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186자) · 한수겸 · 오월 초나흘
금령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오월 초나흘, 관아 앞 담벼락에 방이 붙었다.
한양에서 내려온 종이였다. 감영을 거쳐 이 고을까지 오는 데 보름이 걸렸다고 했다. 한지 두 장을 이어 붙였고, 맨 위에 붉은 관인이 두 개 찍혀 있었다. 하나는 조정 관인이고 하나는 이 고을 동헌 관인이었다. 첫 장과 둘째 장의 먹빛이 달랐다. 첫 장은 오래 갈아 윤이 도는 먹이었고, 둘째 장은 급히 갈아 물기가 많은 먹이었다.
담벼락 앞에 저잣거리 사람들이 몰렸다. 글을 읽는 사람은 적었고 읽는 사람 입만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담벼락에 바른 풀이 덜 말라서, 햇볕을 받은 종이에서 쌀풀 삭는 냄새가 시큼하게 났다. 옥분이가 앞줄에서 방을 소리 내어 읽었다. 방앗간 치부책을 쓰는 손이라 그녀는 글을 읽었다.
“하나. 이제부터 백성의 오른팔 바깥쪽, 이른바 넷째 자리에 남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금한다. 어기는 자와 새긴 자를 함께 곤장 여든에 처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넷째 자리 금지는 오래전부터 말만 돌던 일이었다. 나는 그 줄 뒤에 붙은 작은 글씨를 봤다. 다만 형전에 따른 표형은 이에 들지 않는다. 옥분이는 그 줄을 건너뛰고 읽었다. 작은 글씨라 못 본 것 같았다.
“둘. 이 고을에서는 셋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남의 참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금한다. 요언으로 민심을 어지럽히는 까닭이다. 어기는 자는 옥에 가두고 그 이름을 형방청에 적는다.”
옥분이가 읽기를 멈췄다. 뒤에서 누가 물었다.
“셋 이상이 모이면 안 된다는 거요?”
“모여서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럼 방앗간에 아낙 셋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옆집 서방 이름을 부르면 잡혀가오?”
옥분이가 뒤를 돌아보고 코웃음을 쳤다.
“옆집 서방 참이름을 아는 아낙이면 잡혀가도 할 말 없소.”
사람들이 웃었다. 대장간 쪽에서 황 대장이 망치를 든 채 걸어와 방을 올려다봤다. 그는 글을 못 읽었다. 옆사람한테 둘째 조목을 다시 듣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식구가 셋이오. 밥상에 셋이 앉아서 서로 이름을 부르면 그것도 잡혀가오?”
“식구끼리는 제 이름이지 남의 이름이 아니잖소.”
“안사람 이름은 남의 이름 아니오? 혼인 전엔 남이었소.”
옥분이가 이번엔 대꾸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황 댁이 떡전 모퉁이에서 그 말을 듣고 남편 등짝을 손바닥으로 한 대 쳤다.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웃음이 금방 가라앉았다. 담벼락 아래에 구 서리와 막쇠가 서 있었다. 구 서리는 웃은 사람들 얼굴을 하나씩 보고 있었다.
나는 둘째 장을 다시 봤다. 물기 많은 먹으로 쓴 글씨는 형방청 글씨였다. 획 끝을 눌러 멈추는 버릇이 있었다. 스무 해 동안 표첩에 이름을 적은 손이 그렇게 썼다. 첫 장은 조정이 보냈고, 둘째 장은 이 고을이 붙였다.
떡전 아들이 내 뒤에 서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무얼 세오?”
“둘째 장 글자 수요. 첫 장보다 둘째 장이 짧소. 짧은데 무섭소.”
*
그날 오후 동헌에서 새김꾼들을 불렀다. 이 고을에서 바늘을 잡는 사람은 다섯이었다. 나, 길 서방, 그리고 동문 밖과 서문 안에서 혼인 가슴만 새기는 늙은이 셋. 첩을 거둔 지 넉 달이 넘었지만 나도 불렀다. 넷째 자리를 새길 줄 아는 손이면 다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동헌 마당에 다섯이 섰다. 오월 볕이 따가웠다. 마당 한쪽 느티나무에서 새잎이 한창이라 그늘이 짙었는데, 우리는 그늘 밖에 서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눈썹을 타고 흘렀다. 대청에 현감이 앉았고, 그 아래 좌우로 아전들이 늘어섰다. 형방이 오른쪽 맨 앞에, 호방이 왼쪽 맨 앞에 서 있었다.
현감이 방을 한 부 더 펴 들고 말했다.
“조정의 금령이오. 넷째 자리에 새기면 사람이 가려지고, 가려진 사람은 호적에서 빠지오. 빠지면 호구가 주오. 그러니 좋은 금령이오. 둘째 조목은 형방이 올린 것이오. 저잣거리에서 무리를 지어 이름을 부르는 풍속이 번진다 하니, 소란을 막자는 것이오.”
호방이 한 걸음 나섰다.
“사또, 소인이 사십 년 동안 올린 청이 열두 장이옵니다.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한 가지를 청했사옵니다. 사람을 없애지 말라.”
“알고 있소. 그 청이 이제야 받아들여졌소. 호방은 기뻐해야 하지 않소?”
“받아들여진 것은 반이옵니다.”
호방이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 방의 첫 장 사본이었다. 그는 맨 끝의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형전에 따른 표형은 이에 들지 않는다. 백성은 넷째 자리에 이름을 넣지 못하고, 관가는 넷째 자리에 한 획을 넣을 수 있사옵니다. 소인이 청한 것은 백성의 손을 묶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관가의 손을 묶어 달라는 것이었사옵니다.”
마당이 조용했다. 느티나무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둘째 조목.”
호방의 목소리가 떨렸다. 예순여덟 먹은 목이 떨리는 소리였다.
“셋이 모여 이름을 부르면 가려진 사람이 돌아오옵니다. 표를 맞은 사람이 돌아오옵니다. 이 조목은 그 길을 막는 조목이옵니다. 표형은 풀어 두고 돌아오는 길은 막으면, 소인의 사십 년 청은 형방청 표첩을 지켜 주는 청이 되옵니다.”
형방이 입을 열었다.
“돌아온다는 것은 저잣거리의 말이옵니다. 법전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사옵니다.”
“법전에 없으니 막을 까닭도 없지 않소?”
“법전에 없는 일로 사람이 모이니 막는 것이옵니다.”
현감이 부채를 폈다 접었다 했다. 그는 두 사람의 말을 저울에 올려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느 쪽이 호구에 이로운지 셈하는 얼굴이었다. 셈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정이 보낸 것은 조정 뜻이고, 둘째 조목은 내 고을 일이오. 소란이 없어야 식년 대조를 조용히 치르오. 호방은 물러나시오.”
호방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대청 기둥에 붙여 둔 방 한 부 앞으로 걸어갔다. 무릎이 굽은 걸음이라 마당을 건너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전들이 그 걸음을 보고만 있었다. 그가 방의 둘째 장 끝을 쥐었다.
“사또, 사람을 없애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는 종이를 당겼다. 한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마당에 길게 났다. 둘째 장이 반쯤 찢어져 기둥에 매달렸다. 호방의 손에 찢긴 반쪽이 남았다.
현감이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었다.
“호방을 오늘부로 정직하오. 작청에 나오지 마시오.”
형방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구 서리가 호방에게 다가가 찢긴 반쪽을 받아 갔다. 호방은 그것을 순순히 내줬다. 내주고 나서 빈손을 한참 내려다봤다.
마당을 나서는 아전들 틈에서 형방이 내 곁으로 왔다. 그는 걸음을 늦추고 나와 나란히 걸었다. 먼 데서 보면 동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 가, 셋이 모이면 옥이오. 둘이면 괜찮소. 둘이서 스물일곱을 채워 보시오. 한 사람이 제 이름을 대고 부르면 하나가 늘고, 옆에서 듣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옥이오.”
“떡전 앞 여덟을 세셨구려.”
“셀 것도 없소. 구 서리가 적어 오니.”
그는 앞서 걸어 나갔다. 동헌 대문 문턱을 넘을 때 그는 한 번도 발밑을 보지 않았다. 사십 년 드나든 호방은 그 문턱에서 늘 발밑을 봤다.
우리 다섯은 그 뒤에 다짐을 썼다. 넷째 자리에 새기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는 첩이 없으니 다짐을 쓸 까닭도 없다고 했지만, 형방은 붓을 내밀었다. 나는 썼다. 길 서방은 붓을 쥔 손을 한참 떨다가 이름을 썼다. 그가 쓴 제 이름 끝이 비뚤어져 있었다.
동헌을 나와 저잣거리로 걷는 동안 길 서방이 내 반걸음 뒤를 따라왔다. 그는 한참 말이 없다가 먹 묻은 손으로 제 목덜미를 문질렀다.
“선생, 곤장 여든이면 사람이 죽소?”
“맞는 사람에 따라 다르오.”
“나는 죽을 거요. 엉덩이에 살이 없소.”
그는 제 농에 웃지 않았다. 웃지 않고 한참 걷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표형은 된다고 적혀 있더구먼. 관가가 시키면 된다는 거지요? 곤장 여든 맞을 짓을, 관가가 시키면 품삯 받고 하는 거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허 씨 오른팔에 亡을 넣은 날, 형방청 뒷마당에서 그는 스무 냥을 받았다. 그는 내 침묵을 대답으로 들었다. 남쪽 골목 들머리에서 그가 제 집 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문간에 놓인 먹 사발을 그는 발로 밀어 문 안쪽으로 치웠다.
*
해 질 녘에 호방 집으로 갔다.
그는 방 안에 앉아 두루마기를 개고 있었다. 사십 년 입은 관아 두루마기였다. 소매 끝의 두 줄 바느질이 등잔 불빛에 드러났다. 촘촘한 줄과 성긴 줄이었다. 그는 두루마기를 개다가 그 소매 끝에서 손을 멈췄다.
“이걸 입고 작청에 나갈 일이 이제 없구려. 그런데 개어 두면 성긴 줄이 또 뜯어지오. 개지 말고 걸어 둘까 하오.”
“어른, 청은 반이라도 받아들여졌소. 백성은 이제 넷째 자리에 새기지 못하오. 방 목수 같은 일은 이제 안 생기오.”
“딸을 살리려고 제 등을 판 아비가 이제 없다는 말이오? 그 아비들은 이제 남쪽 골목 길 서방한테 몰래 가오. 곤장 여든을 무릅쓰고. 금령이 사람 마음까지 막는 걸 나는 사십 년 동안 본 적이 없소.”
그는 두루마기를 벽에 걸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쇠 열쇠 하나를 꺼내 방바닥에 놓았다. 손가락 길이만 한 열쇠였다. 손때가 묻어 검게 반들거렸다.
“호적고 열쇠요. 정직이지 파직이 아니니 돌려 달라는 말이 아직 없었소. 없을 때까지 내가 갖고 있겠소.”
그는 열쇠를 도로 허리춤에 넣었다. 그 손이 나를 향해 한 번 흔들렸다. 알아 두라는 손짓이었다.
“형수 일은 어떻게 되어 가오?”
“이번 달에 예순 넘은 여자를 넷 봤소. 남문 밖 빨래터에서 둘, 절 아랫마을에서 하나, 관아 뒤 우물가에서 하나. 넷 다 아니었소. 아니라는 것도 사실은 모르오. 얼굴을 모르니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요. 그 눈만 찾소. 미안한 눈.”
그는 등잔 심지를 돋우었다. 좁은 방이 조금 밝아졌고, 벽에 걸린 두루마기 그림자가 사람처럼 길게 섰다. 기름 타는 냄새 사이로 오래된 한지 냄새가 났다. 방구석에 쌓인 청 초고들이었다. 사십 년 치가 그 구석에 누렇게 쌓여 있었다.
“이제 청을 올릴 자리도 없소. 그래서 찾는 데만 쓰겠소. 남은 날을 다.”
그때 쪽문 밖에서 누가 뛰어오는 소리가 났다. 방 낭자였다. 새기는 집에 나를 찾으러 갔다가 거기 없으니 호방 집 문간까지 달려왔다. 치맛자락이 흙투성이였고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선생님,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대패질을 하시다가 대패를 쥔 채로요.”
그녀의 손바닥에 대팻밥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아비 손에서 대패를 떼어 내다가 묻었다고 했다. 나는 신을 꿰신었다. 호방이 등잔을 들고 문간까지 따라 나왔다. 불빛이 골목 흙벽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그 빛이 닿지 않는 골목 끝을 향해, 방 낭자가 먼저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