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5,126자) · 한수겸 · 섣달
빈 자리를 문지른다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호방은 섣달 초엿새 새벽에 갔다. 형수가 머리맡에 있었다.
형수가 아침에 새기는 집 쪽문으로 와서 알렸다. 그녀는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사흘 전에 호방이 써서 베개 밑에 넣어 둔 종이라고 했다.
종이를 펴니 두 자가 있었다. 형수 왼팔 이름이었다. 호방 오른팔에서 내가 여섯 시진 동안 흩은 두 자를, 그가 붓으로 다시 적어 두었다. 획이 떨려 있었다. 사십 년 작청 붓을 쥔 손이 마지막으로 쓴 글씨였다. 두 자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이제 못 부르겠소.
형수가 돌아온 뒤로 호방은 아침마다 그 두 자를 불렀다. 식구니까 불러도 된다고 했다. 사십일 년 동안 못 부른 것을 한 달 동안 매일 불렀다. 스물일곱을 넘긴 이름이라 형수는 부르지 않아도 제 이름을 잊지 않았는데, 호방은 그래도 불렀다. 기침 때문에 두 자 사이가 끊어지는 날에도 불렀다.
“내 팔에서 지운 걸 종이에 도로 적어 두셨구려. 어디든 도련님 손으로 적힌 데가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고.”
형수가 말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사십일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산 사람은 남 앞에서 우는 법을 잊는다고 했다.
“이제 부를 사람이 없으니 내 이름은 내가 들고 있겠소. 무겁지 않소. 오래 들어 봐서.”
나는 바늘 쌈지와 놋대야를 들고 관아 뒤 초가로 갔다. 죽은 사람의 참이름은 지우는 것이 법이고, 정월이 오기 전이라 나는 아직 바늘을 잡을 수 있었다.
호방은 아랫목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형수가 새벽에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겨 상투를 다시 틀어 준 뒤였다. 좁은 방에 등잔 기름 냄새와 식은 약 냄새가 남아 있었다. 머리맡에 윤 씨가 보낸 약봉지 셋이 풀리지 않은 채 있었다. 끈이 두 번씩 묶여 있었다.
등을 지웠다. 어미가 지어 준 두 자였다. 왼팔을 지웠다. 스물일곱 이전의 그가 제 손으로 고른 두 자였다. 두 시진이 걸렸다. 가슴은 지울 것이 없었다. 사십일 년 전에 이미 갔다. 오른팔에는 한 달 전 내가 흩은 흰 자국이 있었다.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자국을 마른 천으로 한 번 닦고 그대로 두었다.
형수가 두루마기를 가져와 호방 몸 위에 덮었다. 왼 소매에 되감는 땀이, 오른 소매에 성긴 땀이 있는 두루마기였다.
“이건 도련님이 입고 가셔야지요. 양쪽 소매를 다 꿰맸으니.”
*
호방은 동문 밖 언덕에 묻혔다. 방 목수 봉분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작청 아전들이 상여를 멨다. 새 호방은 아직 오지 않았고, 사또는 호적 결산이 바쁘다며 부의만 보냈다. 대신 저잣거리가 왔다. 식년 대조 날 동헌 마당에 섰던 얼굴들이었다. 백여든을 다 세지는 못했지만 언덕 비탈이 사람으로 덮였다. 섣달 바람이 언덕을 쓸고 올라와, 사람들 무명 두루마기 자락이 한쪽으로 일제히 쏠렸다. 마른 억새가 발밑에서 서걱거렸고, 언 흙에 삽날이 박히는 소리가 쇠를 두드리듯 맑게 울렸다.
흙을 다 덮은 뒤 나는 비단 표첩을 폈다. 산 사람 열아홉 줄 위에는 호방이 먹으로 줄을 그어 두었다. 남은 것은 죽은 일곱이었다.
“죽은 사람은 불러도 안 돌아오오. 그래도 부르겠소. 들은 사람한테 남소.”
내가 먼저 내 왼팔 두 자를 대고 첫째 이름을 불렀다. 열여덟 해 전 표를 맞고 이듬해 겨울에 얼어 죽은 나루터 사공이었다. 스물일곱이 따라 댔다. 그다음 이름, 그다음 이름. 곽가 새김집 줄에 이르렀을 때 막례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곽 노인의 가죽 바늘 쌈지를 호방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한 자리가 빈 쌈지였다.
“어르신 아드님 이름이에요. 어르신은 이걸 한 번도 못 불러 보셨어요.”
막례가 제 왼팔 두 자를 대고 곽 노인 아들의 두 자를 불렀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 뒤로 스물여섯이 따라 불렀다.
방 낭자가 스무 걸음 떨어진 제 아버지 봉분 앞에 서 있다가 이쪽으로 왔다. 그녀는 왼 소매를 걷고 왼팔 두 자를 댔다. 아버지 등과 같은 두 자였다. 그러고는 일곱째 이름을 불렀다. 넉 달 전 이 언덕에서 넷이 아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묻은 사람이었다. 오늘은 모르는 일곱을 백여든이 아는 이름으로 묻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받을 사람이 없으니 일어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언덕 위의 사람들이 일곱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작청 서리가 그 일곱을 호적 사망 칸에 적었다. 먹이 섰다. 스무 해 동안 누구 것인지 몰라 제사도 못 지내던 이름들이었다.
*
섣달 열사흘, 형방이 유배를 떠났다. 감영에서 내려온 처분이었다. 남쪽 바닷가 섬이라고 했다.
압송하는 사령 둘이 그를 데리고 저잣거리를 지나갔다. 목에 칼은 씌우지 않았다. 형방은 소매가 짧아진 무명 두루마기를 입었고, 스무 해 동안 쥐고 다니던 부채가 손에 없었다. 떡전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 사령들이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인절미 한 줄 주시오.”
떡전 아들이 인절미 한 줄을 싸서 내밀었다. 형방이 엽전을 세어 떡판에 올려놓았다. 한 푼 반을 세고 나서 한 푼을 더 올려놓았다.
“스무 해 동안 사 먹으면서 자네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소. 그 한 푼은 오늘 얼굴 본 값이오.”
떡전 아들이 그 엽전을 한참 내려다봤다. 받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오늘도 처음 뵙겠소, 나리. 앞으로는 못 뵙겠구려.”
형방은 떡 보따리를 품에 넣고 돌아섰다. 사령들 사이에서 남문 쪽으로 걸어갔다. 떡전 아들은 그 등이 모퉁이를 돌 때까지 떡판 앞에 서 있었다. 엽전 한 닢은 그날 저녁까지 떡판 모서리에 그대로 있었다.
*
섣달 보름, 떡전 앞에서 옥분이가 떡전 아들 앞에 섰다. 방앗간 쌀가루를 머리에 허옇게 뒤집어쓴 채였다.
“봄에 가슴 하오.”
떡전 아들이 떡을 썰던 칼을 멈췄다.
“누구하고요?”
“떡장수하고 하지 누구하고 하오? 치부책에 얼굴을 여든 장 넘게 그렸소. 그 값은 받아야겠소.”
“그건 옥분이가 좋아서 그린 거 아니오?”
“좋아서 그렸으니 더 비싸오. 싫어서 그린 건 떡 한 개 값이고, 좋아서 그린 건 가슴 한 자리 값이오.”
저잣거리가 그 소리를 들었다. 엿장수 영감이 엿가위를 두 번 쳤다. 황 대장이 대장간 문간에서 망치를 든 채 고개를 내밀었다.
“선생은 정월부터 한 해 바늘을 못 잡소. 그러니 길 서방한테 받겠소. 선생이 옆에서 반 치를 가르치시오. 길 서방 손이 이번엔 반 치를 배우게.”
그녀가 내 쪽을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 서방은 식년 대조 뒤로 먹 사발을 날마다 씻는다고 했다.
“가슴 두 자는 한자로 지어야 하는데, 나는 한자를 잘 모르오. 두 자는 선생이 골라 주시오. 나는 그냥 그이라고 부르겠소.”
“그건 이름이 아니잖소.”
떡전 아들이 말했다. 옥분이가 됫박으로 떡판 모서리를 톡 쳤다.
“스무 해 동안 아무도 당신을 안 불렀소. 내가 날마다 부르면 이름이 되오.”
그날부터 저잣거리 아낙들이 떡전 아들을 그이라고 불렀다. 방앗간 옥분이 그이, 하고. 떡전 아들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 끝이 붉어졌다. 이름 아닌 것도 부르면 이름이 되었다.
*
그날 저녁 윤 씨가 동문 밖에서 왔다. 달에 한 번 오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약봉지 대신 약탕관을 들고 왔다. 곤장 자리가 겨울바람에 다시 쑤신다는 말을 떡전 아들한테 들었다고 했다. 뒷방 화로에 약탕관을 올려놓자 감초와 당귀를 함께 달이는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스무 해 전 가을 안개 속에서 나던 냄새가 이번에는 눈 뜬 내 앞에서 났다.
그녀가 서까래를 올려다봤다. 두 번 묶인 매듭이 거기 있었다.
“저건 내가 맸소?”
“그런 것 같소.”
“한 번 묶으면 풀릴 것 같았나 보오. 나는 그때도 겁이 많았구려.”
우리는 서로의 가슴 두 자를 불렀다. 각자 제 왼팔을 먼저 댔다. 목이 뜨거웠다. 윤 씨가 제 목을 손바닥으로 눌렀다가, 약탕관 뚜껑을 열어 달여진 것을 사발에 따랐다. 나는 그것을 마셨다. 입안이 오그라들게 썼다. 스무 해 전에도 이만큼 썼을 것이다.
평상 위에 내 장부 넷째 권이 있었다. 식년 대조 뒤에 호방이 형방청 궤에서 찾아 돌려준 일곱 권 가운데 하나였다. 윤 씨가 그 책을 끌어다 펴서 십일월 스무날 줄을 찾았다. 여기까지, 라고 적힌 제 글씨가 있었다. 획 끝이 위로 들린 글씨였다.
그녀가 내 벼루에 먹을 조금 갈았다. 붓을 세워 쥐고 그 석 자 옆에 두 자를 더 적었다. 다시, 라고.
“여기까지 하고 떠났으니, 다시 하고 와야 셈이 맞지요.”
그녀가 붓을 내려놓았다. 스무 해 전 먹과 오늘 먹이 한 줄 위에 나란히 있었다. 오늘 먹이 더 검었다.
*
섣달 그믐, 타관 사내 하나가 새기는 집 쪽문을 두드렸다. 서쪽 고을에서 사흘을 걸어왔다고 했다. 짚신이 눈에 젖어 발가락 끝이 검게 얼어 있었고, 어깨에 쌓인 눈이 뒷방 온기에 녹아 무명 저고리에 얼룩으로 번졌다. 그는 앉으라는 말을 두 번 듣고서야 평상 끝에 앉았다. 제 아비가 그 고을에서 표를 맞았다고 했다. 이 고을에서 표 맞은 사람들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선생, 셋이 있어야 한다면서요. 셋은 어디서 구하오?”
나는 화로를 그쪽으로 밀어 주고, 떡전 아들이 가져다 둔 인절미를 한 쪽 내밀었다.
“하나는 댁이오. 둘은 댁을 모르던 사람이오.”
사내가 떡을 든 채 나를 봤다.
“모르던 사람이 왜 불러 주오?”
“불러 보면 알게 되오. 모르던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오. 그 둘은 세상에 제일 많소.”
사내가 떡을 씹었다. 오래 씹었다. 그러고 일어나 절을 하고 나갔다. 서쪽으로 가는 짚신 소리가 눈 밟는 소리와 섞여 멀어졌다.
*
그날 밤 뒷방에서 나는 오른 소매를 걷었다.
넷째 자리를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마흔셋이 되도록 깨끗했다. 스무 해 동안 남의 오른팔에 남의 이름을 넣어 주면서,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내놓고 남을 가려 주지 않았다. 윤 씨가 나를 가렸고, 방 목수가 딸을 가렸고, 호방이 형수를 가렸다. 떡전 어머니는 아들 팔을 붙들었다. 나는 두 냥을 받고 한 획을 넣었다.
엄지로 그 자리를 문질렀다. 생각할 때마다 문지르던 자리였다. 깨끗한 살갗이 엄지 밑에서 따뜻해졌다. 벽 쪽지 맨 아래에 떡전 아들 글씨로 한 줄이 늘어 있었다. 선생 오른팔, 비었음. 그 아래 옥분이 글씨로 또 한 줄. 빈 데는 채우면 됨.
창호지 문에 섣달 그믐 밤 눈가루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스승이 죽던 해에도, 방 목수가 오른팔을 걷고 앉던 날에도 이 소리가 났다. 나는 등잔을 끄지 않고 한참 그 자리를 문질렀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니었다. 아직 아무것도 넣지 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