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13자) · 한수겸 · 동짓달 스무날

스물둘의 한 획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곤장 열 대를 맞은 엉덩이는 닷새가 지나도 평상에 닿지 않았다. 나는 뒷방에 엎드려 지냈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베개 옆에 붙은 종이부터 봤다. 벽까지 기어가서 쪽지를 읽을 수가 없으니 누군가 베개 옆으로 한 장을 옮겨 붙여 놓았다. 그 종이 첫 줄은 그의 굵고 뭉툭한 글씨였다.

엉덩이 맞은 사람이 부지깽이를 들면 더 아프오. 나는 떡전 아들이오. 죽은 저기 있소.

죽 그릇은 머리맡에 있었다. 식어서 겉에 막이 앉아 있었는데, 숟가락으로 막을 걷자 그 밑에서 아직 김이 올랐다. 찹쌀을 갈아 쑨 죽이라 떡 찌는 냄새가 났다.

“오늘은 누구냐고 안 물으셨소.”

그가 문지방에 걸터앉아 말했다. 닷새째 같은 말을 한다고 했다. 첫날은 내가 죽 그릇을 그에게 던질 뻔했고, 둘째 날은 내가 엎드린 채로 관아에 알리겠다며 기어 나가다가 문지방에 턱을 찧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래서 더 우스웠는데, 웃으면 엉덩이가 울려서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쪽문이 열리고 옥분이가 들어왔다. 치마에 쌀겨가 허옇게 묻어 있었고 손에는 방앗간에서 쓰는 됫박을 들고 있었다. 그 됫박에 쑥개떡 넷이 담겨 있었다.

“선생, 엉덩이는 좀 어떻소? 아니, 보여 주지는 마시오.”

“안 보여 주오.”

옥분이는 됫박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떡전 아들을 흘끗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나한테 바싹 다가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선생, 내가 좀 이상하오. 보름 전날 밤에 내가 떡전 광에다 이불을 날랐다는데, 누구 덮으라고 날랐는지 모르겠소. 그 새벽에 부엌칼 들고 뛰쳐나갔다는데, 누구 지키려고 들었는지도 모르겠소. 광 문짝은 부서졌고, 칼은 이가 나갔고, 이불은 한 채가 없어졌소. 셈이 하나도 안 맞소.”

“누구를 숨겼었소.”

“그러니까 누구를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옥분이는 한숨을 쉬더니 쑥개떡 하나를 제 입에 넣었다.

“아무튼 이불값은 선생한테 받겠소. 선생 일인 것 같으니까.”

그녀가 나가자 떡전 아들이 됫박에서 쑥개떡 하나를 집어 들고 한참 들여다봤다.

“저 사람은 셈이 안 맞으면 잠을 못 자오. 세 해 동안 떡값을 한 푼도 안 틀렸으니.”

그 말을 할 때만 그가 조금 웃었다.

그가 온 까닭은 그다음에 나왔다.

“어제 삯바느질 집에 두칠이가 왔소. 석 객주네 머슴이오. 그 집 빚 문서를 들고 와서 간난이를 데려갔소. 집이 비었으니 빚은 아이가 갚아야 한다고.”

“빚 쉰 냥을 아홉 살이 어떻게 갚소?”

“부엌에서 물을 길으면 되오. 석 객주 부엌에는 그렇게 빚 갚는 사람이 여럿이오. 삯도 없고, 아무도 누가 누군지 모르오.”

그가 문지방에서 일어섰다.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내 머리맡에 섰는데, 그림자가 죽 그릇 위로 드리웠다.

“선생, 그 아이 어미가 누구였소?”

“모르오, 그건.”

“나도 모르오. 벽에는 내가 적어 놨는데, 읽어도 누군지 안 붙소. 그런데 그 아이 손톱 밑에 먹이 끼어 있었소. 선생 가게 먹이었소.”

그가 쪼그려 앉았다. 눈높이가 엎드린 내 눈과 같아졌다.

“형방이 스무 해 전 두 냥 한 획이라고 할 때마다 선생 얼굴이 변했소. 내 팔 획을 볼 때도 변했고. 떡전 앞을 스무 해 동안 돌아서 다녔다는 것도 선생 입으로 한 말이오. 나는 매일 선생을 새로 만나지만 선생은 매일 같은 얼굴로 그 말을 피하오.”

그가 제 오른 소매를 걷어 그 한 획을 내 코앞에 댔다.

“이제 말하시오.”

*

스무 해 전 칠월 그믐이었다. 나는 스물둘이었고 스승 밑에서 여섯 해째 바늘을 잡고 있었다.

밤중에 관아 사람이 스승을 부르러 왔다. 스승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저잣거리 끝 떡전 뒤꼍의 광이었다. 광 문밖에 젊은 서리 하나가 등불을 들고 서 있었고, 안에는 관아 호방이 먼저 와 있었다. 그때 호방은 마흔여덟이었는데 지금처럼 등이 곧았다.

광 안은 더웠다. 칠월 그믐 밤이라 흙벽이 낮의 열을 머금고 있었고, 쌀가루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입안에 들러붙었다. 천장이 낮아 스승은 허리를 굽혀야 했다. 기둥 아래 흙바닥에 여섯 살 아이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아이 어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관가 창고지기 봉 서방이 그 사흘 전에 옥에서 죽었다. 창고 곡식 서른 섬이 빈다는 말이 돌았고, 그 곡식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봉 서방은 매를 맞다가 죽었다. 그리고 위에서 명이 내려왔는데, 대를 끊으라고 했다.

호방이 스승에게 말했다.

“죽이는 대신 표로 하시오. 아이는 살고, 명은 지켜지오.”

스승은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바늘 상자를 닫았다.

“나는 이름을 넣는 사람이지 사람을 빼는 사람이 아니오.”

스승은 허리를 굽힌 채 광을 나갔다. 문밖의 등불이 한 번 흔들렸다. 나는 따라 나가지 않았다. 왜 안 나갔는지 스무 해 동안 여러 번 생각했다. 스승이 나가면 누가 올지 알았기 때문이라고 해 두고 싶지만, 호방이 내 손에 두 냥을 쥐여 줄 때 나는 그 무게를 먼저 느꼈다. 스물둘의 새김장이에게 두 냥은 한 계절 쌀값이었다.

“획이 제일 적은 걸로 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한 일 자는 획이 하나뿐이고, 바늘이 적게 들어가면 덜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밖의 서리가 등불을 고쳐 들며 한마디를 보탰다.

“빨리 하시오. 모기가 뜯소.”

호방이 그를 돌아봤고, 서리는 입을 다물었다. 등불을 든 손목이 가늘었다. 그 손목이 들고 있는 불빛 때문에 광 안에서 제일 밝은 것이 아이 얼굴이었다.

아이 어미가 아이의 오른팔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나는 가는 바늘을 골랐다. 첫 바늘을 세웠을 때 아이가 몸을 떨었고, 어미가 낮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래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었다. 숨을 쉬듯 낮게, 끊어지지 않게 흥얼거리는 소리였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등불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손목을 맡기고 가로로 한 획을 그었다. 처음에 바늘을 세웠다가 끝에서 손목을 눕혀 뺐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뺀다.

획이 끝나자 아이 얼굴이 내 머리에서 빠져나갔다. 등불 든 서리 얼굴도, 호방 얼굴도 그대로였는데 아이 얼굴만 없었다. 흙바닥에 누군가 앉아 있었고,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새긴 한 획만 또렷했다.

어미는 계속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 팔을 놓지 않았다.

광을 나오자 호방이 내 어깨를 한 번 짚었다.

“오늘 밤 이 고을에서 아무도 안 죽었소. 댁 손 덕이오.”

등불 든 서리가 그 말을 들었다. 그 서리가 스무 해 뒤에 형방청을 쥐고 앉아 똑같은 말을 제 입으로 하게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다. 광을 나설 때 돌아보니 어미가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어미의 눈은 분명히 아이를 보고 있었다.

*

“그 아이가 댁이오.”

내가 말했다. 엎드린 채였다. 일어나 앉아서 할 말이었는데 엉덩이가 허락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베개에 눌려 뭉개졌고, 스무 해 동안 입 안에 넣고 다닌 말치고는 너무 작게 나왔다. 베갯잇에서 내 머리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걷어 올린 소매도 내리지 않았다. 창호지 문 밖에서 누군가 지나가며 눈을 밟는 소리가 났다가 멀어졌다.

“석 객주요.”

그가 말했다.

“서른 섬 말이오. 어머니가 그랬소. 그해 곡물 거간이 석 객주였다고. 아버지가 그 장부를 들고 호방한테 가려다 잡혔다고.”

“나는 몰랐소.”

“선생은 몰라도 되오. 선생이 한 건 한 획이오.”

그가 소매를 내렸다. 천천히, 손목까지 덮이도록 내렸다.

나는 그가 뭐라도 하기를 바랐다. 죽 그릇을 엎든지, 내 뒷덜미를 잡든지, 스무 해 동안 모르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대고 욕을 하든지.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무릎에 손을 얹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머니는 해마다 정초에 선생한테 떡을 갖다 드렸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그 광에서 선생 얼굴을 봤소. 손도 봤고. 그 손이 제일 가는 바늘을 고르는 것도 봤소. 그런데 해마다 떡을 쪄서 이 집 문 앞에 섰소. 선생은 한 번도 문을 안 열었고. 스무 해 동안 스무 번이오.”

“왜 그러셨소?”

“나도 모르오. 물어봤는데 어머니는 웃기만 했소.”

그는 문지방을 넘다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걸 선생이 알아내시오. 나는 떡이나 찌겠소.”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베개에 이마를 대고 스무 번의 정초를 셌다.

떡은 늘 짚으로 싼 채 문 앞 댓돌 위에 놓여 있었다. 첫해에는 누가 두고 간 줄 몰라 골목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둘째 해부터는 문틈으로 떡전 아주머니의 치마 끝을 봤고, 치마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떡은 대개 저녁까지 댓돌에 있었다. 까치가 짚을 쪼아 헤집어 놓은 해도 있었고, 눈에 덮여 이튿날 아침에야 찾은 해도 있었다. 어느 해 밤에는 아무도 안 보는 부엌에서 그 떡을 혼자 먹었다. 언 떡을 아궁이 잉걸불에 구웠더니 겉은 누렇게 부풀고 속은 끝까지 차가웠다. 그 맛을 나는 스무 해 동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광에서 내 손을 봤다. 그런데도 해마다 떡을 쪘다. 나는 엎드린 채로 그 까닭을 찾아보다가 찾지 못했다. 찾을 수 없는 까닭이 등 위에 무겁게 얹혔다.

*

이튿날 그는 오지 않았다.

베개 옆 종이에는 새 줄이 없었다. 나는 기어서 부엌까지 가 보리를 안쳤고, 쪼그려 앉을 수가 없어 무릎을 꿇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밥은 두 그릇을 펐다. 한 그릇은 누구 몫인지 몰랐는데, 벽의 쪽지를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 그릇은 저녁까지 부뚜막에 있었다. 밥이 식어 굳고 겉이 말라 갈라졌다. 창호지 빛이 희다가 누레지다가 어두워지는 동안 나는 그 그릇을 몇 번이나 봤다. 볼 때마다 누구 몫인지 다시 잊었고, 다시 벽을 읽었다.

이틀째 해 질 녘에는 지팡이를 짚고 저잣거리 끝까지 걸어갔다. 떡전 처마 밑에서 시루 김이 오르고 있었다. 김 너머로 사내 하나가 떡을 썰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벽의 쪽지를 품에 넣어 왔는데도 꺼내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떡을 사 가고, 돌아서며 그를 잊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서서 그를 처음 보는 얼굴로 봤다. 결국 떡을 사지 않고 돌아왔다.

사흘째 되던 날, 나는 부엌 벽 내 쪽지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그가 오지 않는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고 한참 붓을 들고 있었다. 정초에 떡이 오면 문을 연다. 쓰고 나서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이번 정초에는 떡이 오지 않는다. 떡을 들고 올 사람은 작년 섣달에 죽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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