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5,131자) · 한수겸 · 동짓달

형수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짓달 들어 호방이 자리에 누웠다. 옥에서 얻어 온 기침이 가을 내내 떨어지지 않더니, 첫서리가 내린 날부터는 일어나 앉지를 못했다.

관아 뒤 초가는 방이 좁아 둘이 앉으면 무릎이 닿았다. 호방은 그 방 아랫목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벽에는 두루마기가 걸려 있었다. 정직되던 날 개지 않고 걸어 둔 그 두루마기였다. 식년 대조 날 한 번 입고 나갔다가 도로 걸었다고 했다.

머리맡에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봉지마다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 윤 씨가 시월 보름 뒤로 닷새마다 기침약을 지어 떡전 아들 편에 보냈다. 호방은 약을 먹으면서 약봉지 끈을 풀지 않고 가위로 잘랐다. 두 번 묶인 매듭이 아까워서라고 했다.

허 씨가 나와 함께 갔다. 석 객주 부엌을 나온 뒤로 그녀는 남쪽 골목에 방을 얻어 삯바느질을 다시 했다. 간난이는 이제 물동이 대신 실패를 감았다. 허 씨는 호방 두루마기 소매가 해졌다는 말을 듣고 반짇고리를 들고 따라나섰다.

“호적에 도로 올려 주신 분 옷이오. 삯은 안 받소.”

그녀가 벽에서 두루마기를 내려 무릎에 펼쳤다. 무명이 오래 입어 얇아졌고, 옷깃에 호방 몸에서 밴 먹 냄새와 한약 냄새가 함께 배어 있었다. 사십 년 작청 붓을 쥔 사람 옷이었다. 오른 소매 끝에 바느질 줄이 두 겹 있었다. 안쪽 줄은 땀이 쌀알만 하게 촘촘했고, 바깥쪽 줄은 땀이 콩알만 하게 성겼다. 허 씨가 성긴 줄을 손톱으로 짚었다.

“이건 사내 손이오. 앞 줄을 따라 꿰매려고 애쓴 손이오.”

“내 손이오.”

호방이 누운 채 말했다. 사십 년 동안 형수가 꿰맨 소매 줄을 제 손으로 따라 꿰맸다던 그 줄이었다.

허 씨가 두루마기를 뒤집어 왼 소매를 봤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왼 소매 끝에도 촘촘한 줄이 있었다. 오른 소매 안쪽 줄과 같은 땀이었는데, 실이 새것이었다. 올해 꿰맨 줄이었다. 허 씨가 등잔을 당겨 그 땀을 들여다봤다. 땀 끝마다 실을 두 번 되감아 매듭을 숨겨 두었다.

“어른, 왼 소매는 누가 꿰맸소?”

“왼 소매는 꿰맨 적 없소.”

“누가 꿰맸소. 이 땀은 사십 년 넘게 바늘 잡은 손이오. 끝을 두 번 되감는 건 옛날 반가 아낙들 버릇이오. 나는 한 번 되감소.”

호방이 몸을 일으키려다 기침에 막혀 도로 누웠다. 기침이 잦아들자 그가 천장을 보며 물었다.

“언제 꿰맨 거요?”

“한 달이 안 됐소. 실에 때가 안 탔소.”

*

나는 초가 뒤꼍으로 나갔다.

뒤꼍에 헛간이 하나 있었다. 지붕 이엉이 삭아 한쪽이 내려앉았고, 흙벽에 금이 가 있었다. 호방은 그 헛간에 땔나무를 쌓는다고 했다. 동짓달 해가 헛간 벽에 누렇게 걸려 있었고, 볏짚 썩는 냄새와 마른 솔가지 냄새가 한데 섞여 코끝에 싸하게 닿았다.

헛간 벽 밑에 노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볏짚을 추리고 있었다. 새끼를 꼬려는 모양이었다. 예순 넘은 여자였다. 머리가 하얗게 셌고, 무명 저고리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 있었다.

오른팔 바깥쪽에 下 한 자가 있었다. 획 셋이 먹빛으로 너무 깊게 박혀, 가장자리가 흐려지고 가운데가 도드라져 있었다. 서른여덟 번을 찔러 넣은 자리였다.

나는 그 노인 앞에 섰다. 노인이 나를 올려다봤다. 모르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그러나 놀란 눈은 아니었다. 사십일 년 동안 모든 사람한테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모르는 사람을 보는 데 익숙한 눈이었다.

“댁은 여기서 사시오?”

“여기서 사오. 이 집 양반은 나를 모르오. 그래도 겨울이면 헛간에 짚을 두툼하게 깔아 두오. 나 들으라고 그러는 건 아닐 거요.”

뒤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호방이 문설주를 붙들고 서 있었다. 허 씨가 그의 겨드랑이를 받치고 있었다. 그가 맨발로 뒤꼍 흙을 밟고 나왔다. 흙이 얼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모르는 걸음이었다.

호방이 노인 앞에 섰다. 그의 눈이 노인 얼굴이 아니라 노인 오른팔에 가 있었다. 획 셋. 새긴 사람은 그 한 자만 기억한다. 얼굴은 잊는다. 호방은 사십일 년 동안 그 얼굴을 몰랐고 그 한 자만 들고 다녔다.

“형수님.”

그가 불렀다. 참이름이 아니라 부르는 이름이었다. 노인이 볏짚을 쥔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호방 두루마기 왼 소매를 봤다. 허 씨가 들고 나온 두루마기였다.

“도련님 소매는 내가 꿰맸소. 해마다 헛간에서 몰래. 오른 소매는 도련님이 먼저 꿰매 버려서 왼 소매만.”

*

호방은 제 왼팔 두 자를 댔다. 그러고는 형수 왼팔 두 자를 불렀다. 사십일 년 전 제 오른팔에 새겨 형수를 추쇄에서 가린 두 자였다. 그 두 자를 입으로 소리 낸 것이 사십일 년 만이었다.

하나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셋이면 얼굴이 남고 스물일곱이면 돌아온다.

이튿날 아침 저잣거리가 관아 뒤 초가로 왔다. 옥분이가 치부책을 들고 왔고, 떡전 아들이 떡 광주리를 이고 왔다. 식년 대조 날 부른 백여든 가운데 쉰이 넘게 왔다. 호방 초가 앞 좁은 길이 사람으로 막혀 옆집 개가 한나절 짖었다.

“이번엔 석 냥 주는 사람 없소? 없으면 내가 떡으로 드리겠소.”

옥분이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웃었다. 떡전 아들이 광주리를 내려놓고 인절미를 돌렸다. 떡값은 받지 않았다. 쪽지에 적힌 대로였다. 금령은 식년 대조 날 뒤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또가 호구를 올려 받은 날 그 금령도 서랍에 들어갔다.

스물일곱이 헛간 앞에 섰다. 제 왼팔 두 자를 대고 형수 두 자를 불렀다. 호방은 문지방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스물일곱째 소리가 끝나자 형수가 볏짚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호방을 봤다. 이번에는 오래 봤다. 그러고는 제 이름을 제 입으로 한 번 말했다.

“도련님, 스물일곱 살에 내 팔을 누르던 그 손이 이렇게 늙었구려.”

호방이 문지방에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흔들렸다. 기침인지 울음인지 나는 가를 수 없었다.

“형수님, 사십일 년 동안 왜 여기 계셨소? 멀리 가시지 않고.”

“추쇄는 나를 못 찾았소. 도련님 팔이 가려 줬으니. 이 세상에서 나를 찾는 사람은 도련님 하나뿐이었소. 그러니 도련님 가까이 있어야지. 찾으러 올 때 멀리 있으면 못 찾을 거 아니오.”

“나는 사십일 년 동안 못 찾았소.”

“그래서 소매를 꿰맸소. 소매라도 찾으라고.”

형수가 볏짚 부스러기를 무릎에서 털었다. 호방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제 왼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두 번 되감긴 땀 매듭이 손끝에 걸렸다.

열아홉이 되었다. 표첩 산 사람 열아홉이 다 돌아왔다.

호방이 방으로 기어 들어가 호적 초본과 비단 표첩을 폈다. 표첩 첫 줄, 사는 곳 칸이 사십일 년 동안 비어 있던 줄이었다. 그가 붓에 먹을 찍어 그 칸에 적었다. 관아 뒤 초가 헛간. 그러고는 그 줄 전체에 먹으로 줄을 한 번 그었다. 줄 그은 이름도 이름이라던 형방 말이 떠올랐다. 호방은 그 이름을 초본에 옮겨 적었다. 먹이 섰다.

*

그날 밤 호방이 나를 불렀다. 허 씨와 형수는 부엌에서 죽을 쑤고 있었다.

“오른팔을 지워 주시오.”

그가 소매를 걷었다. 오른팔 바깥쪽에 두 자가 있었다. 형수 왼팔 이름이었다. 사십일 년 동안 형수를 가려 준 두 자였다.

“어른, 여섯 시진이오. 지금 몸으로는 못 버티오.”

“형수가 내 팔을 못 읽소. 오늘 저녁에도 물었소. 도련님 팔에 이게 뭐요, 하고. 내일도 물을 거요. 가려진 사람은 제 이름이 남의 팔에 있는 걸 못 읽는다며. 사십일 년 만에 만난 사람한테 날마다 그 물음을 받을 수는 없소.”

나는 방 목수를 생각했다. 딸이 열두 해 동안 묻던 물음이었다.

“지우면 돌아오지 않소. 지운 건 어른 가슴이 아니오. 가슴은 그대로 비어 있소.”

“알고 있소.”

“그럼 왜 지우시오?”

“자국이 남으면 답할 수 있소. 도련님이 형수를 가렸던 자국이오, 라고.”

나는 바늘 쌈지를 풀었다. 제일 가는 바늘을 골랐다. 등잔 기름을 가득 채웠다. 호방이 목침을 베고 오른팔을 내 무릎 위에 얹었다. 팔이 가벼웠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첫 획을 흩었다. 먹이 사십일 년을 버틴 먹이라 살갗에서 쉬 떨어지지 않았다. 바늘 끝으로 한 올씩 흩어 마른 천에 묻혀 냈다. 호방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한 시진이 지나자 이마에 땀이 맺혔고, 세 시진이 지나자 입술이 하얘졌다. 부엌에서 형수가 죽 사발을 들고 들어와 머리맡에 앉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호방 이마의 땀을 제 소매로 찍어 냈다. 되감는 땀이 박힌 소매였다.

형수는 밤새 머리맡에서 한 번도 졸지 않았다. 사십일 년 전 스물일곱 시동생은 형수 팔을 붙든 채 서른여덟 번을 찔렀다. 그 형수가 이제 시동생 이마를 찍어 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지 않으려고 바늘 끝만 봤다.

등잔 기름을 두 번 부었다. 닭이 울 무렵 마지막 획을 흩었다. 바늘을 내려놓으니 손가락이 굽은 채 펴지지 않았다. 작년 동짓달 초사흘 방 목수 팔을 흩던 새벽에도 그랬다.

호방이 제 팔을 들어 등잔에 비춰 봤다. 두 자 자리에 흰 자국이 남아 있었다. 획 모양은 없고, 살갗이 한 번 헐었다 아문 자리처럼 결이 달랐다.

“남아서 다행이오.”

그가 말했다. 형수가 그 팔을 봤다.

“도련님 팔에 이게 뭐요?”

“형수님을 가렸던 자국이오.”

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아침에도 그녀는 그 대답을 기억했다.

*

동짓달 그믐, 떡전 아들이 새기는 집 앞칸 평상에 앉았다. 봉인은 식년 대조 날 풀렸다. 정월이 오면 나는 한 해 바늘을 못 잡는다. 그 전에 한 사람만 새기기로 했다.

그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여섯 살에 표를 맞아 열다섯에 제 왼팔 이름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종이에 두 자를 적어 내밀었다. 굵고 뭉툭한 글씨였다.

“어머니가 떡 싸면서 하던 말에서 골랐소. 무슨 말인지는 안 알려 주겠소. 선생은 새기면 어차피 알 테니.”

앞칸에 겨울 볕이 창호지를 통해 희고 차게 들었다. 봉인이 붙어 있던 여덟 달 동안 먼지가 앉은 평상을 옥분이가 아침에 걸레로 두 번 훔쳤다. 먹 항아리 셋 가운데 가운데 항아리를 열자 소나무 그을음 냄새가 겨울 공기에 날카롭게 번졌다. 곤장 맞은 허리가 아직 결려서 나는 평상 모서리에 한쪽 궁둥이만 걸치고 앉았다.

나는 가는 바늘에 먹을 찍었다. 바늘을 눕혔다. 반 치를 지켰다. 스무 해 전 이 사람 오른팔에 한 획을 넣은 손이 왼팔에 두 자를 넣었다. 두 자가 다 들어갔을 때 그가 제 팔을 내려다보고 웃었다.

“선생, 이번엔 두 냥 안 받소?”

“떡값에서 까겠소.”

그가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앞칸 창호지 문을 흔들었고, 뒤꼍에서 옥분이가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2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