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5,122자) · 한수겸 · 시월 보름
식년 대조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시월 보름 새벽, 막쇠가 형방청 뒷방 빗장을 풀었다. 그는 밤새 평상에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허리를 펴지 못해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었다.
“동헌 마당으로 가시오. 나리가 곤장부터 셈하신다니.”
옥분이가 먼저 일어나 치마에 묻은 곰팡이 먼지를 털었다. 그녀는 뒷방 문턱을 넘으면서 막쇠를 올려다봤다.
“밤새 거기 앉아 있었소? 도망갈까 봐?”
“누가 들어올까 봐.”
막쇠가 말했다. 옥분이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동헌 마당은 해가 오르기 전부터 차 있었다. 식년 대조 날에는 고을 호주들이 제 집 호적을 맞추러 마당에 모인다. 그런데 그날은 호주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다. 떡전 아들이 받아 적은 이름들이었다. 옥분이가 마당 가장자리를 돌며 치부책에 점을 찍었다. 백예순아홉까지 찍고 나서 그녀가 멈췄다. 마당 문으로 짐꾼 둘이 들어서고 있었다.
“석 냥은 받았소. 입은 안 팔았소.”
짐꾼 하나가 말했다. 그 뒤로 석 객주 줄에 섰던 얼굴이 몇 더 따라 들어왔다. 옥분이가 됫박 대신 치부책으로 그 짐꾼 어깨를 한 대 쳤다. 그러고는 점을 더 찍었다. 막쇠가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제 발로 옥분이 앞으로 걸어왔다. 길 서방이 그 뒤에 섰다. 옥사장이 뒤따랐다.
백여든이 되었다.
*
현감이 대청에 앉았다. 털 토시를 끼고 무릎에 화로를 두었다. 대청 아래 서안에 호방이 호적 궤를 열어 놓고 앉았고, 형방이 그 옆에 섰다. 마당 한가운데 곤장 틀이 놓여 있었다. 석 객주는 대청 섬돌 아래, 고을 객주 자리에 서 있었다. 호구 보증을 서는 자리였다.
형방이 먼저 나섰다.
“새김장이 한가, 첩 없이 바늘을 잡은 죄 곤장 스무 대. 칠월에 적어 둔 것을 오늘 셈하옵니다.”
사령 둘이 나를 곤장 틀로 끌었다. 나는 틀에 엎드리기 전에 대청을 올려다봤다.
“사또, 곤장 전에 한 가지 아뢰겠습니다. 첩 없는 바늘보다 먼저 셈할 것이 있습니다.”
현감이 토시 낀 손을 들었다. 말하라는 뜻이었다.
“스무 해 전 칠월 그믐 밤, 저잣거리 끝 떡전 광에서 여섯 살 아이 오른팔에 표 一을 넣었습니다. 두 냥을 받았습니다. 덜 아프라고 한 획으로 했습니다. 광 문밖에서 등불을 든 사람은 형방청 서리 마진택이었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백여든이 숨을 죽이니 대청 추녀 끝 풍경 소리가 들렸다. 형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스무 해 전 등불을 들던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아이가 저 떡전 사람이오?”
현감이 물었다. 그의 눈이 마당 가장자리에 선 떡전 아들에게 갔다. 스물일곱이 넘었으니 현감 눈에도 그 얼굴이 남았다. 검시 날 두 번 잊었던 얼굴이었다.
“그렇습니다.”
현감이 형방을 봤다가 나를 봤다. 셈하는 얼굴이었다.
“금령 이전 일이오. 넷째 자리 금령은 올해 오월에 섰소. 그러니 곤장은 스무 대 그대로 치고, 이듬해 정월부터 한 해 동안 바늘을 못 잡게 하오. 형방, 치시오.”
곤장이 떨어졌다. 첫 대에 허리 아래가 하얗게 터지는 것 같았다. 둘째 대부터는 셀 수가 없었다. 옥분이가 대신 셌다. 마당 가장자리에서 그녀 목소리가 한 대씩 따라왔다. 열 대쯤에서 떡전 아들이 그녀 옆에 서서 같이 셌다. 스무 대가 끝났을 때 내 입안에 흙이 들어 있었다.
누가 내 곁에 무릎을 꿇었다. 감초와 당귀 냄새가 먼저 왔다. 윤 씨였다. 그녀는 백여든 가운데 하나로 와 있었다. 그녀가 약 보따리를 풀어 찧은 약초를 터진 자리에 얹었다. 차가운 약이 살에 닿자 불붙은 자리가 한 겹 가라앉았다.
“달에 한 번 오라 했더니, 달을 못 기다리고 매를 맞으셨구려.”
“오늘이 보름이오. 달은 찼소.”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려다 말고 약을 한 번 더 눌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스무 해 전 누워 있던 내 곁에서도 이 손은 떨리지 않았을 것이다.
*
호방이 서안에서 일어났다.
“사또, 식년 대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호적에 새로 올릴 사람이 열일곱 있습니다.”
“새로? 난 사람이오?”
“돌아온 사람입니다.”
옥분이와 떡전 아들이 마당 문 쪽으로 손짓했다. 열일곱이 들어왔다. 허 씨가 간난이 손을 잡고 들어왔고, 원 씨 형이 원 씨 내외 사이에 끼어 들어왔고, 흰머리 아낙이 영감 소매를 쥐고 들어왔다. 서문 밖 숯막 영감은 끌려오듯 제일 뒤에 섰다.
현감 눈에는 그 열일곱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했을 것이다. 보는 동안은 보이고 돌아서면 잊는다. 현감은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호방이 서안 위에 비단 표첩을 펴 놓고 첫 줄을 오래 내려다봤다. 사는 곳 칸이 비어 있는 줄이었다. 열일곱 가운데 그 줄의 사람은 없었다. 그는 표첩 첫 줄에 손바닥을 한 번 얹었다가 떼고 붓을 쥐었다.
백여든이 열일곱 앞에 섰다. 옥분이가 짜 둔 대로 스물일곱씩 나뉘어 섰다. 그러고는 제 왼팔 두 자를 댔다.
소리가 한꺼번에 일었다. 백여든의 두 자가 동헌 마당에 겹겹이 쌓였다. 부끄러워 목소리가 기어드는 사람도 있었고, 황 대장처럼 망치 소리로 대는 사람도 있었다. 동헌 추녀 밑 참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황 대장이 제 두 자를 대고 나서 옆 사람한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애들이 노래를 안 부르겠구먼, 백여든이 다 제 이름을 벗었으니.
“셋 넘게 모였소! 금령이오!”
형방이 소리쳤다. 현감이 형방을 돌아봤다.
“옥이 몇 칸이오?”
“여섯 칸이옵니다.”
“백여든을 여섯 칸에 넣소?”
형방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사이 부르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스물일곱이 한 사람 이름을 부르고, 다음 스물일곱이 다음 사람을 불렀다. 부르는 값을 이미 댔으니 소리에 거침이 없었다.
열일곱의 얼굴이 하나씩 마당에 붙었다. 현감이 눈을 비비다 멈췄다. 이제는 돌아서도 얼굴이 남았다.
호방이 붓을 들었다. 한 사람씩 호적에 이름을 적었다. 먹이 섰다. 열일곱 번 섰다. 호방은 붓을 들 때마다 손을 한 번씩 떨었는데, 먹은 한 번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원 씨 형이 제 이름 두 자가 먹으로 서는 것을 보고 동생을 돌아봤다. 원 씨 댁이 먼저 울었다. 원 씨가 형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제 넷째 그릇은 형님 숟가락으로 드시오, 하고.
흰머리 아낙의 영감은 제 이름이 불리는 동안 눈만 끔뻑였다. 스물일곱째 소리가 끝나자 그가 제 소매를 내려다봤다. 소매를 쥔 늙은 손이 있었다. 그가 그 손 주인을 올려다봤다.
“임자, 그 머리가 언제 그렇게 셌소?”
아낙이 소매를 놓지 않고 웃었다. 열 해 동안 날마다 처음 보는 사내 소매를 쥐던 손가락 마디가 굵게 불거져 있었다.
떡전 아들 이름은 이미 초본에 있었다. 호방이 그것을 옮겨 적자 열여덟이 되었다.
“열여덟이오.”
현감이 말했다. 목소리가 밝았다.
“호구가 열여덟 늘었소. 세가 늘고 군역이 느오. 한양에 올릴 숫자가 되오.”
현감은 사람이 돌아와서가 아니라 숫자가 늘어서 웃었다. 나는 곤장 틀에 엎드린 채 그 웃음을 봤다. 알고 내민 숫자였다.
*
허 씨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스물일곱이 그녀 왼팔 두 자를 불렀다. 그녀는 제 이름이 제 안에서 다시는 빠져나가지 않는 것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고개를 숙여 제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봤다.
간난이가 제 저고리 안감을 들추려고 했다. 사흘마다 해 온 일이었다. 허 씨가 그 손을 잡아 막았다.
허 씨가 두 자를 불렀다. 간난이 등에 있는 두 자였다. 아홉 해 전 제가 지어 준 이름이었다.
간난이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열 달 동안 저고리 땀을 보여 주고 어미를 새로 만나 온 아이였다. 오늘 처음으로 어미가 먼저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어미 치마에 얼굴을 묻었다. 허 씨는 아이 등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어깨뼈 사이 움푹한 데, 등 이름이 있는 자리였다.
“미안하다. 열 달 동안 엄마가 너를 사흘마다 처음 봤구나.”
간난이가 치마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는 사흘마다 나를 처음 좋아했어.”
*
떡전 아들이 대청 앞으로 나섰다.
“사또, 이제 저를 적을 수 있으시니 아뢰겠습니다. 사월 열사흘 밤 주막 뒷방에서 곽 노인을 죽인 사람은 석 객주 머슴 두칠입니다. 제가 창호지 그림자로 봤고, 문간에서 한 자 앞으로 마주쳤습니다.”
서기가 붓을 들었다. 떡전 아들의 말이 먹으로 섰다. 검시 날에는 서지 않던 먹이었다.
막례가 앞으로 나와 보자기를 풀었다. 부름집 마루 밑에서 꺼낸 나무 메가 나왔다. 메 머리 한쪽 모서리가 네모지게 닳아 있었고, 거뭇한 얼룩이 결 사이에 배어 있었다. 오작인이 그것을 받아 들고 검시 날 곽 노인 관자놀이에 섰던 네모진 멍 이야기를 했다.
두칠은 마당 뒤편 짐꾼들 사이에 있었다. 석 객주 곁을 떠난 뒤에도 고을을 떠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를 돌아봤다. 그는 떡전 아들 얼굴을 봤다. 이제 모두의 눈에 남는 얼굴이었다. 목덜미에서 땀이 흘렀다. 이번에는 한 줄이 아니었다.
“객주 어른이 시켰소. 곳간 궤 문서를 되찾아 오라고. 노인이 안 내놓아서.”
두칠이 무릎을 꿇었다. 석 객주는 섬돌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집에서 잤소.”
그가 말했다. 검시 날과 같은 말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허 씨가 품에서 검은 비단 책을 꺼냈다. 호방이 그것을 받아 펴서 현감 앞에 올렸다. 여섯 줄 끝마다 석 객주 청, 그리고 받은 돈과 받은 사람. 마 서리, 마 형방. 이백이십 냥. 현감은 형방 글씨를 알았다. 날마다 결재하는 글씨였다.
“형방을 파직하오. 감영에 올려 유배를 청하오. 석가는 옥에 가두오. 살인을 시킨 죄, 관곡을 빼돌린 죄. 석가가 쥔 빚 문서는 다 거두어 불사르오.”
형방이 끌려가다가 곤장 틀 옆에서 멈췄다. 그가 나를 내려다봤다.
“한 가, 나는 스무 해 동안 사람을 하나도 안 죽였소.”
“알고 있소. 스무 해 동안 등불만 드셨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령이 그의 팔을 당겼다.
*
해가 기울 무렵 마당이 비어 갔다. 서문 밖 숯막 영감이 호방 서안 앞에 서 있었다. 제 이름 두 자가 먹으로 선 호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곱 해를 빚도 세도 없이 살았소. 숯 구워서 나 혼자 먹었소. 아무도 나를 안 셌소.”
그가 먹 선 두 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제 다시 셈에 드는구려. 내년 봄에 군역 나오라는 통지가 오겠지.”
호방이 붓을 내려놓고 그를 봤다. 영감은 원망하지 않았다.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숯검정이 밴 손을 두루마기에 닦고 돌아서서 마당을 나갔다. 이제는 돌아서도 그 등이 모두의 눈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