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268자) · 한수겸 · 이월 초이틀
부름집
네 번째 이름을 부른 사람 · 유하람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월 초이틀 저녁, 옥분이가 뒤꼍 쪽문을 발로 밀고 들어왔다. 두 손에 떡 광주리를 들고 있어서 발밖에 쓸 것이 없었다고 했다. 광주리를 평상에 내려놓더니 앉지도 않고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석 냥이오.”
“무엇이 석 냥이오?”
“이름 한 번 불러 주는 값이오. 남쪽 골목에 간판도 없는 집이 하나 났는데, 거기 가면 사람을 사서 부르게 해 준다오. 우리는 공짜로 했는데 그 집은 석 냥을 받소.”
떡전 아들이 광주리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옥분이 뒤를 따라 들어왔는데, 나는 벽의 쪽지를 보기 전에 그를 알아봤다. 섣달 이래 줄곧 그랬다. 알아본다는 게 아직도 손끝에 낯설어서, 나는 쪽지를 안 떼고 그대로 두었다.
“석 냥이면 떡이 몇 개요?”
“한 푼 반으로 치면 이백 개요.”
옥분이가 셈을 하자마자 대답했다. 떡전 아들이 제 손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백 개면 내가 보름을 쪄야 하오. 나를 불러 준 다섯은 떡 한 개도 안 받았소. 그런데 거기는 석 냥이라니, 내 이름이 싸구려가 된 것 같소.”
“당신 이름은 원래 싸오. 떡값도 내가 깎았잖소.”
옥분이가 그렇게 받아쳤다. 떡전 아들이 웃었고, 옥분이는 제 말이 너무 나갔나 싶었는지 광주리 덮개를 괜히 두 번 여몄다. 나는 그 둘을 보다가 오른팔 바깥쪽을 엄지로 문질렀다. 부르는 일이 돈이 되면 누가 먼저 그 돈을 셀지, 나는 알 것 같았다.
*
이튿날 낮에 남쪽 골목으로 갔다.
남쪽은 길이 좁고 처마가 낮다. 지붕이 서로 닿을 듯 붙어 있어서 한낮에도 길 가운데가 어둑했고, 이월 녹은 눈이 처마 끝에서 떨어져 흙길에 작은 구멍을 줄지어 파 놓았다. 그 구멍들을 밟으며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줄이 길다기보다 촘촘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는 줄은 그렇게 촘촘하다. 아는 사람끼리는 사이가 벌어진다.
길 서방의 집이 그 골목 들머리에 있었다. 그는 문간에 앉아 먹 사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먹 묻은 손을 들어 보였다. 사발 안쪽 먹이 여러 겹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줄 끝에 섰다. 앞사람은 쉰 줄의 아낙이었다. 머릿수건 아래로 흰머리가 비어져 나왔고, 한 손에는 네 번 접은 종이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늙은 사내 하나의 소매 끝을 쥐고 있었다. 사내는 눈이 흐렸고 오른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다.
“처음이오?”
“처음이오.”
“나는 두 번째요. 지난번엔 아무 일도 없었소. 그래도 안 되면 또 와야지요. 석 냥이 아깝다고 안 오면 그 석 냥은 영영 버린 게 되니까.”
그녀가 쥔 소매를 한 번 당겨 보였다.
“우리 영감이라오. 아침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우리 집 헛간에서 나오오. 그래서 우리 집 사람인 줄 아오. 놓치면 또 모르니 이렇게 쥐고 다니오.”
그녀는 종이를 더 꼭 쥐었다. 누구 이름이 거기 적혀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표첩 스물여섯 줄 가운데 이 골목 사람이 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찾는 사람이 표를 맞은 사람인지, 그냥 집을 나간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다.
한 시진을 섰다. 그동안 일곱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넷은 울고 있었고 둘은 아무 표정이 없었으며, 하나는 나오자마자 제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목이 뜨겁다고 옆사람한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집 안은 좁았다. 등잔이 셋 켜져 있었다.
등잔 셋은 많다. 새기는 집도 하나만 쓴다. 셋을 켜면 그림자가 세 쪽으로 갈라져 앉은 사람 얼굴이 어디서 봐도 반쯤 어둡고, 방 안에 기름 타는 냄새가 세 겹으로 겹쳐 숨이 무거워진다. 나는 그 셋을 보고 이 집이 무엇을 파는지 알았다. 밝히려는 게 아니라 흐리게 하려는 불이었다.
문간에 젊은 여자가 서안을 놓고 앉아 있었다. 스물 남짓, 손목이 가늘었다. 그녀는 들어오는 사람마다 먼저 석 냥을 받았고, 그다음 방 한쪽에 줄지어 앉은 사내들 가운데 하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짐꾼 옷을 입은 사내, 빨래 삯일을 하는 아낙, 열여섯이나 됐을까 싶은 소년.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불려 나온 사람은 여자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고, 여자는 그것을 장부에 받아 적었다.
“무엇을 적소?”
내가 물었다. 여자가 붓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부르는 분 성함입니다. 품삯을 드리려면 누가 불렀는지 적어야 해서요.”
“성함이 아니라 왼팔 이름이구려.”
여자의 붓끝에서 먹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 먹 방울을 마른 천으로 찍어 냈다.
방 안쪽에 발이 드리워 있었다. 발 너머에 늙은 사내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등잔 셋 가운데 하나가 그 사내 등 뒤에 있어서 얼굴은 어둡고 윤곽만 떴다. 그는 불려 나온 사람과 손님을 차례로 보고, 가끔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손가락이 올라가면 부르는 사람이 제 이름을 대고 손님이 가져온 종이의 두 자를 읽었다.
흰머리 아낙의 차례가 내 바로 앞이었다. 그녀가 석 냥을 치르자 문간 여자가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여자 귀에 두 자를 속삭이고, 늙은 사내 앞에 서서 소리로 두 자를 댔다. 제 이름을 대는 소리치고는 너무 빨랐다. 그러고는 아낙의 종이를 받아 거기 적힌 두 자를 읽었다. 늙은 사내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발 너머의 늙은 사내가 손가락을 내리자 문간 여자가 벌써 다음 사람을 불렀다. 아낙이 영감의 소매를 쥔 채 문을 나서다가, 문지방에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앞을 봤을 때 그녀는 제 손에 쥔 소매를 내려다보고 한참 서 있었다. 누구 소매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놓지 않고 영감을 끌다시피 데리고 골목으로 나갔다. 소매를 쥔 손등에 핏줄이 솟아 있었다.
나는 셈을 해 봤다. 부른 사람은 하나였고, 하나로는 얼굴이 안 남는다. 스승의 종이에 그렇게 적혀 있다. 이 집은 그걸 모르는지, 알면서 한 사람씩만 부르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마루로 나오는데 석 객주가 거기 앉아 있었다.
주판 하나를 무릎에 얹고, 비단 겉옷 자락을 마루 끝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두칠이가 그 뒤에 서 있었다. 석 객주는 주판알을 튕기다가 나를 보고 손을 멈췄다.
“선생도 줄을 섰소?”
“부르는 사람들 이름을 왜 받아 적소?”
“품삯 장부요.”
“그 장부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오. 형방청 궤에 표첩이 있소. 참이름 하나가 적혀야 표가 드오. 저 사람들은 석 냥에서 품삯 몇 푼을 받고 제 목숨 줄을 댁 장부에 올리고 있소.”
석 객주가 주판알 하나를 튕겼다. 딱 소리가 마루에 짧게 울렸다.
“한 사람에 두 푼이오.”
“무엇이 두 푼이오?”
“품삯이오. 부르는 사람한테 두 푼을 주오.”
그는 그 말만 했다. 까닭은 대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다. 쉰 냥이라고 하면 쉰 냥이었고, 두 푼이라고 하면 두 푼이었다. 무엇에 두 푼인지는 듣는 사람이 알아서 셈해야 했다.
나는 마루에서 돌아서서 줄을 봤다. 줄 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제 이름을 대는 사람은 형방 표첩에 오를 수 있소. 부르는 일은 새기는 집 뒤꼍으로 오면 값 없이 하오.”
줄이 한 번 흔들렸다. 앞쪽의 소년 하나가 제 왼 소매를 움켜쥐었다. 흰머리 아낙은 종이를 쥔 채 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두칠이가 마루에서 내려왔다. 그는 내 앞에 서서 팔짱을 끼었다. 팔뚝이 장작 같았다.
“선생, 남의 가게 앞에서 떠드는 건 장사를 막는 거요.”
“막을 만한 장사요.”
“객주 어른은 공짜를 싫어하시오.”
두칠이가 내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세게 민 것도 아닌데 나는 두 걸음을 물러났다. 뒤꿈치가 처마 물이 파 놓은 구멍에 빠졌고, 찬 물이 짚신 안으로 스몄다. 석 객주가 마루 위에서 주판을 다시 튕기며 한마디를 보탰다.
“공짜는 값이 없소. 값이 없는 건 아무도 안 믿소.”
줄 선 사람들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도 줄에서 빠지지 않았다.
*
골목을 나오려는데 발 너머에 앉아 있던 늙은 사내가 쪽문으로 따라 나왔다.
일흔은 넘어 보였다. 허리는 곧았고 손이 컸다. 그는 말없이 내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 사이를 봤다. 바늘을 스무 해 잡으면 거기가 굳는다. 그의 같은 자리에도 굳은살이 누렇게 박혀 있었다.
“새기는 집이구려.”
“어른도 새기셨소?”
“남쪽 먼 고을에서 쉰 해를 새겼소. 곽가요. 일흔하나요. 이 고을엔 작년 가을에 왔소. 아들이 이 근처에 산다기에 찾아왔는데, 아들이 없더구먼.”
그는 그 말을 날씨 이야기하듯 했다. 없다는 말이 이사를 갔다는 말인지 죽었다는 말인지, 표를 맞았다는 말인지 나는 가를 수가 없었다. 그의 눈가가 한 번 움찔했다가 가라앉았다.
“어른은 이게 되는 일인 줄 아시오?”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소.”
곽 노인이 쪽문 기둥에 등을 기댔다.
“석 냥은 어느 쪽이든 받소. 그게 이 집이오.”
“셋이 불러야 얼굴이 남는 줄은 아시오?”
“아오. 객주한테도 말했소. 셋을 부르면 아홉 냥이라고 하더구먼. 아홉 냥을 한꺼번에 낼 수 있는 집은 이 골목에 없소. 그래서 석 냥씩 세 번 오게 하오. 세 번 올 때마다 부르는 사람은 바뀌고, 바뀐 사람은 앞사람이 누구를 불렀는지 모르오.”
그가 제 굳은살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나는 그 손이 떨리는 것을 봤다. 추워서 떠는 손이 아니었다.
“그럼 셋이 차는 날이 오긴 오오?”
“오기도 하오. 드물게.”
그가 도로 안으로 들어가려다 돌아섰다.
“댁 스승이 노가였소? 이 고을 새기는 집에 이름이 난 노인이 있었다고 들었소. 그 사람이 표를 끝내 안 새겼다던데.”
“그렇습니다.”
“나는 새겼소. 두 번.”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쪽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등잔 세 개의 불빛이 한 줄로 새어 나오다가 빗장 소리와 함께 끊겼다.
*
골목 들머리에 떡전 아들이 서 있었다. 광주리를 옆구리에 끼고, 줄을 향해 턱을 들고 있었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무얼 하시오?”
“세고 있소.”
그가 줄 끝에서 앞으로 눈을 옮기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두 손을 다 접고 나서 다시 펴기를 한 번 하더니 말했다.
“스물셋이오. 아까 나올 때는 스물이었는데 셋이 늘었소.”
“세셨소?”
떡전 아들이 광주리를 고쳐 끼며 나를 봤다. 줄 선 사람들 누구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떡 광주리를 낀 사내 하나가 거기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은 보는 동안만 알았다.
“선생 버릇이 옮았소. 저 스물셋 가운데 몇이 나 같은 사람을 찾으러 왔는지, 그것도 세고 싶은데 그건 못 세겠소.”
그는 줄 쪽으로 광주리를 들어 보이며 떡 사시오, 하고 한 번 외쳤다. 두어 사람이 돌아봤다가 도로 앞을 봤다. 그가 광주리를 내리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우리는 처마 물이 떨어지는 골목을 등지고 저잣거리 쪽으로 걸었다. 내 짚신 한 짝은 끝까지 젖어 있었다.