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5,119자) · 한수겸 · 팔월 열이레

팔월 열이레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팔월 열이레 밤, 나는 호적고 열쇠를 허리춤에 차고 관아 뒷담을 돌았다.

스무 해 전 그날로부터 꼭 스무 해가 되는 날이었다. 날을 골라서 간 것은 아니다. 호방이 열쇠를 준 게 열닷새 밤이었고, 열엿새에는 비가 와서 등잔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열이레였다. 날이 저절로 맞아 들어온 것이 나는 반갑지 않았다.

떡전 아들이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나는 말렸다. 이제 그의 얼굴은 모두의 눈에 남는다. 스물일곱이 된 뒤로 그는 어디에 서 있든 들켰다. 예전처럼 아전들 사이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럼 선생이 들키면 누가 빼 오오?”

“호방 어른 열쇠요. 열쇠가 있으니 도둑은 아니오.”

“열쇠가 있는 도둑이 제일 무섭다고 어머니가 그러셨소.”

그는 뒷방 문턱에 앉아 나를 배웅했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그가 제 이름을 제 입으로 댔다. 내가 귀에 대 주기 전이었다. 그는 대고 나서 한참 벽 쪽지를 보다가, 쪽지 맨 아래에 제 손으로 적었다. 사흘째, 안 잊음.

*

호적고는 동헌 뒤 흙담 안쪽에 따로 서 있었다. 불이 나도 번지지 않게 사방을 흙으로 두껍게 바른 창고였다. 문짝은 두꺼운 참나무에 쇠띠를 둘렀고, 자물쇠가 주먹만 했다.

열쇠를 꽂고 돌리자 녹슨 쇠가 이를 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숨을 멈추고 한참 서 있었다. 동헌 쪽에서 개가 두 번 짖다가 그쳤다. 문을 열자 안에 갇혀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오래 묵은 한지와 좀 먹은 종이, 벌레를 막으려고 궤마다 넣어 둔 마른 쑥이 한데 삭은 냄새였고, 그 냄새에 목구멍이 칼칼해져 기침이 날 뻔했다.

등잔에 불을 붙였다. 궤가 벽을 따라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식년마다 한 궤씩, 궤 뚜껑에 해마다 먹으로 적은 표시가 있었다. 호방은 셋째 줄 안쪽이라고 했다. 스무 해 전 해의 궤는 뚜껑 귀퉁이가 쥐에게 갉혀 있었다.

혼인 장부는 얇았다. 이 고을에서 한 해에 혼인하는 집이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등잔을 궤 모서리에 올려놓고 책장을 넘겼다. 칠월이 지나고 팔월이 나왔다. 팔월 초사흘, 초아흐레, 열나흘.

열이레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게 아니었다. 긁혀 있었다. 누가 칼날로 먹을 긁어낸 자리가 한 줄 길이만큼 거칠게 일어나 있었다. 한지 결이 뭉개져 보풀이 섰고, 그 자리만 종이가 얇아져서 등잔 불빛이 비쳐 들었다. 먹 한 점 남지 않았다.

그 줄 끝 여백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식년 대조, 호구에 짝 없는 줄, 긁음. 그 아래 수결이 있었다. 서리 마. 획 끝을 눌러 멈추는 손이었다.

나는 그 수결을 손끝으로 짚었다. 스무 해 전 형방은 서리였다. 떡전 광 문밖에서 등불을 들던 그해에 그는 이 줄도 긁었다. 짐작이 간다던 그의 말이 이 자리에서 나왔다.

*

긁힌 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스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먹은 종이에만 드는 게 아니다. 세게 눌러 쓴 붓은 다음 장에 자국을 남긴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팔월 스무날의 줄들이 적힌 장이었다. 그 장의 열이레 줄과 맞닿는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매끈한 종이 한가운데가 미세하게 우묵했다. 눈으로는 안 보이고 손바닥으로만 느껴지는 우묵함이었다.

등잔을 종이 옆에 바짝 눕혔다. 불빛이 종이를 스치듯 비추자 우묵한 자리에 그림자가 졌다. 획이 떠올랐다. 스무 해 전 누군가 이 장 앞 장에 붓을 꾹 눌러 적은 획이, 이 장에 눌린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왼쪽에 석 자가 있었다. 한수겸, 내 호적 이름이었다. 혼인 장부는 왼쪽이 사내 자리다. 오른쪽에 넉 자가 더 있었다. 동문 밖 약방 윤가 여식. 그 아래 더 작은 자국이 있었다. 혼주 윤 의원, 증인 노 선생.

나는 등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 불꽃이 흔들렸다. 오른팔 바깥쪽을 엄지로 문질렀다. 깨끗한 살갗이었다. 스무 해 동안 생각할 때마다 문지르던 자리였다. 가슴 쪽으로 손이 올라가다 멈췄다.

혼인한 적 없다고 알았다. 마흔셋이 되도록 가슴이 비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알았다. 그 당연함이 한 장의 우묵한 자국 앞에서 무너졌다. 증인 노 선생이라는 자국은 스승 글씨가 아니었다. 호적 서리가 받아 적은 글씨였다. 스승이 그 자리에 섰었다.

감초와 당귀를 함께 달이는 냄새가 코끝에 다시 왔다. 호적고의 쑥 냄새 속에서 그 냄새가 났을 리 없는데 났다.

*

문 쪽에서 불빛이 흔들렸다.

구 서리가 문간에 서 있었다. 등불을 든 막쇠가 그 뒤에 섰다. 구 서리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잣거리에서부터 나를 밟아 온 모양이었다. 추석 뒤로 그는 내 뒤꽁무니를 떨어지지 않았다.

“한 가, 호적고요. 첩도 없는 새김쟁이가 밤에 호적고를 털면 곤장이 아니라 목이오.”

“턴 게 아니오. 열쇠로 열었소.”

“그 열쇠 어디서 났소?”

구 서리가 성큼 들어와 궤 위에 펼쳐진 장부를 봤다. 그러고는 내 손을 봤다.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그의 눈이 열쇠 머리에 새겨진 호적고 표시에서 멈췄다.

“호방 어른 열쇠구먼. 정직된 양반이 열쇠를 안 내놓더니 이리 썼구먼. 막쇠, 묶으시오.”

막쇠가 등불을 내려놓고 새끼줄을 풀었다. 그 손이 내 손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 열쇠는 내 거요.”

호방이 문간에 서 있었다. 두루마기 차림이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숨이 가빴다. 관아 뒤 초가에서 여기까지는 반 리가 안 되는데, 예순여덟 다리로는 먼 길이었다. 나를 보내 놓고 잠을 못 이룬 얼굴이었다.

호방이 들어와 내 손에서 열쇠를 가져갔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스쳤다.

“내가 열었소. 이 사람은 내가 불러서 등불을 들게 했소. 식년 대조 전에 초본을 맞춰 보려고.”

“어른은 정직이오. 정직된 호방이 호적고를 열면 그건 월장이오.”

“알고 있소.”

호방은 열쇠를 구 서리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구 서리가 그것을 받아 쥐고 나와 호방을 번갈아 봤다. 어느 쪽을 묶어야 형방한테 칭찬을 받을지 셈하는 얼굴이었다. 호방이 그 셈을 대신 끝내 주었다.

“새김쟁이를 묶어 가면 형방이 내일 아침에 뭐라 하겠소? 등불 든 놈을 잡고 문 연 놈을 놓쳤다고 하지. 나를 묶으시오. 사십 년 호방을 옥에 넣었다고 하면 형방이 좋아할 거요.”

막쇠가 새끼줄을 든 채 구 서리를 봤다. 구 서리가 턱을 들었다. 막쇠가 호방의 두 손목을 앞으로 모아 묶었다. 묶는 손이 느렸다. 호방 손목이 너무 가늘어서 매듭이 헐거웠다.

“어른.”

내가 불렀다. 호방이 고개를 저었다.

“댁은 할 일이 있소. 나는 옥에서 할 일이 없소. 그러니 내가 가는 게 셈이 맞소.”

그는 묶인 손을 들어 궤 위의 장부를 가리켰다.

“덮어 두시오. 스무 해 동안 아무도 안 본 장이오. 댁 눈에만 보였으면 됐소.”

막쇠가 호방을 데리고 나갔다. 구 서리가 뒤따르다 문간에서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한 가, 오늘은 이걸로 셈하오. 형방 나리가 한 가 몫은 시월에 따로 셈하신다니.”

*

나는 장부를 덮어 궤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등잔을 불어 끄고 호적고를 나왔다. 문은 잠글 수가 없었다. 열쇠는 구 서리가 가져갔다.

관아 앞길로 나오니 옥사 쪽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무 빗장이 걸리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등 뒤에 두고 걸었다. 다리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흙담을 한 손으로 짚으며 걸었다. 담에 바른 흙이 밤이슬에 젖어 손바닥에 차갑게 묻었다.

뒷방에 떡전 아들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부엌에 가서 식은 송편 두 개를 가져와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호방 어른이 옥에 갔소.”

“선생 대신이오?”

“내 대신이오.”

떡전 아들이 송편을 하나 집어 제 입에 넣었다. 씹으면서 한참 벽 쪽지를 봤다. 그러고는 붓을 들어 사흘째, 안 잊음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호방 어른 옥, 떡 넣어 드릴 것.

나는 송편을 쥔 채 앉아 있었다. 입에 넣지 못했다. 동문 밖 약방 윤가 여식이라는 넉 자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문 밖에 약방이 하나 있다는 것은 나도 알았다. 스무 해 동안 한 번도 그 앞을 지나간 적이 없었다. 지나갈 일이 없다고 여겼다.

*

이튿날 아침 떡전 아들과 옥으로 떡을 넣으러 갔다. 옥사장은 떡전 아들 얼굴을 보고 한참 눈을 끔뻑였다. 유월에 옥분이 속전을 내고 간 사내가 이 얼굴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붙잡은 눈이었다.

호방은 옥 칸 구석에 짚을 깔고 앉아 있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아침 볕이 그의 무릎에 가로줄을 여러 개 그었다. 옥 안은 오줌 지린내와 젖은 짚 냄새가 눅눅하게 배어 있었는데, 호방은 그 한가운데서 두루마기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성긴 바느질 줄이 있는 소매였다.

“떡이 옥 밥보다 낫구려. 옥 밥도 작청 밥보다는 낫소. 작청 밥은 형방이 먹는 걸 보면서 먹어야 하니.”

그는 인절미를 한 조각 받아 천천히 씹었다. 나는 창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증인 노 선생이라고 눌려 있었소.”

호방이 씹던 것을 멈췄다.

“그해 팔월에 노 선생이 작청에 왔었소. 그 노인이 작청에 온 건 그때 한 번뿐이오. 제자가 앓아 누웠는데 혼인 장부에 올려 달라고 했소. 신랑이 일어나 앉지도 못하니 신랑 없이 올려 달라고. 나는 그런 법이 없다고 했소. 노인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소.”

“그래서 올렸소?”

“올렸소. 내가 붓을 들었소.”

호방이 남은 떡을 내려놓았다. 그 노인이 무릎 꿇던 작청 마루를 그가 지금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 뒤는 모르오. 약방 딸이 댁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 왜 석 달 만에 떠났는지. 노 선생은 끝내 말하지 않았소. 나도 묻지 않았소. 사십 년 동안 나는 묻지 않는 걸로 호방을 했소.”

떡전 아들이 창살 사이로 떡 보따리를 밀어 넣었다. 호방이 그것을 받아 무릎에 놓고, 매듭을 풀지 않은 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 뒤로 열나흘 동안 나는 날마다 동문까지 갔다. 동문 문루 그늘에 서서 밖으로 난 길을 보다가 돌아왔다. 길은 논둑 사이로 곧게 뻗다가 개울가 버드나무 앞에서 휘었고, 휜 자리 너머로 초가 지붕 몇 채가 낮게 엎드려 있었다. 바람이 그쪽에서 불어오는 날이면 벼 익는 냄새에 섞여 무언가 쌉쌀한 냄새가 실려 왔다. 나는 그 냄새가 어느 지붕에서 나는지 알 것 같았고, 알 것 같아서 발을 떼지 못했다. 호방을 빼 달라고 동헌에 세 번 청을 넣었고, 현감은 세 번 다 식년 대조 뒤에 보자고 했다.

열닷새째 아침, 벽 쪽지에 떡전 아들 글씨로 한 줄이 늘어 있었다. 선생, 오늘은 돌아오지 말 것. 나는 그 쪽지를 한참 보다가 동문을 나섰다.

2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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