄새가 섞여 흘러나왔다. 그는 나를 보고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하는 인사였다. 오른 소매 끝으로 획 하나의 끝이 삐져나와 있었다.
표첩 열한째 줄이다. 그날 낮에 호방이 호적 초본에서 찾아 줬다. 열여섯 해 전, 원 씨 집 맏아들 하나가 빚 문서에 걸려 호적에서 빠졌다고 했다.
원 씨는 헛간 앞에서 한 번 멈칫했다.
“선생, 부르면 우리 이름을 형방이 알게 된다는 말도 들었소. 대장간 황 씨는 다짐을 썼다던데.”
“이 담 너머에 귀가 있는지 내가 먼저 보고 왔소. 그래도 안 들린다고 장담은 못 하오.”
원 씨가 제 안사람을 봤다. 그녀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열여섯 해 동안 넷째 그릇을 닦은 손이 치마에 두 번 문질러졌다.
원 씨 내외를 헛간 앞에 세웠다. 나는 먼저 내 왼팔 두 자를 댔다. 원 씨 내외가 그것을 들었다. 두 번째라 목이 덜 들러붙었다. 그리고 원 씨 어머니의 종이에 적힌 두 자를 소리로 읽었다. 늙은 사내가 새끼를 쥔 채로 눈을 깜박였다.
원 씨가 그다음이었다. 그는 한참 망설였다. 제 참이름을 제 안사람이 아닌 사람 앞에서 대는 일을 그는 평생 해 본 적이 없었다. 원 씨가 제 왼팔을 대고 종이의 두 자를 불렀다. 그의 안사람이 그 옆에서 치마를 쥐고 제 왼팔을 댔고, 두 자를 따라 불렀다.
셋이 찼다.
원 씨가 늙은 사내의 얼굴을 봤다. 오래 봤다. 그리고 돌아섰다가 다시 봤다. 원 씨의 입이 벌어졌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늙은 사내의 오른 소매를 걷어 획을 봤다. 그러고는 소매를 도로 내려 주었다.
“형님이구먼.”
늙은 사내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제 이름은 방금 들었지만 제가 누구의 형인지는 아직 몰랐다.
*
그 밤에 원 씨 안사람이 밥상을 차렸다. 그릇이 넷이었다. 그녀는 넷째 그릇에 밥을 담았다. 담다가 주걱을 멈추고 부엌 쪽을 한 번 돌아봤다. 열여섯 해 동안 그 그릇은 빈 채로 상에 올랐다.
“어머님이 이러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녀가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고봉이 되었다.
늙은 사내가 헛간에서 불려 나와 밥상 앞에 앉았다. 방 안 등잔 아래에서 그는 수저를 쥐고 한참 그 고봉밥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넷째 그릇 옆에 놓인 수저를 가지런히 다시 놓았다. 아침마다 원 씨가 본 그 모양이었다.
“이 그릇에 밥이 담긴 건 처음이오.”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밤마다 부엌에 들어가 이 그릇을 봤소. 빈 그릇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식은 누룽지를 긁어 담아 먹고 나왔소. 누가 놓는 그릇인지는 몰랐소.”
원 씨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그의 안사람이 손바닥으로 눌러 주었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왔다. 식구가 넷인 밥상에 내 자리는 없었다.
*
정월 대보름 아침, 방 목수가 딸을 데리고 새기는 집 쪽문으로 왔다. 혼인 장부에 딸 이름이 올랐다고 했다. 서기 붓에 먹이 섰다고 했다. 방 목수의 오른팔에는 붉은 자국이 아물어 희게 남아 있었다.
“선생 덕이오. 떡전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들었소. 우리도 하겠소.”
떡전 아들 이야기를 하자 방 목수는 더 묻지 않고 일어섰다. 셋이 떡전으로 갔다. 대보름이라 떡전 앞에는 오곡밥 짓는 찹쌀을 사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섰고, 떡전 아들은 그 사람들에게 날마다 처음 보는 얼굴로 쌀을 되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손님이 빠지기를 기다려 떡전 안으로 들어갔다.
방 목수가 제 왼팔을 댔다. 방 낭자에게는 왼팔이 없다. 열다섯 나던 해에 그녀는 가려져 있었고, 가려진 사람은 관가 장부에 오르지 않으니 새김장이도 이름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제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 제 등 이름을 말해 주세요.”
방 목수가 딸의 귀에 대고 두 자를 말했다. 열두 해 만에 딸이 그 두 자를 제 것으로 들었다. 방 낭자는 그 두 자를 입 안에서 한 번 굴리더니, 떡전 아들 앞에서 소리 내어 댔다. 제 등을 남 앞에 까 보인 셈이라 목덜미까지 붉어졌는데,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고 떡전 아들의 두 자를 불렀다.
다섯이 되었다. 떡전 아들은 그날 두 번 절을 했다. 한 번은 방 목수한테, 한 번은 방 낭자한테.
그 둘째 절을 하는 참에 옥분이가 떡전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를 굽힌 떡전 아들과 볼이 붉은 방 낭자를 번갈아 보더니 됫박을 떡판에 탁 내려놓았다.
“대보름 아침부터 처녀한테 절하는 떡장수는 처음 보오. 무슨 셈이오?”
“이름을 불러 준 값이오.”
“나도 불러 줬소. 나는 절 못 받았소.”
떡전 아들이 옥분이 쪽으로 돌아서서 한 번 더 허리를 굽혔다. 옥분이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는데, 그 코웃음 끝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방 목수가 헛기침을 하며 딸의 등을 떠밀어 문밖으로 나갔다.
*
그날 낮에 두칠이가 떡전에 왔다.
석 객주네 머슴이다. 서른다섯, 목이 굵고 팔뚝이 장작 같았다. 그는 새끼줄 한 타래와 말뚝 여섯 개를 지게에 지고 왔고, 그 뒤로 석 객주가 비단 겉옷 자락을 들고 따라왔다. 석 객주 손에는 관인이 찍힌 종이가 있었다.
“이 땅은 봉 아무개 앞으로 되어 있소. 봉 아무개는 스무 해 전에 죽었고, 호적에 남은 사람이 없소. 주인 없는 땅은 관가가 거두어 파는 법이오. 내가 샀소.”
두칠이가 떡전 모퉁이에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나무 메로 내리칠 때마다 언 땅이 쩡쩡 울렸고, 시루에서 오르던 김이 그 울림에 흩어졌다. 떡 사러 왔던 사람들이 물러섰다.
나는 말뚝 앞에 섰다.
“주인이 여기 있소.”
“누구요?”
석 객주가 물었다. 나는 떡전 아들을 봤다. 그는 시루 앞에 서 있었다. 석 객주의 눈은 그를 지나쳐 갔다. 그 눈에는 떡 파는 사내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떡전 아들은 그 눈을 스무 해 동안 받아 온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시루 뚜껑 위에 얹은 손만 조금 움켜쥐었다.
“호적에 없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오.”
두칠이가 나를 어깨로 밀었다. 나는 밀리지 않으려고 버텼고, 그는 말뚝 박던 메를 내 발 앞에 쿵 내려놓았다. 한 번만 더 버티면 그 메가 어디로 갈지 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떡전 아들이 시루 앞에서 나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생, 비키시오. 땅은 봄까지는 안 헐린다오. 저 사람들도 순서가 있소.”
석 객주가 말뚝 여섯 개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떡전 아들 앞 떡판에서 인절미 하나를 집어 먹었다. 값은 치르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면서 떡 파는 사내를 잊었다.
*
그날 해 질 녘, 나는 석 객주 집 뒷문 앞에 서 있었다. 땅 문서를 사들인 값을 형방청 누구에게 얼마 치렀는지, 그걸 알아내려고 간 길이었다. 뒷문 틈으로 부엌이 보였다.
부엌은 넓었다. 솥이 다섯 걸렸고, 아궁이마다 불이 들어 있었다. 여자 하나가 맨 끝 솥 앞에 쪼그려 앉아 수세미로 솥을 닦고 있었다. 서른 남짓, 오른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고, 팔뚝 바깥쪽에 먹빛 획 몇 개가 짙게 박혀 있었다. 너무 깊어서 살갗이 그 자리만 조금 꺼져 있었다.
그 옆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물동이를 이고 들어왔다. 간난이였다. 볼이 더 트고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아이는 물동이를 솥 옆 독에 부었다. 물이 튀어 여자의 소매를 적셨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고, 아이도 여자를 봤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보는 눈이었다.
“미안하오, 아주머니.”
“괜찮다, 얘야.”
여자는 다시 솥을 닦았다. 아이는 빈 동이를 들고 우물 쪽으로 나갔다. 나는 뒷문 틈에서 그 둘을 봤다. 간난이는 알았고, 여자는 몰랐다. 모르는 여자 곁에 선 간난이를 보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뒷덜미에 손이 얹혔다. 두칠이었다. 그는 말없이 나를 뒷문에서 떼어 내더니 골목 담벼락에 밀어붙였다. 흙벽에서 마른 흙이 부서져 내 목덜미로 흘러들었다.
“선생, 객주 어른 부엌은 구경하는 데가 아니오.”
“저 아이는 삯도 없이 일하오.”
“빚을 갚는 중이오. 빚 갚는 사람한테 삯을 주는 집이 어디 있소?”
두칠이 손을 뗐다. 그는 뒷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한마디를 보탰다.
“다음에 또 오시면 저 부엌 일꾼이 하나 느는 거요. 객주 어른은 사람 느는 걸 좋아하시오.”
지금 나는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안다. 그날 그 부엌에는 솥이 다섯 있었고, 한 솥 앞에 어미와 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