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200자) · 한수겸 · 유월 초이레

아버지 이름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유월 들어 장맛비가 사흘 걸러 한 번씩 왔다. 방 목수 집 마당에는 켜다 만 소나무 판재가 비를 맞고 누워 있었다. 쓰러진 날 대패질하던 판재였다. 아무도 치우지 않아서 결을 따라 검은 물이 들었고, 비가 그친 날이면 젖은 나무 냄새가 마당 가득 올라와 방 안까지 들어찼다.

방 목수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한 달 사이 얼굴이 반으로 줄었다.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의원 셋이 와서 셋이 다르게 말하고 갔다. 하나는 체했다 했고, 하나는 속에 멍울이 섰다 했으며, 하나는 나이가 그렇다 했다. 셋이 다르게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그는 사흘에 한 끼를 겨우 넘겼다.

떡전 아들이 닷새마다 흰무리를 쪄 왔다.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떡이었다. 방 목수는 그 떡을 반 쪽씩 먹었다. 떡전 아들이 누구인지 그는 알았다. 정월 대보름에 떡전에서 그를 불렀으니 그의 얼굴은 방 목수 눈에 남아 있었다.

“떡장수 양반, 오늘 떡은 좀 달구먼.”

“옥분이가 쌀을 좋은 걸로 줬소. 값은 안 깎아 줬소.”

방 목수가 웃으려다 배를 움켜쥐었다. 웃음이 신음이 되어 나왔다.

떡전 아들은 그 옆에 앉아 떡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씩 떼어 방 목수 입에 넣어 주었다. 제 어머니가 마지막 겨울에 그렇게 먹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작년 섣달에 갔고, 가기 전 한 달을 떡을 이렇게 떼어 먹였다고 했다.

“어머니는 떡을 받아먹으면서도 떡값을 물으셨소. 떡장수 어미가 떡을 공짜로 먹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그래서 받았소?”

“한 푼씩 받았소. 받아서 어머니 베개 밑에 도로 넣었소. 가시고 나서 베개를 뜯으니 한 푼짜리가 서른 닢 나왔소.”

방 목수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꼬리로 물기가 번졌다. 떡전 아들은 모르는 척하고 떡을 한 조각 더 떼었다.

*

유월 초이레 저녁, 방 낭자가 새기는 집 뒤꼍으로 왔다. 문을 닫자마자 평상에 앉아 오른 소매를 걷었다.

“선생님, 여기에 아버지 이름을 새겨 주세요.”

나는 그 팔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흰 팔이었다. 등 말고는 이 여자한테 참이름이 없다. 왼팔은 가려져 있던 열다섯에 받지 못했고, 가슴은 아직이다.

“그건 안 되오.”

“압니다. 금령이 내렸지요. 곤장 여든이요. 저도 맞고 선생님도 맞겠지요. 그래도 해 주세요.”

“금령 때문만이 아니오.”

나는 평상 끝에 앉았다. 방 낭자가 걷은 소매를 내리지 않고 나를 봤다.

“낭자한테는 이름이 하나뿐이오. 넷째 자리에 새기면 셋 가운데 하나가 가는데, 낭자는 셋이 아니라 하나요. 그 하나가 가오. 가면 낭자 어린 날이 다 가오. 아버님이 오른팔을 여섯 시진 지워서 되찾아 준 이름이오. 그걸 도로 아버님한테 주면, 아버님은 누워서 딸 이름을 또 잃소.”

“아버지가 저한테 한 걸 제가 아버지한테 하는 겁니다. 아버지는 등 하나를 팔아서 저를 살렸어요. 저도 하나를 팔겠다는 거예요.”

“아버님이 열두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낭자가 제일 잘 아오. 해마다 딸이 묻는 걸 듣고, 해마다 대답하고, 다음 날 딸이 또 묻는 걸 들었소. 그 열두 해를 이번엔 아버님이 누워서 보내라는 거요?”

방 낭자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걷은 소매를 움켜쥐었다. 소매 끝이 그 손안에서 구겨졌다.

“그럼 저는 뭘 합니까? 누워 계신 아버지 앞에서 떡만 떼어 드립니까?”

나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아버님 등 이름을 내가 아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열두 해 전 새벽 이 평상에서 아버님 오른팔에 낭자 이름을 새겼소. 그때 아버님 등이 갔소. 바늘 잡은 손은 제가 새긴 것 곁의 일을 잊지 않소. 나는 아버님이 잃은 그 두 자를 열두 해 동안 알았소. 한 번 말해 드렸는데 이튿날 도로 물으시기에, 그 뒤로는 안 했소.”

“그걸 부르면 아버지가 나으십니까?”

“안 낫소. 가려 주는 게 아니오. 부르는 거요. 아버님이 어릴 적에 누구였는지, 듣는 사람들 머리에 도로 붙는 거요. 아버님도 사흘은 그 이름을 제 것으로 아실 거요.”

방 낭자가 소매를 내렸다. 천천히 내렸다. 그녀는 소매 끝을 손바닥으로 두 번 폈다.

“셋이 불러야 하지요? 금령이 셋이라던데요.”

“셋이 모이면 옥이오.”

“선생님이 하나, 제가 하나.”

그녀가 문밖을 봤다. 방앗간 쪽이었다.

*

옥분이는 두말하지 않았다.

“목수 어른이 누워 계신다는데 방앗간 문 닫는 게 대수요? 셋이 옥이면 넷째로 떡장수를 데려가면 넷이 옥이오. 옥에 가면 떡은 누가 대오?”

“떡장수는 안 데려가오.”

“알았소. 그 양반 떡은 굶지 말아야지.”

유월 초여드레 밤, 방 목수 집에 셋이 모였다. 떡전 아들은 대문 밖 골목 어귀에 서서 망을 보기로 했다. 그는 저잣거리 누구 눈에도 남지 않으니 망보기엔 제일이라고 제가 우겼다.

방 안에 등잔 하나를 켰다. 방 목수는 벽에 기대어 반쯤 앉아 있었다. 등잔 불빛에 광대뼈 그림자가 깊게 팼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여름밤이라 창호지 문을 반쯤 열었는데, 열린 틈으로 마당의 젖은 판재 냄새가 밀려 들어와 등잔 기름 냄새를 덮었다.

내가 먼저 내 왼팔 두 자를 댔다. 그리고 방 목수의 등 이름을 불렀다. 열두 해 만에 그 두 자가 이 사람 앞에서 소리가 되었다.

방 목수가 눈을 떴다.

방 낭자가 제 등 두 자를 댔다. 아버지 앞에서 제 등을 대는 일이라 목소리가 작았다. 그녀가 아버지의 두 자를 불렀다. 처음 불러 보는 아버지 이름이었다. 옥분이가 제 왼팔을 대고 뒤따라 불렀다. 옥분이 목소리는 떡전에서 떡값을 깎을 때보다 낮고 조용했다.

방 목수가 한참 입을 달싹였다. 그러다 그 두 자를 제 입으로 한 번 말했다.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불렀소.”

그의 눈이 방 천장 어딘가를 봤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까래 그을음뿐이었다.

“저녁 먹으라고. 대청마루 끝에 서서, 마당에서 흙장난하는 나를 그렇게 불렀소. 두 번 부르고 안 오면 세 번째는 목소리가 높아졌소. 그 목소리가 지금 들리오.”

그가 제 딸을 봤다.

“네 할머니가 나를 부르던 이름이다.”

방 낭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버지 손을 잡았다. 마른 손이었다. 대패를 쉰 해 잡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누렇게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 굳은살을 엄지로 쓸었다. 쓸면서 아버지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엔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입에 올려 봤다. 방 목수가 대답했다.

“오냐.”

*

골목 어귀에서 떡전 아들이 헛기침을 크게 했다. 이어서 발소리가 여럿 났다.

구 서리가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막쇠가 뒤에 섰고, 사령 둘이 더 있었다. 초롱 불빛이 마당의 젖은 판재 위를 훑고 방 문턱을 넘었다.

“금령이오. 셋 이상 모여 남의 참이름을 부른 자는 옥에 가두오. 이웃이 소리를 들었다고 알려 왔소.”

나는 일어섰다.

“이 집 주인 이름을 불렀소. 앓는 사람 앞에서.”

“누구 이름이든 셋이면 옥이오.”

구 서리가 방 안을 둘러봤다. 나를 보고, 방 낭자를 보고, 옥분이를 봤다. 그는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초롱 불빛에 비췄다. 표첩 초안이었다. 그의 눈이 종이 위에서 한 줄을 찾아 멈췄다.

“한 사람만 데려가라 하셨소. 형방 어른이. 줄에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

그가 옥분이를 가리켰다. 막쇠가 방 안으로 들어와 옥분이 팔을 잡았다.

“나를 데려가시오.”

내가 말했다. 구 서리가 고개를 저었다.

“한 가는 형방 어른이 따로 셈하신다 했소. 목수 딸은 아비가 앓으니 두라 하셨소. 형방 어른도 사람이오.”

옥분이가 막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방 목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어른, 떡 잘 드시오. 떡장수가 쌀값 떼먹으면 나한테 이르시오. 옥에서라도 받아 내겠소.”

그녀는 문턱을 넘다가 돌아서서 구 서리에게 물었다.

“옥에서 떡은 주오?”

“안 주오.”

“그럼 떡장수더러 넣어 달라 하겠소. 어차피 옥사장도 그 양반 얼굴은 모르니.”

방 목수가 벽에서 등을 떼고 일어나려 했다. 팔꿈치가 요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다. 방 낭자가 그의 어깨를 눌러 도로 눕혔다. 그는 누운 채로 구 서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이오. 데려가려면 나를 데려가시오. 셋이 내 이름을 불렀으니 나도 거기 낀 사람이오.”

“어른은 불린 사람이지 부른 사람이 아니오.”

구 서리가 대답하고 돌아섰다. 막쇠가 옥분이를 끌고 나갔다. 대문 밖 골목 어귀에서 떡전 아들이 그 뒷모습을 보고 서 있었다. 초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갔다. 구 서리도 막쇠도 그를 보지 않았다. 옥분이만 지나가며 그를 봤다. 그녀가 입 모양으로 무어라 말했는데, 떡값이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방 낭자와 함께 방 목수 머리맡에 남았다. 방 낭자가 아버지 이마의 땀을 무명 수건으로 찍어 냈다. 수건을 짤 때마다 대야 물이 똑똑 떨어졌다. 그녀는 한참 그 소리만 듣다가 말했다.

“선생님, 칠월 초사흘이 제 생일입니다. 스무 살이 됩니다. 그날 왼팔을 받겠습니다.”

“금령에 왼팔은 없소.”

“그러니까 받겠다는 겁니다. 오른팔이 안 되니 왼팔에 받겠습니다. 두 자는 제가 정합니다. 정한 건 그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수건을 대야에 담갔다. 등잔 불빛에 대야 물이 흔들렸고, 그 흔들리는 물 위로 그녀의 얼굴이 조각조각 비쳤다. 나는 그 두 자가 무엇일지 짐작했다. 짐작하고도 묻지 않았다.

방 안에서 방 목수가 제 등 이름을 입 안으로 굴리고 있었다. 사흘 동안은 그 이름이 그의 것이다.

*

이튿날 아침 옥에 갔다. 옥사장은 쉰 줄의 사내였다. 옥문 앞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부채를 멈추지 않았다.

“방앗간 여자 말이오? 밤새 떠들어서 옆 칸 도둑놈이 잠을 못 잤다오. 떡값 얘기만 하더구먼.”

떡전 아들이 광주리를 들고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옥사장 앞에 떡 광주리를 내밀었다.

“방앗간 여자한테 넣어 주시오. 옥사장 몫도 두 개 넣었소.”

옥사장은 떡을 받아 들고 그를 봤다. 떡장수 하나가 서 있었다. 그가 떡 두 개를 제 무릎에 내려놓고 광주리를 옥 안으로 들여보냈다. 옥 안쪽에서 옥분이 목소리가 들렸다.

“떡장수 왔소? 쑥떡이오? 나 쑥떡 싫다 했잖소.”

떡전 아들이 옥문 창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절편이오. 쑥은 안 넣었소.”

“그럼 됐소. 값은 나가서 치르겠소. 한 푼 반.”

옥사장이 무릎의 떡을 하나 집어 먹다가 우리를 돌아봤다. 절편을 입에 문 채 그는 광주리를 들고 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떡을 마저 먹고 다시 부채질을 했다.

“방앗간 여자는 형방 어른 말씀이 있을 때까지요. 보름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나는 모르오.”

1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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