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170자) · 한수겸 · 삼월 초하루

목소리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삼월 초하루 새벽, 황 대장 안사람이 새기는 집 뒤꼍 쪽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서 있었다. 내가 요강을 비우러 나가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요강을 든 나를 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선생, 우리 집 양반 몰래 왔소. 해 뜨기 전에 돌아가야 하오.”

황 댁은 쉰 가까운 나이에 어깨가 넓었다. 대장간 풀무를 삼십 년 옆에서 밟은 사람이라 서 있는 품이 사내보다 단단했다. 그녀는 평상에 앉자마자 무릎 위에 두 주먹을 얹었다.

“저잣거리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있지 않소? 봄날 꽃잎이 물에 떠가는 그 두 자. 그게 우리 양반 왼팔이오. 그 사람은 그 노래가 들리면 대장간 문을 반만 열고, 반쯤 연 문 뒤에서 쇠만 두드리오. 형방 앞에서 다짐을 쓰고 온 날부터 그러오.”

“부끄러워하시는 거요.”

“이름 때문에 부끄러운 거면 참겠소. 열다섯에 제가 고른 이름이니 누굴 탓하겠소?”

그녀가 주먹을 풀었다가 다시 쥐었다.

“다짐 때문에 부끄러운 거요. 그 양반이 떡전 앞에 가서 고개만 끄덕이고 오는 걸 내가 봤소. 끄덕이는 걸로 빚이 갚아지오? 선생한테 가슴을 공짜로 받은 사람이오. 그 가슴 반쪽이 나요. 그러니 그 빚 반은 내 빚이오.”

나는 한참 그녀를 봤다. 가슴은 둘이 받는다. 스무 해 전 봄 이 평상에 둘이 나란히 앉았고, 황 대장은 값을 다음에 내겠다고 했으며, 그녀는 그 옆에서 남편 옆구리를 꼬집었다. 나는 그 꼬집던 손을 기억한다. 새긴 손은 새긴 것 곁의 일도 같이 기억한다.

“이름을 대시면 형방 귀에 들어갈 수 있소.”

“우리 양반 이름은 벌써 들어갔소. 한 집에 둘 들어가나 하나 들어가나 표첩은 한 장이오.”

*

해가 뜨기 전에 떡전으로 갔다. 막례가 제 어머니를 데리고 먼저 와 있었다.

막례 어머니는 남쪽 골목 주막을 하는 여자였다. 마흔 중반, 부엌 냄새가 옷에 배어 있었고, 앞치마를 두른 채 나왔다. 곽 노인이 지난가을부터 제 집 뒷방에 묵는데, 노인이 떡전 이야기를 밤마다 하는 통에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떡전 아들을 한 번 보고 막례를 돌아봤다.

“이 사람이냐? 처음 보는데.”

“엄마, 그러니까 부르는 거예요.”

떡전 안은 아직 불을 안 넣어서 찼다. 시루는 엎어져 있었고, 떡판 위에 밤새 불려 둔 찹쌀 자루가 축축하게 누워 있었다. 쌀 불린 물이 자루 밑으로 번져 떡판 가장자리가 검게 젖었다. 새벽빛이 문틈으로 한 줄 들어와 그 젖은 자리를 가로질렀다.

내가 먼저 내 왼팔 두 자를 대고 떡전 아들을 불렀다. 황 댁이 그다음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제 왼팔 두 자를 대는 목소리가 대장간 쇠를 두드리듯 컸다. 막례가 놀라서 문밖을 내다봤을 정도였다. 그리고 떡전 아들의 두 자를 불렀다. 막례 어머니는 딸의 손을 한 번 쥐었다가 놓고, 앞치마에 손을 닦은 뒤 제 이름을 대고 따라 불렀다.

아홉이 되었다.

황 댁이 떡전 아들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더니, 그의 얼굴을 위아래로 뜯어봤다. 돌아섰다가 다시 봤다. 그러고는 그의 팔뚝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이제 알겠소. 그 콧구멍 셋 달린 떡장수가 당신이구려. 옥분이 치부책 그림이 영 엉터리요. 콧구멍은 둘이오.”

“그 그림을 보셨소?”

“방앗간에 떡 사러 갔다가 봤소. 옥분이가 숨기는데 내가 먼저 봤소. 한 칸에 하나씩, 여든 칸은 넘겠던데.”

떡전 아들의 귀가 붉어졌다. 막례가 입을 가리고 웃었고, 막례 어머니는 무슨 소린지 몰라 딸을 쳐다봤다. 나는 그 웃음 사이에서 황 댁의 목소리가 형방청까지 들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떡전 아들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스승의 종이에는 아홉이 차면 모르는 사람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한 말을 기억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걸 확인할 길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그가 시루를 뒤집어 아궁이에 올리고 불을 넣었다. 마른 솔가지가 타닥거리며 불이 붙었다.

*

해가 오르자 저잣거리가 열렸다. 떡전 아들이 광주리를 들고 떡전 앞에 서서 외쳤다.

“떡 사시오. 인절미, 절편, 쑥떡 있소.”

지나가던 짚신 장수가 멈췄다. 그는 떡전 아들을 보고, 광주리를 보고, 그냥 지나갔다. 반 식경쯤 지나서 그가 되돌아왔다.

“아까 누가 여기서 쑥떡 있다고 했소.”

“그 말은 내가 했소.”

“얼굴은 모르겠는데 그 말은 기억나오. 쑥떡 있다는 말. 목소리가 이 근처였소.”

짚신 장수는 쑥떡 두 개를 샀다. 값을 치르고 돌아서며 그는 떡전 아들을 잊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떡전 앞을 지나쳐 세 걸음쯤 가다가 뒤돌아 말했다.

“쑥떡 맛있다고 전해 주시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떡전 아들이 광주리를 든 채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옥분이가 방앗간 문간에서 그 웃음소리를 듣고 됫박을 떨어뜨렸다. 쏟아진 쌀이 문턱 아래로 흘러내렸는데 그녀는 주울 생각도 않고 떡전 쪽을 보고 서 있었다. 스무 해 동안 저잣거리에서 그의 말을 기억한 사람은 어머니 하나였다.

*

사시 무렵, 두칠이가 왔다.

일꾼 셋이 따라왔다. 하나는 곡괭이를, 둘은 쇠지레를 들었다. 두칠이 떡전 모퉁이에 박힌 말뚝 여섯 개를 한 번 둘러보고 새끼줄을 끊었다. 새끼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탁 났다.

“봄이 됐소. 헐 거요.”

떡전 아들이 떡전 문 앞으로 나섰다. 그는 광주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광주리를 든 채 두칠이 앞에 섰다.

“여기는 우리 어머니가 스무 해 떡을 찐 자리요. 봉 서방 아들이 여기 있소. 주인 없는 땅이 아니오.”

두칠이는 그를 봤다. 떡 파는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두칠이는 그를 어깨로 밀쳐 냈다. 광주리가 기울어 인절미 두 개가 흙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섰다. 얼굴을 보고 멈춘 게 아니었다. 봉 서방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멈췄다. 저잣거리에서 늙은 축은 봉 서방을 안다. 관가 창고지기였고, 스무 해 전 곡식이 빈 일로 옥에서 죽었다. 그 아들이 여기 있다는 말이 저잣거리 한복판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그 말을 들었고, 잊지 않았다.

“봉 서방 아들이 어디 있소?”

엿장수 영감이 물었다. 떡전 아들이 대답했다.

“여기 있소. 스무 해 여기서 떡을 팔았소.”

영감은 그의 얼굴을 한참 봤다. 모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들렸다. 영감이 두칠이 앞으로 걸어 나와 지팡이로 곡괭이 자루를 눌렀다.

“주인이 있다잖나.”

“호적에 없는 사람이오.”

“호적에 없으면 저 목소리는 누구 거요? 나는 지금 그 목소리를 들었네.”

사람들이 하나둘 떡전 앞으로 모였다. 짚신 장수가 왔고, 방앗간에서 옥분이가 됫박을 든 채 달려왔으며, 대장간 쪽에서 황 댁이 앞치마 바람으로 걸어왔다. 떡전 아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나 말고는 그 가운데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 말 하나로 스무 명 넘게 떡전 앞에 섰다.

나는 두칠이 쇠지레 앞에 섰다.

“헐려면 이 사람들부터 치우시오.”

두칠이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턱 근육이 한 번 불거졌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곡괭이 든 일꾼에게 턱짓을 했다. 일꾼들이 연장을 거뒀다.

“객주 어른이 관가 문서를 한 장 더 가져오실 거요.”

두칠이는 흙바닥에 떨어진 인절미 하나를 짚신 발로 밟고 돌아섰다. 떡전 아들이 그 뭉개진 떡을 주워 흙을 털었다. 먹을 수 없는 떡이었다. 그는 그 떡을 한참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구 서리가 왔다. 막쇠를 달고 왔다. 누가 형방청까지 달려가 일렀는지, 그는 숨을 몰아쉬며 붓과 종이부터 꺼냈다.

“방금 여기서 떡전 땅 주인이라고 떠든 자가 누구요?”

사람들이 서로를 봤다. 엿장수 영감이 지팡이로 땅을 두 번 짚었다.

“몰라. 목소리만 들었네.”

“목소리를 들었으면 얼굴도 봤을 것 아니오?”

“봤겠지. 그런데 생각이 안 나.”

구 서리가 붓을 든 채 서 있었다. 적을 이름이 없었다. 그는 짚신 장수에게 물었고, 짚신 장수는 쑥떡이 맛있었다는 말만 했다. 옥분이에게 물었을 때 옥분이는 됫박을 흔들며 떡값이나 깎아 달라고 했다. 막쇠가 떡전 아들 쪽을 멀뚱히 보다가 구 서리 소매를 당겼는데, 구 서리가 돌아봤을 때는 떡 파는 사내가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구 서리는 끝내 한 줄도 적지 못하고 돌아갔다. 가면서 그는 나를 한 번 노려봤다. 그 눈은 나를 적고 있었다. 내 얼굴은 표를 안 맞았다.

*

그날 저녁 대장간에서 큰소리가 났다.

저잣거리 끝까지 들렸다. 누가 황 댁이 아침에 떡전에서 이름을 댔다는 걸 황 대장 귀에 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떡전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장간 앞을 지나다 발을 멈췄다. 반쯤 열린 문으로 두 사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형방 앞에서 다짐까지 쓰고 왔는데, 당신이 이름을 대? 그것도 떡전 한복판에서?”

“당신은 당신 이름 부끄럽다고 숨었잖소. 내 이름은 하나도 안 부끄럽소.”

“내 이름이 뭐가 부끄럽단 말이오!”

“그럼 왜 숨었소?”

잠깐 조용했다. 망치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렸다. 열일곱 먹은 아들이 모루 앞에서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부모 싸움을 덮으려는 망치질이었는데, 싸움이 멎자 망치도 멎어서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저잣거리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형방이 당신 이름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오.”

황 대장의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화가 아니라 겁이 섞인 소리였다. 황 댁이 한참 뒤에 대답했다.

“그럼 당신이 옆에 서 있으면 되잖소.”

나는 그 자리를 떴다. 떠나면서 들으니 망치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엔 아들 망치가 아니라 아비 망치였고,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까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

이튿날 아침 떡전 모퉁이의 말뚝이 다섯이었다. 하나가 밤사이 뽑혀 있었고, 뽑힌 자리에 흙이 둥글게 패어 있었다. 떡전 아들이 그 구멍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낮에 대장간 앞을 지나는데 황 대장이 모루 위에서 쇠 한 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말뚝 끝에 박혀 있던 쇠촉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도 모른 척하고 망치질만 했다. 쇠촉은 망치 아래서 조금씩 호미 날 모양이 되어 갔다.

“그 말뚝, 대장이 뽑았소?”

“무슨 말뚝이오? 나는 밤에 잠만 잤소.”

그는 호미 날을 물통에 담갔다. 쉭 소리와 함께 김이 올라 그의 얼굴을 가렸다. 김이 걷히자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다 되면 떡전에 갖다 주시오. 쑥 캐는 데 쓰라고. 내가 줬다고는 하지 마시오. 안사람이 옆에 서 있으라기에 서 있을 자리를 찾는 중이오.”

그는 호미 날을 모루에 다시 올렸다. 부끄러움이 다 가신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장간 문이 그날은 끝까지 열려 있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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