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5,172자) · 한수겸 · 칠월 그믐

석 달 다른 손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방 낭자의 동무들은 한 사람씩 왔다.

첫째는 칠월 열이틀에 왔다. 짚신 장수 딸이었다. 방 낭자와 동갑이고 눈이 컸다. 그녀는 뒤꼍 쪽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들어왔는데, 들어와서는 평상에 앉지 않고 벽 쪽지부터 읽었다. 쪽지에 적힌 여덟 이름을 소리 없이 입술로 따라 읽었다.

떡전 아들이 뒷방에 있었다. 그날은 떡을 일찍 다 팔아서 빈 광주리를 들고 와 있었다. 짚신 장수 딸은 그를 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듯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가 떡 사시오 하는 그분이세요? 목소리는 알아요. 얼굴은 처음이에요.”

“오늘도 처음 뵙겠소.”

떡전 아들이 말했다. 짚신 장수 딸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셋이 모이면 옥이다. 나와 짚신 장수 딸, 그리고 떡전 아들. 몸은 셋이었다. 그런데 방 낭자가 미리 와서 한 말이 있었다. 금령의 셋은 사람 셋이고, 관가가 세는 사람은 호적에 오른 사람이라고. 떡전 아들은 호적에 없으니 관가 셈으로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 방에는 둘이 있을 뿐이라고.

떡전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서 쓸모가 있는 날이 다 오는구려. 형방한테 고맙다고 해야겠소.”

내가 먼저 내 왼팔을 대고 떡전 아들을 불렀다. 짚신 장수 딸이 제 왼팔 두 자를 댔다. 열다섯에 제가 고른 두 자였다. 대고 나서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그리고 떡전 아들의 두 자를 불렀다.

아홉이 되었다. 여덟에서 옅어졌던 목소리가 다시 아홉으로 돌아왔다. 곽 노인이 빠진 자리를 짚신 장수 딸이 메웠다. 떡전 아들은 그 셈을 듣고 한참 창호지 문 쪽을 보고 있었다.

둘째는 나흘 뒤에 왔다. 우물가 두부 집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소매 속에 두부 한 모를 싸 들고 와서 평상에 내려놓았다. 떡전 아들 몫이라고 했다. 부르는 값을 두부로 치르겠다고 했다. 떡전 아들이 그 두부를 받아 들고 한참 봤다.

“이름을 불러 주면서 두부까지 주는 사람은 처음이오. 이러면 셈이 안 맞소.”

그녀가 제 왼팔을 대고 불렀다. 열이 되었다.

*

그 주에 방 목수가 떡전 아들을 불러 달라고 했다. 방 낭자가 동문 밖 약방에 약을 지으러 간 낮이었다. 나와 떡전 아들이 머리맡에 앉았다. 방 목수는 이제 벽에 기대지도 못했다.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떡전 아들을 봤다.

“떡장수 양반, 내 어릴 적 이름을 아는 사람이 셋이오. 선생, 딸, 방앗간 옥분이. 내가 가면 셋이 남소. 넷이면 좋겠소.”

떡전 아들이 나를 봤다. 그에게는 댈 왼팔이 없었다. 가진 것은 등 하나였고, 그 등 이름도 사흘마다 잊었다. 나는 그의 귀에 그의 등 두 자를 다시 말해 주었다. 사흘 전에도 말해 준 두 자였다. 그리고 방 목수의 등 두 자를 말해 주었다.

떡전 아들이 방 목수 앞에서 제 등 이름을 댔다. 스무 해 동안 그 이름은 어머니 입에만 있었고, 여덟 달 전부터는 남들 입에 있었다. 제 입에 올린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두 자를 대고 한 번 멈췄다. 목젖이 크게 오르내렸다. 그러고 방 목수의 두 자를 불렀다.

방 목수가 웃었다. 배가 아파 웃음이 반밖에 안 나왔다.

“넷이구먼. 어머니가 대청에서 부르던 이름을 이제 넷이 아오.”

방 안에는 둘이 있었다. 관가 셈으로 그랬다. 나는 그 셈이 우스웠고, 웃을 수가 없었다.

*

칠월 그믐, 구 서리가 뒤꼍 쪽문을 두드렸다. 형방이 형방청으로 부른다고 했다.

형방청 뒷방은 낮에도 어두웠다. 창이 북쪽으로 하나뿐이라 볕이 들지 않았고, 사방 벽을 궤가 막고 있었다. 궤마다 자물쇠가 달렸고 자물쇠마다 녹이 슬었다. 여름 습기가 궤 틈으로 배어들어 방 안에 곰팡이 냄새가 눅눅하게 깔렸다. 형방은 그 가운데 서안을 놓고 앉아 있었다. 서안 위에 책 일곱 권이 쌓여 있었다.

내 장부였다. 동짓달 열흘에 형방청이 가져간 일곱 권이었다. 표지 귀퉁이가 닳은 모양까지 나는 알았다. 스무 해를 넘긴 책이라 셋째 권은 실로 두 번 다시 묶었다.

“앉으시오.”

형방이 넷째 권을 펴서 내 앞으로 돌려놓았다. 스무 해 전 해의 책이었다.

“칠월 그믐 줄을 찾아보시오.”

나는 찾지 않았다. 거기 무엇이 없는지 알았다. 그날 광에서 나는 여섯 살 아이 오른팔에 一을 넣고 두 냥을 받았다. 그 줄은 장부에 없다. 나는 그 한 획을 적지 않았다.

“없구려. 알고 있소. 그 다음 장을 보시오. 팔월이오.”

형방이 손가락으로 한 장을 넘겼다. 팔월 열이레부터 줄이 달라져 있었다.

글씨가 달랐다. 내 글씨는 획 끝을 눌러 멈춘다. 그 줄들의 글씨는 획 끝이 위로 조금 들려 올라갔다. 붓을 세워 쓰는 손이었다. 가늘고 곧았다. 줄 간격도 나보다 좁았다. 한 장에 내가 열 줄을 쓰면 그 손은 열두 줄을 썼다.

나는 줄을 셌다. 팔월 열이레부터 십일월 스무날까지. 스물아홉 줄이었다. 날짜, 사는 곳, 자리, 두 자. 스물아홉 사람의 왼팔과 가슴이었다. 나는 그 스물아홉을 다 기억했다. 바늘 잡은 손은 제가 새긴 것을 잊지 않는다. 동문 안 두부 집 내외의 가슴, 서문 밖 대장장이 조카의 왼팔. 하나하나 내 손이 넣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붓을 든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그해 가을 한 가가 앓았다고 들었소.”

형방이 말했다.

“팔월 열이레에 쓰러져서 석 달을 누웠다고. 누워서도 바늘은 잡았고, 받아 적는 건 다른 손이 했소. 노 선생 글씨는 아니오. 노 선생 글씨는 내가 아오. 표첩 첫 줄을 거절하던 문서에 그 노인 수결이 있소.”

나는 그해 가을을 떠올렸다. 여름 끝에 열이 올랐고, 가을 내내 누웠다가 일어났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그 석 달은 안개였다. 누가 죽을 끓였는지, 누가 등잔을 갈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스승이 해 주었겠거니 하고 스무 해를 살았다.

열째 줄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줄과 줄 사이 여백에 붓끝으로만 적은 글씨였다. 「손이 떨리심. 오늘은 셋만.」 그 아래 이레 뒤 여백에 또 있었다. 「죽 반 그릇 드심.」

그리고 십일월 스무날 마지막 줄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여기까지.」 그 글씨 끝이 위로 들려 있었다.

나는 그 글씨를 손끝으로 짚었다. 스무 해 된 먹이었다. 먹은 종이에 가라앉아 결 사이로 번져 있었고, 손끝에 닿는 것은 종이의 거친 결뿐이었다. 그런데 손끝이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지 아시오?”

형방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 안쪽이 마른 종이처럼 붙어서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서안 모서리를 쥔 내 손가락 끝이 하얘져 있었다. 형방은 그 손을 봤고,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곰팡이 냄새 속에서 그가 부채를 한 번 부치는 소리만 났다.

“나는 짐작이 가오.”

형방이 넷째 권을 덮었다. 덮은 표지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한 가, 그 사람이 알고 싶으면 떡전에서 손 떼시오. 여덟에서 멈추시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찾아 드리겠소. 이 고을 종이는 다 내 손을 거치오.”

“떡전은 여덟이 아니오.”

형방의 손바닥이 표지 위에서 멈췄다.

“동무들이 한 사람씩 온다지. 구 서리가 적어 왔소. 짚신 장수 딸, 두부 집 막내. 둘이 모인 건 금령에 안 걸리오. 표 맞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 세면 그렇소. 목수 딸 머리에서 나온 셈이겠지.”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장부 일곱 권을 한 권씩 도로 궤에 넣었다. 궤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녹슨 자물쇠가 끼익 소리를 냈다.

“금령의 셋에 표 맞은 사람을 넣으라는 말을 사또께 올리겠소. 법은 고치면 되오. 한 가는 열하나를 채우기 전에 옥에 갈 거요.”

“그럼 그 전에 채우겠소.”

형방이 나를 봤다. 스무 해 전 광 문밖에서 등불을 들고 있던 눈이었다. 나는 그 눈 앞에서 처음으로 먼저 일어섰다.

문을 나서려는데 형방이 등 뒤에서 말했다.

“한 가, 하나만 더 말하겠소. 그 손은 십일월 스무날에 여기까지, 하고 적고 멈췄소. 한 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게 언제요?”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동짓달 초였다. 첫눈이 온 날 마당에 나가 섰던 것을 기억했다.

“그 손은 한 가가 일어나기 전에 떠났소. 석 달을 곁에 있다가, 일어나는 얼굴은 안 보고 갔소. 왜 그랬을지 궁금하지 않소? 나는 스무 해 동안 궁금했소. 그 장부를 볼 때마다.”

나는 문설주를 짚었다. 문설주가 여름 습기에 눅어 손바닥에 끈적하게 붙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물으면 그가 대답할 테고, 대답을 들으면 나는 떡전에서 손을 뗄지도 몰랐다.

*

셋째 동무는 그날 해 질 녘에 왔다. 주막 부엌에서 일하는 아이였는데, 막례가 데려왔다. 막례는 쪽문 밖에 서서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면 셋이 된다.

아이가 제 왼팔을 대고 떡전 아들을 불렀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끝까지 불렀다.

열하나가 되었다.

막례가 쪽문 밖에서 문틈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나오자 그녀는 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품에서 곽 노인의 바늘 쌈지를 꺼내 여밈끈을 만지작거렸다.

“어르신이 살아 계셨으면 열둘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셈은 제가 이어서 할게요. 어르신이 하시던 대로 한 사람씩요.”

그녀는 아이 손을 잡고 남쪽 골목으로 돌아갔다. 해가 넘어가 골목 끝이 붉었고, 두 사람 그림자가 흙길 위로 길게 늘어졌다가 모퉁이에서 꺾였다.

떡전 아들이 벽 쪽지에 세 이름을 적었다. 굵고 뭉툭한 글씨였다. 짚신 장수 딸, 두부 막내, 주막 아이. 그 아래에 나는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붓을 멈췄다. 적을 이름이 없었다. 여기까지, 라고 적은 손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

그날 밤 뒷방에서 나는 저고리 앞섶을 풀었다.

가슴 자리를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등잔 불빛에 살갗이 누렇게 떴고, 갈비뼈 사이로 그림자가 얕게 졌다. 지운 자국도 없었다. 마흔셋이 되도록 혼인한 적 없다고 알았다. 가슴은 비어 있는 게 당연했다.

나는 손바닥을 그 자리에 얹었다. 스무 해 동안 남의 가슴에 짝 이름을 새기면서 한 번도 제 가슴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손바닥 밑에서 심장이 뛰었다. 비어 있는 자리 밑에서 그것은 여느 때처럼 뛰었다. 「손이 떨리심. 오늘은 셋만.」 그 글씨가 떠올랐다. 누군가 내 손이 떨리는 것을 스무 해 전에 봤다. 그리고 적었다.

그해 가을의 안개 속에서 하나가 떠올랐다. 냄새였다. 감초와 당귀를 함께 달이는 달큰하고 쌉쌀한 냄새가, 누워 있는 내 머리맡 어디쯤에서 날마다 났다. 스승은 약을 달일 줄 몰랐다. 나는 그 냄새를 스무 해 동안 잊고 살았다. 잊은 줄도 몰랐다.

나는 손바닥을 가슴에서 떼지 않고 등잔을 불어 껐다. 어둠 속에서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2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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