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5,151자) · 한수겸 · 구월 초이틀
동문 밖 약방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문 밖 약방은 간판이 없었다. 담이 허리께까지밖에 안 오는 초가였고, 싸리 대문이 늘 반쯤 열려 있다고 했다. 마당에 약재를 널어 말리는 멍석이 보여야 약방인 줄 아는 집이었다.
구월 초이틀 아침이라 볕이 좋았다. 멍석 다섯 장에 약재가 펼쳐져 있었다. 누런 감초 조각, 거뭇한 당귀 뿌리, 껍질을 벗긴 도라지, 말린 귤껍질이 멍석마다 따로 널렸다. 볕을 받은 약재에서 단내와 쓴내가 번갈아 올라와 싸리 대문 밖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대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그 냄새였다. 스무 해 전 가을 안개 속에서 머리맡 어디쯤 날마다 나던 냄새가 한 집 마당에서 통째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루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마흔 언저리였다. 무릎 앞에 한지를 네모나게 잘라 쌓아 놓고 약봉지를 접고 있었다. 손이 빨랐다. 한지 한 장에 약재를 한 줌 얹고, 세 번 손이 가면 봉지가 되었다. 봉지 입을 무명끈으로 한 번 묶고, 그 위에 또 한 번 묶었다. 두 번 묶인 봉지가 그녀 옆에 가지런히 쌓여 갔다.
나는 그 손을 오래 봤다. 대문 앞에 선 채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약 지으러 오셨소? 서 계시면 볕에 약재 그림자가 지오. 들어오시든지 가시든지 하시오.”
모르는 얼굴이었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광대뼈가 조금 높았고,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웃지 않아도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얼굴을 보는데 명치 밑이 손바닥으로 눌린 것처럼 답답해졌다.
“속이 답답해서 왔소.”
*
그녀가 나를 마루 끝에 앉혔다. 내 왼손을 끌어다 제 무릎에 올리고 손목에 손가락 셋을 얹었다. 손가락 끝이 약재 가루로 까슬했고, 그 까슬함 밑으로 체온이 전해졌다. 그녀는 눈을 반쯤 감고 한참 맥을 짚었다.
“맥이 급하오. 뭘 보고 놀라셨소? 댁 얼굴은 놀란 사람 얼굴이 아닌데 맥은 놀란 사람 맥이오.”
“오다가 개한테 쫓겼소.”
“개한테 쫓긴 맥은 이러지 않소. 이건 오래 묵은 맥이오.”
그녀가 손을 놓고 일어나 약장 앞으로 갔다. 약장은 벽 한 면을 다 차지했고 서랍이 백 개가 넘었다. 서랍마다 먹으로 약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맨 윗줄 서랍을 열려고 팔을 뻗었다. 오른 소매가 팔꿈치까지 흘러내렸다.
오른팔 바깥쪽에 두 자가 있었다.
넷째 자리였다. 먹빛이 짙고 획이 반듯했다. 스승 손이었다. 바늘을 눕혀 반 치를 지키는 손, 획 끝을 살짝 흩어 살갗에 스미게 하는 손이었다. 나는 그 두 자를 읽으려고 했다.
읽히지 않았다. 눈이 두 자 위에 닿는 순간 미끄러졌다. 물 위에 비친 글씨를 읽으려는 것 같았다. 획은 보이는데 획이 모여 무슨 자가 되는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보았다. 또 미끄러졌다. 세 번째에는 눈이 아파 눈물이 괴었다.
가려진 사람은 제 이름이 남의 팔에 있다는 것을 못 읽는다. 방 낭자가 열두 해 동안 아버지 팔을 못 읽었다. 스무 해 동안 남의 팔에 이름을 넣어 온 내가 남의 팔에서 못 읽는 두 자를 처음 만났다. 못 읽는 까닭은 하나뿐이었다. 그 두 자가 내 것이었다.
그녀가 소매를 끌어내리고 서랍에서 약재를 꺼냈다.
“뭘 그리 보시오? 이건 보지 마시오. 나도 누구 건지 모르는 이름이오.”
“모르는 이름을 넷째 자리에 두고 사시오?”
“스무 해를 두고 살았소. 아버지는 내가 앓아서 누가 새겨 준 거라고 하셨소. 누가 새겨 줬는지는 아버지도 모르셨고. 그런데 나는 앓은 기억이 없소.”
그녀가 약재를 저울에 달았다. 놋저울 접시가 한 번 흔들리다 멎었다. 감초 두 돈, 당귀 세 돈을 달고 나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울을 든 채 잠깐 서 있었다.
“이상하지요. 맥 급한 사람한테 이 둘을 같이 넣는 의원은 드문데, 나는 손이 먼저 가오.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두 약재 이름을 들으면서 숨을 한 번 삼켰다.
*
나는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형방청 뒷방에서 본 넷째 권 여백 글씨를 제 손으로 옮겨 적은 종이였다. 스무 해 동안 남의 글씨를 옮겨 적어 온 손이라, 획 끝이 위로 들리는 버릇까지 따라 적었다. 손이 떨리심. 오늘은 셋만. 죽 반 그릇 드심. 여기까지.
“이 글씨를 한번 봐 주시겠소?”
그녀가 종이를 받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러다 여기까지, 라는 석 자에서 눈이 멈췄다. 그녀는 종이를 무릎에 내려놓고 마루 밑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약방 장부였다. 약을 지어 간 사람 이름과 날짜와 약재를 적는 책이었다. 그녀는 아무 장이나 펴서 제 글씨 옆에 내 종이를 나란히 댔다.
획 끝이 같은 각도로 들려 있었다. 줄 간격도 같았다. 내가 옮겨 적은 글씨가 그녀 장부 글씨의 그림자처럼 겹쳤다.
그녀는 한참 두 글씨를 보다가 장부를 뒤로 넘겼다. 오래된 장부 한 권을 더 꺼냈다. 표지가 누렇게 떴다. 그녀는 그 책을 펴서 한 곳을 가리켰다. 팔월 열엿새 줄 다음이 바로 십일월 스무하루 줄이었다. 그 사이 석 달이 비어 있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들었소. 그해 가을 내가 날마다 북쪽 어느 집으로 갔다고. 아침에 약탕관을 싸 들고 나가서 밤에 들어왔다고. 어디 가느냐 물으면 대답을 안 했다고. 동짓달 들어 발을 끊고는 한 달을 방에서 안 나왔다고. 나는 그 석 달이 하나도 기억에 없소.”
그녀가 나를 봤다. 웃는 것처럼 처진 눈꼬리가 웃지 않았다.
“댁은 북쪽에서 왔소?”
“북쪽 새기는 집에서 왔소.”
“그럼 댁이 아시오? 석 달 동안 내가 왜 거기 있었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혼인 장부의 우묵한 자국을 말하면 그녀는 무엇을 물을까. 그 물음에 나는 답을 몰랐다. 입을 열면 반만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게 될 것 같았다. 무릎 위에서 내 두 손이 서로를 꽉 쥐었다.
“모르오. 알아 오겠소.”
*
싸리 대문이 삐걱 열렸다. 석 객주가 들어왔다. 뒤에 장부를 든 서기 하나가 따랐다. 두칠은 없었다. 추석 뒤로 두칠은 석 객주 곁에서 보이지 않았다.
석 객주는 멍석 사이 길을 밟지 않고 멍석 모서리를 신발 끝으로 밀며 걸어왔다. 널어 둔 당귀가 몇 조각 흙바닥으로 굴렀다. 그는 마루 앞에 서서 나를 봤다. 떡전 땅 앞에서 나를 봤고, 부름집에서도 봤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새김장이가 여기까지 왔소.”
그는 서기한테 턱짓을 했다. 서기가 장부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마루에 펼쳤다. 빚 문서였다. 윤 의원이 약재 외상으로 석 객주에게 쉰 냥을 졌다는 문서였고, 맨 아래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 관인을 알았다. 간난이를 부엌에 묶어 둔 장 서방 빚 문서에 찍힌 것과 모양이 같았다. 인주가 번진 모서리까지 같았다.
“아버지 가신 지 열 해요. 열 해 동안 한 번도 안 받으러 오시더니 오늘 오셨소?”
윤 씨가 말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약봉지를 접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쉰 냥이오. 시월 보름까지.”
“아버지 약방 외상은 내가 다 아오. 객주 집에 약재를 댄 적은 있어도 받아 쓴 적은 없소.”
“관인이 있소.”
석 객주는 그 말만 했다. 까닭을 대지 않았다. 그는 까닭을 댄 적이 없다. 그가 서기한테 문서를 도로 접으라고 손짓하고 나를 한 번 더 봤다.
“시월 보름은 식년 대조요. 관가가 바쁘오. 바쁜 날엔 문서가 잘 넘어가오.”
“그 관인, 누가 찍었소?”
내가 물었다. 석 객주가 돌아서다 멈췄다. 처음으로 그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관가가 찍었소.”
그가 나갔다. 멍석 모서리에서 굴러떨어진 당귀 조각을 신발로 밟고 갔다. 뿌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작게 났다.
윤 씨가 약봉지 접던 손을 그제야 멈췄다. 봉지 입에 감던 무명끈이 그녀 손가락 사이에서 늘어졌다. 그녀는 그 끈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다시 감았다. 한 번 묶고, 또 한 번 묶었다.
“댁이 뭘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댁이 온 날 객주도 왔소. 우연이오?”
“우연이 아닐 거요.”
“그럼 댁은 내 빚이오, 내 약이오?”
나는 대답 대신 그녀가 싸 준 약봉지를 받아 들었다. 봉지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
*
돌아오는 길, 개울가 버드나무 밑에 구 서리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버들잎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해 그의 갓 위로 한두 잎이 떨어져 얹혀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동문 밖은 처음이구려, 한 가. 스무 해 동안 동문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더니.”
“형방이 내 발걸음까지 세오?”
“나리는 세는 걸 좋아하시오. 약방 여자가 누군지도 궁금해하실 거요. 한 가가 그 집 마루에 한 식경을 앉아 있었다고 말씀드리면.”
그는 버들잎 하나를 갓에서 떼어 개울에 던졌다. 잎이 물살을 타고 동문 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 잎을 따라 걷지 않고 제자리에 섰다. 구 서리가 먼저 동문 쪽으로 걸어갔다. 석 객주가 약방에 온 것과 구 서리가 버드나무 밑에 있던 것이 같은 아침이었다.
*
해 질 녘에 새기는 집 뒷방으로 돌아왔다. 떡전 아들이 쪽지를 보고 있다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돌아오지 말라고 적어 둔 쪽지였다.
“돌아왔구려. 쫓겨났소?”
“약을 지어 줬소.”
“약이면 다행이오. 나는 오늘 옥에 떡을 넣고 왔소. 호방 어른이 그 떡을 반 쪽 떼어 옥사장한테 줬다오. 옥사장이 먹고 나더니 어른 칸 짚을 새것으로 갈아 줬소. 떡 반 쪽에 옥사장이 넘어갔으니, 형방이 알면 인절미를 끊을 거요.”
그가 그 말을 하며 웃었는데, 나는 웃지 못했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
나는 약봉지를 평상에 내려놓고 등잔에 불을 붙였다. 뒷방 천장이 낮아서 등잔을 들면 서까래가 코앞에 있었다. 스무 해를 이 방에서 잤다. 서까래를 올려다본 날이 몇 날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한가운데 서까래에 매듭이 하나 매여 있었다. 끈은 삭아서 끊어지고 매듭만 남아 서까래를 감고 있었다. 누워 못 일어나는 사람이 잡고 몸을 일으키라고 천장에 끈을 매다는 집들이 있다. 나는 그 매듭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몰랐다. 스무 해 동안 거기 있었는데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았다.
등잔을 가까이 댔다. 매듭은 두 번 묶여 있었다. 한 번 묶고 그 위에 또 한 번. 스승은 끈을 묶을 때 한 번만 묶었다. 나도 한 번만 묶는다. 바늘 쌈지 끈도, 먹 항아리 덮개 끈도, 스무 해 동안 한 번씩만 묶었다.
떡전 아들이 내 옆에서 목을 빼고 매듭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평상 위 약봉지를 봤다.
“선생, 저 봉지도 두 번 묶였구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을 든 팔이 저려 왔는데 내리지 못했다. 매듭 그림자가 서까래 위에서 흔들렸다. 스무 해 전 누군가 저 끈을 붙잡고 일어나라고 내 손에 쥐여 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