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81자) · 한수겸 · 동짓달 보름
보름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떡전 광 문 앞에서 나는 한참 서 있었다.
광은 떡전 뒤꼍에 붙은 흙벽 창고다. 문짝은 송판 넉 장을 이어 붙였고, 이음매마다 스무 해 묵은 쌀가루가 끼어 희끗희끗했다. 문고리에 손을 얹자 쇠가 손바닥에 들러붙을 만큼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에서 멎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두 번 쉬고 나서야 문을 당길 수 있었다.
안에는 허 씨와 간난이가 있었다. 볏짚 위에 이불을 깔고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스승의 상자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방앗간 뒷방은 사람 눈이 많다며 옥분이가 밤사이 이리로 옮겼다고 했다.
옥분이는 광 문간에 버티고 서서 나와 떡전 아들을 번갈아 봤다.
“선생은 알겠고, 댁은 누구요?”
“이 광 주인이오.”
“이 광 주인은 작년 섣달에 죽은 떡전 아주머니요. 그 양반한테 아들이 있단 말은 못 들었소.”
“있소. 날마다 인절미 셋에 두 푼 받는 그 아들이오.”
“그 떡장수는 어제 봤는데 댁보다 잘생겼소.”
떡전 아들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광 안의 쌀가루 냄새를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사레가 들렸다. 옥분이는 내 등을 두 번 쳐 주고 나서 떡전 아들 쪽으로 턱을 쳐들었다.
“아무튼 이 양반이 선생 사람이면 믿겠소. 허 씨는 내가 지키니 둘 다 나가시오. 사내 둘이 광 앞에 서 있으면 동네가 다 쳐다보오.”
나는 나가지 못했다. 광 안쪽 벽에 기둥이 하나 서 있고, 그 기둥 아래 흙바닥이 조금 파여 있었다. 스무 해 전 칠월 그믐, 거기 여섯 살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자리를 보는 동안 내 엄지는 오른팔 바깥쪽을 문지르고 있었다.
“선생, 상자는 여기 두는 게 낫겠소?”
떡전 아들이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
열나흘 저녁에 나는 광에 한 번 더 갔다. 옥분이가 방앗간 일을 마치고 오기 전이었고, 떡전 아들은 시루에 불을 때고 있었다. 광 안은 볏짚 냄새와 식은 이불 냄새가 섞여 눅눅했다. 간난이는 허 씨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는데, 잠결에도 어미 치맛자락을 한 줌 쥐고 놓지 않았다.
허 씨가 아이 머리를 쓸며 말했다.
“선생, 장 서방이 가슴 이름 받던 날 기억하시오?”
“둘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소.”
“그이가 정해 온 두 자를 나는 그날 처음 봤소. 획이 너무 많아서 내가 웃었지. 나한테 왼팔 획 많은 거 고른다고 놀리던 사람이, 저는 더 많은 걸 골라 왔더라고.”
허 씨가 조금 웃었다. 광 벽 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고, 그 불빛이 허 씨의 옆얼굴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내일 무슨 일이 나면, 선생은 내 이름을 기억하시오?”
“새긴 사람은 안 잊소.”
“그럼 됐소. 이 아이가 열다섯이 되면 선생한테 이름 받으러 올 거요. 그때 에미 이름도 같이 적어 주시오. 뜻은 몰라도 종이는 남는다면서요.”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 약속이 얼마나 가벼운 약속인지는 그때도 알았다.
*
보름을 하루 앞둔 밤에 광이 팔렸다.
옥분이 방앗간 옆집에 엿을 고는 과부가 산다. 그 과부의 아들이 형방청 문지기 노릇을 하는데, 떡전 광 쪽으로 밤마다 옥분이가 이불을 나른다고 제 아들한테 말한 모양이었다. 그 말값으로 닷 돈을 받았다는 것은 나중에 들었다.
막쇠는 새벽에 왔다. 광 문짝이 안쪽으로 부서지는 소리에 옥분이가 부엌칼을 들고 뛰어나왔고, 막쇠는 그 칼을 손바닥으로 쳐서 떨어뜨렸다. 허 씨는 저항하지 않았다. 간난이를 옥분이 쪽으로 밀어 놓고 제 발로 걸어 나갔다.
떡전 아들이 그 소식을 들고 새기는 집 쪽문을 두드린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나는 벽의 쪽지를 읽을 새도 없이 그를 따라 뛰었다.
*
형방청 뒷마당에는 멍석이 한 장 깔려 있었다.
멍석 위에 등받이 없는 나무 걸상이 하나 놓였고, 그 옆 작은 소반에 먹 사발과 바늘 한 줌이 있었다. 바늘은 굵기가 다 같았다. 가는 바늘 없이 굵은 것만 들고 온 새김꾼이다. 보름날 아침 해가 담장 위로 막 올라와 멍석의 반을 비추고 있었는데, 볕이 든 쪽에서는 서리가 녹아 김이 오르고 그늘진 쪽은 아직 하얗게 얼어 있었다.
길 서방은 스물아홉이라고 했다. 몸이 가늘고 손가락이 길었다. 남쪽 골목에서 남이 새기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소문보다 어렸다. 그는 바늘을 먹 사발에 담갔다 뺐다 하며 자꾸 손을 털었다.
형방은 처마 밑 마루에 앉아 있었고, 옆에 내 장부 셋째 권이 펼쳐져 있었다. 구 서리가 그 권을 보며 다른 책에 무엇인가를 옮겨 적고 있었다. 가죽으로 싼 두꺼운 그 책이 표첩이었다. 스물다섯 줄 다음 줄에 허 씨의 호적 이름을 쓰고, 그 옆에 열아홉 해 전 봄의 두 자를 적는 것을 나는 담장 밖에서 봤다. 내 글씨를 보고 남의 붓이 베끼고 있었다.
허 씨는 걸상에 앉아 있었다. 막쇠가 그 뒤에 서서 두 손으로 그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뒷마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막는 사람이 없었다. 형방이 나를 보고 오히려 손짓을 했다.
“잘 왔소, 한 가. 댁이 하면 저놈 스무 냥은 굳소.”
“길 서방.”
나는 형방을 보지 않고 새김꾼에게 말했다.
“표를 넣어 본 적이 있소?”
길 서방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은 살갗 겉에 넣소. 표는 한 번 들어가면 그 사람 셋이 다 가오. 깊이를 모르고 넣으면 나중에 누가 지우려 해도 못 지우오. 죽어서도 못 지우오. 바늘을 세우지 말고 눕혀서 반 치만 들어가시오.”
“한 가, 표 넣는 법을 가르치러 온 거요?”
형방이 웃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려서 안 될 일이면 덜 아프게라도 넣게 해야 했다. 스무 해 전에 내가 한 획만 넣은 것도 그 셈이었는데, 그 셈이 어디까지 옳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길 서방이 바늘을 든 채 나를 봤다. 형방 쪽은 보지 않았다.
“반 치가 얼마요?”
목소리가 작았다. 나는 엄지손톱 끝을 검지 첫 마디에 대어 보였다. 손톱이 반쯤 묻히는 깊이다. 길 서방이 제 손톱을 들여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입술이 스물, 스물, 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그게 곱씹는 값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쪽 골목에서 이름 하나 넣으면 두 푼 받소. 스무 냥이면 삼 년 먹소.”
그는 변명하듯 말하고 먹 사발로 눈을 돌렸다. 먹 사발 가장자리에 먹이 말라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사발을 한 번도 씻지 않고 쓴 손이었다.
길 서방이 허 씨의 오른 소매를 걷었다.
허 씨가 나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는데 소리는 안 났다. 간난이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 이름은 아직 없다. 여섯 해 뒤에 받을 이름이다.
길 서방이 첫 바늘을 세웠다.
나는 멍석으로 뛰어들어 그 손목을 잡았다. 길 서방의 손목은 가늘었고 떨고 있었다. 막쇠가 허 씨 어깨에서 한 손을 떼어 내 뒷덜미를 잡았고, 나는 멍석 밖으로 내던져져 언 흙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흙에 섞인 서리가 입안에서 버석거렸다.
“관가 형을 막은 죄요. 열 대.”
형방의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
곤장은 멍석 옆 그늘에서 맞았다. 사령 둘이 번갈아 쳤다. 셋째 대부터는 수를 세지 않았다. 세지 않으려고 멍석 위를 봤다.
길 서방은 망할 망 자를 넣었다. 획이 셋이다. 첫 획은 점이고, 둘째는 가로로 긋고, 셋째는 꺾어 내려 다시 가로로 뺀다. 그는 바늘을 세운 채 눌렀다. 가로 획에서 먹과 피가 같이 솟았고, 허 씨의 왼손이 걸상 모서리를 쥐었다가 놓았다가 다시 쥐었다. 막쇠는 그 어깨를 끝까지 누르고 있었다.
일곱째 대쯤에서 셋째 획이 끝났다.
그리고 멍석 위에 모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서른 남짓, 무명 치마, 오른 소매가 걷혀 있고 팔뚝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여자가 소매를 내리며 일어섰다. 나는 곤장에 맞으면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누군지 몰랐다. 왜 형방청 뒷마당에서 모르는 여자가 소매를 내리는지, 나는 왜 그것을 이렇게 오래 보고 있는지 몰랐다.
내 머릿속에는 이름이 둘 남아 있었다. 열아홉 해 전 봄의 두 자와 열두 해 전 가슴의 두 자. 바늘 잡은 손은 제가 새긴 것을 잊지 않는다. 다만 그 넉 자가 누구 것인지는 머리에 붙지 않았다. 멍석 위의 여자와 내 머릿속의 넉 자 사이에 아무 줄도 없었다.
지금 나는 그 여자가 허 씨인 것을 안다. 그날의 일은 떡전 아들이 벽에 적어 둔 것과 옥분이가 나중에 해 준 말로 안다. 그날의 나는 곤장 열 대를 다 맞고 일어나서, 멍석 위에 흘린 먹 자국을 보고도 그게 누구의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막쇠만 여자가 나간 쪽문을 오래 쳐다봤다.
“구 서리, 방금 그 여자 허 씨 아니오?”
“허 씨가 누구요?”
막쇠가 머리를 긁었다. 그는 표가 들어가는 내내 그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붙들고 있던 손은 잊지 않는다. 그 말이 스승의 종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그날은 몰랐다.
*
형방청 대문 앞에 여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아홉 살쯤, 볼이 트고 한쪽 정강이에 멍이 들어 있었다. 떡전 아들이 그 아이 손을 잡고 서 있었는데, 곤장 맞은 엉덩이를 끌고 나오는 나를 보고 그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표가 들어간 뒤로 형방청 안에서 나온 여자는 쪽문으로 나가 저잣거리 쪽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석 객주 집 쪽이었다.
여자아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아재, 나 왜 여기 서 있소?”
아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없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손등에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닷새 전 먹 항아리에 손가락을 넣었던 자국인데, 우물가에서 누가 닦아 줬는데도 손톱 밑에 먹이 아직 끼어 있었다.
떡전 아들이 쪼그려 앉아 그 손톱을 봤다. 그러고는 제 소매로 아이 손을 감쌌다.
“집에 가자. 네 집은 저기 남쪽 골목 삯바느질 집이다.”
“거기 누가 사오?”
“내가 알기로는 너 혼자 산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둘 뒤에서 걸었다. 볕이 나서 길이 녹았고, 짚신마다 흙이 엉겨 붙어 걸음이 무거웠다. 떡전 아들은 아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갔다. 스무 해 전에 누군가 저 사내의 손을 저렇게 잡고 떡전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그날 밤 벽의 쪽지에 그가 한 줄을 적었다. 표첩이 스물여섯 줄이 되었다고 형방청 문지기가 떡을 먹으며 말하더라, 산 사람이 열아홉이 되었다고.
이튿날 아침 나는 엎드린 채로 그 줄을 읽었다. 열아홉째가 누구인지 나는 몰랐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주인 없는 넉 자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었고, 그 넉 자를 떠올릴 때마다 곤장 맞은 자리보다 가슴 한가운데가 먼저 욱신거렸다. 나는 그 줄 밑에 누구 것인지 모르는 이름 넉 자를 내 손으로 적어 두었다. 적어 두면 종이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