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170자) · 한수겸 · 사월 보름

증언할 수 없는 사람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월 보름, 부름집 마당에서 검시가 열렸다.

곽 노인이 죽은 지 이틀째였다. 형방청은 첫날 벌써 초검을 마쳤다. 구 서리가 와서 노인 머리맡에 한 시진 앉았다 가더니 문서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밤에 자다 일어나 뒷간에 가다가 문지방 모서리에 머리를 찧어 죽음, 나이 일흔하나, 연고 없음.

막례가 그 문서를 뒤집으려고 동헌에 소지를 올렸다. 글은 내가 썼고, 이름은 막례가 적었다. 소지를 쓰기 전날 밤 나는 호방 집에 갔다. 무릎이 닿는 그 방에서 호방은 내 초고를 등잔 가까이 대고 두 번 읽었다. 그러고는 붓을 들어 한 줄을 지웠다. 두칠이 죽였다는 줄이었다.

“본 것만 쓰시오. 머리에 네모진 상처가 있다, 문지방은 둥글다. 그것만 쓰시오. 누가 했는지는 현감이 마당에서 보게 하시오. 현감을 마당까지 끌어내는 건 내가 하겠소. 거기서 무엇을 보일지는 댁 몫이오.”

그는 초고를 내게 돌려주며 덧붙였다.

“현감은 사람이 죽은 일보다 호구가 하나 준 일을 먼저 셀 거요. 그걸 알고 가시오.”

소지가 올라간 이튿날 현감이 복검을 하겠다며 직접 나왔다. 호방은 마당 끝 아전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마당에 멍석이 깔렸고, 그 위에 곽 노인이 누워 있었다. 오작인이 노인 옷을 벗기고 몸을 뒤집어 가며 살폈다. 현감은 마루 위 교의에 앉아 부채로 코를 가렸다. 사월 볕이 마당에 쏟아졌고, 이틀 지난 몸에서 나는 냄새가 볕에 데워져 마당 가장자리까지 번졌다. 구경꾼들이 담 너머로 목을 뺐다가, 냄새가 닿자 하나둘 고개를 거뒀다.

오작인은 허리가 굽은 늙은 사내였고, 이 고을 죽음을 서른 해 넘게 들여다본 손이 사발을 기울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초 한 사발을 노인 관자놀이에 부었다. 시큼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초가 스며든 자리에 멍이 떠올랐다. 둥근 멍이 아니었다. 네모진 멍이었다. 한 모서리가 날카롭게 파여 있었다.

“문지방 모서리에 찧으면 저렇게 되오?”

내가 물었다. 형방이 마루 아래에서 나를 돌아봤다.

“한 가는 언제부터 오작인이 되었소?”

“말뚝 박는 메 머리가 네모요. 부름집 장독 옆에 메가 하나 있었소. 그날 아침 젖어 있었소.”

형방이 턱짓을 하자 구 서리가 마루 밑을 뒤졌다. 메가 나왔는데, 머리까지 바싹 마른 깨끗한 메였다. 형방은 그것을 현감 쪽으로 들어 보이기만 하고 도로 내려놓았다.

“깨끗한 메요. 부름집에서 말뚝을 박을 일이 뭐 있겠소? 아무도 안 쓰는 메를 두고 무슨 말이오.”

석 객주가 마당 한쪽 그늘에 서 있었다. 두칠이 그 곁에 있었다. 현감이 두칠을 불러 그날 밤 어디 있었느냐고 물었다. 두칠이 대답하기 전에 석 객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집에서 잤소.”

그 말뿐이었다. 두칠이 고개를 숙였다. 현감은 더 묻지 않았다. 객주의 집에서 잤다는 말을 객주가 했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얼굴이었다. 두칠의 목덜미에 땀이 한 줄 흘러내렸다. 사월 볕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현감이 부채를 내렸다.

“본 사람이 있소?”

떡전 아들이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는 멍석 앞에 서서 현감을 올려다봤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내가 봤소. 그날 밤 주막 뒷방 창호지에 그림자 둘이 비쳤소. 서 있는 그림자가 메를 들어 한 번 내려쳤소. 그러고 나온 사람이 두칠이었소. 석 객주 집 머슴이오. 문간에서 내가 그 얼굴을 한 자 앞에서 봤소.”

현감이 그를 봤다. 마당에 서 있는 사내 하나를 봤다. 그리고 서기에게 손짓했다. 서기가 붓에 먹을 찍었다.

“증인 이름을 대시오.”

떡전 아들이 제 호적 이름을 댔다. 봉가 성에 스무 해 전 호적 초본에 올랐던 이름이었다. 서기가 그것을 받아 적었다. 붓이 종이 위를 지나갔다. 먹이 서지 않았다. 붓끝이 지나간 자리에 물기만 번졌다가 금세 말라 버렸다. 서기가 붓을 다시 먹에 찍고 한 번 더 적었다. 또 서지 않았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서기가 붓을 든 채 현감을 올려다봤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런 일은 그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종이가 눅었나 보오.”

형방이 말했다. 나는 형방의 얼굴을 봤다. 그는 알고 있었다. 표 맞은 사람 이름은 관가 붓에 먹이 안 선다. 그 법을 스무 해 넘게 쓴 사람이 그였다.

“그럼 떡전이라고 적으시오.”

떡전 아들이 말했다. 서기가 망설이다가 떡전이라고 적었다. 이번엔 먹이 까맣게 섰다.

“떡전은 사람이 아니오.”

형방이 서기의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증인은 호적에 오른 이름이 있어야 하오. 먹이 안 서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오. 사또, 이 증언은 받을 수가 없사옵니다.”

현감이 떡전 아들을 봤다. 그리고 형방을 봤다. 그러다 다시 마당을 봤을 때 그의 눈이 떡전 아들 위를 지나쳐 갔다. 멍석 앞에 서 있는 사내를 그는 이미 찾지 못했다. 현감이 서기에게 물었다.

“방금 증언한 자는 어디 갔소?”

서기가 떡전 아들 쪽을 가리켰다. 현감이 그쪽을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저 자요? 저 자가 뭘 봤다 했소?”

떡전 아들이 한 번 더 말했다. 똑같이 말했다. 두칠이, 메, 창호지, 그림자 둘. 현감은 끝까지 들었다. 들으면서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리고 부채를 다시 펴고 말했다.

“초검대로 하시오. 문지방이오.”

막례가 멍석 옆에서 벌떡 일어섰다. 치마 앞자락에 흙이 묻어 있었다.

“어르신 관자놀이가 네모인데 어떻게 문지방이에요? 문지방이 네모난 데가 어디 있어요?”

형방이 그녀를 돌아봤다. 처음으로 막례를 똑바로 봤다.

“막례라 했소? 부름집 장부 첫 장에 네 이름이 있더구먼. 왼팔 두 자까지 곱게 적혀 있더구먼.”

막례의 입이 닫혔다. 그녀는 제 왼팔을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누가 그 자리를 벗겨 가기라도 할 것처럼 움켜쥐었다. 막례 어머니가 딸을 뒤에서 끌어 앉혔다. 형방은 더 말하지 않았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장부는 그의 손에 있었다.

*

마당을 나오면서 나는 형방 앞에 섰다.

“알고 계셨소. 표 맞은 사람은 증인이 못 된다는 걸.”

“법이오.”

형방이 제 소매를 털었다. 사월 볕에 그의 두루마기 소매가 희게 바랬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나와 눈높이가 같았다.

“한 가, 곽가 노인이 무엇을 들고 나갔는지 아시오? 나는 모르오. 모르는 게 좋소. 한 가도 모르는 게 좋소.”

“스무 해 전 칠월, 봉가 곡식 일로 쉰 냥. 그건 아오.”

형방의 손이 소매에서 멈췄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마당 너머에서 오작인이 곽 노인 몸에 홑이불을 다시 덮는 소리가 났다. 형방이 천천히 말했다.

“그 종이는 누구 글씨요?”

“막례 글씨요.”

“그럼 아무 종이도 아니오. 베낀 종이는 관가에서 안 받소.”

형방이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그는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를 보탰다.

“떡전에서 인절미 좀 사 오라 이르시오. 검시 날은 입이 쓰오.”

형방은 떡전에서 누가 떡을 파는지 몰랐다. 스무 해 동안 그 떡전에서 인절미를 제일 많이 사 간 사람이 그였다. 그는 떡전 아들을 방금 마당에서 봤고, 돌아서며 잊었고, 인절미 맛은 잊지 않았다.

형방이 마당을 나가자 호방이 아전들 틈에서 빠져나와 내 곁을 지나갔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만 보며 낮게 말했다.

“현감이 검시 끝나고 맨 먼저 물은 게 뭔지 아시오? 호구가 하나 줄었느냐였소. 연고 없는 타관 노인이라 이 고을 호적엔 없다고 하니 그럼 됐다고 하더이다.”

“어른, 그럼 된 거요?”

“안 됐소. 그리고 하나 더. 한양에서 종이가 한 장 내려온다는 말이 작청에 돌고 있소. 내 청이 올라간 지 사십 년이오. 그 답일지도 모르오.”

그는 그 말만 하고 관아 쪽으로 걸어갔다. 굽은 무릎이 사월 볕 아래서 느리게 움직였다. 답이 온다는 사람의 걸음치고는 너무 무거웠다.

막례는 마당 끝 담 밑에 앉아 곽 노인의 바늘 쌈지를 풀고 있었다. 바늘 열한 개를 하나씩 꺼내 볕에 비춰 보고 다시 꽂았다. 녹이 슬지 않게 기름을 먹인 바늘이라 볕을 받을 때마다 가는 빛이 그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이걸 제가 가져도 될까요?”

“어른이 막례한테 두고 간 거요.”

“저는 바늘을 못 잡아요. 그래도 가지고 있을래요. 어르신이 쉰 해 잡은 거니까, 쉰 해는 가지고 있을래요.”

그녀는 쌈지를 여며 품에 넣었다. 그러고 일어서서 제 어머니를 찾아 골목으로 갔다.

*

그날 저녁 떡전 아들이 뒷방에 와서 벽 쪽지 앞에 섰다. 쪽지에는 이제 여덟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 옥분, 황 대장, 방 목수, 방 낭자, 황 댁, 막례, 막례 어머니. 곽 노인 줄에는 내가 먹으로 줄을 그었다. 그은 줄 옆에 떡전 아들이 제 굵은 글씨로 적어 둔 것이 있었다. 담뱃대 내가 가짐. 그 아래 한 줄은 옥분이 글씨였다. 떡값 한 푼 반, 잊지 말 것. 누가 누구에게 잊지 말라는 것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쪽지는 이제 셋이 번갈아 적는 종이가 되어 있었다.

“여덟이면 모르는 사람이 내 말을 기억 못 하오. 오늘 현감이 두 번 들었소. 두 번 다 끝까지 들었소. 그런데 돌아서니 끝이었소.”

“스물일곱이 되면 붓에 먹이 서오.”

내가 말했다. 스승의 종이 끝장에 적힌 말이었다. 스물일곱이면 모두에게 얼굴이 남고, 관가 붓으로 적으면 먹이 서고, 본인도 제 이름을 안 잊는다. 그러면 그의 증언이 증언이 된다. 두칠의 메가 메가 된다.

떡전 아들이 쪽지 아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빈 자리가 많았다.

“열아홉이 모자라오.”

“시월이 식년이오. 시월 보름에 동헌에서 호적 대조를 하오. 그 전에 채우면 대조 자리에서 댁 이름을 댈 수 있소. 현감은 호구가 느는 걸 좋아하오. 한 사람이라도.”

“열아홉을 어디서 구하오? 부르는 사람은 제 이름을 대야 하오. 댄 이름은 형방 귀에 들어가오. 곽 노인은 제 이름을 대고 한 달도 못 살았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옳았다. 떡전 아들이 쪽지 아래에 굵은 글씨로 시월이라고 적었고, 그 옆에 내가 스물일곱이라고 적었다.

그는 두 글자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제 품에서 곽 노인의 담뱃대를 꺼내 쪽지 옆 벽 틈에 꽂았다. 대통에 남은 담배가 조금 흘러내렸다. 담배 냄새가 먹 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번졌다. 그 냄새가 다 빠질 때까지 우리는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선생, 한 가지는 셀 수 있소.”

“무엇이오?”

“오늘 현감이 내 말을 두 번 들었소. 스무 해 동안 사또가 내 말을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오. 두 번이오.”

그는 그걸 셈이라고 했다. 나는 그 셈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면 목소리가 흔들릴 것 같았다.

1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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