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5,151자) · 한수겸 · 시월 초사흘
백여든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시월 초사흘 아침, 형방청 사령 넷이 새기는 집 뒷방을 뒤집었다.
구 서리가 앞장섰다. 평상 밑 스승 상자를 끌어내 바늘 쌈지까지 풀어 헤쳤고, 먹 항아리 셋에 차례로 팔을 넣어 휘저었다. 팔을 빼자 소맷자락이 팔꿈치까지 새까매졌다. 벽 쪽지를 한 장씩 떼어 뒷면을 봤다. 쪽지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앞면에 떡값 한 푼 반, 잊지 말 것, 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검은 비단 책이오. 두께가 이만하오.”
구 서리가 손가락 두 마디를 벌려 보였다.
“그런 책은 못 봤소.”
“한 가 장부 넷째 권도 같이 없어졌소. 한 가 장부를 한 가가 안 가져갔으면 누가 가져갔겠소?”
“내 장부를 가져간 건 형방청이오. 형방청에서 없어진 걸 왜 나한테 묻소?”
구 서리가 먹 묻은 소매를 털었다. 먹물이 창호지 문에 튀어 검은 점이 여럿 박혔다. 사령들은 방앗간도 뒤졌다. 옥분이 쌀독에 팔을 넣어 휘저었고, 쌀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왔다. 옥분이는 그 사령들 등에 대고 떡값 청구할 거요, 하고 소리쳤다.
표첩은 석 객주 부엌에 있었다. 허 씨가 맨 끝 솥 아래 아궁이 옆, 재 담는 독 밑에 묻어 두었다. 객주 어른 부엌을 형방청이 뒤질 리 없었다. 설령 뒤져도 그 솥을 닦는 여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허 씨는 날마다 그 독 위에 걸터앉아 콩나물을 다듬었다. 석 객주가 부엌을 지나가다 콩나물 다듬는 여자를 내려다봤지만,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지나갔다. 그 여자 궁둥이 밑에 형방과 제 목을 함께 조를 책이 깔려 있는 줄 그는 몰랐다.
*
그날부터 열흘 동안 저잣거리는 셈을 했다.
표첩에 적힌 산 사람 열아홉 가운데 떡전 아들은 이미 돌아왔다. 호방 형수는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남은 열일곱의 사는 곳을 표첩이 알려 주었다. 원 씨 형은 그릇 가게 헛간에 있었고, 강가 논 임자는 흰머리 아낙이 소매를 쥐고 다니는 그 영감이었다. 서문 밖 숯막에는 영감이 하나 혼자 숯을 굽고 있었다. 나머지는 나루터 짐꾼, 절 밑 나무꾼, 관아 마구간 말똥 치우는 사내, 그리고 허 씨였다.
열일곱에게 스물일곱씩이면 사백쉰아홉 번을 불러야 했다. 사람이 그만큼 있을 리 없었다. 옥분이가 치부책을 펴 놓고 셈을 짰다. 한 사람이 둘씩 셋씩 맡으면 되었다. 부를 때마다 제 왼팔 두 자를 다시 대야 하니, 셋을 맡은 사람은 제 이름을 남 앞에서 세 번 벗어야 했다.
“백여든이면 되오. 백여든이 스물일곱씩 나눠 들면 열일곱이 다 돌아오오. 한 사람이 떡 두 개 반씩 먹는 셈이오.”
옥분이가 말했다. 떡전 아들이 떡판 옆에 서서 줄 선 사람들 이름을 받아 적었다. 이제 그는 제 이름을 사흘이 지나도 잊지 않았다. 부르는 이름, 그러니까 떡전 아주머니 같은 이름만 받았다. 참이름은 시월 보름에 동헌 마당에서 대기로 했다.
동헌에서 대기로 한 것은 방 낭자 머리에서 나왔다. 식년 대조 날에는 사또가 동헌 마당에 나와 호적을 맞춘다. 호구가 늘어나는 것을 사또 눈앞에서 보여 주면, 금령보다 숫자가 먼저 사또 눈에 들어간다.
흰머리 아낙이 줄에 섰다. 그녀는 영감 소매를 쥐고 왔다. 영감은 멍한 눈으로 떡판을 봤다.
“이월에 선생한테 물었소. 나머지 둘은 어디서 구하느냐고. 이제 보니 백여든이구려.”
그녀가 영감 소매를 놓고 제 손으로 영감 손을 잡았다. 영감은 그 손이 누구 손인지 몰랐다. 그래도 빼지 않았다. 아낙은 열 해 동안 날마다 처음 보는 사내 손을 잡아 온 사람이었다.
*
시월 초엿새, 석 객주가 저잣거리 한복판에 상을 폈다.
상 위에 엽전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궤를 통째로 열어 쏟은 돈이었다. 상 앞에 서기가 앉아 장부를 폈고, 두칠 대신 새 머슴이 뒤에 섰다. 석 객주가 상 앞에 서서 사람들을 봤다.
“시월 보름에 집에 있는 사람한테 석 냥이오.”
그 말뿐이었다. 까닭은 대지 않았다. 석 냥은 부름집 값이었다. 사람을 사서 가짜 이름을 대게 하던 값을 이번엔 사람을 사서 입을 닫게 하는 데 썼다.
줄이 생겼다. 우리 줄보다 빨리 생겼다. 흉년이 두 해 이어진 뒤였다. 석 냥이면 겨울 쌀 한 말 반이었다. 떡판 옆에 서 있던 짐꾼 둘이 슬그머니 그 줄로 옮겨 갔다. 옥분이가 됫박을 쥐고 그쪽으로 가려는 것을 떡전 아들이 팔을 잡아 막았다.
“놓으시오. 저 짐꾼 둘은 이월에 내 떡을 외상으로 먹었소. 외상값 받으러 가는 거요.”
“석 냥 받으면 갚겠지요. 그냥 두시오.”
옥분이가 떡전 아들을 노려보다가 됫박을 내렸다. 짐꾼 하나가 줄에 선 채 이쪽을 돌아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석 객주 앞으로 갔다. 상을 사이에 두고 섰다.
“객주 어른, 그 돈은 어디서 났소? 스무 해 전 관가 곡식 서른 섬 판 돈이오?”
석 객주가 나를 봤다. 표정이 없었다.
“내 돈이오.”
“떡전 아들 표값 쉰 냥은 누구 돈이었소?”
그의 눈이 처음으로 조금 좁아졌다. 표첩이 없어진 것을 그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꾸하지 않고 서기한테 다음 사람을 부르라고 턱짓을 했다. 엽전 꾸러미가 상 위에서 짤랑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그날 석 객주 줄에 선 사람이 서른둘이었다. 옥분이가 셌다. 우리 줄에서 빠진 것이 열하나였다.
*
그날 저녁 엿장수 영감이 떡전으로 왔다. 그는 석 객주 상 앞을 지나오면서 엿가위를 한 번도 치지 않았다고 했다.
“석 냥이면 엿이 삼백 가락이오. 나는 엿을 삼백 가락 팔아 봤소. 그 돈하고 이 일은 달리 셈하오.”
그는 떡전 문턱에 걸터앉아 한참 떡전 아들을 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선생, 떡전 아주머니가 왜 해마다 정초에 선생한테 떡을 갖다 드렸는지 아시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떡전 아들이 떡을 썰던 칼을 내려놓았다.
“내가 한 번 물은 적이 있소. 열 해쯤 전이오. 엿 바꾸러 떡전에 갔더니 떡을 싸고 있기에, 그 새김장이한테 또 가느냐고. 아주머니가 그랬소. 이 떡은 우리 애가 찐 거라고. 애는 저를 아무도 모르는데 떡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그 새김장이 입이라도 우리 애 손맛을 알게 해 두겠다고.”
영감이 엿가위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 손이 언젠가 우리 애 이름을 부를 손이라고 했소. 노 선생 살았을 때는 노 선생한테 갔다가, 노 선생 가시고는 선생한테 갔다고. 새긴 손이 불러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오.”
떡전 아들이 떡판 앞에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떡을 썰던 칼끝에 쌀가루가 허옇게 묻어 있었다. 그의 어깨가 한 번 크게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스무 해 동안 선생이 먹은 떡이 내 떡이었구려.”
“스무 해 동안 맛있다고 생각했소. 누가 찐 건지는 몰랐소.”
“어머니는 그걸로 됐다고 하셨을 거요.”
그가 칼을 다시 쥐었다. 떡을 썰었는데 한 줄이 비뚤었다. 그는 그 비뚤어진 떡을 제 입에 넣었다.
*
시월 열나흘, 옥사장이 옥문을 열었다. 호방이 나왔다. 사또가 식년 대조에 호방이 없으면 호적을 맞출 사람이 없다고 정직을 풀었다. 호방은 옥에서 나와 곧장 호적고로 갔다. 구 서리가 가져갔던 열쇠를 사또 영으로 도로 받았다.
나와 떡전 아들이 옥문 앞에서 그를 맞았다. 호방은 옥 칸에서 두 달을 보내는 동안 허리가 더 굽었다. 햇빛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서 있다가 기침을 했다. 마른기침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와 한 번 시작하자 쉬 멎지 않았다. 떡전 아들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어른, 기침이 깊소.”
“옥 짚이 눅어서 그렇소. 호적고 종이 냄새 맡으면 낫소.”
그가 두루마기 소매로 입을 닦았다. 소매 끝 성긴 바느질 줄이 한 올 풀려 있었다.
“형수는 아직이오. 표첩 첫 줄에 사는 곳이 비어 있더이다. 사십일 년 전에 내가 안 적었소. 적으면 찾을까 봐.”
그는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제 손이 막은 길을 제 발로 찾아가야 하는 늙은이 웃음이었다.
“식년 끝나면 찾겠소. 내일은 숫자부터 맞춥시다.”
그날 밤, 구 서리와 막쇠가 새기는 집 쪽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나를 끌어내 방앗간으로 갔고, 방앗간에서 옥분이를 끌어냈다. 형방청 뒷마당 평상 앞에 우리 둘을 꿇어앉혔다.
형방이 평상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새 종이 한 장이 있었다. 표첩 없어진 자리를 메우려고 새로 적은 두 줄이었다. 옥분이 줄, 그리고 내 줄. 내 왼팔 두 자는 구월 스무날 구 서리가 약방 담 밑에서 받아 왔다.
길 서방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바늘함을 들고 있었다.
“길 서방, 한 자씩이오. 한 가 오른팔에 먼저.”
막쇠가 내 오른팔을 붙들어 평상 위에 눕혔다. 스무 해 동안 깨끗했던 넷째 자리가 등잔 불빛 아래 드러났다. 막쇠 손이 내 팔을 누르는 힘이 약했다. 누르는 시늉만 했다.
길 서방이 바늘함을 열었다. 굵은 바늘을 꺼냈다. 먹을 찍었다. 바늘 끝이 내 팔 한 치 위에서 멈췄다.
그가 한참 그대로 있었다. 바늘 끝에 매달린 먹 한 방울이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콧등으로 내려왔다.
“나리, 나는 반 치를 모르는 손이오.”
“알고 있소. 반 치를 몰라도 표는 드오.”
“허 씨 팔에 넣은 게 너무 깊었소. 그 여자는 죽어도 못 지우오. 내 손 때문이오.”
길 서방이 바늘을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먹이 평상 나뭇결에 번졌다.
“안 하겠소. 스무 냥을 받으나 이백 냥을 받으나 안 하겠소.”
형방이 일어났다. 그는 평상 위의 바늘을 집었다. 제 손으로 집었다. 스무 해 동안 형방청에서 바늘을 쥔 적이 없는 손이었다. 그가 바늘 끝을 내 팔 위로 가져왔다.
“새긴 사람은 그 한 자를 평생 기억하오, 나리. 얼굴은 잊고 한 자만. 나는 一을 스무 해 들고 다녔소.”
내가 말했다. 형방의 손이 멈췄다. 그는 스무 해 동안 사람을 하나도 안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등불을 드는 사람이었지 바늘을 쥐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늘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가 바늘을 길 서방 바늘함에 도로 꽂았다.
“내일 동헌 마당에서 곤장부터 셈하오. 한 가 몫 스무 대. 오늘은 뒷방에서 자시오.”
옥분이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나리, 나는 뭘로 셈하오? 떡값이오?”
형방은 대답하지 않고 들어갔다. 막쇠가 우리를 뒷방에 넣고 빗장을 걸었다. 빗장 거는 손이 느렸다. 곰팡이 냄새 나는 어둠 속에서 옥분이가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선생, 내일 백여든이 올까요?”
“열하나가 빠졌소. 백예순아홉이오.”
“그럼 열하나를 어디서 구하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에서 막쇠가 평상에 앉는 소리가 났다. 그는 밤새 거기 앉아 있었다. 이따금 그가 헛기침을 했고, 그때마다 옥분이가 내 어깨에서 이마를 들었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