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5,203자) · 한수겸 · 팔월 초이틀
넷이 아는 이름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팔월 초이틀 새벽, 방 낭자가 뒤꼍 쪽문을 두드렸다. 두 번 두드리고 멎은 소리였다. 세 번째를 두드릴 힘이 손에 남지 않은 소리라서, 나는 문을 열기 전에 무슨 일인지 알았다.
옥분이와 떡전 아들은 방 목수 집 대문 앞에 먼저 와 있었다. 방 낭자가 방앗간과 떡전을 먼저 돌고 왔다고 했다. 떡전 아들은 시루에 불을 지피다 온 손이라 소매 끝에 쌀가루가 허옇게 묻어 있었다. 옥분이는 머리를 미처 틀어 올리지 못해 한 손으로 뒷머리를 움켜쥐고 서 있었다.
방 목수 집 마당에는 쓰러진 날 켜던 판재가 아직 누워 있었다. 장마를 두 달 맞은 소나무는 결을 따라 검게 떴고, 대패밥 무더기는 젖었다 마르기를 되풀이하다 흙빛이 되었다. 새벽 공기에 나뭇진 냄새는 없고 눅은 곰팡이 냄새만 낮게 깔려 있었다.
방 안에는 등잔 하나가 머리맡에 있었다. 기름이 바닥에 깔려 심지가 반쯤 타들어 갔다. 방 목수는 눈을 뜨고 천장 서까래를 보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서자 눈알만 굴려 하나씩 셌다.
“넷이 다 왔구먼.”
목소리가 마른 대팻밥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방 낭자가 머리맡에 앉아 아버지 손을 잡았고, 옥분이가 그 옆에, 떡전 아들과 나는 발치에 앉았다. 방이 좁아서 넷이 앉으니 무릎이 서로 닿았다.
“선생,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 주시오. 어머니가 대청 끝에서 저녁 먹으라고 부르던 대로.”
그는 사흘 전에 제 등 이름을 또 잊었다. 사흘마다 잊고, 잊으면 딸이 귀에 대고 다시 말해 주었다. 오늘이 그 사흘째 날이었다.
방 낭자가 먼저 불렀다. 제 왼팔 두 자를 대고 아버지 등 두 자를 불렀는데, 둘이 같은 두 자라 한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소리가 났다. 옥분이가 두 번째로 불렀다. 그녀는 입이 거친 사람인데 그날은 목소리를 낮춰 방바닥에 대고 말하듯 불렀다. 나는 세 번째로 불렀다.
떡전 아들 차례가 오자 그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제 등 이름을 또 잊은 얼굴이었다. 부르는 값으로 제 이름을 먼저 대야 하는데 댈 이름이 머리에 없었다. 그의 목젖이 한 번 오르내리고, 무릎 위에 올린 손가락이 쌀가루 묻은 소매를 쥐었다 놓았다.
옥분이가 그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귀에 두 자를 불어넣었다. 떡전 아들이 그 두 자를 대고 방 목수의 두 자를 불렀다.
“고맙소, 방앗간.”
“떡값에서 까겠소.”
방 목수가 웃었다. 배가 아파 웃음이 목에서 멈췄는데, 멈춘 웃음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남았다.
“오냐.”
그가 대답했다. 누구한테 한 대답인지는 모른다. 대청 끝에서 부르던 어머니한테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딸 손을 쥔 채 눈을 감았고, 가슴이 두 번 오르내리다가 세 번째에 올라오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그 뒤로도 한참 탔다.
방 낭자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앉아 그 손이 식어 가는 것을 손바닥으로 셌다. 옥분이가 돌아앉아 제 치맛자락으로 눈을 눌렀다. 떡전 아들은 발치에서 방 목수의 발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으면 저승 가는 길이 차다고 어머니가 그랬다고 했다.
그 사내는 넷이 아는 이름으로 죽었다.
*
죽은 사람의 참이름은 지우는 것이 법이다. 죽으면 살갗이 먹을 놓아서 두 시진이면 된다.
해가 오르자 나는 바늘 쌈지와 놋대야를 들고 다시 왔다. 방 낭자가 아버지 저고리를 벗겼다. 여윈 몸이라 갈비뼈가 창호지 문살처럼 드러났고, 살갗은 벌써 밀랍처럼 굳어 서늘했다. 방 안에 향 대신 쑥을 태웠다. 쑥 연기가 등잔 불빛을 흐리게 가리면서 천장으로 올라갔다.
왼팔부터 지웠다. 열다섯의 방 목수가 제가 고른 두 자였다. 바늘을 눕혀 획을 흩으면 먹이 살갗에서 스르르 풀려 마른 천에 묻어 나왔다. 산 사람 팔은 여섯 시진 버티는데 죽은 사람 팔은 버티지 않는다. 가슴은 죽은 아내가 지어 준 두 자였다. 그것도 흩었다.
“등은 어떻게 합니까?”
방 낭자가 물었다. 나는 아버지 몸을 그녀와 함께 모로 눕혔다.
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운 자국도 없었다. 열두 해 전 오른팔에 딸 이름을 받던 날 이 등은 새긴 적 없는 등처럼 매끈해졌다. 나는 마른 천을 대야 물에 적셔 그 등을 한 번 닦았다. 지울 것이 없는 자리를 닦는 손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방 낭자가 아버지 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어깨뼈 사이 움푹한 데서 손이 멈췄다.
“여기였어요?”
“거기였소.”
“이름은 이제 어디 남습니까?”
“넷한테 남소. 낭자 왼팔에 하나 더.”
그녀가 제 왼 소매를 걷어 두 자를 봤다. 지난달에 넣은 먹이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져, 이제 살갗 밑에서 가라앉은 먹빛이 되어 있었다. 오른팔에는 여덟 달 전 내가 흩은 자국이 흰 줄로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은 죽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자국이 남으면 그때는 답할 수 있다던 사내였다.
*
장례 날 아침, 관아 앞 담벼락에 새 방이 붙었다. 구 서리가 풀비를 들고 서 있다가 나를 보고 턱으로 종이를 가리켰다.
금령 둘째 조목에 한 줄이 붙어 있었다. 모여 부르는 셋을 셀 때 표 맞은 자도 한 사람으로 센다. 형방 글씨였다. 획 끝을 꾹 눌러 멈추는 손이라 먹이 종이 뒤로 배어 나왔다. 그 아래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장지에서도 곡하는 것 말고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자는 옥에 가둔다.
“사또께서 윤허하셨소. 한 가 셈은 이제 안 통하오.”
구 서리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떡전 아들이 내 옆에서 그 종이를 올려다보다가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드디어 나도 사람으로 쳐 주는구려. 이렇게 쳐 줄 줄은 몰랐소.”
상여는 동문 밖 언덕으로 나갔다. 멘 사람은 여섯이었고 둘은 대장간 풀무꾼이었다. 황 대장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장간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상여가 지나갈 때 안에서 망치 소리가 멎었다.
나는 상여 뒤를 따르다 대장간 문 앞에서 한 걸음 늦췄다. 화덕 불빛이 문턱까지 붉게 번졌고, 달군 쇠를 물에 담근 뒤라 쇳내 섞인 김이 문밖으로 밀려 나왔다. 황 대장이 모루 앞에 망치를 든 채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망치를 내려놓지 않았다.
“목수가 내 대장간 문짝을 짜 줬소. 저 문이오. 스무 해 전에.”
“나오시지 그랬소.”
“가면 불러야 하잖소. 부르려면 내 이름을 대야 하고. 선생도 알잖소, 내 이름.”
그가 제 왼팔을 옷 위로 쥐었다. 봄날 꽃잎이 물에 떠가는 모양이라는 그 두 자는 이제 저잣거리 아이들이 노래로 부른다. 쉰 먹은 대장장이는 그 노래가 들리면 대장간 문을 반만 열었다.
“추석에 가겠소. 식구를 다 데리고. 그때는 혼자 부끄럽지 않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망치를 들었고, 내가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모루 위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상여 요령 소리와 박자가 맞지 않았다.
언덕에는 저잣거리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짚신 장수와 그 딸, 두부 집 내외, 엿장수 영감, 동문 안 그릇 가게 원 씨 내외가 보였다. 서른 명이 넘었다. 목수 한 사람 묻는 자리에 이만큼 올 줄은 몰랐다. 그 가운데 절반은 방 목수가 대문이나 궤짝을 짜 준 집이었다.
형방이 언덕 아래 느티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구 서리와 막쇠가 양옆에 섰다. 형방은 부채를 부치지 않고 접은 채 손바닥에 탁탁 치고 있었다.
관이 구덩이에 내려갔다. 방 낭자가 보자기를 풀어 한지 한 장을 꺼냈다. 열째 장이었다. 스무 살, 아버지가 물으셨다, 내가 대답했다. 그녀는 그 한 장을 관 뚜껑 위에 얹었다. 아홉 장은 도로 보자기에 쌌다.
“아홉 장은 제가 물은 거고, 이건 아버지가 물으신 거예요. 아버지 거니까 가져가셔야지요.”
흙이 한 삽 떨어지자 종이가 흙 밑으로 들어갔다. 마른 흙이 한지에 떨어지는 소리가 빗방울처럼 가볍게 났다.
*
흙을 다 덮고 봉분을 두드릴 때였다. 원 씨가 삽을 내려놓고 내 앞으로 왔다. 쉰넷의 사내가 얼굴이 벌겠다.
“선생, 그 떡장수 이름을 나도 부르겠소.”
형방의 부채가 손바닥에서 멈췄다. 원 씨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 자리 사람들이 다 알았다. 언덕 위에는 서른이 넘게 있었다. 셋을 세는 법으로 치면 몇 번을 옥에 가도 모자랐다.
“원 씨, 방을 봤소?”
“봤소. 우리 형님도 선생네가 불러 줘서 넷째 그릇에 밥을 담게 됐소. 나는 부를 때 옆에 서 있기만 했지. 이번엔 내 입으로 하겠소.”
원 씨 댁이 그 옆에 섰다. 그녀는 남편 소매를 한 번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놓은 손으로 제 왼 소매를 쥐었다.
형방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나왔다. 걸음이 느렸다. 언덕을 반쯤 올라와 봉분 앞에서 멈추고, 원 씨 내외와 나와 떡전 아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넷이오. 입을 여는 순간 넷이 다 옥이오. 장지에서 사람을 묶는 건 나도 싫소. 상주 앞이오. 그러니 그냥 내려가시오.”
원 씨가 형방을 봤다. 그러고는 제 왼팔 두 자를 댔다. 크게 댔다. 언덕 아래 느티나무 잎까지 닿는 소리였다. 제 참이름을 남 앞에서 대는 일은 옷을 벗는 것만큼 부끄럽다고 이 고을 사람들은 여긴다. 원 씨는 서른 명 앞에서 그것을 벗었다.
나는 떡전 아들의 두 자를 원 씨 귀에 대 주었다. 원 씨가 불렀다. 원 씨 댁이 제 두 자를 대고 불렀다. 그녀는 대는 동안 눈을 감았고, 부르고 나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열셋이 되었다.
“구 서리, 적으시오.”
형방이 말했다. 구 서리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원 씨 내외의 두 자를 받아 적었다. 붓을 쥔 손이 빨랐다. 형방은 우리를 묶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봉분을 한 바퀴 돌아 방 낭자 앞에 섰다.
“목수 딸, 부친 일은 안됐소. 목수가 짜 준 형방청 서안을 나는 스무 해 썼소. 한 번도 삐걱거린 적이 없소.”
방 낭자가 고개를 숙였다. 형방은 그 인사를 받고 돌아서서 언덕을 내려갔다. 막쇠가 따라가다 한 번 돌아봤는데, 떡전 아들 쪽을 오래 봤다. 목소리를 아는 얼굴이었다.
*
내려오는 길에 옥분이가 치부책을 펴서 떡전 아들 얼굴 그림 옆에 열셋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원 씨 내외 옥 갈 뻔함.
“스물일곱까지 열넷 남았소.”
떡전 아들이 말했다. 그는 봉분 쪽을 한 번 돌아봤다. 흙이 아직 붉었다.
“목수 어른은 넷이 아는 이름으로 가셨소. 나는 열셋이 아는데도 사흘이면 내 이름을 모르오. 선생, 그 어른이 나보다 부자요.”
방 낭자가 앞서 걷다가 멈췄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아저씨, 아버지는 오늘 제 이름으로 대답하셨어요. 오냐, 하고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부자예요. 아저씨도 곧 그렇게 되세요.”
떡전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소매에 묻은 쌀가루를 털지 않은 채 언덕을 내려갔다. 저녁 해가 그 등을 비췄고, 허연 소매 끝이 걸음마다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